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일하는 사람’ 정의 모호…플랫폼 기업, ‘일법 패키지’에 한숨 커진다 [긱워커 870만, 일터 기본법 파장은]②
- 정부, 870만 ‘권리 밖 노동자’ 보호 나서…5월 입법 목표
배송·배달·대리운전 등 직격탄…비용 증가·고용 위축 우려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정부가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하 일터 기본법) 제정과 ‘근로자 추정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플랫폼 산업 전반에 긴장감이 감돈다. 프리랜서 계약 비중이 높은 플랫폼 업계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정부가 목표한 입법 시점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추진 상황에 경영계와 노동계의 관심이 쏠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20일 국회와 협의해 오는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이른바 ‘일법 패키지’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일법 패키지의 두 축인 일터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를 통해 약 870만명으로 추산되는 ‘법 밖의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구상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노동 시간 ▲퇴직금 ▲최저임금 등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권리 밖 노동자’는 지난 2024년 사업소득세 원천징수 대상자 기준 최대 869만명에 달한다. 같은 해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약 2241만3000명 가운데 40%가량을 차지하는 규모다.
쿠팡·배민·네이버·카카오 등 타격 예상
핵심은 현행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근로자 추정제 도입이다. 근로자 추정제는 프리랜서·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를 민사 소송에 한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업주가 반증하지 못하면 근로자로 인정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노동자 스스로 근로자성을 입증해야 했다면, 법 개정 후에는 사용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배달 기사(라이더)나 택배 기사,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정보통신(IT) 업계 프리랜서 등이 근로자로 인정되면 ▲최저임금 ▲4대 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주 52시간제 등의 적용 대상이 된다.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이들의 권리 보호는 일터 기본법이 담당한다. 일터 기본법에는 ▲공정하고 투명한 계약을 체결할 권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사회보장제도를 향유할 권리 등 8가지 기본 권리가 담겼다.
경영계는 법안이 도입되면 인건비와 법정 비용 등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배달·대리운전을 비롯해 웹툰·웹소설·엔터테인먼트 등 소위 ‘긱워커’(Gig Worker)로 불리는 초단기 근로자가 많은 플랫폼 업체의 충격이 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쿠팡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CJ대한통운 ▲네이버웹툰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의 기업이 법 영향권에 들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기업으로는 쿠팡이 거론된다. 쿠팡은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와 배송 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등 배송뿐 아니라 배달·콘텐츠 제작 및 송출 사업 등을 운영한다.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 ▲쿠팡 퀵플렉스(개인 배송자) ▲물류센터 협력직 등 고용 형태가 다양하다.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 업계도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리케이션(앱)·결제 데이터 기반 시장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라이더 앱인 배민커넥트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지난 2월 말 기준 48만명으로 집계됐다.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의 MAU는 69만명 수준이다. 두 배달 플랫폼의 이용자 수를 합하면 120만명에 달한다.
플랫폼 노동자인 라이더가 근로자로 간주되면 ‘시간당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돼 라이더의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배달 건수에 따라 달라지는 라이더의 임금체계에 최저임금법을 어떻게 적용할지도 문제다.
‘고용 사업자’에 대한 기준 역시 모호하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라이더의 90% 이상이 배민과 쿠팡이츠를 비롯해 배달 대행사 등 여러 개의 배달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한다. 배달뿐 아니라 택배, 대리운전 등을 함께 하는 경우도 많다.
‘자유롭게 일할 자유’ 사라질 수도
업계는 일법 패키지 입법이 현실화하면 플랫폼 사업자의 비용 부담 증가로 라이더의 수입과 고용이 감소하고 배달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고 본다. 인건비 상승에 따라 배달비가 인상되고 음식 가격이 오르면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부분의 라이더는 법안 도입을 반대하는 분위기”라며 “상사의 지시를 따르거나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게 싫어 라이더를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을 근로자로 묶어 규제하게 되면 유연한 노동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더는 근로 시간에 제약이 없어 일하는 만큼 벌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게 되면 수익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4대 보험 등 비용 부담도 늘어 실질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아한형제들은 프리랜서 형태로 운영돼 온 배달 산업에 직고용 제도를 도입한다는 취지로 지난 2022년 7월 손자회사 ‘딜리버리앤(N)’을 설립했으나 작년 12월 법인을 청산했다. 딜리버리앤은 라이더에게 연봉 3000만원과 4대 보험,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을 적용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초반 40명가량이던 라이더는 지난해 하반기 10명 내외로 감소했다. 근무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적인 형태 기존 근무 방식과 달리 고정 근무 시간과 출퇴근 체계 등에 부담을 느낀 라이더의 이탈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플랫폼 기업은 법안 추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구체적인 적용 범위와 기준 등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는 신중한 입장이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일법 패키지 도입이 확정되면 대응 전략을 고민하겠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하위 법령이 마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규제가 현실화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증가할 수 있어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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