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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 2] 나는 어떤 친구를 두고 있을까

사회적 네크워크망이 삶에 주는 영향 지대해
아시아 국가의 집단 동조화 성향 경계해야

 
 
ⓒ gettyimagesbank
 
한 중학생이 있다. 이 학생이 나중에 비만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 알 수 있을까?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어림할 수는 있다. 이 학생이 어떤 일상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특히 가까운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면 가늠할 수 있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사회학자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와 캘리포니아대의 정치학자 제임스 파울러가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프래밍험에 거주하는 1만2000명을 30년 넘게 연구한 결과다. 이들은 원래 어떤 요인이 심장 질환에 영향을 주는지를 알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사회적 네트워크가 심장은 물론 우리의 삶 자체에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회적 네트워크란 살면서 자주 만나는 친구나 이웃 사람, 동료들 같은 연결망이다.
 
연구에 의하면 한 사람의 연결망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단히 큰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다. 영향을 끼치는 정도와 범위가 생각 이상으로 컸다. 한 사람의 행동이 바로 옆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었다. 옆(1단계)의 옆 사람(2단계)은 물론 그 옆 사람(3단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2단계와 3단계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내가 행복하면 친구도 행복할 확률 15%↑

 
예를 들어 배우자가 뚱뚱하면 상대 배우자의 비만 가능성은 37%나 증가한다. 유전자를 공유한 형제가 비만이라면 확률은 40%까지 올라가고, 비만인 친구가 있으면 57%에 이른다. 이건 일반적인 친구인 경우이고 아주 친한 친구라면 171%, 그러니까 대체로 비슷한 체형을 가지게 된다. 함께 사는 배우자나 같은 핏줄인 형제보다 친구의 영향이 훨씬 크다.
 
흡연도 비슷하다. 내 친구가 담배를 피우면 나의 흡연 가능성은 61%나 증가한다. 친구의 친구가 담배를 피우는 경우 29%의 영향을 받는다. 나의 친구가 그 친구에게서 영향을 받아, 다시 나에게 흡연을 전염시킨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 때문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이다. 
 
길을 제대로 가려면 잘 가고 있는지 가끔 주변을 둘러보아야 하는 것처럼 휴대폰 연락처에 저장된 리스트를 때때로 점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면 만나는 사람을 선별해야 하듯, 그러지 않으면 결국 탈이 나듯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내가 행복하면, 이 행복은 나 혼자로 끝나지 않는다. 나의 행복은 친구의 행복 확률을 15%나 높인다. 친구의 친구는 10%,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5.6%나 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그 사람을 알려면 친구를 보라’는 속담은 사실이었다. 친한 친구는 유유상종이어서 친해질 수도 있지만 친해지면서 유유상종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호작용 때문이다. 두 연구자에 의하면 한 사람의 행동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 수가 무려 1000명에 이른다.
 
자, 이 연구 결과를 감안하고 생각해보자. 만일 나에게 알코올 중독 증세가 나타난다면 가장 먼저 뭘 해야 할까? 병원에 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술 친구에게서 멀어지는 게 중요하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술을 마시지 않기는 힘들다. “딱 한 잔만…”“오늘만”이라는 유혹이 사방에서 넘실거리는데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명체에게 환경은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태초에 생명이 탄생하는 것 자체가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었던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환경이라고 하면 강과 숲 같은 물리적인 것들이나 눈에 보이는 것을 생각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환경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그러니까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환경이다. 자연환경이 거시적인 환경이라면 주변 사람들은 미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나쁜 환경에 살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왜 그런지도 안다. 원인과 결과가 눈에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도 더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향이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으면 경계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환경은 과대평가하면서(바퀴벌레가 나온다고? 사람 살 만한 곳이 아니네!)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환경’, 특히 친구들이라는 환경은 과소평가한다(뭐 별 일 있겠어? 그럴 수도 있지). 
 
프래밍험 연구는 이런 행동이 결코 좋지 않다는 걸 알려준다. 우리의 미래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주고 받으니 실제적인 영향력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직업군 간 행동 유형 유사해져 

고등학교나 대학 때까지 조용해서 눈에 거의 띄지도 않던 사람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확 바뀌는 일이 꽤 있다. 대체로 그가 날마다 만나는 회사 사람들이 하는 행동 유형과 비슷해진다.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려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변하는 것이다. 공무원도 그 중 하나다. 뭐든 적극적이었던 사람이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를 봤다. “공무원이 이 정도 했으면 잘 한 거죠!”“오늘 못 하면 내일 하죠 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잖아요.”
 
격한 업무일수록 이런 경향이 짙어진다. 형사나 검사가 되면 사람을 취조하듯 하고, 판사가 되면 뭐든 판단하려 한다. 변호사가 되면 작은 것도 걸고 넘어지는 경향이 있다.
 
만나는 사람이 바뀌면 그 사람이 바뀐다. 지금의 우리도 충분히 이런 결과일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하고자 하는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나의 사회적 연결망, 특히 친한 사람들 네트워크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래밍험 연구가 말해주듯 내가 잘 나가고 있는게 순전히 나만 잘해서 그런 게 아니듯 내가 힘든 것도 내 탓만이 아닐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주변의 무언가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는 일이 안되면 흔히 우리 자신(능력 탓)이나 물리적인 환경(자금 부족, 시장환경)을 탓한다. 분명 일리 있지만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누군가(가까운 사람)가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이 끼치는 어떤 영향이 우리의 능력이나 물리적인 환경과 만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고 증폭시킬 수 있다. 
 
길을 제대로 가려면 잘 가고 있는지 가끔 주변을 둘러보아야 하는 것처럼 휴대폰 연락처에 저장된 리스트를 때때로 점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면 만나는 사람을 선별해야 하듯, 그러지 않으면 결국 탈이 나듯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존과 고든 자브나 형제가 [쓱 읽고 씩 웃으면 싹 풀리는 인생 공부]라는 책에서 진짜 친구를 판별하는 세 가지 방법을 얘기하는데 음미해볼 만하다.
 
첫째, 만나서 얘기할 때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가, 아니면 내가 하는 말에도 관심을 보이는가? 전자라면 그는 나를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 해소 상대로 보는 것이다. 둘째, 서로 원해서 친구가 되었는가, 아니면 어떤 상황 때문에 친구가 되었는가? 후자라면 생각해 볼 일이다.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마음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만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는 게 기다려지는가, 아니면 은근히 꺼리는 마음이 생기는가? 여기서도 역시 후자라면 재고해 보는 게 좋다. 이미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우리의 마음(직감)을 따라야 한다.
 
한 주식투자 전문가가 물었다. “주식투자를 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게 뭘까요?” 뭘까? 나는 기업 분석, 시장 파악 등을 말했다. 그는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친구였다. “특히 친한 친구나 옆 동료가 대박을 터트릴 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럴까?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는 비교 본능이라는 게 있다. 친한 사람이 대박을 터트리면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음이 우리도 모르게 가동된다. ‘나도 저 정도의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마음이 압박감과 조급함을 만들고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하지 말아야 할 선택과 결정을 하게 한다. 투자가 아니라 ‘모 아니면 도’ 식의 도박을 향해 가게 한다. 
 

주식 투자할 때 ‘친구의 대박’ 조심해야

‘친구가 부자 되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투자 격언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미국에서도 무탈하게 살고 싶으면 “대학 동창회에 가지 마라”고 한다. 다들 자기 과시하는 흐름에 휘말려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들 조심해야 할 ‘위험한 친구들’이다.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이런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성향을 갖게 되었을까? 우리는 수백만 년 동안 부족 형태로 살아왔다. 인류의 역사 600만년을 1년으로 치면 12월31일 오후 늦게서야 문명 생활을 시작했을 정도다. 당연히 이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들이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았을 것이다. 
 
인간관계를 부족 단위로 생각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우리와 가깝게 사는 사람들이 우리 편이었고,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할수록 결과가 좋았으니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게 필요했고, 또 그래야 했다. 그게 생존의 지름길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그러지 말아야 하지만 본성이 되어버린 성향은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특히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과 중국·일본 등은 집단 동조화 성향이 유난히 높다. 조심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거시적인 환경이야 개인이 바꾸기 힘들지만 미시적인 환경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좋지 않는 환경에서 어떻게 좋은 성과가 나겠는가? 곳간에서 인심이 생겨나듯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성과가 생겨난다. 올해도 벌써 1년의 절반 가까이 지나고 있다.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을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그렇게 일하면 아무도 모릅니다][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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