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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RELIGION - 착한 신은 찾기 어렵다

culture RELIGION - 착한 신은 찾기 어렵다

플래너리 오코너가 창작공부를 하던 시절의 기도 일지가 최근 발견됐다



우리는 언제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영위하라는 가르침을 듣지만 그럴 만큼 열심히 기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을 어떤 착한 신, 자비로운 요정이 열성을 다해 들어주려 한다는 믿음은 어리석다. 근대 신학에서 그보다 더 어리석은 믿음은 없다.

조엘 오스틴(‘긍정의 힘’ 저자)이나 릭 워렌(‘목적이 이끄는 삶’ 저자)같은 성스러운 척하는 세일즈맨들이 홍보하는 신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던 그 하느님도, 골고다 언덕에서 아들의 죽음을 그냥 지켜보던 하느님도 아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경이로운 뭔가를 만들라”고 어느 ‘신학’ 관련 신저의 부제는 충고한다. 그럴 듯한 얘기지만 욥기의 내용과는 다르다.

미국 조지아주 출신의 여류작가 플래너리 오코너는 “경이로운 뭔가를 만들고자”했던 듯하다. 다만 그녀의 신은 우리의 믿음을 요구한 엄격한 신이었다. 금요일 밤이나 일요일 아침 예배에 참석했다고 후하게 보상한 신이 아니다. 조지아주 서배너 토박이인 그녀는 1946년 작가 워크숍에서 글쓰기를 공부하기 위해 아이오와주로 건너갔다. 6년 뒤 그녀의 처녀작 소설 ‘현명한 피(Wise Blood)’를 출간했다. 조지아주 밀레지빌의 농장에서 새를 기르며 살던 시절이었다.

지난 세기 최고의 단편집으로 꼽을 만한 ‘착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A Good Man Is Hard to Find)’는 3년 뒤 출간됐다. 이로부터 9년 뒤 그녀는 루푸스(낭창)로 세상을 등졌다. 그녀 부친의 목숨을 앗아갔던 바로 그 질병이었다. 1년 뒤 출간된 또 다른 단편집 ‘오르다 보면 모두 한 곳에 모이게 마련이다(Everything That Rises Must Converge)’는 미국 남부 문학에서 그녀를 포크너와 대등한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포크너의 산문은 우중충하고 눅눅해 기운 빠지게 하는 반면 오코너는 재앙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녀의 캐릭터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쓰여지기 때문에, 그녀의 스토리를 통해 자신들의 비참한 삶이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녀는 ‘착한 시골 사람들(Good Country People)’에서 호프웰 부인과 그녀의 딸에 관해 쓴다. 부모가 딸에게 ‘조이(Joy)’라는 이름을 지어줬지만 그녀는 헐가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모친은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지만 보모 프리먼 부인은 그녀를 새 이름으로 부른다.

“프리먼 부인은 호프웰 부인 앞에서는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호프웰 부인이 펄펄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둘이서만 집 밖으로 나가게 될 때면 말 끝에 헐가라는 이름을 덧붙이곤 했다. 그러면 안경을 쓴 조이-헐가는 마치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침해 당한 양 얼굴을 찌푸리며 낯을 붉히곤 했다. 그녀는 그 이름을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로 여겼다. 처음에는 순전히 듣기 거북한 발음 때문에 그 이름을 택했다.

그뒤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들어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용광로에서 땀을 흘리는 추한 불카누스(절름발이에 못 생긴 외모를 가진 불과 대장장이의 신)의 이미지를 그 이름에서 떠올렸다. 그리고 아마도 부름을 받으면 여신이 그를 찾아 와야 했으리라.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가장 창의적인 활동의 이름으로 간주했다.” 추함의 기쁨, 우리 모두의 헐가다움. 그것이 어쩌면 오코너가 마지막에 도착한 종착지일지 모른다.

1946년과 1947년 그녀가 기록한 일지가 최근 ‘기도 일지(A Prayer Journal)’로 출간됐다. 당시 젊은 여성이었던 오코너는 습한 남부에서 중서부 대평원으로 이주했다. 일지는 대부분 원래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쓰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일지를 읽을 때 아주 은밀한 즐거움을 얻는다. 그녀의 일지는 최근 전기작가에 의해 발견됐다. WA 세션스 조지아 주립대 교수가 그녀의 문서들을 뒤적이던 중 찾아냈다.

그래서 그녀가 하느님에게 올린 간결하고 힘찬 기도가 알려졌다. 대평원 상공에 먹구름이 몰려들 때 그녀는 분명 하느님이 아주 가까이 있다고 느꼈으리라. “주여, 내 약점을 충족시키기 위해 믿음을 지어냈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이시여, 주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주기 전까지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주여, 제가 주님을 원하게 해주세요. 누군가 제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줄 순 없나요?”

한 페이지를 넘기는 항목이 거의 없다. 그녀가 일지를 기록한 스털링 공책의 사진들도 실렸다. 기도에서 그녀는 자신을 가차 없이 채찍질한다. 하느님이 자신을 깨끗이 불태워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주님을 모릅니다. 제 자신이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21세의 오코너는 썼다. “제 자신을 밀쳐내도록 도와주세요.”

오코너는 가톨릭 교도 작가였을 뿐 아니라 가톨릭 책을 써낸 가톨릭 작가였다. 그녀의 세계는 항상 타락했다. 그리고 그 세계가 남부라는 점에서 두 배로 타락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가공의 캐릭터들 머리 위를 역설적으로 맴돌며 그들 생활양식의 절망적인 과오를 지켜본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 자신의 결함에 대해서도 똑같이 걱정한다.

한 항목에서 그녀는 “로스버그씨에 대한 나의 자애심 부족”을 두고 자책한다. 그 학생의 작품이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생은 “오늘 어뢰처럼 내게 반격을 가했다.” 그 일을 두고 탄식하면서 오코너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존재입니다. 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행하도록 도와주세요, 오 주님.”

‘기도 일지’의 주된 의의는 오코너의 픽션을 조명하는 부수적인 텍스트 역할에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 말대로라면 이 사랑스럽고 귀한 소책자가 논문 주석집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보다는 오히려 개인적인 열정이 담긴 작품에 속한다. 성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고백록’에서 하느님에게 “나를 정화시켜 주세요.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라고 기도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또는 16세기 스페인의 신비사상가 ‘십자가의 성요한(Saint John of the Cross)’의 싯구 ‘영혼의 어두운 밤’을 연상케 한다. “그는 내 목에 상처를 입혔다 / 그리고 내 모든 감각이 마비되게 했다.” 오코너는 “지금 나는 치즈입니다” 라고 하소연 한다. 나는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위대한 가톨릭 교도 시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를 떠올린다. “나는 쓸개(뻔뻔함)입니다. 나는 속쓰림(질투)입니다.”

이 대목에서 인정해야 할 사실이 한 가지있다. 오코너도 하느님으로부터 원하는 것들이 있었다. 오늘날 물질주의 복음의 사도들과 다름 없었다. 그들에게 종교는 물질적인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에게 바로 그런 수단이었다. “주여 제가 좋은 작가가 되고 다른 것도 받아들여지도록 도와주소서.” 그와 같은 희구가 ‘기도 일지’ 곳곳에 스며 있다.

자신이 하느님을 본받도록 만들고 또한 성공하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다. 그 대가로 그녀는 하느님에게 약속을 한다. “나는 아름다운 기도문을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재능이 전혀 없습니다. 내 주위의 분별력 있는 세상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하도록 만들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녀는 아이오와주의 워크숍 강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이 대신해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신앙심은 모두 교묘하게 위장된 그런 거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동안 TV 전도사들이 했던 말이 옳았던 셈이다.

‘착한 사람은…’은 오코너의 저서 중에서 아마 가장 널리 읽힌 이야기다. 한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플로리다를 향하던 중 사고를 당한다. 미스피트라는 도주 중인 전과자가 마침 현장을 지나면서 더 큰 불운이 찾아온다. 가족의 어른인 할머니가 뉴스를 통해 그의 얼굴을 알아 봤기 때문에 탈주자 무리는 가족을 없애는 길밖에 없다. 할머니가 애원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녀가 ‘예수님!’을 부르면서 미스피트의 화만 더 돋운다.

“예수가 모든 걸 엉망으로 헝클어 놓았어.” 그가 이유를 말한다. “예수나 나나 다를 바 없어. 다만 그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고 나의 경우는 관련 서류가 있기 때문에 내 범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할머니의 가슴을 겨냥해 3번 총격을 가한다.

오코너는 자신의 ‘기도 일지’에서 “주님을 숭배하지 않는 곳의 헐벗음과 고난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하느님에게 탄원했다. 하느님도 그만큼은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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