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통령 한마디에 금융당국 대출 규제 예외 검토…총량 증가율 ‘1.5% 제한’ 풀리나
- 李 대통령 ‘실수요 잔금대출’ 점검 지시…금융당국 총량 관리 수정 검토
시중은행 대출 한도 소진에 ‘대출 절벽’ 현실화…‘갚을 능력보다 타이밍’ 비판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가 ‘실수요자 자금’을 대출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전격 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 가계 대출 관리 정책이 수정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 부채 확대 문제를 잡기 위해 대출 총량 증가율을 ‘1.5%’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시중은행의 대출총량 증가율이 한도에 다다른 상황에서 실수요자 자금 대출이 예외로 인정되면 전체 대출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3일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수원 한 아파트 입주 예정자”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잔금 대출을 아예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입주를 앞둔 많은 실거주 예정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2년 전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을 받았는데 가계 대출 총량 규제로 은행에서 대출이 나오지 않아 문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억원 금융위원장에게 “한 번 점검해보라. 저런 지적들이 꽤 있더라”라며 “‘이미 확정된 건데 사후 정책을 변경하면 어쩌란 말이냐’라는 등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점검’ 지시 이후 금융당국은 청년과 서민의 실수요자용 대출을 가계 대출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부가 올해 초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1.5%로 제시했을 당시부터 대출 절벽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는 점이다. 정부 목표치를 단순 계산하면 금융권이 올해 늘릴 수 있는 대출 한도는 약 28조원으로 지난해 증가액(37조6000억원)보다 9조원가량 적은 수준이다.
은행들은 상반기에 대출을 어느 정도 풀다가 대출 한도가 목전까지 차면 하반기에 대출을 줄이는 패턴을 보였는데, 올해도 이런 문제가 생길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실제 KB국민은행은 최근 주택구입자금 대출 최대 한도를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줄였고 우리은행은 영업점별 대출 취급액을 월 30억원에서 10억원으로 축소했다. 이 밖에 5대 시중은행 모두 주택담보대출의 모기지보험(MCI·MCG) 취급을 제한하면서 대출 한도를 수천만원까지 축소했다.
사실상 은행이 대출 창구의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대출 수요자들 사이에서는 “갚을 능력보다 타이밍을 잘 잡아야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얼마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집을 사려면 상반기에 결정하고 시행해야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 토론회에서 나온 실수요자의 목소리가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실수요자의 대출 문제가 해결되면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기 전 우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았다가, 정작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예외를 검토하는 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청년·서민 실수요자 대출이 가능해지면 대출총량 목표치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금융권의 대출총량에서 실수요자 대출을 예외로 인정하고 수치에서 제외하면 장부상 대출 증가율은 1.5% 미만으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 실제로 풀리는 자금의 절대량은 1.5%라는 한계선을 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명목 수치상으로는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보이는 ‘숫자의 착시’가 발생하는 셈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의 한도가 거의 소진된 상태에서 실수요 대출이 총량 대상에서 제외되면, 사실상 닫혀 있던 대출 창구를 다시 개방하는 것과 같다”며 “대출 가능한 조건을 명확히 하고 대출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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