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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빗나간 그린벨트 정책 - 그린벨트 풀린 땅에 잡초만 자란다

MB정부의 빗나간 그린벨트 정책 - 그린벨트 풀린 땅에 잡초만 자란다



경기도 광명시와 시흥시 사이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길쭉한 분지가 있다. 북으로는 서울시 구로구와 부천시가 붙어있고 남으로는 KTX광명역 주변까지 이어진다. 허리춤에 제2경인고속도로가 가로지르며 외곽순환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까지 둘러싸고 있어 수도권 교통의 요충지로 관심을 모으는 지역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 묶여 개발이 되지 않았다.

2010년 12월 21일 이 지역의 그린벨트가 전격 해제됐다. 광명시흥보금자리 주택사업의 일환이었다. 해제 면적은 1419만1153㎡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해제한 그린벨트 지역 중 가장 넓다. 전체 사업면적은 1736만7000㎡로 81.7%가 그린벨트 해제지역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가 14조8000억원을 들여 분당급 규모의 대단지 주택지구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뜻하지 않던 그린벨트 해제 소식에 광명시와 시흥시 시민들은 반겼다. 인근 땅값은 하루아침에 서너 배 넘게 뛰었고 땅주인들은 두둑한 보상비를 기대했다.

그린벨트 해제 이후 680일이 지난 10월 31일 광명시흥보금자리 현장을 찾았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1단계 공사가 시작되는 광명 경륜장부터 제2경인고속도로 사이 지역이다. 기반공사로 북적여야 할 현장은 조용했다. 버려진 농지는 황량했고 비닐하우스는 여기저기 찢겨 펄럭거렸다. 농지를 따라 난 길에는 곳곳에 잡초가 자랐다. 이따금 소형 트럭이 지나치며 물건을 실어 날랐지만 기반공사를 하는 차량은 아니었다. 행인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찢긴 비닐하우스만 바람에 펄럭여그린벨트 해제를 반기던 광고가 즐비했던 자리에는 ‘투쟁! 피로 일군 우리 기업 수평이동 보장하라’는 기업이주보상대책위원회의 붉은색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5년 뒤 분당급 신도시가 들어설 자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생필품 몇 가지를 늘어놓은 한 가게에서 만난 김재호(66)씨는 “보금자리 주택사업을 할거면 하고 안 할 거면 원점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린벨트 해제 이후 행위제한에 걸려 하우스도 하나 못 세운다는 불평이다.

그도 처음에는 바로 보상비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보상비보다 생업이라도 영위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김씨는 “LH공사가 사업을 차일피일 미뤄 농사도 못 짓고 땅 값도 계속 떨어져서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광명시흥사업단의 이기열 단장은 “LH공사의 부채가 많아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것뿐이지 보금자리주택사업은 진행 중에 있다”고 반박했다.

이 단장은 “그린벨트 해제지역에서 생업을 하던 사람들은 과거와 똑같이 농사도 짓고 기업들도 사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학교와 공원 등 시민편의를 위한 시설이 더 잘 갖춰진 사업안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보금자리 주택사업 내 땅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미래플러스공인의 박정선씨는 “지금은 거의 공시지가에 가까운 3.3㎡당 200만원 수준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면서 “그린벨트 해제 직후 인근 빌라부지가 3.3㎡당 1000만원을 호가했었지만 주택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300만원에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올해 말까지는 보상규정이 (확정돼) 나오기로 했다지만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사업 시행이 안될 가능성도 있다는 소문마저 돌면서 광명시와 시흥시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초 이 지역에서는 이주해야 할 2000여 소규모 기업 직원이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사업이 사실상 중단돼 기업을 이주할 보상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이주보상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이번 정권에서 풀어놓은 그린벨트를 다음 정권에서 책임을 질 지 누가 알겠냐”며 “이주 기업들이 대선 전에 청와대 앞에서 시위라도 벌여보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광명시에는 주택사업에 대한 민원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2013년 내에 일괄 보상하고 단계별로 사업을 시행해달라’거나 구‘ 체적인 사업 일정이라도 제시하라’, ‘화훼, 유통, 축산업, 고물상 등을 새로 만든 산업도시에 선이주(후철거)하는 대책을 수립하라’, ‘사업이 실제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금융권담보대출 규제를 60%에서 90%까지 높여달라’는 등의 요구다.

광명시흥지구만 문제가 아니다. 2010년 4월 27일 116만8051㎡의 그린벨트가 해제된 경기도 부천시 옥길지구 보금자리와 같은날 164만3843㎡가 해제된 시흥시 은계지구도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광명시 쪽에는 보금자리주택 현장 인근에 광명시뉴타운 사업도 진행 중이다. 시흥시에는 목감지구, 장현지구, 은계지구를 더해 보금자리 사업만 4개가 추진 중이다. 그러나 모두 공사 착공조차하지 못했다.

모두 LH사업단이 추진 중이지만 LH공사가 재정난에 빠지면서 대부분의 보금자리주택사업이 사실상 중단된 것이다. 경기도의회 박승원 의원은 “정부가 그린벨트 곳곳마다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무분별하게 벌였다”면서 “부동산 경기 흐름조차 못 읽고 무책임하게 그린벨트만 풀었다”고 말했다.



빚더미 LH공사 사업 여력 없어이처럼 그린벨트를 푼 땅에서 주택사업이 난개발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그린벨트를 풀기 전 실시하는 사업타당성 조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광명시흥지구만 해도 총 9만5026호가 만들어질 계획인데 이 중 영구임대 형식의 보금자리주택이 6만 6638호에 달한다.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일반주택 분양은 2만8388호에 불과하다. 보금자리주택으로 공급하려면 사업주인 LH공사의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LH공사의 현재 부채는 133조5000억원. 이 중 임대주택으로 인한 부채는 47조3000억원으로 전체 부채의 35.4%를 차지한다. 애초부터 보금자리주택사업을 시행할 여력이 없었다. 평택대 도시및부동산개발학과 장정민 교수는 “경기와 수요예측을 하지 못한 정책의 실패”라며 “LH나 경기도도시공사가 계획 백지화·수정을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금자리 사업의 사업성 심사도 문제다. 대부분 주택지구가 산업시설 등 실질적인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택 수만 확보하려 든 것이다. 한 경기도의회 의원에 따르면 모 지자체 전임 시장이 사업성 부족으로 파기한 계획까지 아무런 수정 없이 정부가 받아들여 보금자리 주택사업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도시개발 계획을 수립해봤다가 산업시설 설치가 어려워 자족도시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 초기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담당공무원이 파기됐던 사업안을 서류뭉치째 그대로 올린 것이다. 이 도의원은 “정부가 별도심사나 수요조사 없이 곧바로 그린벨트 해제부터 서둘러 지금의 부실을 불렀다”고 말했다. 실제 이 지자체에는 해당 주택사업에 대한 수요조사물이 없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이현석 교수는 “정부가 장기 비전 없이 정치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부동산 경기를 무시하고 그린벨트부터 푼 것이 문제”라며 “보금자리주택지구 조성으로 풀어놓은 그린벨트를 종합적·총체적으로 재정리해서 사업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정민 교수는 “주택지구 중에 성공 가능성이 있는 것을 냉정하게 선별하고 선별된 지구도 임대주택비중을 줄이고 민간주택 비중을 늘리는 등 사업성을 키워야 한다”면서 “지금은 주택을 지어놓고 부동산 경기 회복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미 그린벨트를 해제한 땅을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산업단지 등으로 용도를 전환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택단지 조성의 사업효과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정부는 무리하게 그린벨트부터 풀었다. 한번 푼 그린벨트는 다시 묶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역대 정부 그린벨트 해제 내역 살펴보니 - 노무현 정부 주로 산업단지 조성 목적그린벨트는 서울시 도시계획법으로 1971년 7월 30일 처음 시행됐다. 당시 그린벨트 면적은 총 5397.11㎢다. 경기도가 1302㎢로 가장 넓게 지정됐고 경남도가 719㎢로 그 뒤를 이었다. 광역시 중에서는 대구시 418㎢, 부산시 389㎢ 순이다. 경기도는 당시 확장되는 서울의 과밀화를 예상해 폭넓게 지정됐다. 부산도 경남도와 합치면 1000㎢ 넘게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서울과 부산이 향후 도심화가 가속화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린벨트 지역 내에서 건축물의 신·증축, 용도 변경, 토지의 형질변경이나 토지분할 등의 행위를 제한했다. 시가지를 둘러싼 공원이나 미개발 녹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린벨트는 지정 이후 30년 동안 한 차례도 해제되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국토 개발 산업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도심과밀화를 막는 거의 유일한 대책이었다. 그린벨트 해제는 대통령령에 따르도록 해 함부로 손댈 수 없도록 했다. 일종의 금기를 정한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국토의 효율적인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000년부터 그린벨트가 풀리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풀린 그린벨트의 비율은 초기 설정 면적의 27%에 달한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박수현 의원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모두 781㎢의 그린벨트가 해제됐다. 전체의 14.5%다. 강원도 294㎢와 제주도 82㎢가 모두 해제됐고 충북도는 180㎢인 76.1%가 풀렸다. 그린벨트로 지정해봐야 별다른 실익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지역을 골라 대폭 푼 것이다.

부산은 22.2%에 달하는 86㎢, 전남도도 23.4%인 87㎢가 해제됐다. 서울은 0.3%인 4510㎡ 해제에 그쳤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2006년 사이에는 각 권역별로 그린벨트가 고루 해제됐다. 서울이 5.8%에 달하는 9.679㎢가 해제됐고 다른 여러 권역도 한 자리대에서 고루 풀렸다. 전북도는 전역인 225㎢가 해제됐고 경남도는 34.3%인 247.175㎢가 해제됐다.

2008년 이후 현재까지인 이명박 정부는 전체 해제비율을 줄였다. 모두 75㎢인 1.4%만 해제됐다. 각 권역별로 고루 해제됐지만 특히 수도권 해제비율이 높다. 서울은 5.308㎢인 3.2%를, 경기도는 40.969㎢인 3.1%를 풀었다. 다른 권역은 모두 2.2%이하만 해제됐다. 산술적인 해제 비율로만 보면 이명박 정부가 그린벨트를 가장 잘 지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제 목적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노무현 정부가 해제한 그린벨트는 모두 22곳이다. 대부분 산업단지 조성이 목적이었다.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것도 산업단지부터 만들고 인근에 출퇴근할 주민들을 위한 용도로 주택지구 조성을 곁들인 것이다. 주거단지 조성만을 목적으로 해제한 것은 울산시 남구 효천2지구와 광주시 동구 월남 도시개발사업 2곳뿐이다. 산업기능이 있는 도시 인근에 주거지역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이 뚜렷했다. 그린벨트를 풀어 대규모 주택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해제한 그린벨트 지역은 모두 62곳이다. 이 중 주택단지 조성을 목적으로 한 곳은 34곳, 54.8%다. 사실상 주택단지 조성이 목적이지만 물류단지나 유통단지 조성을 동반한 2곳을 제외한 수치다. 그린벨트 해제 목적의 절반 이상이 순수 주택단지 조성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택단지 조성용 그린벨트 해제지역을 권역별로 보면 경기 15곳, 서울 7곳, 울산 4곳, 대구와 경남이 각 2곳 순이다. 광주, 대전, 충북, 인천은 각 1곳씩 해제됐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주택 지구를 집중 조성한 것이다.

부족한 주택 공급량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보기도 어렵다. 2010년 초 ‘하우스푸어’란 단어가 본격 등장하고 부동산 경기 하강 움직임이 나타난 이후에도 주택단지 조성만을 목적으로 한 그린벨트 해제지역이 17곳이나 된다. 사업성이 불투명해지는데도 그린벨트 해제를 계속한 것이다. 특히 경기도와 서울은 제5회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2010년 4월 27일 주택지구 조성용도 그린벨트 6곳이 집중적으로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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