전문가 칼럼
완도, 지리적 끝단에서 치유의 세계 관문으로[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지방의 시간을 기록하다]⑥
‘나포리 다방’의 멈춘 시간과 사람이 없어 깨끗한 거리
‘치유’는 어떻게 ‘산업’이 되는가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여정의 통영이 ‘예술’이라는 상징 자본을 통해 도시의 쇠퇴를 지연시키며 관광객의 소음으로 생존하는 도시라면, 완도는 철저히 ‘실물 자본’의 생산과 유통으로 지탱되는 거대한 해상 공장이다. 265개의 섬이 징검다리처럼 놓인 이 도시는 대한민국 전복의 70% 이상, 해조류의 절반 이상을 길러내는 명실상부한 ‘수산 경제의 최전방’이다.
완도는 수산업의 힘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자본의 집적지로 성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완도의 거리는 그 탄탄한 경제적 실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적에 잠겨 있다. 한때 완도 전역의 청춘들이 맞선을 보며 미래를 약속하던 ‘나포리 다방’은 이제 굳게 닫혀 있다. 도시 곳곳에서는 발견할 수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니던 개’의 동상 역시 과거의 영광임을 알 수 있다. 개의 입에 물린 500원은 1973년 처음 발행되어 80년대 초반까지 유통되었던 ‘푸른색 500원권 지폐’다. 오늘날의 500원은 자판기 앞에서나 찾는 가벼운 동전이지만, 짜장면 한 그릇이 100원이던 시절 500원 지폐 한 장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 지폐의 유통 시기는 완도가 ‘검은 황금’이라 불리던 김 양식으로 대한민국 수산 경제의 정점을 찍었던 황금기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동상 속의 푸른 지폐는 바다가 육지의 부(富)를 압도했던 완도만의 자부심을 박제하고 있는 셈이다.
그 자부심을 육지로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된 9개의 다리는 역설적이게도 완도의 부를 외부로 유출하는 거대한 빨대가 됐다. 과거 완도가 누렸던 독보적인 지경학적 풍요의 관성은 도시 구석구석에 화석처럼 남아 있으나, 정작 그 자산이 순환되어야 할 거리는 너무나 고요했다.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시내 거리의 정돈됨에 무심코 감탄을 내뱉자 나를 안내하던 현지인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뼈아픈 한마디를 던졌다. “사람이 없어서 깨끗한 겁니다.” 그 말 끝에 묻어난 서늘한 두려움은 단순히 인구 감소라는 통계 수치를 넘어 도시의 신진대사가 멈춰가고 있다는 냉혹한 징후였다. 활기찬 산업적 소음이 사라진 자리를 메운 것은 ‘청결한 정적’뿐이었다.
끝단의 의식과 잃어버린 ‘청해진’의 유전자
1968년 14.6만명에 달했던 인구가 현재 4만명대로 급감했음에도 완도의 경제적 기초 체력만큼은 여전히 건재하다. 수산 지표들은 완도가 여전히 ‘부유한 섬’임을 증명한다. 문제는 이 수산 대국이 일궈낸 부가 더 이상 지역의 ‘정주 인구’로 치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완도는 천혜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끝단이라는 물리적 한계와 육지 중심의 개발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다리는 놓였으되 사람을 불러들이는 통로가 아니라 자본을 육지의 거대 도시로 실어 나르는 일방통행의 도관이 됐다. 과거 장보고기념관에서 확인한 9세기의 완도는 결코 끝단이 아니었다. 당나라와 일본, 심지어 아랍 상인들까지 드나들던 동북아의 글로벌 플랫폼이자 관문이었다. 하지만 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완도는 수산물을 ‘따서 보내는’ 1차 산업의 기지 역할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고 소비하는’ 3차 산업의 매력을 공간화하지 못하는 한, 완도의 다리는 소멸을 가속화하는 역설의 장치로 남을 뿐이다.
완도가 소멸의 파고를 넘기 위해 승부수로 던진 ‘해양치유’는 이 지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해양치유센터의 풍경은 기대보다 아쉬움이 컸다. 명사십리 해변에 자리 잡은 센터 자체의 외형은 신산업의 거점이라기에 다소 소박했고 무엇보다 센터를 이용할 방문객들이 머물 번듯한 숙소나 상업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기엔 민망할 정도의 빈약한 정주 인프라는 완도가 여전히 ‘휴양에서 ‘치유’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완도의 벤치마킹 모델인 프랑스의 로스코프(Roscoff)를 보자. 인구 3300명의 이 작은 마을은 매년 인구의 160배가 넘는 55만명의 방문객을 불러모은다. 그중 40% 이상이 외국인이다. 그들은 단순히 바다를 보러 오지 않는다. 의사의 처방에 따른 정교한 해상 치료를 받기 위해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고 장기 체류한다. 바다를 ‘관광지’가 아닌 ‘의료적 플랫폼’으로 재정의한 결과다. 일본 시마네현의 아마정(海士町)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구 2300명의 이 섬은 CAS(급속 냉동)라는 기술을 입혀 수산물의 가치를 극대화했고 그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교육과 정주 환경을 개선했다. 그 결과 인구의 20%가 넘는 청년 이주민을 확보했다. 그들에게 바다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된 ‘기회의 영토’였다.
다시, 관문을 꿈꾸다
해양치유센터 2층 발코니에서 명사십리의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며 이 도시의 가능성과 한계의 기묘한 동거를 확인한다. 완도의 해조류는 세계 최상급이며, 바다의 기운은 로스코프 못지않게 강력하다. 하지만 이를 담아내는 그릇(도시 계획과 인프라)은 여전히 낡고 투박하다. 완도가 지방소멸의 절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끝단’의 의식을 버리고 다시 ‘관문’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완도의 전복과 해조류가 식탁 위(1차 산업)를 넘어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처방전 위(3차 헬스케어 산업)로 올라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센터 건립을 넘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숙박 시설과 의료 연계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청년들이 돌아와 일할 수 있는 ‘수산 테크’ 생태계가 공간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장보고의 배가 드나들던 천 년 전의 바다와 명사십리의 파도는 변하지 않았다. 변해야 하는 것은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 자산을 다루는 도시의 전략이다. 완도를 ‘치유의 글로벌 게이트웨이’로 재설계하는 과감한 공간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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