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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vs 증권사 10년 묵은 밥그릇 싸움]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 허용, 정부가 결판내야

[은행 vs 증권사 10년 묵은 밥그릇 싸움]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 허용, 정부가 결판내야

은행들 ‘업권 이기주의’라는 비판도 … 금융결제원 “지급결제망 비용 반환은 불가능”
(좌)하영구 은행연합회장 / (우)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 사진. 중앙포토
“우선 개인 지급결제를 하고 문제가 없으면 순차적으로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하자고 얘기했다.”(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2월 6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는 이미 국회에서 불허했다.”(하영구 은행연합회장, 2월 20일 기자간담회)

증권업계의 법인 지급결제 허용을 두고 두 금융협회 수장의 주장이 엇갈린다. 이 갈등은 ‘10년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해묵은 이슈다. 요지는 이렇다. 지난 2006년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자본시장법에 은행이 전담하던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증권사에도 허용하는 조항(40조4항)을 포함시켰다. 법인 지급결제란 기업의 제품 판매대금, 하청업체 결제, 각종 공과금 수납 등 기업들의 자금을 증권사에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은행·증권업계 서로 “우리 말이 맞다”
그러나 자본시장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당시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제동을 걸었다. 금산 분리 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증권사를 가지고 있는 일부 대기업의 사금고화가 우려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개인 지급결제만 허용하는 것으로 축소돼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한해서만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중재안이 마련됐다.

이 과정에서 당시 25개 증권사는 지급결제망을 사용하기 위해 금융결제원에 3375억원을 냈다. 그 이후 현재까지 법인 지급결제는 은행에만 허용돼있다. 이에 금융투자협회는 수천억 원의 금액을 내고도 10년째 법인 지급결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라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은행연합회는 국회에서 법인 지급결제를 이미 불허한 만큼 허용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증권업계와 은행업계는 10년간 한 치 양보 없는 대치를 이어왔다. 올해 논란의 불씨를 지핀 건 지난 2월 6일 열린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의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금융투자업계가 국내외 금융기관에 비해 차별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골드만삭스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주 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금융산업은 전업주의(專業主義)로 은행은 축구장, 증권은 농구장, 보험은 배구장처럼 각각 다른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라는 것”이라며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해달라는 주장은 우리는 손을 잘 쓰니까 축구를 하면서 손발을 다 쓰겠다고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누구 말이 맞을까.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하 회장 주장대로 당시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를 불허했는가다. 황 회장은 최근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1382호 참조)에서 “내가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해달라고 괜히 억지 부리겠느냐”며 “개인 지급결제를 먼저 허용한 뒤 순차적으로 법인지급결제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 법제사법위원회 속기록에 적혀있다”고 말했다. 이에 당시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 관련 국회 회의록을 들여다봤다. 2007년 6월 14일 열린 국회 재정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김석동 재정경제부 1차관은 “개인 부분에만 우선 허용하는 것으로 추진하도록 하겠다”라고 발언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우선’ 허용하겠다는 이 말이 법인 지급결제를 순차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의미라는 주장한다.

둘째 쟁점은 법인 지급결제망 비용이다. 금융투자협회는 2009년 4월 금융결제원에 지급한 3375억원은 개인과 법인의 지급결제망 비용을 포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은행연합회는 2007년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를 불허한 상태에서 지급결제망 비용을 낸 만큼 금융투자협회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이 비용을 산정한 금융결제원 측은 “지급결제망 비용은 개인과 법인으로 나뉘어서 산정할 수가 없다”며 “당시 증권사들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나 지점 수 등을 고려해 비용을 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투자협회에서 법인 지급결제 비용을 돌려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법인 지급결제) 비용을 따로 산정할 수도 없고 정관상에서도 반환청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위 “증권사 선별적 우선 허용도 고민”
10년 째 이어지는 공방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특히 은행들은 저금리로 인한 예대마진 축소에 인터넷은행까지 등장하면서 돈벌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은행의 고유 권한을 더 이상 뺏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은행들이 법인 지급결제망을 독점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은행권은 증권사들의 결제 리스크와 전업주의 논리를 펼치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법인 지급결제 허용으로 은행 돈이 증권사로 옮겨져 자신들의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업권간 장벽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증권사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은행에서는 방카슈랑스(은행에 보험 상품 판매)업무가 가능하고, 펀드와 주가연계증권(ELS) 판매도 하고 있다. 또 지난 2008년 대규모 부실사태를 일으켰던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도 모두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법인 지급결제 허용 여부는 칼자루를 쥔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해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증권사에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하려면 금융결제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금융결제원 이사회는 20여 개의 은행이 추천한 인사로 구성돼있다. 증권사가 은행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셈이라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2015년 “연내에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권의 반대도 있고 증권사 결제 리스크에 대한 우려감이 여전한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하면 소비자 편익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은 들지만 앞으로 시간을 갖고 더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방안 중에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대형 증권사에 선별적으로 우선 허용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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