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국민연금 리밸런싱 재개…국내주식 비중 조정 '시험대'
- [리밸런싱의 시간] ①
국내주식 비중 조정 돌입…장기 자산배분 원칙 적용
연기금 7월 1일 2180억원어치 순매도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국민연금이 7월 1일부터 국내주식 정상 리밸런싱에 돌입했다. 지난해부터 한시적으로 적용해온 국내주식 자산배분 유예조치가 6월 말 종료되면서 그동안 미뤄졌던 비중 조정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최근 코스피가 단기간 급등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액이 크게 늘어난 만큼 자산배분 원칙에 따라 초과 비중을 줄이는 절차가 불가피해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 들어 코스피가 고공행진하며 국민연금은 지난 1월 기금운용위를 열어 6월 말까지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최근 코스피 상승으로 국내주식 비중이 확대된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국민연금의 실제 비중이 확대된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 상단인 28.8% 수준을 넘어섰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대 50조원 안팎의 매도 가능성이 거론되며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이번 리밸런싱은 시황을 전망하거나 차익실현을 위한 투자 판단이 아니라 국민연금의 장기 자산배분 원칙에 따라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포트폴리오 조정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관 매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번 리밸런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를 팔 것인가'보다 '왜 지금 비중을 줄여야 하는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장기 투자기관이다. 단기 수익률을 추구하기보다 수십 년 뒤 가입자에게 안정적으로 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기금을 운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이를 위해 ▲국내주식 ▲해외주식 ▲국내·해외채권 ▲대체투자 등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정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특정 자산에 쏠리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균형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활용되는 것이 리밸런싱이다. 특정 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하락해 목표 비중에서 벗어나면 일부를 매도하거나 추가 매수해 다시 원래 비율로 되돌리는 절차다. 쉽게 말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분산투자 원칙을 실제 운용에 적용하는 과정이다. 가격이 크게 오른 자산은 비중을 줄이고, 반대로 급락한 자산은 비중을 늘려 장기적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코스피 랠리가 키운 국내 주식 비중…'28.8%'가 기준선
이번 리밸런싱의 직접적인 배경은 국내 증시의 가파른 상승이다. 코스피는 정책 기대와 외국인 순매수 확대 등에 힘입어 단기간 큰 폭으로 상승했고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주식 평가액 역시 빠르게 증가했다. 별도로 주식을 사지 않았더라도 보유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국내주식 비중 자체가 자연스럽게 확대된 것이다.
국민연금의 올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은 20.8%다. 다만 실제 운용에서 일정 범위 안에서 목표치를 벗어나는 것은 허용한다. 시장 상황에 따라 자산 가격은 매일 변하기 때문에 목표 비중을 매 순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허용 범위를 넘어설 경우 다시 목표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장기 자산배분 원칙을 유지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개념이 전략적 자산배분(SAA)과 전술적 자산배분(TAA)이다. SAA는 국민연금이 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자산군별 목표 비중과 허용 범위를 의미한다. TAA는 시장 상황 변화에 대응해 허용 범위 안에서 일시적으로 비중을 조절하는 운용 전략이다. SAA가 장기적인 설계도라면 TAA는 그 안에서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장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이번 리밸런싱 과정에서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국내주식 SAA 허용 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다만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운용 전략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이를 이용한 선행매매 등 시장 왜곡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증권가는 확대된 SAA와 TAA를 모두 반영할 경우 국내주식 비중의 실질 허용 상단이 약 28.8%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28.8%' 역시 이 같은 분석에서 비롯됐다. 이 수치는 단순한 비율이 아니라 향후 리밸런싱 규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허용 범위가 넓을수록 당장 줄여야 할 비중은 감소하고, 반대로 허용 범위가 좁을수록 매도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9000선을 기준으로 SAA와 TAA를 모두 적용한 최대 허용 범위(28.8%)를 가정해도 약 37조원의 비중 조정이 필요하다"며 "허용 범위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매도 규모는 70조원을 웃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50조원 안팎'의 리밸런싱 물량 역시 이러한 자산배분 시나리오를 토대로 계산한 추정치다. 실제 규모는 향후 코스피 수준과 자산 가치 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 거론되는 수십조원 규모는 현재 자산 비중을 기준으로 산출한 이론적인 수치에 가깝다. 실제 집행 규모와 시기, 속도는 국민연금의 운용 전략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은 자산배분 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시장 충격을 최소화해야 하는 책임도 함께 지고 있다. 실제 리밸런싱은 하루 만에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 상황을 고려해 거래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 리밸런싱 재개 첫날인 7월 1일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180억원치(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 합산)를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및 반도체 수혜주가 이름을 올렸다. 이에 반해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SK하이닉스·아모레퍼시픽·크래프톤 등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하는 연기금 거래 대부부은 국민연금이 차지하고 있다.
매도는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에 집중됐다. 연기금은 삼성전자를 981억원어치 순매도한 데 이어 SK스퀘어(958억원), 삼성전기(442억원), 삼성물산(239억원), 삼성생명(151억원), LG이노텍(148억원), 삼성화재(132억원) 등을 주로 팔았다. 반면 SK하이닉스와 아모레퍼시픽, 크래프톤 등은 순매수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연금이 반도체와 금융 등 대형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비중을 조정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다만 하루 거래만으로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방향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기금 거래의 대부분을 국민연금이 차지하고 있지만, 리밸런싱은 특정 종목의 투자 판단이 아니라 자산군과 업종, 종목별 비중을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순매수 흐름이 이어지고 패시브 자금 유입이 지속될 경우 국민연금의 매도 물량 상당 부분을 시장이 흡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외국인까지 동시 매도세로 전환할 경우 수급 부담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종목별 매매는 개별 기업의 전망보다 전체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운용 전략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하루 거래보다 일정 기간 누적된 매매 흐름을 함께 살펴봐야 리밸런싱 방향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리밸런싱은 단기 시황을 예측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투자 전략이 아니라 장기 포트폴리오를 정상화하는 운용 절차다. 시장의 관심은 '수십조원 매도'라는 숫자에 집중돼 있지만 실제 시장 영향은 집행 방식과 수급 여건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7월부터 시작된 이번 리밸런싱은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가 장기 자산배분 원칙을 어떤 방식으로 실행하는지, 그리고 시장이 이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번 리밸런싱은 국민연금이 주식을 얼마나 파느냐보다 장기 자산배분 원칙을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의미가 있다"며 "수십조원이라는 숫자보다 실제 운용 과정에서 시장 충격을 얼마나 분산시키느냐가 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래픽 추가 <<<<<<
┌──────────────────────────────────────────────────────────────┐
│ 코스피 상승에 따른 국민연금 리밸런싱 예상 매도 규모 │
├────────────┬──────────────────────┬──────────────────────┤
│ 코스피 수준 │ 허용범위 미사용(26.8%) │ 최대 허용 추정(28.8%) │
├────────────┼──────────────────────┼──────────────────────┤
│ 8,500p │ 51조2,000억원 │ 14조7,000억원 │
│ 9,000p │ 74조4,000억원 │ 37조3,000억원 │
│ 9,500p │ 97조7,000억원 이상 │ 대폭 증가 │
└────────────┴──────────────────────┴──────────────────────┘
※ 자료: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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