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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nivore BOOKS - 고립주의자 vs. 개입주의자

Omnivore BOOKS - 고립주의자 vs. 개입주의자

신저 ‘분노의 나날들’, 2차대전 참전을 둘러싼 미국 내부의 치열한 싸움을 그려
찰스 린드버그(왼쪽)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분노의 나날들(Those Angry Days)’에서 린 올슨은 미국의 세계 제2차대전 참전을 둘러싼 고립주의자와 개입주의자 간의 치열한 싸움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요즘과 아주 흡사하게 워싱턴 DC를 둘러싸고 숨통을 조이는 기능마비와 불신을 묘사한다.

“우리는 다시 그때와 똑같이 분노의 날들을 살아간다.”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올슨이 워싱턴 DC 조지타운의 자택 인근에서 커피잔을 앞에 두고 말했다. “당시에도 나라가 지금처럼 분극화됐다. 미국이 공화당 주와 민주당 주로 갈렸고 극도의 분노가 미국 전역과 수도를 뒤덮었다.”

동해안 지역 특히 뉴욕시는 개입주의의 본산이었다. 미국 중부 농촌지역은 고립주의, 또는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ness)’를 맹렬히 지지했다. 파란만장한 시절이었다. 보수파와 진보파가 격돌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들 사이에서 볼모로 잡혔다. 가족·친구·이웃이 갈라섰다.

물론 그 귀착지는 사상 유례없는 전쟁에 휘말린 세계였다. 궁극적으론 군국주의적인 두 제국(일본과 독일)을 파멸시키고 미국의 세계 제패를 위한 초석을 까는 일이었다. 격렬했던 논쟁은 1941년 12월 7일 막을 내렸다. 일본의 진주만 공급으로 미국도 전쟁에 뛰어들었다.

20세기 전반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서들로 호평을 받았던 올슨은 리서치의 일부를 ‘재활용’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찰스 린드버그를 중심으로 대단히 세밀하고 집중적으로 스토리를 전개했다. 루스벨트는 영국이 히틀러에 맞서 싸우도록 지원하고 사주하는 은밀한 노력을 지지한 개입주의자였다. 그 대척점에 유명한 비행가이자 대표적 고립주의자였던 찰스 린드버그가 있었다.

유수한 공화당 사업가 웬델 윌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카리스마 넘치고 현실적인 윌키는 일찍부터 징병제와 영국 지원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1940년 공화당 우파에 퇴짜를 놓고 공화당 대선 후보 자격을 얻어 수구파의 분노를 샀다. 정치적 야심보다 나라를 우선하며 올슨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진화했다. “혜성처럼 등장해 당을 휘어잡았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번번이 모험을 불사했으며 지면 졌다고 말했다.”

패배 후 그는 민주당 소속인 루스벨트 후원자로 돌아서 그의 영국 특사를 맡았다. “오늘날 공화당에 그런 인물이 있는가?” 그녀가 자문자답했다.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올슨은 여론을 주도하기 위한 루스벨트와 린드버그의 갈등을 악의적인 복수극으로 묘사한다.

루스벨트는 린드버그를 “운 좋은 린디(Luck Lindy)”라고 얕잡아 부르며 나치 동조자이자 반동분자로 간주했다. 린드버그는 루스벨트를 독재자이자 민주주의의 위협요소로 여기며 그가 미국을 전쟁으로 몰아넣으려 열을 올린다고 믿었다. 루스벨트가 지도자 지위를 이용해 참전을 유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행동이 극히 굼떠 막판까지 중재 역할을 피하고 싶어했다고 올슨은 주장한다. 그들은 악선전·감시 그리고 수많은 비열한 공작을 동원해 싸움을 벌였다.

일급 비밀 첩보기관인 영국 안전보장조정국(The British Security Coordination) 요원 1000명을 동원한 비밀공작이 그중 흥미진진했다. 안전보장조정국은 영국의 비밀첩보기관 MI6가 뉴욕에 설립한 비밀조직이다. 그들은 록펠러 센터의 2개층을 독차지했다. 공작은 루스벨트와 연방수사국(FBI) J 에드가 후버 국장이 재가하고 캐나다 기업인인 세련된 윌리엄 스티븐슨이 지휘했다. 그는 1940년 뉴욕에 입성해 미대륙 전체를 담당하는 영국 첩보 책임자를 맡아 제임스 본드의 원조가 됐다.

소설가 이언 플레밍과 로알드 달, 그리고 광고의 귀재 데이비드 오길비 등 그의 영웅적인 공작팀은 미국 전역에서 은밀히 활동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와 방송인들을 회유하고, 반전 단체에 침투하고, 외국 대사관을 도청하고, 보수파 의원들의 비리를 캐냈다. 탁월한 사보타주이자 스파이 활동이었다.

린드버그는 독일을 찬양하고, 히틀러의 제3제국과 연줄이 있었으며, 반유대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들 스파이와 FBI의 표적이 됐다. 그는 또한 자석처럼 미디어를 끌고 다녔다. 기자들은 그가 어디를 가든 몰려들었다. 그와 그의 가족은 언론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끊임없이 이사를 다녔다.

올슨은 딱한 입장에 처한 린드버그 아내앤 모로에 각별한 공감을 나타낸다. 모로는 격정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뉴욕의 부유하고 저명한 친영국 가문 출신이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는 적극적인 개입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많은 불안 속에서도 충직하게 남편을 따랐다.

그리고 대다수 친구와 친척으로부터 따돌림과 배척을 당하는 신세가 됐다. 그들은 린드버그를 그녀의 말마따나 ‘적그리스도’로 간주했다. 그의 유일한 측근으로서 남편의 입장을 바꿔 발언 수위를 낮추도록 애를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앤은 그의 위협적이고 고압적인 태도에 눌려 갈수록 눈에 띄지 않게 됐다.

다른 수많은 미국인도 마찬가지로 전쟁 개입의 찬반론을 두고 갈라섰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무렵엔 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국민적 토론이 이뤄졌다. 거의 모두가 개입은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개입이 현실로 닥쳤을 때 앞서 2년간의 격렬했던 공개논쟁 덕분에 미국은 감정적·정신적으로 단결해 싸울 준비를 갖추게 됐다.

대조적으로 베트남으로부터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그 이후의 대다수 전쟁은 정반대다. 기본적으로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개입이 결정됐다. 의회나 국민 사이의 토론은 거의 없었다. “의회는 배를 깔고 누워 죽은 시늉을 했다”고 올슨이 말했다. “분명 미국건국의 아버지들이 생각했던 이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상당한 국가적 불화와 기능마비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에 실질적인 위험을 제기한다.”

그러나 1941년 미국의 참전 결정은 궁극적으로 자유세계를 구했다. 올슨은 그 이슈의 복잡성을 극적으로 조명했으며 미국 역사에서 거의 잊혀진 위기의 주역들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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