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Retirement - 은퇴 전 시행착오는 가치 있는 투자다

Retirement - 은퇴 전 시행착오는 가치 있는 투자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살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은퇴의 기술’ 익혀야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금융권에서 은퇴를 연구하는 부서나 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정부 부처와 경제연구소에서도 은퇴와 관련한 각종 연구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은퇴’는 단연 요즘 시대의 화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한 시대의 화두가 될 만한 용어가 등장하면 서점가에는 여지없이 ‘OO의 기술’이란 제목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 여행의 기술, 협상의 기술, 설득의 기술 등 다양하다.

사실 ‘기술’이라는 단어는 매우 단순하고, 저급하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협상이나 설득과 같이 순간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이러한 팁과 노하우가 통할 수 있다. 은퇴는 문제가 다르다. 은퇴는 사건의 발생과 동시에 그 이후의 여생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고 복잡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퇴의 기술’에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과 고차원적인 마인드가 요구된다.



남의 이야기나 광고에 현혹되지 말아야많은 사람이 은퇴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나 지향점이 없다. 어디에 투자하면 은퇴 후 걱정 없이 살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은퇴설계를 단순한 재테크 강의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은퇴설계 강의의 주 내용은 재테크가 아닌 재무설계다.

재테크가 내가 가진 재화나 자산을 늘리는 여러 가지 방법과 기술이라면, 재무설계는 저마다 다른 인생의 목표와 꿈, 가치를 이루는데 필요한 재무적 계획과 실행을 도와주는 고차원의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연마해나가야 할 장기적이고 고차원적인 은퇴의 기술은 무엇일까? 그 기술은 은퇴 후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준비에서부터 출발해 완성된다.

‘은퇴 후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전원주택과 실버타운을 꼽는다. 멋진 사진과 현란한 미사여구로 우리를 유혹하는 광고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 하나만 믿고 은퇴 후 거처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원주택에 살면 넓고 푸른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잔디와 텃밭을 관리하고 넓은 집을 청소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또 대부분의 전원주택이 외곽지역에 있는 만큼 아픈 곳이 생겨 도시의 큰 병원으로 나가야 할 경우 이동거리와 시간이 만만치 않다. 실버타운에 살면 집안일 부담이나 병원 이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다양한 세대와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데이비드 보차드 박사는 『은퇴의 기술』 제9장 ‘귀향:살기 좋은 곳 찾기’에서 은퇴 후 어디서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 광고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가치관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아실현에 필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지 못한 곳에 정착하면 결국 돈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배우자가 있다면 두 사람 모두 만족할 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부부 간에서로 생각이 다르다면 각자가 원하는 거주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뒤, 많은 대화를 통해 의견을 좁혀나가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쳤다면 전원주택이든, 실버타운이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하든,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든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은퇴 후 누구와 사느냐’의 문제다. 오랜 시간 직장에서 쌓아온 인간관계가 직장 밖으로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거기다 직장에서 아랫사람들로부터 대접받던 생활에 익숙해져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마저 그러한 역할을 기대한다면, 달라진 활동영역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얘기한 ‘어디서’의 문제도 누구와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필자의 부모는 지방에 거주하다가 은퇴 후 자녀들이 거주하는 수도권으로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는 것은 어른들에게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의 부모는 은퇴 후 두 사람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바로 ‘가족’이라는 판단 아래 이 같은 결정을 했다.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서 가족모임도 자주하면서 새로운 이웃들과 잘 지내고 있다. 은퇴 후 배우자와 관계 설정은 특히 더 신경 써야하는 부분이다. 평일 퇴근 이후나 주말에만 시간을 함께 보내던 부부가 퇴직과 동시에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면 상대방에 대해 미처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발견이 때로는 긍정적,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와 여유가 필요하다.

마지막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이다. 55세 은퇴를 목표로 열심히 일하는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이들은 이미 자녀의 교육과 결혼, 은퇴 후 필요한 자금 등을 계산해 계획한대로 저축을 해나가고 있었다. 은퇴 후 꿈은 부부가 함께 여행하며 여생을 편히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떤 여행을 할 것이고, 여행 이외의 시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으니 그때부턴 대답을 망설였다. 두 사람은 요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고민 중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가장 막막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범답안은 은퇴 후 자아실현을 위한 제2의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직업을 찾아 계속 일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은퇴 후 나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깊은 자기 성찰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를 검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예를들어 은퇴 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평일 오후나 주말을 이용해 미리 체험해보는 것이 좋다. 무슨 일이든 은퇴 후 바로 일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시간을 내서 그 일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한다.



은퇴 후 시작하면 늦다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경험했을 때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면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다시 체험해봐야 한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반복한다고 해서 손해날 것은 없다. 은퇴 후의 시행착오는 조급증을 부르지만, 은퇴 전의 시행착오는 오히려 더 멋진 삶을 위한 투자일 수 있다. 은퇴 전과 은퇴 후는 결코 단절된 삶이 아니며, 은퇴 전부터 은퇴 후 할 일을 찾고 연마하는 것이 결국 가장 좋은 은퇴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모든 해답은 ‘나’로부터 나온다. 은퇴의 기술 역시 검색이 아닌, 나만의 사색을 통해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여기에 평생소득을 기반으로 한 재무적인 준비까지 갖춘다면 은퇴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은퇴 후 생활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6개월 혹은 1년 정도의 구체적인 그림이 막힘 없이 그려진다면, 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지금의 삶에 충실하면 된다. 그렇지 못하다면 나만의 은퇴 기술을 계속 연마하는 수밖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스마일게이트 오렌지플래닛, 올해 상반기 19개 스타트업 선발

2CJ ENM, 빌보드와 MOU 체결…“K-POP 글로벌 영향력 확대 기대”

3LG유플러스, 1020대 겨냥한 실속형 스마트폰 ‘갤럭시 버디3’ 단독 출시

4中, 1분기 경제성장률 5.3%… 예상치 상회

5대구은행, 중소·사회적기업 대상 퇴직연금 수수료 감면 확대

6스마트폰처럼 맘대로 바꾼다...기아, ‘NBA 디스플레이 테마’ 공개

7‘이스라엘의 對이란 보복 공격’ 쇼크…증권가 “금융시장 불안 확산”

8한국토요타, 車 인재양성 위해 13개 대학·고교와 산학협력

9한 총리, 오후 3시 의대증원 관련 브리핑…조정 건의 수용할 듯

실시간 뉴스

1스마일게이트 오렌지플래닛, 올해 상반기 19개 스타트업 선발

2CJ ENM, 빌보드와 MOU 체결…“K-POP 글로벌 영향력 확대 기대”

3LG유플러스, 1020대 겨냥한 실속형 스마트폰 ‘갤럭시 버디3’ 단독 출시

4中, 1분기 경제성장률 5.3%… 예상치 상회

5대구은행, 중소·사회적기업 대상 퇴직연금 수수료 감면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