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S - 전쟁도 바꿔 놓지 못한 결혼 풍속 - 이코노미스트

Home > >

print

TRADITIONS - 전쟁도 바꿔 놓지 못한 결혼 풍속

TRADITIONS - 전쟁도 바꿔 놓지 못한 결혼 풍속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의 젊은 여성에게 듣는다 ... 전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지만 평생의 배필을 찾는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지난 4월 레바논의 한 난민촌에서 결혼식을 올린 시리아 커플.

▎지난 4월 레바논의 한 난민촌에서 결혼식을 올린 시리아 커플.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사는 바툴은 남편감을 찾는 중이다. 키가 크고 똑똑하며 돈을 웬만큼 버는 사람이라야 한다. “그리고 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다. 아니면 적어도 시리아를 떠나서 살 계획이 있든가. 이 전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두 사람의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19세인 바툴은 평상시였다면 시리아의 관습에 따라 이미 구혼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 어머니와 함께 바툴의 부모 집으로 찾아와 (신랑 측) 지참금을 제시하며 정식으로 청혼했을 것이다.

약혼 과정은 보통 몇 개월 걸린다. 신부 집안에서는 사윗감 물망에 오른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가족의 평판을 면밀히 검토한다. 그러면서 신부와 신랑 후보는 서서히 서로를 알아간다. 마침내 양측의 모든 당사자가 합의에 이르면 결혼이 성사된다.

전쟁 전 시리아에서는 중산층의 도시 젊은이 대다수가 이런 방식으로 결혼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번진 지 4년째로 접어든 요즘 시리아 젊은이들의 교제 과정은 꽤 복잡해졌다. 바툴을 비롯한 약 700만 명의 실향민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전쟁 지역에서 결혼 상대를 찾는 일은 복잡하다.

▎바툴의 가족은 2년 전 정부군의 집중 공격을 받는 알레포 시내의 집을 떠나 도시 반대편의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했다. 사진은 지난 2월 피난을 떠나는 알레포 시민들

▎바툴의 가족은 2년 전 정부군의 집중 공격을 받는 알레포 시내의 집을 떠나 도시 반대편의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했다. 사진은 지난 2월 피난을 떠나는 알레포 시민들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고 문화규범에 대한 극적인(때로는 폭력적인) 도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의 배필을 찾는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수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한다. 비록 전쟁이라는 상황이 수시로 장애를 일으키고 최종 결과를 좌우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바툴과 그녀의 가족은 약 2년 전 전쟁에 떠밀려 시리아 최대 도시 알레포의 집을 떠났다. 그들은 도시 반대쪽의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했다. 예전의 집 주변은 반군을 몰아내려는 정부군의 폭격에 시달렸다. 요즘도 그 지역은 매일 공습과 로켓포 공격을 받는다. 바툴의 가족은 지금 사는 곳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큰 방 하나를 세내서 지낸다. 꽤 괜찮은 곳이지만 예전에 살던 침실 두 개짜리 삼층 코너 아파트와는 비교도 안 된다. 그 아파트는 시에프 알 도울레의 중산층 거주 지역에 있다.

피난한 지 얼마 안 돼 바툴의 부모는 딸이 옆집의 10대 소년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당시 바툴의 나이는 17세에 불과했는데 둘 사이엔 결혼 이야기까지 오갔다. “그는 내 첫 번째 약혼자 후보였다”고 바툴은 말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구혼한 모든 남자를 그렇게 부른다. 시리아 문화에서는 그들을 남자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금기시되며 그럴 경우 그녀의 평판에 흠이 간다.

“우리는 서로 깊이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집을 떠나 반군에 가담했다. 우리 아버지는 정부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바툴이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레포 시청의 공무원이다. “우리는 함께 도망쳐서 반군 지역에서 같이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툴의 부모는 딸의 휴대전화를 빼앗고 자동차로 8시간이 걸리는 다마스쿠스의 할머니 집으로 보냈다. 그들은 딸의 사랑이 식기를 바랐다. 그 때가 2년 전이다. 바툴은 그후 새 휴대전화를 갖게 됐고 약혼자 후보 여러 명을 만났다.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없지만 말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 없다. 하지만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 결혼 전 1년 동안 약혼 기간도 갖고 싶다.” 시리아 도시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21세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바툴처럼 똑똑하고 예쁜 데다 집안도 좋은 여성은 자신과 같은 계층의 젊은이를 만나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바툴뿐 아니라 평상시였다면 그녀가 만났을 모든 구혼자를 포함한 지역사회 인구 전체가 실향민이 됐기 때문에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메시징 애플리케이션 와츠앱(WhatsApp)을 통해 바툴을 찾아낸 한 약혼자 후보는 몇 주 동안 온라인으로 그녀에게 구애했다.

그는 자신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시리아인으로 그곳에서 유제품 가게를 운영하며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결국 바툴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그는 자신이 군대 무단이탈자이기 때문에 시리아로 갈 수 없다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다마스쿠스에 있는 바툴의 할머니 집으로 보냈다. 자신을 대신해 약혼 절차를 밟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결혼하면 편안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하루 빨리 자신과 함께 살기를 원했다.” 바툴이 회상했다. “그는 사우디에서 매우 외롭게 지내기 때문에 아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군대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쳐서 시리아에 올 수 없기 때문에 직접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요즘은 군대에서 도망쳐 외국에 나가 사는 시리아 젊은이가 많다. 그들 대다수가 시리아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한다. 정부군에 징집돼 전쟁터로 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바툴은 말했다. “우리 가족은 그 남자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 남자가 지어낸 수없는 거짓말의 공조자였다.

평상시 같았으면 바툴의 부모는 먼저 전화로 수소문해 그 구혼자의 신상을 상세하게 확인했을 것이다. 그들은 신랑감의 나이가 바툴보다 7~8세 이상 많아서는 안 되며 그녀처럼 초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만약 바툴이 이미 대학을 졸업했더라면 신랑감에게도 똑 같은 조건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툴의 키가 크기 때문에 남자의 키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게 작지는 않은지 신체적 조건에 관한 문제도 언급했을 것이다.

또한 바툴은 독실한 무슬림이기 때문에(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머리카락을 내보이지 않으며 기도를 거르는 적이 없다) 신랑감 역시 신앙심이 깊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을 것이다. 바툴이 결혼해도 친정 식구들과 멀리 떨어져 살지 않도록 같은 지역 사람이라면 더 좋을 테고 말이다.

구혼자와 그 가족이 바툴의 집안처럼 평판이 좋은지도 확인했을 것이다. 친척 중에 범죄자가 있거나 가족이 불미스러운 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거나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는다면 명백한 결격 사유가 된다. 신랑감이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사람 직업이 뭐야? 봉급은 얼마고? 집은 있대? 자동차는?” 바툴의 어머니는 전화로 이런 정보를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평상시였다면 상대방이 그런 질문에 거짓으로 대답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툴의 부모가 동네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생각하는 조건에 맞는 구혼자에 한해서 바툴의 집에 초대돼 커피를 대접 받았을 것이다.

신랑감의 집에서도 신부감에 대해 조사를 한다. 집안 내력을 알아보고 무엇보다 순결한 처녀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툴의 할머니는 바툴이 알레포의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직도 부모의 집에서 살고 있다면 “이 남자, 저 남자와 말을 섞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툴은 다마스쿠스에 온 뒤로 거리에 나가도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바툴의 할머니가 말했다. “그애는 머릿수건 밑으로 머리카락을 약간 늘어트리고 다닌다. 그래서 난 늘 잔소리를 한다. 알다시피 그 또래에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바툴은 다마스쿠스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자신이 만나는 약혼자 후보들의 신상을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그 남자는 처음 말했던 것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혼 경력이 있는 데다 아이도 한 명 있었다. 바툴에게 전혀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바툴은 자신처럼 젊고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과 결혼해야 마땅하다”고 그녀의 할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정직하지 못했다. 그 어머니도 거짓말을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상황 때문에 부인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을 서둘러 기정사실로 만들고 싶어했다.”

바툴의 할머니는 바툴이 전쟁의 아픔을 겪은 실향민이라는 점을 그 남자가 악용하려 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늑대 같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예쁜 처녀를 보면 칼을 들고 달려든다.” 그녀가 바툴을 흘깃 보며 말했다. “그래서 바툴에게 구혼하는 남자들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요즘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밖에도 바툴이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약혼자 후보들이 더 있었다. 휴대전화 요금을 내려고 줄을 서 있을 때 만난 사람이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단둘이 밖에서 데이트를 하자고 끈질기게 졸랐다. 전통에 완전히 어긋나는 일이다. 그 남자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어머니를 그녀 집에 보내 정식 청혼하는 일을 미뤘다.

“그는 먼저 사랑부터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 그래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아무 여자나 붙들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면 결혼이 되나요?’ 난 그 사람과 커피숍 같은 데서 데이트해 본 적이 없다.” 바툴이 못박았다. 그녀의 할머니가 그 말소리가 들릴 만한 곳에 있었다.

바툴이 화장품 판매원 일을 하려고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만난 남자도 있었다. 그는 바툴의 할머니 집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보내 정식 청혼 절차를 밟았지만 그 쪽에서 제시하는 지참금의 액수가 무례할 정도로 적었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신랑이 신부에게 지참금을 선금으로 지불한다.

또 나중에 남편 쪽에서 이혼을 원할 경우 부인에게 지불할 위자료를의 액수를 정해 결혼 계약서에 명기한다. 이 액수는 결혼 전에 양측이 합의해야 하는데 계층과 지방의 풍습에 따라 달라진다. 다마스쿠스의 상류층 신부는 현금으로 지참금 받는 일을 천박하다고 여겨 피한다. 대신 보석류(때로는 집과 자동차)를 받는다.

하지만 바툴의 가족처럼 중산층 집안에서는 2000~3000달러의 현금 지참금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이 돈은 신부가 웨딩드레스와 섹시한 속옷 등 새 옷을 장만하는 데 쓰인다. 신랑은 또 신부에게 보석을 선물하고 결혼 비용 일체를 책임진다. 이런 낭비가 약혼 전 양측의 협상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은 상황이 어렵다는 걸 우리도 안다. 그래서 우리도 예전 수준의 지참금을 요구하진 않는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바툴이 여전히 알레포의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면 받았을 만큼의 액수는 바라지 않는다.” 바툴의 할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바툴이 실향민이 돼 할머니와 함께 다마스쿠스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형편없이 적은 지참금을 내고 그애를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싫다. 그건 옳지 않다.”

이제 바툴의 운이 마침내 틔려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숨돌릴 틈도 없이 가족의 친구들이 누군가를 그녀에게 보냈다. “그 사람은 큰 초록색 눈에 키가 크고 아주 잘 생겼다”고 그녀가 꿈꾸듯 말했다. 아이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28세의 그 남자는 이미 바툴의 할머니 집으로 두번 찾아와 바툴을 만났다. 그의 어머니와 누나도 함께 왔다. 그는 자동차 대리점에서 몇 년째 근무하고 있어 직장이 안정됐을 뿐 아니라 부업으로 자동차 정비 일을 해 가욋돈도 꽤 많이 번다. 또 전쟁이 나기 전에 군복무를 마쳤고 예비군으로 동원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내게 밤에 잘 때 코를 고느냐고 물었다.” 바툴이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그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그는 직업상 외국에 나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시리아를 떠나는 게 싫으냐고 물었다.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난 이 땅을 떠나서 사는 게 더 좋다.” 그와 결혼하게 될 것 같냐고 묻자 그녀는 어깨를 들썩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르겠다. 그 사람이 너무 잘 생겨서 잘난 체할까봐 걱정된다. 어쨌든 지난번 다녀간 뒤로 곧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지참금을 얼마나 제시하는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지금도 전쟁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바툴의 부모와 형제들은 여전히 알레포의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바 툴은 면접 시험을 봤던 판매직 일자리를 얻었다. 이제 그녀는 할머니 집부터 새 직장까지 가는 가장 좋은 길을 찾아내야 한다. 평상시라면 대중교통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도중에 “수많은 검문소”가 있다. 검문소마다 무장한 정부 검문요원으로부터 모욕적인 몸수색을 당하다 보면 한 시간도 더 걸릴 수 있다.

모든 다마스쿠스 시민들처럼 바툴도 날마다 듣는 공습과 포격 이야기에 익숙해졌다. 정부군이 시 외곽의 반군 지역에 매일 공격을 퍼붓는다. 또 교외에 있는 반군은 시도 때도 없이 다마스쿠스 시내를 향해 박격포 공격을 한다.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언제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바툴 역시 언제 어떤 일을 당하든 그저 운명이려니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 바툴은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바쁘다면서 점심 초대도 거절한 그녀는 서둘러 집으로 가면서 말했다. “아이만과 그의 어머니가 이따가 청혼하러 오겠다고 했다. 빨리 가서 할머니를 도와 다과 준비를 해야 한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