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유예기간 종료에 늘어나는 증시 퇴출…흔들리는 바이오 특례상장기업
- [길 잃은 바이오 IPO]①
기술특례 상장 바이오 기업 유예기간 종료로 관리종목·상장폐지 급증
지속 못하는 ‘기대 매출’과 잇단 사업 다각화에 투자자 불안 가중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특례제도를 통해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이 유예기간 종료에 따라 상장 유지 요건 충족 여부를 검증받고 있다. 상장 후 일정 기간 면제됐던 매출 및 이익 기준이 적용되면서 실적이 부족한 기업은 잇따라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제도 도입 이후 본격적으로 특례상장기업 전반에 대한평가가 시작된 셈이다.
그동안 특례제도를 통해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은 일반 상장사와 달리 상장 유지 요건 적용에 대해 일정 기간 유예를 받았다. 보통 매출 요건은 상장 후 최대 5년간 면제되고,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기준은 3년간 유예됐다. 이후에는 일반 기업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는 구조였다.
최근 2018~2019년을 전후해 상장한 기업들이 잇따라 실적 유예 종료 시점에 도달하면서, 특례제도를 통해 상장한 바이오 기업 전반에 대한 실적 검증이 본격화되고 있다. 실제로 정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된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기술특례 유예 끝…성과 미달 바이오 기업들 상장 유지 ‘빨간불’
최근 시장에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사례는 셀리버리와 파멥신의상장폐지다. ‘성장성 특례 1호’로 2018년 코스닥에 입성한 셀리버리는 2023 사업연도까지 5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같은 해 감사의견으로 ‘의견거절’을 받았다. 여기에 대표이사의 횡령·배임 혐의까지 불거지며 결국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을 피하지 못했다.
2019년 상장한 항체 신약 개발사 파멥신 역시 최근 7년간 매출 30억원 미만을 기록하는 등 지속적 매출 부진과 연구개발 비용 증가로 적자가 누적돼 관리종목 지정을 거쳐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상장폐지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기업들도 속속 늘고 있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기술이전 계약 해지와 임상 지연으로 실적이 악화돼 2년 연속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이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했다. 디엑스앤브이엑스는 진단사업 부진 속에 100억원대 순손실을 기록하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셀루메드는 사업 구조 재편 및 신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며 지정 기준에 미달했다.
에스씨엠생명과학 역시 매출 부재와 대규모 손실이 2년 연속 지속됐고, 애니젠은 정부 과제 축소의 여파로 실적이 급감하며 상장 유지 요건에 미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이노스메드는 항바이러스 치료제 임상에 집중해왔지만 미흡한 성과로 인해 누적 적자가 심화되면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이들 기업은 모두 상장 이후 일정 수준의 매출과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며 상장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다만 시장에서은 이 같은 혼란이 예견된 위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본질적인 원인이 실질적인 기술 개발보다 상장 자체를 통한 자금 조달에 무게를 싣게 만든 제도적 구조가 문제로 지목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특례상장 제도가 상장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했지만 결과적으로 확실한 사업 모델 없이 자본시장에 진입하는 경로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바이오 산업 특유의 불확실성이 겹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신약 개발에는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천억 원대의 자본이 투입되지만, 성공 확률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많은 기업들이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조건부 기술이전(L/O) 계약을 기반으로 수천억 원대의 '기대 매출'을 제시해왔지만 불안정한 구조로 인해 지속 가능한 현금흐름을 담보하지 못했다.
결국 바이오 산업 전반의 고위험 부담이 개인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한계에 직면한 셈이 됐다. 때문에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바이오 기업들의 관리종목 지정은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제도와 산업 구조가 맞물려 드러낸 필연적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생존형 M&A’ 확산과 상장 유지 기준 강화…바이오 산업 시험대
벼랑 끝에 몰린 일부 특례 상장 바이오 기업들은 회계기준 충족을 위해 본업과 무관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형 M&A’ 전략이다. 백신 개발사 셀리드는 제빵 프랜차이즈 업체인 ‘포베이커’를 인수해 외형을 키웠고, 압타바이오는 건강기능식품 업체를 인수했다. 유틸렉스는 IT 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기존 1억원대였던 연간 매출을 90억원 규모로 확대했다. 티움바이오는 항공정비(MRO) 업체를 사들였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요건 충족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핵심 역량과 정체성을 훼손하고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신약 개발과 같은 고위험·장기 프로젝트 대신 단기 매출 확보에 치중하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 오히려 재무 부담이 늘고 사업 리스크가 가중될 수 있는 까닭이다. 또한 본업과 무관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의 기대와 괴리가 커지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칼을 빼 들면서 바이오 기업들의 하반기 시장 퇴출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코스닥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최소 매출 기준을 현재 30억 원에서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100억 원으로 올리고, 시가총액 기준도 40억 원에서 300억 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동시에 부실기업의 퇴출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개선 기간을 단축하고 심의 절차도 간소화한다.
상장폐지 요건 강화는 단순히 몇몇 기업의 퇴출을 넘어, 바이오 산업 전반의 상장 전략과 자금 조달 방식에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새로운 기준 적용 시 수십개에 이르는 바이오기업이 상장폐지 위험에 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바이오 기업들이 '가능성'만으로 자본을 조달하던 시대는 저물고, 실질적인 성과와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증명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혹독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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