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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분에 한 번씩' 항공기 수준 소음…청년이니까 참아라?

'철길 옆' 용산 역세권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프렌즈'
1분에 한 번 꼴로 열차 소음…측정 결과 최대 80데시벨
전문가 "TV소리도 제대로 안 들릴 수준"

 
 
철길과 직선 거리로 30미터 떨어져 있는 용산베르디움프렌즈 [이코노미스트]
 
이른 아침, 닫힌 창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집안으로 들어와 울려 퍼진다. 용산역으로 들어서는 1호선 전철 소리다. 
 
창문을 열고 소음측정기를 통해 재본 결과는 80dB(데시벨) 이상. 항공기 소음이나 시끄러운 지하철 역사 안과 동일한 수준이다. 
 
이중창을 모두 닫았을 때도 소음은 60~74데시벨까지 치솟는다. 지난 5월 23일 역세권 청년주택 ‘용산베르디움 프렌즈’에 입주한 A씨는 새벽부터 밤 12시가 넘는 시간까지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1~2분에 한번 꼴로 열차가 지나간다는 것이다.  
 

80데시벨 넘는데…철도 소음 기준은 '실내' 기준 아냐

 

용산역 철길과 맞닿아 있는 용산 베르디움프렌즈 입주민 집에서 창문을 열고 측정한 소음이 80데시벨을 초과했다. [이코노미스트]
 
용산베르디움 프렌즈는 용산구의 첫 역세권 청년주택이다. 지난해 10월 무순위 청약 모집 당시 청약 경쟁률 92.36대 1을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763가구 모집에 2만8000여명이 몰렸다. 삼각지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초역세권 입지’와 9만원대의 ‘저렴한 임대료’가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조건으로 다가왔다.  
 
주변 시세보다 7배 저렴한 가격에 새 집에 입주했다는 행복도 잠시. A씨는 “방안을 둘러보면 행복하지만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들리는 열차 소리에 잠을 설치고 있다”고 말했다.  
 
A씨가 입주한 세대와 철길은 직선거리로 30m 정도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철길이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소음을 막아줄 방음벽은 설치돼 있지 않다. 민간 오피스텔보다 튼튼해 보이는 이중창도 열차 소음을 막아주기엔 역부족이다.  
 
A씨의 집에서 창문을 열고 측정한 소음은 최소 77.3~ 최대 83.5데시벨. 80데시벨은 지하철 역내에서 전동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직접 듣는 수준이다. 제법 두꺼운 이중창을 모두 닫아도 열차가 지나갈 때 소음은 60~74데시벨까지 치솟는다. 
 
하지만 시행사인 용산피에프브이와 용산구청은 준공 당시 법적 기준을 맞췄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철도소음 관리기준에 따르면 상업지역 내 주거지에서는 주간 75데시벨, 야간 65데시벨 이상 소음이 나면 안 된다. 용산피에프브이가 용산구에 제출한 소음 측정 자료에 따르면 용산베르디움프렌즈의 소음은 주간 최대 72.4데시벨, 야간 최대 64.9데시벨로 아슬아슬하게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
 
용산역 철길과 맞닿아 있는 용산 베르디움프렌즈 입주민 집에서 이중창을 모두 닫고 측정한 소음은 75데시벨에 가까웠다. [이코노미스트]
 
하지만 서류상 정해놓은 숫자와 거주민들이 느끼는 일상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최소 60~80데시벨 수준의 소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한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우리나라 법에서 철도소음 관리 기준은 ‘실외 소음’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실내 기준'은 따로 없다”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실내 소음’은 최대 45데시벨을 넘으면 안 되는데, 이중창을 모두 닫아도 최대 74데시벨까지 나오는 것은 인체를 고려한 소음이라 할 수 없어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자정 넘어 열차가 다니기 때문에 수면에도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차 소장은 “소음이 40데시벨이 넘어가면 숙면을 취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사전 심의 당시 법적 기준치 뿐 아니라 실내에서 실생활이 가능한 수준인지를 따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1분에 한 번 꼴로 지나가는 열차…밤 12시 넘어서도 계속 돼

 
용산구에 처음 생긴 역세권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프렌즈 내부. [이코노미스트]
 
더 큰 문제는 소음의 빈도다. 용산역은 서울 최고 교통요충지다. 1호선과 경의·중앙선 등 수도권 전철 뿐 아니라 KTX와 ITX,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이 용산역에 정차한다.  
 
그만큼 열차소음의 빈도도 잦다. 지난 25일 오전 10시 32분부터 10분간 측정한 결과 이르면 1분, 늦으면 3분에 한 번씩 열차가 용산베르디움 앞 철길을 지나갔다. ITX와 KTX, 지하철, 기차 4대가 동시에 지나간 적도 있었다. 
 
26일 오후 9시 10분~오후 10시까지 측정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반복적으로 지속되면 스트레스는 더욱 커진다. 평균 2분 꼴로 열차소음을 들어야하는 주민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용산베르디움프렌즈의 시행사인 용산피에프브이 관계자는 “철길과 맞닿은 세대가 아니라면 소음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산베르디움프렌즈의 세대 배치도를 보면 청년 1인가구가 입주한 19㎡형 128세대는 모두 철길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 "실내 소음 평가 기준 필요" 

 
A씨는 “시설도 좋고 입지도 좋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입주했지만, 청년 1인가구는 모두 1분에 한 번꼴로 나는 소음을 참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용산 철길 근처에 지어진 아파트가 용산베르디움프렌즈 뿐만은 아니다. 건너편에는 시세 16억~18억원에 형성된 민간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용산베르디움프렌즈만큼 철길과 맞닿아 있지 않은데다, 방음벽이 설치돼 있어 소음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다. 그러나 용산 베르디움프렌즈는 시공 당시 소음이 법적 기준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방음벽을 설치하지 않았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이미 허가와 준공이 완료된 상황이라 행정적으로 방음벽 설치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만약 입주민들의 불편이 지속된다면 시행사가 자체적으로 방음벽 설치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용산 베르디움프렌즈 준공 당시 법적 기준을 어긴 주체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는 철길 옆에 지어지는 아파트가 많은 만큼 철도 소음에 대한 실내 소음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 소장은 “우리나라 법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기준에 대한 명확한 소음 잣대가 없기 때문에 복합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특히 층간소음, 환경소음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 청년주택이나 임대주택은 공간이 지어진 뒤 소음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조치나 관리가 불분명한 만큼 설계나 준공 당시 전문가를 대동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김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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