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이 띄운 '반도체사이클 파괴', '공포의 붐앤버스트'도 끝인가
- 반도체, 전통의 사이클 산업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 반복
AI 열풍에 새로운 장이 열려, 기존 사이클 공식 깨져
AI는 반도체 촉진제 아닌 새로운 수요의 기반, 수요 질 자체가 바뀌어
[이코노미스트 김두용 기자]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반도체의 전통적 호황과 불황 사이클 공식이 깨졌다’고 입을 모은다. 공포의 ‘업앤다운’ 사이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2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전통 사이클 산업’에서 벗어난 반도체의 구조적 변화를 언급했다.
그는 미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AI 시대 반도체 시장 구조와 관련해 “확실한 구조적인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 옛날과 같은 공급 과잉 패턴의 사이클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은 명확해졌다”고 진단했다.
반도체는 공급 과잉과 부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꼽힌다.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크고 호황과 불황의 굴곡이 뚜렷한 특징을 보였다. 이에 삼성전자는 2023년에만 해도 반도체(DS) 부문 적자가 약 15조원에 달할 정도로 위기감이 고조됐다.
전통적인 공급 과잉 시기가 도래하면서 SK하이닉스도 그해 약 8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반도체 업체들은 2022년 말부터 재고 부담이 커지면서 범용 D램 제품 위주의 감산을 진행하기도 했다.
반도체 산업은 2024년 AI로 인한 수요 증가로 반등에 성공하며 업턴을 맞았다. 특히 수요 공급 사태로 인해 영업이익이 수직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2026년 3분기에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 이상이라는 신기원을 열기도 했다. 글로벌 빅테크 중 어느 누구도 밟지 못한 ‘분기 100조원’ 고지를 넘어선 것이다. 대규모 적자 이후 3년 만에 삼성전자는 전 세계 영업이익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지난해부터 호황을 맞았고, 올해 초호황세로 불붙은 모양새다. AI 열풍으로 수요가 공급 속도를 능가하고 있는 상황이라 업체들도 서둘러 공급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해외 투자은행(IB)과 시장조사 기관 등도 AI 인프라 확산과 맞물려 반도체 산업이 ‘전통적인 붐 앤 버스트’(Boom and Bust) 사이클 공식에서 벗어났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미국의 종합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과거 메모리 반도체 주식들이 무조건적인 공급 과잉과 폭락의 사이클에 갇혀 지내던 시대는 지났다. 과거에는 단순 컴퓨팅 연산 속도가 중요했다면 AI 시대에는 메모리 대역폭이 성능의 핵심 병목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며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고부가가치 AI 맞춤형 제품이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수요의 질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관인 인터내셔널 데이터 코퍼레이션(IDC)은 “AI는 더 이상 단순한 수요 촉진제가 아니라 산업의 새로운 수요 기반이다.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기존 범용 제품과 완전히 다른 고가의 프리미엄 메모리를 선점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경기 회복 사이클이 아닌 시장이 구조적으로 리프라이싱(repricing)되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투자은행 UBS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HBM 및 첨단 생산 물량이 장기공급계약(LTA) 등을 통해 수년 치 사전 예약된 경우가 많다. 과거처럼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급격한 가격 폭락 위험이 크게 낮아졌다”며 “이에 따라 향후 하락 사이클이 오더라도 급격한 붕괴보다는 완만한 연착륙 형태를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태원 회장도 장기간 압도적 수요를 주목하며 공급망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AI는 겨우 4∼5살짜리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진단한 그는 “아이가 성년이 된다는 것은 결국 범용 인공지능(AGI) 세대로 간다는 뜻이다. 그때까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데이터 학습과 애플리케이션 구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등 반도체 생산 증대를 위해 다방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생산능력을 2030년까지 2배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월 기준 D램 웨이퍼 생산능력을 약 100만장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최 회장은 “지금은 수요와 공급의 차가 매우 크다. 현재 수요 증가 속도가 공장을 짓고 공급을 늘리는 속도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며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웨이퍼를 생산하는데 엄청난 리드타임(Lead Time)이 존재하고 인프라 병목이 많아 공급의 물리적 한계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리적 한계인 웨이퍼 생산능력과 생산 기반을 선제적으로 대폭 확충해 시장의 주도권을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그는 “지금은 어느 국가든 공급 확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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