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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김태윤 기자의 경제가 기가 막혀 - 저금리에도 은행 연체 이자 폭리

Issue | 김태윤 기자의 경제가 기가 막혀 - 저금리에도 은행 연체 이자 폭리

연체하면 이자 눈덩이처럼 불어 대출 잔액에 연체이자 물리는 방식 개선해야



올 초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한 달 이상 연체할 경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폐해를 줄이겠다며, 기한이익 상실 적용 기한을 기존 연체 후 1개월에서 2개월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4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기한이익 상실이란 채무자가 대출금의 원금 또는 이자를 연체하면, 금융회사가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기한이익 상실이 적용되면, 대출 잔액에 연체 이자가 부과되기 때문에 연체 기간이 길어질수록 채무자가 내야 할 이자가 불어난다.

가령, 이자율 4.5%, 연체이자율 13%로 1억원 담보대출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매월 39만원을 납부하다가 연체를 하면, 1개월 경과 후에는 연체 금액과 연체 이자를 더해 약 79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1개월이 넘어 기한이익이 상실되면 대출 잔액 1억원에 연체이율(지연 배상금)이 적용돼 2개월 차에는 177만원, 3개월째는 285만원, 6개월째는 624만원을 내야 한다. 기한이익 상실이 되지 않으면, 6개월 연체 때 284만원만 내면된다.

4월부터 공정위 개정안으로 기한이익 상실 기한이 2개월로 연장되면, 1억원을 대출받아 3개월 연체를 하면 채무자가 내는 연체이자는 기존보다 약 100만원 정도 줄어든다. 하지만, 연체가 이어지면 이자가 급등하는 것은 매한가지기 때문에 근본적인 채무자 보호 대책은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이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과도한 연체 이자율을 내리거나, 연체 금액이 아닌 대출 잔액에 연체 이자를 적용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금융권의 연체 이자율 자체가 매우 높다. 2011년 6월 3.25%였던 기준금리는 2012년 7월 3%, 2012년 10월 2.75%로 내렸고, 2013년 5월 이후 줄곧 2.5%로 동결됐다. 이에 따라 예금·대출금리도 내렸다. 한국은행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국내 시중은행의 연간 예금 금리는 평균 2.6%다. 2011년에는 평균 4%대였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기준 대출금리는 평균 4.5%다. 3년 전에는 5% 중반이었다. 그렇다면, 연체이자율도 내렸을까. 3년 동안 제자리다. 각 은행이 의무 공시하는 연체 이자율 현황을 보면, 국내 은행의 연체 이자율은 11~21%로 2011년 한 차례 인하한 후 변동이 없다.



3년 동안 연체 이자율 변동 없어구체적으로 보자. 일반적으로 국내 은행은 연체 기간별로 연체이자율을 차등 적용한다. 예를 들어, 국민·신한·하나은행은 연체 1개월 이하 때는 대출금리에 7%의 가산금리를 얹는다. 3개월 이하는 8%, 3개월 초과는 9%의 가산금리를 붙인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연체 90일이 넘으면, 대출금리에 9%(담보대출)의 가산금리를 붙인다.

연체 이자율 상한선은 은행마다 천차만별이다. 기업은행이 11%로 가장 낮다. 농협과 부산은행은 15%다. 신한·하나·우리·외환은행 등은 최고 연체이자율이 17%다. 국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18%, 한국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21%로 가장 높다.

연체를 하면, 연체한 금액이 아닌 대출 잔액에 연체이율을 적용하는 관행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공정위 개정안으로 기한이익 상실 기한이 한 달 더 연장됐지만, 연체한 이자나 분할상환원리금이 아니라 남은 대출 잔액에 연체이율을 매기는 것은 변함이 없다.

1억원을 담보대출로 빌려 3개월을 연체했을 때 연체한 금액에만 연체 이자를 매기면, 159만원을 납부하면 되지만 대출 잔액에 연체 이자를 붙이면 285만원으로 급등한다. 6개월 연체때는 각각 284만원과 624만원으로 차이가 더 벌어진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까.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일본 은행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상환금을 미납하면, 연체된 금액에만 연체이율을 산정한다. 호주 은행 역시 연체된 금액에 대해 2% 내외의 가산금리를 부과해 연체 이자율을 부과한다.

담보가 있는 주택담보대출에 붙는 연체 이자율이 신용대출과 같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현재 대부분 은행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연체 이자율이 동일하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유일하게 연체 90일 이상 시 담보대출에는 9%, 신용대출에는 10% 가산금리를 차등 적용한다. 지난 2011년 공정위는 대출 회수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과도한 연체 이자율을 부과해 온 예금담보대출의 연체 이자를 폐지한 바 있다. 이를 적용하면, 현행 주택담보대출 연체 이자율을 인하할 여지는 충분하다.

2011년 중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불합리한 금융관행을 개선하겠다면, 연체 이자율 인하를 추진했다. 당신 금감원은 “현행 연체 이자율 수준(14~21%)을 저금리 상황에 맞게 하향조정하겠다”며 “인하폭은 금융권의 자율에 맡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체 이자율을 1% 포인트 인하하면, 금융 소비자는 약 2000억원의 연체 이자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완강히 버티던 은행권은 결국 “연체 이자율 인하는 금리가 낮아졌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맞춘다는 취지”라는 설명과 함께 일제히 2~3% 포인트 내렸다. 이후 3년 동안 금리는 더 떨어졌지만 은행들은 연체 이자율을 시‘ 장 상황’에 맞추지 않고 있다.



고율 연체 이자에 벼랑으로 몰리는 채무자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대마진이 수익의 약 9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예금 금리는 가급적 싸게, 대출 금리는 최대한 높게 책정하는 것이다. 대출금리가 내려도, 연체 가산금리나 연체 이자율이 꿈쩍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취약하고 후진적인 수익 구조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금융 소비자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채무상환비율(가처분 소득에서 원리금을 갚는 비율)은 56%에 달한다.

한국은행 기준으로, 채무상환비율이 40%를 넘으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큰 과다 채무가구로 분류된다. 저소득층 대출은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부채 상환을 위해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찾는 가계도 늘고 있다. 개인회생·파산도 증가 추세다. 상환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과도한 연체 이자가 벼랑으로 몰리는 서민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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