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정부 인증도 못 막은 해킹…AI 해커 맞설 ‘AI 방패’는?
- [방패 없는 AI 해킹전쟁, 과징금이 해법인가]④
‘ISMS-P 인증 기업’ 잇단 침해…인증 범위 밖 기간망·협력사가 뚫렸다
보안업계 AI 관제로 오탐·대응시간 줄였지만…“화려한 AI보다 기본기가 답”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정부가 공인한 최고 권위의 정보보호 인증을 획득하고도 대규모 해킹을 당하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공동 운영하는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ISMS-P)는 기업의 보안 신뢰도를 보증하는 핵심 지표로 통하지만 인공지능(AI) 공격자들의 침투 앞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생성형 AI로 무장한 해커들이 정교한 공격을 퍼붓는 가운데, 서류 중심 평가와 협소한 심사 범위에 머무는 인증 체계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증은 ‘대고객 서비스’만…해커는 ‘범위 밖 기간망’ 노렸다
최근 수년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및 침해 사고를 겪은 통신·플랫폼·유통·금융 대기업 상당수는 사고 당시 유효한 ISMS-P 인증을 보유 중이었다. 시스템이 뚫린 결정적 원인은 ‘인증 범위와 실제 침해 경로 간의 괴리’다. 현행 제도는 전사 인프라가 아니라 기업이 신청한 특정 서비스·시스템 범위에 한정해 심사받는 ‘선택형 범위 설정’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많은 기업들이 심사 부담을 줄이고자 핵심 대고객 서비스 위주로만 인증 범위를 좁혀 왔다.
반면 해커는 인증 범위에서 제외된 핵심 네트워크 설비나 외주 업무망 등 사각지대를 집요하게 노렸다. 외부 유지보수 업체의 원격 계정, 통제가 느슨한 외주 개발사 가상사설망(VPN), 방치된 테스트용 서브 클라우드 등이 대표적 침투 통로다. 방어가 취약한 3·4차 협력사 직원의 PC를 악성코드로 감염시킨 뒤, 합법적 관리자 계정을 탈취해 인증 범위 내 내부망(망분리 구역)으로 침투한 것이다. 이에 정부도 뒤늦게 외부 접점 자산과 연관 설비를 인증 범위에 의무 포함하도록 제도 개편에 나선 상황이다.
인증 취득 후 유지·관리 체계도 보완이 시급하다. 원칙적으로 ISMS-P는 매년 사후 심사를 거치고 중대 변경·사고 시 점검을 받아야 하지만, 부족한 심사 인력 탓에 현장 점검은 기업이 제출한 서류와 표본 샘플을 검토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침해 사고가 발생해도 과징금 부과와 시정 조치 요구로 마무리될 뿐 실제 인증 취소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부실 심사에 대한 사후 책임 추궁 역시 실효성이 낮다. 정보통신망법 등 관련 법령상 고의·중과실로 부실·부정 심사를 한 경우 인증기관 지정 취소나 심사원 자격 취소·정지 등 행정처분 규정은 존재한다. 그러나 사고 이후 심사 과정의 과실을 입증해 중징계를 내리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심사가 실질적 방어 검증보다 서류상 체크리스트 충족을 확인하는 컴플라이언스 절차에 그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안랩 등 ‘AI 방패’ 현장 투입했지만 기술적 과제도
규제의 한계를 넘기 위해 산업계는 AI 기반 보안 체계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안랩 등 주요 보안 기업들은 확장탐지 및 대응(XDR), 보안 오케스트레이션·자동화(SOAR) 기술을 결합해 AI 능동형 방어 시스템을 현장에 배치하고 있다.
보안 업계의 주요 도입 사례에 따르면, 대형 보안관제센터(SOC)에 AI 이상행위 탐지·자동 대응 엔진을 적용할 경우 하루 수십만건의 경보 중 단순 오탐 처리 부담이 통상 50~60% 수준 줄고 초기 대응 시간(MTTR)도 수 시간에서 수 분 이내로 최대 70%가량 단축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대규모 언어모델(LLM) 어시스턴트가 패킷 맥락을 분석해 침투 시나리오를 실시간 요약·제공하는 기술도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AI 방어 기술도 만능은 아니다. 해커가 알고리즘 패턴을 역이용해 탐지 임계치 아래로 트래픽을 흘려보내는 ‘적대적 회피 공격’이나 정상 데이터에 미세 노이즈를 섞어 공격 코드를 숨기는 기법은 탐지가 까다롭다. 정상 트래픽을 공격으로 오판해 핵심 시스템을 멈추는 가용성 침해 리스크도 기술적 숙제다.
“신무기보다 기본에 충실해야”
전문가들은 차세대 AI 솔루션이 도입되더라도 기본 보안이 무너지면 어떤 방패도 무용지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보안 업계의 주요 유출 조사 보고서들에 따르면, 침해 사고의 70~80% 이상은 최첨단 제로데이 취약점이 아니라 유출 계정 악용이나 패치 지연 등 기초적인 틈새에서 시작된다.
업계에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으로 예외 없는 ‘다중인증’(MFA) 도입이 있다. 단순 아이디·비밀번호는 유출된 크리덴셜 데이터와 무차별 대입 공격 앞에서 무력하므로, 임직원과 협력사 원격 접속, 인트라넷, 클라우드 콘솔 등 모든 접점에 일회용 패스워드(OTP)나 생체인증(FIDO2) 등 피싱 저항성 MFA를 강제해야 한다.
‘제로 트러스트’ 기반 최소 권한 관리도 필수다. 내부자를 신뢰하는 경계선 보안을 버리고 네트워크를 세부 구역으로 쪼개는 마이크로 세그멘테이션과 최소 권한 원칙을 적용해야 외주사 PC·계정이 탈취돼도 핵심 데이터베이스로의 횡적 이동을 막을 수 있다.
취약점 ‘상시 자동화 패치’도 중요하다. 주요 침투 통로는 수개월 전 패치가 공개된 ‘알려진 취약점’인 만큼, 전사 IT 자산 식별을 자동화하고 위험도 기반 우선순위를 정해 공지 즉시 테스트·배포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부와 차단된 ‘불변 백업’과 실전 복구 훈련이 필요하다. 랜섬웨어 표적인 온라인 백업 서버를 지키려면 물리적 격리와 관리자도 수정·삭제할 수 없는 불변 스토리지를 구축하고, 전사 다운을 가정한 모의 훈련으로 재해 복구 시간을 단축해 놓아야 한다.
안랩 관계자는 “AI가 공격 속도와 생산성을 높이는 만큼 기업도 여러 보안 데이터와 위협 정보를 AI로 연계 분석해 공격 흐름과 이상 징후를 신속히 파악·대응해야 한다”며 “다중 인증·최소 권한·보안 업데이트 등 기본 수칙을 실천하고, 고객용 서비스뿐 아니라 업무 지원 시스템과 API까지 접근통제·이상행위 모니터링을 점검하며 고객정보 보관·조회 범위를 최소화해 실제 환경에서 적절히 작동하는지 지속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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