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도넛 금융 안 된다” 인뱅, 금리 절벽 해소 압박…‘혁신 역할론’ 다시 불거져
- [인뱅 체리피킹 논란]①
중·저신용 대출 30% 넘겼는데…정부 “혁신 데이터 증명하라”
비금융 데이터 반영한 CSS 고도화 주문…“역차별·건전성 우려” 반론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인터넷전문은행(인터넷은행)이 ‘체리피커(Cherry Picker)’라는 지적을 받으며 역할론이 불거졌다. 체리피커는 접시에 담긴 많은 과일 중 맛있는 체리만 골라 먹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보통은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실속만 챙기는 소비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번엔 인터넷은행이 대출해주기 쉬운 소비자를 골라 영업을 한다는 의미로 체리피커에 비유됐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5월 1~3일 ‘금융의 구조’ 시리즈 3편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체리피킹은 인터넷은행의 사명이 아니다”라며 “그들이 가진 데이터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명확히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발언의 배경으로는 중·신용자가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한국 금융시장의 상황이 자리한다. 김 실장은 “상위 등급은 낮은 금리로 안온하게 자금을 조달하지만, 그 아래는 깎아지른 듯한 고금리의 절벽이 기다린다. 그 두 지점 사이가 크게 비어 있다”며 한국 금융시장이 “가운데만 휑하게 뚫린 커다란 도넛” 같다고 비유했다.
그런데 인터넷은행을 지적한 것은 이들이 우량 고객을 골라 대출을 확대하거나, 신용점수가 낮은 차주에게 높은 대출 금리를 적용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빌려주면서 중급 신용자들이 소외받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리스크는 관리해야겠고 비용은 쓰기 싫으니 그 구간을 다루지 않는 선택이 더 합리적으로 작동해온 셈”이라고 했다.
“체리피킹은 사명 아니다”…김용범 정책실장 질타
김 실장은 신용평가 체계의 개편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언제까지 과거의 연체 기록이나 카드 이력만 쳐다보고 있을 건가”라며 소비·납부·플랫폼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비금융 데이터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개인신용평가 세부 항목에서 과거 연체와 금융 이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92.7%(나이스평가정보 기준) 수준인데 금융 이력 이외의 평가 요소를 더 많이 반영해 신용 등급에 적용하고 대출 금리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정책실장이 최근 ‘금융기관은 준공공기관’이라고 아주 잘 지적했다”며 “욕먹을 일이 아니다. 뜻대로 하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이 30%를 웃돌고 있어 당초 인터넷은행에 기대했던 역할을 충족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오히려 정부가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기 위해 인터넷은행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30%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카카오뱅크 32.1% ▲케이뱅크 32.5% ▲토스뱅크 34.9% 수준이다. 신규 취급건의 평잔(평균잔액) 비중은 이보다 2~3%가량 높은 수준이다. 토스뱅크의 경우 48.8%에 이른다.
실제 인터넷은행 3사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비중은 2020년 말부터 꾸준히 확대됐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2020년 말 기준 10.2%, 2021년에는 17%, 2022년 25.4%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30.1%까지 올렸다. 같은 기간 케이뱅크는 21.4%에서 28.1%, 토스뱅크는 23.9%에서 32.3%로 늘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2023년 12월 발표한 ‘인터넷전문은행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계획’ 보고서는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규모가 2020년 말 대비 4.7배 증가하고 2023년 말 목표인 30%에 근접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진단했다. 또 기존 금융정보 외 다양한 대안정보를 활용해 상환능력 평가 역량을 향상시켜 신용 공급 증대 및 금리 인하 등 효과를 시현했다고 설명했다.
공급 목표 30% 달성…“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다만 금리 상승 과정에서 연체율 상승 등을 감안할 경우 안정적인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을 지속하기 위해 건전성 관리 강화와 함께 신용평가모형(CSS)의 추가 고도화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2024~2026년 인터넷은행이 건전성을 관리하면서 안정적으로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공급을 지속할 수 있도록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간동안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평잔 30% 이상으로 잡았는데 이는 인터넷은행이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음을 언급했다. 보고서는 ▲전체 차주 중 중·저신용자 비중이 50% 이상 ▲고신용자에 비해 중·저신용자의 대출액 규모가 작음 ▲중·저신용자 대출의 건전성 관리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목표 비중을 30% 수준보다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중·저신용자가 신용평가에서 불이익을 보지 않고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차주의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차등 적용하는 것은 금융 시스템의 기본이기 때문에 인터넷은행이 체리피킹한다는 비판만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저신용자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을 시행하는 포용금융을 확대하는 게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이는 성실히 신용을 지켜온 고신용자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고 자칫 연체가 발생하거나 대출 상환이 어려워지면 그 위험을 고스란히 은행이 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당국이 대출 비중 30%를 제시해놓고 지금 와서 탐탁지 않다고 말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인터넷은행 3사의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계획이 종료되는 만큼 비중 확대와 CSS 고도화에 대한 압박도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명확한 지침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당국과 은행들이 모여 신용평가 제도를 점검하고 구체적인 비중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해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 출범한 지 10년 가까이 되며 어느 정도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지만, 새로운 신용모델을 만들 경우 이를 검증하고 적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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