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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변동 없는 은행의 변동금리상품 결국…

[Law] 변동 없는 은행의 변동금리상품 결국…


변진장 변호사의 생활 속 법률 이야기…대법원에서 불공정 행위로 판결

은행이 주택을 담보로 일반인에게 대출하는 상품 중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이라는 것이 있다. 대출신청인이 선택한 주기마다 은행이 금리를 변경할 수 있는 상품이다. 대출약정서에는 다음과 같이 정리돼 있다.

‘이자율은 연 %로 하되, 다만 은행은 매 3개월, 매 6개월, 매 1년, 매 2년 중 채무자가 선택하는 매 기간이 종료하는 때마다 이자율을 변경할 수 있다. …은행이 이자율을 변경하는 경우 은행은 변경 기준일부터 1개월간 모든 영업점에 게시하기로 한다. 다만 특정 채무자에 대해 개별적으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즉시 서면 통지하기로 한다. …채무자는 변경된 이율에 대해 이의가 있을 때는 변경 후 최초로 이자를 납입할 날부터 1개월 이내에 본 약정에 의한 대출을 해지할 수 있으며, 채무자가 위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변경된 이율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

은행의 대출 전반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은행여신거래 기본약관에는 ‘채무의 이행을 완료할 때까지 은행이 그 율을 수시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경우에 이자 등의 율에 관한 은행의 인상과 인하는 건전한 금융관행에 따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위와 같이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약관에는 은행이 금리를 변경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유와 금리 변경의 한계 등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은행의 금리변경권이 남용될 우려가 있다. 특히 은행은 채무자에게 금리를 변경하는 경우에만 통지하도록 돼 있어 시장금리가 아무리 인하되더라도 은행이 금리를 고정하는 경우에는 금리변동이 없어 거래상대방에게 금리변경 통지를 할 필요조차 없게 된다. 따라서 채무자로서는 은행이 정한 금리가 적정한 것인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일반 가계대출보다 대출금액이 커서 다른 상품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설령 대출전환이 가능하더라도 다양한 대출상품의 복잡한 금리구조, 상환방법, 상환수수료 등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금전적 비용과 기회비용이 발생해 사실상 대출전환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시중금리 내리면 따라 내려야이와 같이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특성상 대출상환금 내지 해지수수료, 대출이자 등에 관해 은행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르도록 돼 있으며, 대출금 상환 시에도 은행 측이 일방적으로 계산한 경과이자, 수수료를 따르도록 돼 있다. 이 같은 현재의 대출 시스템 아래서 은행들이 시장금리 상승기에 대출금리를 인상해 왔다면, 금리 인하 요인이 발생했을 때도 적정한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게 건전한 거래관행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은행의 대출금리 변경기준의 한계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소개한다. A은행은 지난 3년 동안 대부분의 시장금리가 약 30% 하락했음에도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대출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고정해 두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불공정행위로 판단해 시정명령과 함께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A은행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그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A은행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 쟁점을 살펴본다. 첫째, 불공정거래 행위가 되기 위해선 은행에 거래상 지위의 우월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지난 3년 동안 은행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고객이 아무런 부담 없이 대출전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A은행이 고객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 또는 적어도 상대방의 거래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금융기관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출거래의 경우 양자 사이의 사업능력에 현저한 차이가 있고 대출금액, 담보제공 여부, 대출기간, 이율 등 거래조건의 중요한 부분이 대부분 금융기관의 주도하에 결정되는 점을 주목했다. 또 주택담보대출은 대출금액 규모가 다른 가계대출에 비해 크고, 대출기간 중 금리가 적정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은행으로 대출을 전환하기도 사실상 어렵다고 봤다. 여기에 다양한 대출상품의 복잡한 금리구조, 상환방법, 상환수수료 등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금전적 비용과 기회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대출전환을 위해선 중도상환 수수료 이외에도 담보해제 및 설정비 등 상당한 추가비용이 든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출금리의 결정권은 은행에 있고 고객은 해당 금리의 적정성을 알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은행이 고객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 또는 적어도 상대방의 거래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봤다.

둘째, 은행 측은 단순연동 금리상품의 경우와 달리 변동금리상품은 시장금리의 변동폭, 변동추이,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출금리를 운용하는 이른바 안정적 변동금리 상품이기 때문에 은행에 금리 인하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시장금리의 상승기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고, 이는 시장금리 하락기에 금리를 인하하지 않은 것과 상쇄되므로 금리고정 행위가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객에게 불이익하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관행에 따른 의무 부담해야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출약정서상 ‘은행은 채무자가 선택하는 매 기간이 종료하는 때마다 이자율을 변경할 수 있다’는 문언은 은행이 자유롭게 대출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은행여신거래 기본약관에 따라 금리의 인상 및 인하 모두 건전한 금융관행에 따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행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의미라고 판단했다. A은행은 지난 3년간 대부분의 시장금리가 약 30% 하락했으므로 건전한 금융관행에 비춰볼 때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할 의무가 있음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인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3년의 기간 동안 다른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5.19%에서 3.82%로 떨어졌는데, 이를 보면 위 기간 중 시장금리의 하락에 따라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게 정상적인 거래관행이라는 논리다. 따라서 A은행의 행위는 은행의 우월적 지위, 고객이 입게 될 경제적 손해 등에 비춰볼 때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난 것으로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부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시장금리가 상당 기간 상당 정도 떨어졌는데도 대출금리를 고정하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불법행위임을 명확히 했다. 거래상의 우월적 지위를 가진 은행은 금리인하 요인이 발생했을 때는 합리적인 범위에서 적정한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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