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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직장 ‘투명인간’의 갈등 극복] 허드렛일이라도 절망하지 말라

[후박사의 힐링 상담 | 직장 ‘투명인간’의 갈등 극복] 허드렛일이라도 절망하지 말라

사진:중앙포토
그녀는 퇴직을 5년 앞두고 있다. 30년간 재직했는데 그간 잘 나갔다. 능력을 인정받아 동기들보다 승진이 빨랐다. 30년 전만 해도 여성 취업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터라, 소수자인 여성에 대한 프리미엄으로 최초의 여성 임원도 꿈꿀 수 있었다. 동료들조차도 그런 상황을 인정할 정도였으니, 그녀의 직장생활은 꽤 괜찮았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2년 전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감사에 걸린 것이다. 물론 그녀가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수년간 받았던 외부 회의 사례비가 문제가 됐다. 그녀의 도덕성은 치명타를 입었다. 더구나 집단평가에서 하위 점수를 받아, 결국 연말 인사에서 보직을 잃었다.

그녀는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에도 남들 눈에 띌까 싶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근무시간 중에 가급적 복도에 안 나가는 것은 물론, 화장실을 갈 때도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이용한다. 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너무 아프고 힘들다.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를 매일 생각한다. 회사 발전을 위해 매사 적극적으로 행동하던 그녀였는데, 회사는 이제 그녀를 원치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가급적 빨리 조직을 떠나줬으면 한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기는 한데, 회사는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이 비루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보직 잃고 회사에서 투명인간 취급받아
직장생활에서 십중팔구는 꿈과 현실의 거리를 발견하고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자신의 처지를 운명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인생이 이럴 수 있냐는 허무감에 빠진다. 열 중 한둘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 된다. 그러나 내 능력은 대체될 수 있고, 나보다 큰 돈 버는 자가 있으며, 계속 지배받는 것이 버겁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 게다가 정상에 올라가 보면 별 것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인생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공허감을 느낀다.

그녀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추락했다. 억세게 운이 나빴다. 그런데 세상이 완전히 변했다. 그녀는 매일 고립감을 느낀다. 원래 활달하고 사교적이었는데, 이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굴욕감을 느낀다. 원래 나서기를 좋아했는데, 이제 아무도 그녀에게 통제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고독감을 느낀다. 원래 두루 친하게 지냈는데, 이제 정서가 메말라 간다. 그녀는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나 대인관계에 대한 욕구를 가진다. 대인관계 욕구는 관계를 동기화하는 심리사회적 욕구다. 소속·통제·정서의 3가지가 있다. 소속 욕구(Inclusion)는 인간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며 소속하고자 하는 욕구다. 스스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낀다. 통제 욕구(Control)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다. 스스로 능력 있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느낀다. 정서 욕구(Affection)는 정서적인 유대와 따뜻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다.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누구나 3가지 욕구에 대한 자기 기준이 있다. 이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불편하다.

소외의 덫에 걸린 사람이 있다. 어려서 부모님이 별거나 이혼을 했다든지,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다. 부모님이 이사를 많이 해서, 가는 곳마다 혼란스럽고 적응이 안 된 경우다. 부와 권력, 신분, 갈등 등으로 유별난 가족이라고 느끼면서 자란 경우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않고, 어디에도 적합하지 않다.” 여러 모임에서 항상 긴장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가지며, 자주 외로움에 빠진다.

그녀의 소외감은 남다르다. 급작스런 사회적 변화에서 왔다. 그녀는 왕성한 대인관계 욕구로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주름잡던 무대에서 밀려났다. 그녀는 상대적으로 고립감·굴욕감·고독감을 강하게 느낀다. 과잉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손짓하기를 기대해 본다. 희망사항일 뿐이다. 후배들이 다가오기를 기대해 본다. 꿈에서 깨야 한다. 나름대로 회사에 기여해 본다. 바위에 계란 던지는 격이다. 나름대로 후배들에게 접근해 본다. 냉혹한 현실을 실감한다. 그녀는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무엇이 됐어도 허(虛)하고, 안 됐어도 허(虛)한 까닭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한다. “괴로운 양심의 소리에 경청하라!” 이는 삶 자체가 던지는 음성이다. 갈등이 맴도는 삶의 분위기에서 구토를 느껴 ‘무엇’인가를 눈치 채고, 부와 권력과 신분에서 굳혀진 ‘무엇’을 깨고, 사회가 요구하는 ‘나 아닌 나’가 되는 길에서 돌이켜, 시간을 다 쓰기 전에 ‘자기(Self)’가 되라는 것을 뜻한다. 태어나기 전 본래의 얼굴(本來面目)을 찾으라는 말이다.

이제, 그녀에게 초점을 맞추자.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첫째, 내 일에 충실하자. 보직에 밀려 허드렛일(?)을 하게 되었다고 절대 비루해하지 말자.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다. 5년은 짧고도 긴 기간이다. 어찌 알겠는가, 세상이 바뀌면 다시 발탁될지? 옛날에 한 재상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왕에게 1년만 살게 해주면 왕이 탄 백마가 하늘을 날게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왕은 허락했다. 재상이 집에 오자, 부인이 뾰족한 수가 없는데 두 번 죽는 격이라고 땅을 치며 울었다. 재상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마라! 1년 내에 왕이 죽을 수도 있고, 내가 죽을 수도 있다. 어찌 알겠는가, 세상이 바뀌어 말이 하늘을 날지.”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큰 일을 맡기겠다.’
 세상이 바뀌어 말이 하늘을 날 수도
둘째, 정기적으로 사람을 만나자. ①절대 피하지 말자. 소외감은 소외감을 부른다. 움츠려 들지 말고, 예전에 하던 대로 생활하자. 구내식당도 이용하고, 엘리베이터도 타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자. ②모임에 절대 빠지지 말자. 소외감은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아무도 그녀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모임에서는 되도록 과거를 얘기하지 말고, 부정적인 말을 삼가며, 상대방의 말에 경청해야 한다. ③후배들에게 도움을 주자. 30년 동안의 경력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녀의 조언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지, 절대 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베풀 때가 온 것이다. 성공의 척도는 수확이 아니고, 얼마나 씨앗을 뿌렸는가에 달려 있다.

셋째, 내 마당을 쓸자. 고독한 시간은 소중한 기회다. 정도전은 10년 동안의 유배생활에서 조선 건국의 청사진을 그렸다. 정약용은 18년 유배생활을 통해 실학을 집대성했다. 5년 동안은 충분한 기간이다. 유배기간이라 생각하면 무어라도 못하겠는가?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다. 요즘 평균 수명은 80년을 넘겼다. 퇴직 후 20~3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고독한 시간은 충전의 기회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심심하지 않다. 시를 쓰는 사람도 심심하지 않다. 혼자서 화단에 물을 주는 사람도 심심하지 않다. 창밖으로 아이들 뛰노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심심하지 않다. 고독한 시간에, 오랫동안 시달리다 지친 자신의 혼 (魂)을 충 전시킬 수 있다. ‘Aloneness’는 ‘All+Oneness’이다. 고독은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 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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