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중국 천재들은 공대로, 한국 천재들은 의대로 [AI 3강 이끌 개척자들]⑦
- 파격적 보상과 인프라로 영재 흡수하는 중국
‘의대 블랙홀’과 ‘실리콘밸리 이탈’에 이중고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세계 첨단 기술 전쟁의 승패를 가를 인공지능(AI) 파괴력의 핵심은 단연 ‘인재’다. 그러나 글로벌 AI 패권 경쟁의 전선에서 한중 양국의 영재 육성 지도와 인재 흐름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과 파격적 대우를 무기로 최상위 천재들을 이공계로 쓸어 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최상위권 영재들이 연구 현장을 떠나 의대로 쏠리거나 실리콘밸리로 탈출하는 구조적 왜곡에 직면해 있다.
中 화웨이의 ‘천재 소년’ 프로젝트
중국은 이공계 인재 확보에 진심이다. 중국 정부의 해외 인재 유치 프로젝트 ‘천인계획’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8년 출범한 이 프로그램은 해외 석학과 유학파 연구원에게 파격적인 주거 및 연구비, 고액 연봉을 지원하며 대규모 귀국을 유도했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AI·반도체·바이오 등 전략 산업의 기술 격차를 대폭 축소했다. 미국의 기술 유출 경계 등으로 최근에는 비공개 형태인 ‘치밍’ 프로그램 등으로 개편됐으나, 국가 주도형 인재 확보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평가받는다.
중국 기술 굴기의 상징인 화웨이는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한복판에서 파격적인 영재 확보책인 ‘천재 소년’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나이와 학력, 전공을 불문하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영재를 발굴해 최고 201만위안(약 4억원)에 달하는 초고액 연봉을 보장한다.
단순히 금전적 보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최고 수준의 연산 자원(GPU 클러스터)과 함께 어떠한 관료적 제약도 받지 않는 연구 자율권이 부여된다.
학계 차원의 전용 트랙도 정교하게 구비돼 있다. 칭화대의 ‘야오반(야오치즈 클래스)’과 베이징대의 ‘튜링반’이 대표적이다. 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인 야오치즈 교수의 이름을 딴 야오반은 올림피아드 최상위 수상자 등 자국 내 최고의 영재들만을 모아 세계적 석학의 1대1 지도와 초격차 AI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
형평성 논란을 넘어 '최고의 인재에게 최고의 자원을 투입한다'는 수월성 교육 기조 아래,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AI 핵심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강력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반면 한국의 영재 교육 생태계는 ‘의대 쏠림’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삼켜졌다. 자연계열 수능 최상위권의 대부분이 의대 진학을 선택하며, 서울대 공대나 카이스트 등 최상위 이공계 대학에 입학한 영재들조차 중도 포기하고 의대 재수에 뛰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왜곡의 근본 원인은 이공계 진학에 대한 보상 체계와 사회적 인센티브의 부재다.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기술인이 직면하는 불확실한 미래와 낮은 직업 안정성, 의사 대비 턱없이 부족한 경제적 보상은 영재들을 연구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 이공계 인재 육성에 국비 수억원이 투입돼도, 정작 기술 혁신의 주역이 돼야 할 두뇌들이 의료 현장으로 이탈하는 자원 배분의 비효율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의대 블랙홀’에 빠진 韓 이공계
의대 쏠림을 뚫고 이공계에 남아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국내 핵심 AI 연구자들마저 한국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향하고 있다. 한국의 연구 현장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경쟁하기에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경직된 연봉 체계와 촘촘한 연구비 정산 규제다. 아무리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더라도 연구원 개인에게 시장 가치에 비례하는 파격적 보상을 줄 수 있는 제도적 길목이 막혀 있다.
여기에 AI 연구의 핵심 무기인 고급 연산 자원(GPU)의 극심한 부족은 연구자들의 무력감을 가중시킨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연구원들이 최신 GPU 클러스터에서 마음껏 실험을 거듭할 때, 국내 연구자들은 제한된 연산 자원 순번을 기다리며 연구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것이 서글픈 현주소다.
그동안 한국의 과학기술 성과는 연구자 개인의 헌신과 희생에 의존해 유지돼 왔다. 그러나 국가 간 AI 패권 전쟁이 본격화된 지금,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방식은 명확한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인재를 빼앗기는 국가에게 AI 주권은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 이제는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궁극적으로는 지식재산(IP) 중심의 보상 제도가 정착되고, 이를 통한 대형 성공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며 “공대에 진학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의대에 가는 것보다 확률적으로나 규모 면에서 더 큰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장관 재임 시절 ‘IP 스타 과학자’ 제도를 도입해 스타 연구자를 발굴하고 지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우수한 성과를 낸 과학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고 언론에 조명될 때, 학부모와 학생들의 진로 선택 기준도 이공계 쪽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벤처 창업을 적극 장려하고 성공 사례를 만들어주는 정책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5인 이상 사업장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은 집중 연구가 필요한 첨단 기술 및 벤처 R&D 분야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며 “실리콘밸리나 해외 인재들이 ‘한국에서 벤처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느낄 만큼 금융·문화·제도적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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