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 북한 어린이 돕는 게 ‘통일 대박’의 기초

풍진백신 지원 위한 꽃 사진전 열어 …“규제 과감히 풀고 서비스업 제대로 키워야”

3월 12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 나우에서는 ‘꽃은 사랑이다’라는 주제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25일까지 열릴 이번 전시회에서는 박병원(62) 전국은행연합회장이 10여년 간 한국의 산과 들을 오가며 찍은 야생화 사진이 전시된다. 고위 경제관료(재정경제부 차관,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에 전국은행연합회장이란 직함까지. 언뜻 꽃이나 사진과 무관할 듯한 길을 걸어왔지만 꽃과 나무는 박 회장의 인생에서 ‘경제’만큼 중요한 키워드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카메라를 빌려 야생화 사진을 찍어왔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50년 경력의 사진작가인 셈이다. 이번이 두 번째 전시회다. 취지도 좋다. 박 회장이 북한 어린이 지원사업을 해오던 사단법인 봄과 독일 카리타스와 뜻을 같이해 진행하는데 판매금은 전액 북한 어린이에게 풍진백신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기부금 영수증도 발급해준다. 박 회장은 사진전이 아닌 모금 이벤트로 봐달라고 했다.

“2011년 유진룡 문화부장관(당시 을지대 부총장)이 북한 어린이들에게 B형 간염백신을 접종할 비용을 모으는데 사진을 좀 써도 되겠느냐고 요청해 온 게 출발점이었습니다. 2009년 미국 스탠포드대에 머물면서 캘리포니아 등 서부 지역에서 찍은 꽃 사진을 전시했어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야생화’가 주제였는데 이번에는 ‘한국의 꽃’을 모았습니다.

전시 공간이 한정돼 있어 60점 밖에 걸지 못했는데 나머지 5000장 정도는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담아서 기부해 주신 분들께 선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 같은 건 전혀 고려치 않으니 지인들과 돌려보셔도 좋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데 제 사진을 쓸 수 있는 것이 기쁠 뿐, 실력이 대단해서 여는 사진전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사진은 ‘내 기억의 보조장치’겸손하게 표현했지만 그의 사진을 보면 취미로 찍었다고 할 수준이 아니다. 그가 쓰는 카메라 기종은 소니 사이버샷 DSC F828. 2003년에 출시된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다.

“카메라부터 일단 전문가가 아니잖아요?(웃음) 요즘 중고시장에서 20만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카메랍니다. 카메라는 ‘내 기억의 보조장치’이면서 내 취미생활을 돕는 도구일 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전문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찍느냐’보다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취미로 찍은 꽃 사진이 북한 어린이를 돕는데 쓰일 거라곤 생각 못했죠.”

박 회장은 2005년 재정경제부 차관 시절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장을 맡아 북한을 5차례 방문했다. 당시 북한 아이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목격하곤 언젠가 이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했다.

“기회가 생겨 강서대묘(고구려시대 벽화고분)와 묘향산을 방문하게 됐는데 통제되지 않은 북한의 진짜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달리 체격이 너무 왜소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통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천연 자원을 기대하며 ‘대박’이라는 표현도 합니다. 통일이 됐을 때 제대로 된 시너지를 내려면 북한 주민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 능력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통일 대박의 기초인 거죠.”

꽃을 좋아하는 박 회장에게 우리나라 산과 들은 스튜디오이자 캔버스다. 출사 장소로 널리 알려진 강원도 인제 곰배령부터 제주 한라산까지 방방곡곡 안 다닌 곳이 없지만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택식물원이다. 66만㎡(약 20만평) 규모로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식물원’이다.

“꽃에 관심이 있다면 일단 한택식물원부터 가 보세요. 규모도 엄청나지만 정말 없는 꽃이 없을 정도로 관리를 잘 하고 있습니다. 영국 왕실원예협회의 공식 정원인 위즐리 가든을 벤치마킹할 만큼 공도 많이 들였습니다. 대부분 꽃은 2주면 집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2주마다 가야 철마다 바뀌는 꽃을 제대로 다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일은 아니지요?(웃음)”

경제 전문가를 만나 꽃 이야기만 할 수 없으니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약간의 질문을 던졌다. 박 회장은 ‘서비스업 육성’이 제일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비스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규제를 풀어야 하는데, 규제를 풀려면 찔끔찔끔 하지 말고 확실하고,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비스업이 장사가 잘 되고 경쟁력이 있어야 투자도 늘고 일자리도 많아질 텐데 물가와 직결되니 이익이 나려고 하면 꼭 가격을 깎습니다. 규제 중에서도 최악의 규제이지요. 저는 규제에 대한 생각부터 달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왜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안 되는지 제대로 고민을 해보자는 뜻입니다. 스위스 알프스에 가도 케이블카는 있습니다. 심지어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철도도 볼 수 있지요.

백두산도 정상까지 차로 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인프라를 갖춰야 사람들이 더 찾고, 그래야 장사도 잘 될 것 아닙니까? 환경 파괴 등 부작용이 있다면 최소화하는 테두리 안에서 방법을 찾을 생각을 해야지 무조건 안 된다고 못하게 하면 내수 진작도, 일자리 창출도 먼 나라 얘긴 겁니다. 스크린쿼터제가 없어지면 당장 한국영화가 망할 것처럼 말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유례없는 중흥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3월 12일 삼성그룹 수요 사장단 회의에 강사로 나선 자리에서는 ‘고용 우선의 경제 운용’을 강조했던 그다. 박 회장은 기업의 순위를 매길 때 자산 규모, 매출, 영업이익 등 실적뿐만 아니라 고용과 임직원의 임금 총액 등도 기준으로 삼아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는 기업을 높이 평가하자는 말도 했다.

모든 경제 정책 일자리에 초점 맞출 때“모든 경제 정책을 평가할 때 ‘고용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기준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 실업 문제가 일자리 미스매치 등이 심각한 문젠데 사회가 이를 덜 절박하게 받아들이는게 문제입니다. 서비스업을 키우고 내수를 확대하려면 젊은층이 소비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취업이 안 되니 쓸 돈이 없습니다. 취직을 못하니 결혼을 못하고, 결혼이 늦어지니 출산율도 떨어집니다. 전형적인 악순환이죠. 실적이 안 좋은데 어떻게 기업이 고용을 늘리느냐 반문할 수 있겠지요. 어디서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일자리에 초점을 맞추고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박 회장은 올해 11월 임기를 마친다. 당분간 쉬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35년 넘게 일했는데 이제는 좀 쉬어야죠.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일단 그것부터 해결한 뒤에 떠돌아 다닐 생각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세상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폐쇄적으로 살 수 없는 운명인데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은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공간입니다.

지난해 CEO 과정으로 이슬람 역사를 공부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공부해야죠. 차마고도도 걷고 싶고, 히말라야 트레킹도 해볼 생각입니다. 여전히 못 가본 곳이 많고 배울 것도 많으니 얼른 준비해서 출발해야죠. 나중에 돌아다닐 체력을 유지하려고 요즘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