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그레이트 게임’, 양에서 질로 진화하는 백신 전쟁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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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그레이트 게임’, 양에서 질로 진화하는 백신 전쟁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백신 서열화의 그림자, 핵산·전달체·불활성화·단백질 순 선호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AFP=연합뉴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AFP=연합뉴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쟁탈전이 뜨겁다. 19세기에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하면서 식민지와 영향권 확대를 두고 다퉜던 상황이 떠오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지키기 위해 남하하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중동·중국서부에서 벌였던 ‘그레이트 게임’을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온다. 21세기 글로벌 사회는 백신을 놓고 ‘바이오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게임은 국제 사회의 협력이나 공존과 거리가 멀다. 지금처럼 백신 접종 성적표가 곧 정치인 지지율과 연결되는 상황에선 누구도 그 이상을 추구하긴 힘들다. 이런 상황에선 치열하게 자국 이익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글로벌 리더십이나, 모범, 자비로운 나라의 개념이란 찾아볼 수 없다. 백신을 구하기 힘들거나 실패한 나라는 백신의 불평등, 백신 격차 등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들 나라는 유엔 등 다자주의를 앞세운 공존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 믿을 것은 자국 정부의 능력과 의지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어떤 백신인가?’ 경쟁의 질적 전환

독일의 제약사 바이오앤테크 직원이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생산을 위한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독일의 제약사 바이오앤테크 직원이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생산을 위한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된 백신을 자국민 중심으로 접종하고 있다. 유럽은 벨기에와 독일의 공장에서 생산된 화이자 백신을 지역 밖으로 운송할 경우 일일이 건당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선 유럽에서 생산된 화이자 백신을 비행기로 실어올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량 확보가 늦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막강한 경제력의 일본조차 백신 국가주의의 장벽 앞에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접종률이 10%도 안 되는 일본의 상황은 백신 쟁탈전의 치열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까진 백신 물량의 문제다. 최근 들어 이러한 양적인 문제에 더해 ‘백신의 질적 과제’가 새로운 아젠다로 등장하고 있다. 효과가 더 좋고 부작용이 덜한 백신을 확보해 국민에게 접종하는 일이 각국 정부와 지도자의 추가과제로 더해졌다.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각국은 물량 확보에 전력투구하면서 양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양을 채우는 데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리면서 이제는 보다 나은 백신을 구하는 게 국가 아젠다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백신 접종을 마치고도 돌파 감염되는 이른바 ‘물 백신’과 각종 부작용 사례를 지켜본 국민들 사이에서 ‘백신의 질’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 배경이다.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기본적인 배경은 ‘백신의 등급화’다. 실제로 백신마다 원리나 제품에 따라 효능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과학적·의학적·보건학적으로는 어떤 종류의 백신이든 일단 맞아 전체 인구에서 70~80%가 집단면역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굳이 최고 효능의 백신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백신은 지역사회나 국가의 감염병 확장 저지를 위한 집단 공공재이지, 개인의 치료를 위한 맞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충분히 생기지 않으면 나중에 ‘부스터 샷’이라는 3차 접종을 해서 해결할 수 있다. 일단은 집단이 면역력을 확보하는 게 백신 접종 전략에서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불안이 이런 합리적인 판단을 누르고 있다. 비록 발생 비율이 낮고 인과관계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백신 부작용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은 상당하다. 몸살·두통 등 기본적인 예방주사 부작용은 하루 이틀 해열진통제 복용으로 해결하지만 이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는 혈전 증세 앞에선 심리적 불안이 커지게 마련이다. 치명적인 부작용이 거의 보고되지 않는 백신에 대한 갈망이 나오는 이유다.  
 
효능 차이도 문제다. 여기에서 잠시 효능과 효력이라는 용어를 정리해보자. 이 두 가지는 미디어 등에서 혼동해 쓰기 일쑤다. 의학이나 약학, 보건학에서 효능(Efficacy)과 효과(Effectiveness)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론 다른 개념이다.  
 
의학이나 보건 통계학에선 이 두 용어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효능이란 임상시험과 같이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설계한 과학적인 연구 절차에 따라, 다른 조건이나 요인을 통제한 다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평가한 결과다. 반면 효과란 다른 조건이나 요인을 통제하지 않고 해당 백신을 접종한 사람을 관찰한 결과다.
 
일례로 임상시험에서 후보 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연령·성별·지역·체력·사회계층 등 다양한 요인을 수학적·통계적으로 감안하면서 항체 형성률을 엄밀하게 평가한 결과는 효능이다. 전체 인구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데이터다. 반면 효과는 이런 요인을 수학적·통계적으로 감안하지 않고 백신을 직접 접종한 사람 중에서 항체가 생긴 사람의 비율을 산출한 결과다. 즉 효능이 누가 맞아도 나타나는 무작위적인 데이터라면, 효과는 살펴본 대상에게서 실제 나타난 관찰 결과다.  
 

‘좋은 백신 맞는 나라=선진국’ 공식화

문제는 코로나19 백신들 간 ‘효능 격차’가 심하다는 사실이다. 사용 승인이나 임시 승인을 받은 백신만 살펴보자. 미국·독일의 화이자 백신의 경우 95%, 미국의 모더나가 94%,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가말레야)가 92%로 선두 그룹을 형성한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백신에서는 처음 적용하는 m-RNA 기술을 응용했으며 별다른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는다. 미국의 보건전문가이자 현 백악관 고문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임상시험 결과 90% 이상의 높은 효능을 나타내자 “효능이 60%만 돼도 방역에 충분히 도움이 된다”며 감탄했다. 화이자 백신은 현재 전 세계 112개국에서 사용 또는 임시사용 허가를 받았다. 모더나는 58개국에서 사용이나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 스푸트니크V는 인간 아데노바이러스를 활용한 전달체(벡터) 백신이다. 이 백신은 전 세계 72개국에서 승인 또는 긴급 사용 허가를 얻었다.  
 
다음 두 백신은 중간 그룹을 형성한다. 영국·스웨덴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효능이 70%(62~90%)인데 일부에서 혈전 발생이 보고돼 인과 관계 여부를 조사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를 활용한 전달체(벡터) 백신이다. 이 백신은 현재 전 세계 170개국 이상에서 사용이나 긴급 사용 허가를 받았다. 미국·벨기에의 존슨앤드존슨(얀센) 백신은 2회 접종이 필요한 다른 백신과 달리 1회만 접종하면 되는 장점이 있지만 효능이 66%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젊은 층의 혈전 발생이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조사를 위해 접종을 중단했다. 얀센도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이다. 존슨앤드존슨 백신에 사용이나 긴급 사용 승인을 내준 나라는 56개국이다.  
 
한편 미국의 노바백스사가 개발 중인 노바백스 백신은 변이종에도 효능이 확인되면서 최근에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노바백스는 아직까지 실전에는 등장하지 않은 단백질 서브유닛 백신이다. 이 백신은 지난 1월 임상시험 중간 발표에서 효능이 89%로 나타났다. 노바백스는 아직 개발 중으로 사용이나 임시사용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항체생성 방식따라 효능 갈려

방식을 비교해보자.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m-RNA 백신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돌기) 유전자를 이용해 인체가 이를 항원으로 인식해 항체를 만들도록 유도한다. 아스트라제네카나 스푸트니크V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무해한 인간아데노바이러스나 침팬지 아데노바이러스에 삽입해 인체에 접종한다. 접종되면 인체가 이를 항원으로 인식해 항체를 만들어 면역력을 확보하게 된다.  
 
반면 노바백스 같은 단백질 서브유닛 백신은 방식에서 확연히 다르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유전자를 곤충에 감염되는 다른 바이러스의 삽입한다. 이 바이러스는 곤충의 몸에 들어간 뒤 스파이크 단백질을 대량으로 만든다. 이 단백질을 추출하고 정제해 백신으로 만들어 주사하면 인체가 이를 항원으로 인식해 항체를 만든다. 이론적으론 안전성도 높고, 부작용도 적다. 노바백스사는 한국의 SK바이오사이언스와 국내 공장에서 해당 제품을 대량 생산해 한국 정부에 4000만 회분을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생산 물량의 처분권을 가진 라이센스 생산은 아니고, 본사 지시에 따라 공급하는 위탁 생산 형식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내 최대의 백신 제조업체로 생산 설비도 크고 기술 축적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원액 제조 능력과 최종 제품 생산 능력까지 고루 확보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킨 전통적인 불활성화 백신인 중국의 시노백은 효능이 50%다. 같은 방식의 중국 백신은 시노팜은 효능이 78.1%로 나타났다. 효능이 낮은 백신은 접종을 모두 마치고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돌파 감염’의 우려가 있다. 중국의 시노팜 백신을 지원받아 지도층이 접종한 파키스탄에선 3월 하순 아리프 알비 대통령과 페르베즈 카탁 국방부 장관이 2차 접종을 1주일 남긴 상태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확진자가 됐다. 1차 접종에서 충분히 면역을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처럼 최근에는 코로나19 백신을 화이자와 모더나 같은 RNA 백신, 스푸트니크V나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 그리고 전통 기술을 사용한 불활성화 백신으로 등급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RNA 백신은 미국이 관여한 화이자와 모더나 두 종류에 국한된다. 두 백신은 전 세계에서 접종되지만 아무래도 미국과 캐나다 같은 북미와 유럽 지역과 호주,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부자에 집중되고 있다.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은 종류도 많고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RNA 계열의 백신에 비해 생산량도 풍부한 편이다. 스푸트니크V와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드존슨(얀센) 외에도 중국의 칸시노 백신이 이 계열이다. 러시아는 스푸트니크V를 상온에서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량한 스푸트니크 라이트도 보급하고 있다. 역시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이다.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은 세계 최대 백신 생산업체인 인도의 인도혈청연구소(SII) 덕분에 대량 생산이 이뤄져 전 세계에 다량 공급되고 있다.
 

냉정한 국제정치, 자체 백신만이 살길

오래된 기술을 활용한 불활성화 백신은 중국에서 여러 종류를 개발해 ‘중국 백신’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중국의 시노팜 베이징과 시노팜 우한, 그리고 시노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인도에서도 코백신이라는 이름의 자체 불활성화 백신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불활성화 백신은 미국·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연합(EU), 호주·뉴질랜드, 한국·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부자 나라에선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이중 한 나라도 사용이나 임시사용 승인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심사나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술과 효능·안전성, 그리고 중국에 대한 정치적인 문제가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단백질 서브유닛 백신이 개발 중이다. 러시아의 에피백과 중국의 지피백이 현재 도전 중이다. 미국의 노바백스도 그 대열을 이끌고 있다. 단백질 서브유닛은 m-RNA 백신과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에 이은 3차 백신 혁명을 이끌 수 있는 종류로 주목 받는다. 불활성화 백신과는 효능 등에서 확실한 비교 우위가 예상된다.  
 
이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이 자체 백신 개발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한다는 나라는 모두 뛰어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시아에선 한국, 일본 외에 북한도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화권에선 중국은 물론 홍콩에서도 개발을 진행 중이고,  중국과 관계가 악화한 대만도 독자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에서도 개발 작업이 한창이다.  
 
남아시아에선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라이센스 생산하고 불활성화 백신도 내고 있는 ‘백신 대국’ 인도는 물론, 그 이웃인 방글라데시도 자체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중국과 대규모 백신 공장을 합작으로 짓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UAE는 중동의 바이오 대국의 꿈을 꾸고 있다.  
 
과학기술이 앞선 유럽에선 당연히 자체 개발이 한창이다. 이미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를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팬더믹 상황에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나라마다 자체 기술로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아울러 다양한 종류의 백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앞으로 코로나19 백신을 독감 백신처럼 거의 매년 맞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대비 차원도 있다. 그럴 경우 다양한 백신을 다량으로 확보하는 것이 국가 전략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백신의 타 지역 이동을 막는 국가주의의 냉혹한 모습을 목격한 나라들로선 가진 국력을 다 쏟아 자체 백신을 확보하는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있는 영국도, 화이자 백신을 공동 개발하고 생산도 하는 독일도 새로운 백신 개발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다양한 백신 개발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장기적으로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제약 강국인 이탈리아도 예외가 아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백신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백신 개발과 공급을 통한 바이오산업 혁신과 이윤 창출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도 이 같은 협력에 한 몫 했을 것이다. 북미에선 캐나다가, 대양주에선 호주가 자체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남미에서도 브라질·멕시코 등 대국은 물론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역시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쿠바는 단백질 서브유닛 백신인 압달라와 소베라나02 백신의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등 남미에서 개발 진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압달라는 쿠바 내에서, 소베라나02는 쿠바와 함께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백신 개발이 미국과 서방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쿠바·이란·베네수엘라 등 반미 국가들이 백신 개발 협력을 하는 모양새다. 국제 사회에서 백신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한 국가가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백신 쟁탈전의 새로운 막이 오르고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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