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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몸집 키우는 증권사들] 한국형 헤지펀드를 잡아라

[Business 몸집 키우는 증권사들] 한국형 헤지펀드를 잡아라

국내 헤지펀드 시장을 선점하려는 증권가의 경쟁이 치열하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가 야경.

삼성증권이 11월 28일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다. 현재 삼성증권의 자기자본은 2조7861억원이다.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면 이 회사의 자기자본은 약 3조2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유상증자를 하면 프라임 브로커리지(Prime Brokerage) 사업 등 대형 투자은행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갖추게 된다”며 “확충된 자기자본을 바탕으로 프라임 브로커리지 등 신규 사업은 물론 투자은행 전 부문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홍콩을 중심으로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 등 기존 해외법인 거점의 영업을 강화하고 싱가포르 등 핵심 지역에 추가로 진출해 아시아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아시아 톱5’ 증권사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증자 확정은 불확실성 해소 증권업계에 몸집 불리기 바람이 불고 있다. 대우증권에 이어 우리투자증권·삼성증권 등 ‘증권업계 빅3’가 한국판 골드먼삭스를 꿈꾸며 덩치 키우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곳은 대우증권이다. 대우증권은 9월에 무려 1조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10월 6일에는 우리투자증권이 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삼성증권이 10월 10일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4000억원 늘리기로 했다. 현대증권과 한국투자증권도 유상증자 시기와 방법을 검토 중이다.

이들 증권사는 유상증자 계획 발표 뒤 시장에서 뭇매를 맞았다. 유상증자를 하면 주주가치가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뭇매를 집중적으로 맞은 곳은 가장 먼저 1조4000억원이라는 초대형 포문을 연 대우증권이었다. 대우증권 주가는 유상증자 발표 다음날 하한가로 직행하기도 했다. 당시 아직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던 우리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의 주가도 약세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불확실성 해소라는 긍정적 평가가 대두하며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은준 신영증권 연구원은 “유상증자가 단기적으론 주가 희석 요인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의 낙폭을 감안할 때 우려가 이미 주가에 반영된 측면이 강하다”며 “자본 확충과 관련한 불확실성 해소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론 유상증자가 주가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대형 증권사가 주가하락을 감수하면서도 유상증자에 나서는 것은 바로 헤지펀드 때문이다. 헤지펀드 설립 지원부터 자금모집, 운용자금대출, 주식매매위탁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임 브로커리지’를 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바로 자기자본 3조원이다. 금융위원회가 7월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증권사는 M&A(인수합병) 대출, 비상장주식 직거래, 헤지펀드의 프라임 브로커리지 등을 할 수 있다. 헤지펀드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헤징(hedging·위험 회피)’ 하는 사모펀드로 증시에서 매도·매수를 동시에 진행하거나 현·선물을 나눠 투자하는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해 수익을 낸다.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인 증권사는 헤지펀드에 주식을 빌려주거나 자산을 보관·관리해주는 등 관련 서비스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브로커리지(주식위탁매매)가 수익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수익 구조가 편중돼 있는 국내 증권사엔 떠오르는 시장인 것이다. 주식 매매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인 증권사는 증시 변동에 따라 수익이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월 말 현재 주요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는 삼성증권 2조7861억원, 우리투자증권 2조6991억원, 대우증권 2조6930억원, 현대증권 2조5683억원, 한국투자증권 2조2697억원 등이다. 삼성증권이 4000억원, 우리투자증권이 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해 3조원 조건을 맞춘 것이나 대우증권이 무려 1조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것을 보면 현대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자본조건 충족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업계에서 우세하다.

일부 증권사는 그러나 겉으로는 느긋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유상증자) 시기나 방법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도 “내부 논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프라임브로커 사업에 참여할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형 증권사와 달리 중대형사는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자기자본 3조원 기준을 맞추는 게 현실적으로 수월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투자은행 업무 참여 여부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유상증자나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도 자본 대비 수익성이 얼마나 날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증권과 금융지주 계열사인 신한금융투자(2조751억원), 하나대투증권(1조5163억원)은 신중한 입장이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프라임브로커 등 대형 투자은행 사업을 준비하는 팀이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와 하나대투증권은 “지주회사가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하나금융지주는 현재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 중이어서 증권사의 증자를 검토할 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자기자본 규모가 2조원 문턱에 있는 미래에셋증권(1조9120억원)은 “지금으로선 유상증자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동양종금증권(1조2410억원)도 대형 투자은행 사업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엔 프라임브로커 사업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중대형 증권사가 프라임 브로커리지를 주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프라임브로커 업무를 통해 얼마나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프라임브로커 수익성 의문” 시각도

이런 가운데 시장에선 ‘한국형 헤지펀드’ 시행을 앞두고 ‘1호 헤지펀드’ 출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간 짝짓기도 활발하다. 헤지펀드 설정·운용을 위해선 회계시스템, 대차거래, 자금대여 등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프라임브로커 증권사가 필수적이다.

하나UBS자산운용은 최근 삼성증권을 1호 헤지펀드의 프라임브로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하나UBS자산운용은 절대수익추구형 상품을 1호 헤지펀드로 선보일 계획이다. 애초 하나UBS자산운용의 1호 헤지펀드 프라임브로커에는 삼성·대우·우리 등 증권사 빅3가 경합했다. 삼성자산운용도 대우·우리·한국·현대증권 4개사로부터 제안서를 받고 한 개사를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한국 주식에 70%, 아시아 주식에 30%를 각각 투자하는 ‘롱숏 전략’을 활용한 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은 최대 9개의 상품을 갖추고 출시에 대비하고 있다.

심사, 상품등록 등의 절차를 고려하면 11월 말에는 첫 헤지펀드가 나올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개인투자자는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헤지펀드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는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펀드(재간접 헤지펀드·펀드 오브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9월 말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개인도 5억원 이상 규모로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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