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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 항암 신약에도 절망하는 암 환자] 건강보험 재정악화에 올해 항암 신약 급여 등재 ‘제로’

[단독 | 항암 신약에도 절망하는 암 환자] 건강보험 재정악화에 올해 항암 신약 급여 등재 ‘제로’

올들어 9월까지 급여 확대도 13건 그쳐… “가격 아닌 가치 평가해야” 지적
사진:© gettyimagesbank
“4기 암 진단을 받았는데, 효과 있다는 항암 신약은 보험 적용이 안 돼 연 7000만원 넘는 돈이 든다. 돈 없는 사람은 기존 약을 쓰다 죽으라는 말과 같다.”(폐암 환자 보호자 A씨)

중증 암 환자들의 생명이 돈 앞에 밀려나고 있다. 기존 치료제보다 뛰어난 항암 신약이 나와도 건강보험공단 재정 악화로 건강보험(급여) 적용이 안 돼 연 7000만원을 그대로 내야 해서다. 특히 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4조원 넘는 적자를 내자 항암 신약 급여 적용을 따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는 올해 항암 신약 재정영향 평가를 강화, 단 한건의 항암 신약 급여 신규 등재도 추진하지 않았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진단·치료비 가중으로 건강보험공단 재정 부담은 더욱 커져 암 환자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도 제자리 걷는 항암 신약 급여 등재
일각에선 항암 신약은 가격이 아닌 가치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증 암 환자들이 치료비 부담에 항암 포기까지 고민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혈액암협회가 지난 9월 암 환자(가족 포함)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암 환자 10명 중 약 7명(68%)이 항암 치료를 힘들게 하는 요인 첫손에 ‘경제적 고통’을 꼽았다. 신체적 고통(10%)을 말한 암 환자보다 7배로 많았다. 또 암 환자의 93%는 비급여 항암 신약 사용에 따른 항암 치료비가 부담된다고 답했으며, 86.5%는 비용 부담으로 치료 중단을 고민했다고 응답했다.

올해 초 확산한 코로나19는 ‘엎친 데 덮친’격이 됐다. 건강보험공단 재정 악화로 심평원의 암질심 문턱이 높아진 가운데, 코로나19 진단 및 치료비 등에 재정이 쓰이면서 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심화했기 때문이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2.4배 많은 9435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심평원 암질심은 올해 급여 항목에 항암 신약을 1건도 새로 등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총 8개 항암 신약이 급여 신규 등재를 신청했지만, 모두 검토 단계에 머물고 있다. 백종헌 의원실 관계자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6개, 12개 항암 신약이 급여를 신청해 매년 5개의 항암 신약이 급여 적용을 받았다”면서 “올해 단 한 건의 항암 신약 급여 신규 등재도 이뤄지지 않은 것은 코로나19 여파가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올해는 2차 치료제 급여를 받고 있는 항암 신약의 효과 증명에 따른 1차 치료제 급여 확대도 낮게 나타났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항암 신약의 급여 확대는 13개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8년 18개, 2019년 21개의 항암 신약이 2차 치료제에서 1차 치료제로 급여 산정을 받은 것과 대조된다.

1차 치료제는 암 진단 시 최초 투약부터 치료비의 5%만 본인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한다는 뜻이다. 반면 2차 치료제는 1차 치료제 사용에도 효과가 없거나 암 유전자가 변이했을 경우에 한한 두 번째 치료 시에만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한다. 예컨대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로제네카의 뇌전이 폐암 표적항암제 타그리소는 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1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건강보험 급여는 2년째 2차 치료제에 머물러 있다. 국내 폐암 말기 환자 3명 중 1명이 2차 치료 전 숨지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에 맞지 않는 셈이다.
 타그리소·키트루다 모두 ‘급여 확대’ 문턱 못 넘어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관리를 더욱 강화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심평원은 지난해 7월 항암 신약의 임상적 유용성, 진료상 필수 여부를 검토해 급여 산정을 평가하는 암질심 운영규정을 개정, 재정영향 검토 부문을 강화했다. 고가인 항암 신약의 급여를 암질심에서부터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기존 18명 위원을 고정으로 운영했던 암질심을 올해(8기)부터 관련 분야 전문가를 포함한 45명 내 인력풀제로 변경했다”면서 “각 전문가가 항암 신약의 재정영향을 면밀히 따져 건강보험을 검토하는 전제적 재정관리 강화가 목적”이라고 했다.

문제는 암질심의 재정영향 평가 강화가 대규모 임상을 통해 치료 효과를 입증한 항암 신약의 급여 확대까지 막아버렸다는 데 있다. 암질심은 올해 3세대 폐암 표적치료제 ‘타그리소’와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에 대한 급여 확대 논의를 벌였지만, 두 개 약제 모두에 급여 확대 부적합 또는 보류 판정을 내렸다. 타그리소는 지난해에만 3번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청원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랐고, 키트루다는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참석한 한 폐암 환자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급여 확대가 꼭 필요하다고 절규했던 바로 그 약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타그리소와 키트루다 모두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식약처 허가를 받았고, 모두 중증 암 환자들의 급여 확대 요구가 높은 약이지만 1년에 드는 항암 비용이 각각 7900만원, 1억원 수준으로 높다는 점이 급여 보류 이유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혈액암협회 등에서 암 환자 대상 약제비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암 환자들의 경제적 고통은 여전한 상태다. 중증 폐암 환자 보호자 B씨는 “1차에 키트루다를 쓰려면 급여 혜택이 안 되어 3주에 한 번씩 링거 정맥주사로 600만원씩을 내야한다”고 토로했다.

심평원은 중증 암 환자 비용 부담 완화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위해 고가 항암 신약에 대한 건보 확대 적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암질심이 급여 산정 이전 임상 효과 등을 검증하는 1차 관문일 뿐 재정 평가를 해선 안 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과대학 교수는 “암질심 구성원들은 대부분 암센터나 종양내과 교수”라면서 “의대 교수가 재정 영향을 평가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실제 암질심 8기 인력풀 43명 중 36명(84%)이 의학계(약학 포함)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증 암 환자들의 한 줄기 희망으로 불리는 항암 신약의 급여화는 절망으로 변하고 있다. 식약처 사용 허가를 받아도 급여 적용이 안 되면 사실상 쓸 수 없는 약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과도한 의료비 부담에 전세금을 축소하거나 재산을 처분하고 금융기관 대출까지 받는 이른바 ‘메디컬 푸어’는 2013년 기준으로 70만 가구에 이르렀다. 안기종 한국환자 단체연합회 대표는 “항암 신약이 나오면 환자들은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마련이지만, 언제나 희망에 그칠 뿐 달라지는 게 없다”고 했다.
 의료보장성 강화 ‘문 케어’ 취지 무색
식약처 허가 후 항암 신약이 급여로 등재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2년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종헌 의원실에 따르면 사용 허가 후 항암 신약 급여로 등재까지는 평균 888일(2016~2019년 기준)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6년 545일이었던 급여 등재까지 기간은 2017년 711일로 2018년 1292일로 늘어났다. 2019년은 1002일을 기록했다. 백종헌 의원실 관계자는 “신약을 허가해 주는 식약처는 신약의 허가 기간을 120일로 제한하고 있지만, 급여 등재는 신청 후 보류, 부적합 등으로 기간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료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던 ‘문케어’는 중증 암 환자들에게 열리지 않는 ‘문’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해 국민 건강을 포괄적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을 내놨으나 중증 암 환자와는 관련 없는 얘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6월 내놓은 ‘2007~2018년 국내 허가 신약의 특성과 지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항암 신약의 급여 등재율은 2013~2015년 90%였지만, 현재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허가 이후 급여 등재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져 항암제 급여 등재율이 떨어졌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혁신 신약을 ‘가격’이 아닌 ‘가치’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환자의 치료와 생명 연장에 큰 도움이 되는 신약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할 경우 사회적 비용에서 오히려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보건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프랭크 리텐버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연 ‘신약의 사회적 가치와 건강보험 재정 관리방안’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항암 신약은 3년가량 평균 수명을 늘린다”면서 “항암 신약의 접근성 개선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약제비 지출액보다 6배가량 높다”고 전했다.

이형기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약가제도는 약가 통제에만 집중해 혁신의 가치 인정에는 인색하다”면서 “경제성 평가가 어려운 항암 신약은 선 급여 후기준 결정제 도입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와 보험체계가 비슷한 영국, 대만 등은 면역항암제 급여를 위해 별도의 재정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면서 “건강보험공단 재정 상태와 무관하게 신약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별도 기금 조성 적용과 가격 경쟁 유도를 통한 약가 인하를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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