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무한한 상상력 … 연목구어의 미학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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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무한한 상상력 … 연목구어의 미학

[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무한한 상상력 … 연목구어의 미학

다르게 생각하고 낯설게 봐야 … 새로운 레토릭·기호·메시지 담아야
▎바람, 2016

▎바람, 2016

사진은 복제성이 뛰어납니다. 현실을 가장 비슷하게 재현해 냅니다. 사람의 눈보다 더 멀리, 더 자세하게 봅니다. 사진의 재현성은 사실에 대한 설명이나 증거, 증명에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사진은 권력’이라는 말은 바로 강력한 증거성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예술성 측면에서 보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그림을 예로 들며 “예술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현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낡고 헤진 구두 한 켤레 너머에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농민들의 고된 노동과 땀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사진은 지시대상이 분명하기 때문에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예언했습니다. 이는 사진은 창작이 아니라 기계적인 복사이기 때문에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이데거의 빗나간 예언
하이데거의 예언은 틀렸습니다. 오늘날 사진은 예술의 중심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통적인 발견의 미학, 시적 레토릭과 기호, 다른 매체와의 융합 등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사진 고유의 문법을 만들어 내며 가장 각광받는 현대 예술이 됐습니다. 사진의 역사는 겨우 200년이 채 안됩니다. 사진의 진화는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기계적인 재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진가들의 노력이 뒷받침됐음은 물론입니다.

사진은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루는 매체입니다. 전통적인 사진 미학의 핵심은 발견입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그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 발견은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사진가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이를 형상화합니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대상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레토릭의 옷을 입히고, 기호를 숨기며, 메시지를 담습니다. 그리고 감상자와 해석의 게임을 벌입니다. 지시대상이 분명하면 싱겁게 게임이 끝납니다. 좋은 사진은 정답 없는 게임을 아주 오래 즐깁니다.

사진은 폭설이 내린 강원도 용평의 거리 풍경입니다. 길가에 제설차가 치워놓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강한 바람이 눈을 깎고, 또 쌓습니다. 바람이 빚어내는 조각품이 하나하나 만들어집니다. 곳곳에 빙산을 깎았습니다. 북극곰이 보입니다. 그 아래 뿔이 난 바다코끼리가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물개가 뒤를 돌아봅니다. 때마침 노을이 드리워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혹한의 바람이 북극의 겨울 풍경을 빚어냈습니다. 바람은 위대한 조각가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중동의 사막에서, 히말라야에서, 북극에서, 남극에서, 세계 곳곳에서 조각품을 빚고, 그림을 새기고 있겠지요.

사진을 보며 생각나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맹자에 나오는 말로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 한다’는 뜻입니다.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는 일을 하려는 사람을 비꼬는 말입니다. 맹자가 왕의 패권정치를 비판하는 말에서 비롯됐습니다. 나무 위에서 고기를 잡으려 하면 못 잡고 내려오면 그만이지만 전쟁을 일으키면 나라도, 백성도 잃는 참극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고언입니다. 덕을 쌓아 명성을 떨치면 자연스럽게 대제국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왕도정치를 역설한 것입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참신한 도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진가는 끊임없이 연목구어를 추구해야 합니다. 나무 위에서 고기를 찾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이미지의 레토릭이 신선해집니다. 우리는 엉뚱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사차원’이라고 부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이 자유롭고, 독창적이라는 뜻입니다. 이 역시 예술가에게 필요한 미덕입니다.

모더니즘 미학용어 중에 ‘낮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그림에 가장 잘 구현한 이가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엉뚱한 상황이 구현됩니다. 연목구어 같은 그림이 펼쳐집니다. 큰 바위가 구름처럼 떠 있는가 하면, 땅은 밤인데, 하늘은 낮입니다. 상체는 물고기인데 하체는 사람인 잡종 괴물이 벤치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어떤 대상을 낯설게 만들면 주목을 끌게 됩니다.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그리트는 이를 노렸습니다.

사진 속 겨울 풍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심코 보고 지나쳤던 눈덩이가 레토릭의 옷을 입고 다시 살아납니다. 사진 역시 달리 생각하고, 낯설게 보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연목구어는 사진가에게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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