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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산업재해 공화국①] 일터에서 쓰러지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

건설‧제조업서 만연한 안전 불감증
文 열린 관리‧감독에 비판 ‘확산’
노동집약 산업의 ‘위험의 외주화’ 여전

 
 
전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구의역 김군' 5주기를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 근로자의 죽음은 한 가정의 ‘사망’이다.”
 
진부한 이 문장, 그러나 건설·제조업 현장에서 근로자의 죽음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반복되는 중대재해에도 회사를 비롯해 심지어 일부 노동조합조차 “근로자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는 논리를 슬그머니 내세운다. 중대재해가 집중되는 사업장을 관할하는 기관의 안일한 관리·감독에 더해 ‘그들만의 특별감독’이 계속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끊이질 않는 산업재해에 관리·감독 ‘부실’ 비판  

 
10일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3월 말까지 산업재해(사고·질병 등)로 사망한 근로자는 57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명(2.1%)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근로자 사망만인율(인구 1만명당 사망자 수 비율)은 0.30으로, 지난해 3월 말과 동일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사고 사망 통계를 보면,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지난 2011년 1129명에서 지난해 882명으로 10년간 247명 줄었다. 같은 기간 사망만인율 역시 0.79에서 0.46으로 0.33 수치 감소했다. 지난 10년 전체를 보면, 산재사고 사망자 수와 사망만인율 모두 감소 추세를 보인 것이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산재사고 사망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882명으로, 역대 처음으로 800명대에 진입한 2019년 사망자 수(855명)보다 27명이 많았다. 올해 3월 말까지 산재사고로 사망한 인원이 574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산재사고 사망자 수가 지난해보다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건설·제조업 등 노동집약 산업에서 사망사고가 끊이질 않자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이 부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사업장을 대상으로 특별감독에 적극 나서고 있음에도 안전사고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동부의 특별감독 기간에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7일부터 28일까지 울산 현대중공업 사업장을 대상으로 특별감독을 실시했는데, 같은 달 25일 울산 현대중공업 엔진2공장 부속동 보일러 배기관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해당 사고 지점은 작업 중지가 내려진 곳과 거리가 있다”며 “작업 중에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온수기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라고 해명했다.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工期 압박 산업 구조까지  

 
건설·제조업 등 노동집약 산업에서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원인으로는 여전히 만연한 안전 불감증이 거론된다. 건설·조선업계 관계자들은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인원이 광범위한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업계 특성상 다른 산업과 비교해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중대재해에 다소 무딘 분위기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산업의 관리·감독을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에서도 안전 불감증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가 집중 발생하는 지역을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들 기관 내에는 중대재해에 다소 무딘 분위기가 감지된다”면서도 “수만 명이 근무하는 사업이 수두룩한데 고작 수십 명이 현장 감독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측은 “안전 불감이란 단어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안전 불감증인 분위기 속에서 특별감독을 한다는 것은 과도한 지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기(工期) 압박 등에 시달리는 산업적 특성도 중대재해의 원인으로 꼽힌다. 건설·조선·철강 등 노동집약 산업은 통상 공기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공기 압박으로 인해 작업 현장에서 안전관리보다 생산성이 강조되는 산업적 관행이 있고, 이 같은 관행으로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과)는 “조선업은 통상 정해진 날짜에 선박을 건조해 인도하는 공기를 지켜야 하는 대표 업종으로, 인력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공기 압박에 노출되기 쉽다”며 “공기 압박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중대재해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동집약 산업 구조가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수의 노동력이 필요한 산업에선 원청과 수십 개의 하청업체가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데다, 이들 하청업체들이 1년 미만의 단기계약 근로자를 채용하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산업 구조 탓에 제대로 안전교육 등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 직원들이 위험한 업무에 내몰린다는 분석이다.  
 
물론 내년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중대재해가 감소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것 등을 두고 시행 전부터 졸속 법안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되는 등 사실상 날림으로 법안을 만들었다”며 “부실한 내용으로 법이 제정된 데다, 시행 자체도 늦었다”고 지적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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