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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 수상한 고객, 수상한 보험의 진실

Trend >> 수상한 고객, 수상한 보험의 진실

영화 ‘수상한 고객들’에서 안하무인의 보험왕으로 나오는 배우 류승범.

야구선수 출신으로 업계 최고의 안하무인 보험왕 배병우(류승범). 어느 날 자신을 찾아 왔던 고객이 자살한 후 자살 방조혐의로 고발 당하면서 인생 최대 위기에 처한다. 보험왕을 눈앞에 뒀던 2년 전 수상한 고객들과의 찜찜한 계약이 생각난다. 잘못하면 자신뿐 아니라 팀장까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막고자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 수상한 고객은 죽어야 할, 죽고 싶은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사채업자의 협박에서 벗어나 동생이 잘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은 가수 지망생 소연과 틱장애와 욕설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지만 가장으로서 홀로된 누나와 조카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노숙자 영탁. 힘들게 일하지만 딸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해 속상한 네 딸의 엄마 복순과 기러기아빠로 사기를 당한 후 대리운전기사로 살아가면서 가족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겨주고 싶어하는 이 시대의 불쌍한 아빠 상열.



“내가 죽으면 돈 많이 나와요?”영화 속 수상한 고객은 모두 보험금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보험을 꼭 들고 싶다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보험에 가입하겠다고 찾아온 이들. 자살 시도 경험, 장애, 무직 등 보험에 가입시키면 안 되는 이들을 배병우는 보험왕이 되기 위한 욕심에 직업적인 양심을 저버리고 가입시켰다. 우리 시대 슬픈 자화상인 이들은 보험왕 배병우에게 “내가 죽으면 돈 많이 나와요?”라거나 “자살해도 돈 나와요?”라고 묻는다. 만약 이들이 실제로 자살하고 보험금이 지급된다면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는 걸 아는 보험왕 배병우는 자살을 막고 이들의 생명보험을 연금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와 다른 현실 세계 보험의 세 가지 불편한 진실. 첫째, 보험은 아무나 가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보험은 동일한 위험을 가진 사람이 동일한 보험료를 납입해서 동일한 보장을 받는다고 가정한다. 영화 속 인물처럼 자살시도 경험이 있거나, 무직이거나, 일부 장애가 있다면 보험 가입이 어렵다. 위험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보험료를 내는 다른 가입자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보험사가 거절한다.

만약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다. 보험은 쌍방계약이다. 보험 가입자는 자신의 경제적·신체적 상황에 대해 알리고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입할 의무가 있다.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 의무를 가진다. 그런데 자신의 병력이나 건강상의 불리한 사항을 알리지 않고 보험에 가입했을 때는 그 의무를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 의무를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다.

둘째, 자살하더라도 보험금은 지급된다. 단, 조건이 있다. 대한민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인 항목 중 하나는 자살이다. 자살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지만 보험회사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다. 기본적으로 자살은 보험금 지급사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입 후 2년이 지나면 보험금을 지급한다.

통계를 살펴보면 보험회사가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가장 많은 사유 중 하나가 자살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삼성, 교보, 대한 등 주요 11개 생명보험사의 2009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에서 ‘자살 보험금’ 지급액은 1076억원이었다. 자살 보험금 지급 건수도 2007년 3673건에서 2008년 3902건, 2009년 4793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자살하더라도 보험 가입 후 2년이 지나면 보험금을 주는 이유는 뭘까. 자살이라는 충동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런 심리적인 충동을 지속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영화에서 오 부장이 자살하기 위해 기차가 다가오고 있는 철도 건널목을 향해 차를 몰고 가다가 딸의 전화를 받고 자살을 포기했듯이 자살충동을 멈출 만한 일이 2년이란 긴 시간 동안에는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셋째, 나쁜 보험설계사가 있다. 영화 속에서 보험왕은 수상한 고객을 만나 생명보험을 연금으로 전환하라고 권유한다. 고객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에게 상품을 바꾸도록 채근한다. 이런 모습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1990년대 후반 연 복리 9%가 넘는 확정금리 저축성보험을 해약시키기 위해 보험사와 보험설계사가 고객을 설득하던 때가 있었다. 저금리 상황에서 고금리를 지급하는 보험이 계속 유지되면 역마진을 감당하기 힘들어 보험사가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돌던 상황에서 보험설계사들은 상품 전환을 권유하고 다녔다. 보험회사들은 전환실적을 실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보험사와 설계사들이 전면적으로 나섰던 이런 사례뿐 아니라 수당이나 시상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고객의 이익과는 배치된 행동을 한 배병우가 현실에서도 많았다. 어떤 판매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보장내용이나 보험료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결과가 보험처럼 차이가 많이 나는 금융상품도 없다.

가입자의 상황에 맞지 않는 상품, 가입자보다는 설계사나 보험사에게 좋은 상품을 가입시키는 보험전문가가 주변에 적지 않다. 그렇다고 보험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단지 고객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아는, ‘고객님의 꿈이 나의 꿈입니다’라는 외침이 단지 말뿐이 아닌 좋은 설계사도 많이 있다. 그들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수상한 고객에게도 소중한 생명의 가치생명보험은 참 말도 많고, 민원도 많은 금융상품이다. 하지만 생명보험은 분명한 존재 의미가 있고 반드시 필요한 금융상품이다.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생명보험의 의미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보자.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자신의 사망보험금을 가족에게 남기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면, 자신의 생명값인 보험금을 주고 가고 싶은 가족이 없다면 그 누구도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생명보험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험설계사뿐 아니라 많은 금융 전문가도 생명보험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담은 독특한 금융상품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수상한 고객은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족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을 가족에게 남겨주고자 보험을 선택한다. 혹 있을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죽음의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험을 선택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때문이다. 그러나 보험은 결코 생명의 가치를 대체할 수 없다. 그것은 생명이 가진 무한의 가치 때문이기도 하고, 가족을 결코 돈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상한 고객이 보험을 선택하고 죽음을 가슴에 담고 살게 하는 요인도 가족이지만, 결국 자살이 아닌 삶을 선택하도록 하고 삶을 선택한 그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도 가족이다. 수상한 고객, 그들은 보험 고객으로는 분명히 수상한 존재지만 가족을 위해 보험을 선택하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내는 우리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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