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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행복주택③] 이름은 ‘행복주택’, 현실은 ‘좁은주택’

주거면적 1㎡라도 넓을수록 청약경쟁률 치솟아
행복주택 면적 대부분 전용 40㎡ 이하로 공급
한국 1인 최저주거면적 14㎡…‘10년째 제자리’
일본 1인 25㎡, 영국 38~40㎡ ‘삶의 질 격차’

행복을 꿈꾸며 서울로 온 청년들은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탈출 수단으로 ‘행복주택’에 희망을 건다. 하지만 넘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은 매우 적어 행복주택 입주는 복권 당첨 확률에 버금갈 정도로 ‘하늘의 별 따기’가 돼버렸다. 바늘구멍을 통과했어도 비좁은 공간의 불편을 감수하며 버텨야 한다. 청년의 주택 갈증을 풀어주겠다며 시작한 청년 주택 사업의 현 위치와 문제점은 무엇인지 [이코노미스트]가 진단했다. [편집자]


지난 3월 서울 동작구 한 대학가 담벼락에 붙은 대학생 세입자를 구하는 하숙 게시물. [연합뉴스]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  
 
행복주택에 대한 청년세대의 갈증이다. 이런 바람이 2020년 2차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 청약 경쟁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자이(고덕주공 6단지 재건축) 아파트(행복주택)의 신혼부부 대상(일반공급) 청약경쟁률을 보면 평형별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전용면적 48㎡의 청약경쟁률은 1.5대 1을 보였다. 그런데 같은 단지 내 전용 52㎡ 청약경쟁률은 3대 1을 기록했다. 전용 59㎡ 경쟁률은 15.8대 1까지 치솟았다. 모두 신혼부부(일반공급) 대상이었지만 면적이 넓은 곳일수록 더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  
 
서울 은평구 역촌동 85-9 행복주택도 비슷했다. 이 행복주택의 공급 평형은 전용 28㎡와 29㎡ 였다. 28㎡ 경쟁률은 80대 1, 29㎡ 경쟁률은 104대 1을 기록했다. 청약 신청자들이 1㎡라도 더 넓은 집을 선호한다 것을 엿볼 수 있다.  
 
대학 새내기 때부터 행복주택에 살았던 윤희진(25)씨는 “집 안에서 세탁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어 공간 대비 만족한다”면서도 “좁아서 여러 활동을 할 수 없는 불편함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행복주택의 공간은 정말 사람이 살기에 좁은 면적일까? 우리나라는 주거기본법을 통해 최저주거기준을 밝히고 있다. 이 기준은 1인 가구 기준 14㎡(약 4.2평), 2인 가구(부부) 26㎡(약 7.8평), 부부+자녀1 36㎡(약 10.9평), 부부+자녀2 43㎡(약 13.03평)로 제시하고 있다. 1인 평균 약 4평 정도가 필요하다고 보는 셈이다. 현재 짓고 있는 행복주택 면적이 대학생 기준 최소 16㎡, 신혼부부 기준 36㎡인 것을 고려하면 최저주거기준보다 좀더 넓은 편이다.  
 
서울 서북권에 위치한 행복주택 전용 16㎡ 내부. 대학생에게 제공하는 원룸형이다. [신수민 인턴기자]
2020년 2차 행복주택 모집공고에 선보인 서울 강북구 삼양동 행복주택 전용 29㎡ 평면도. 청년(만 19세 이상 39세 이하(대학생 제외))에게 공급하는 행복주택 주거공간으로, 주거공간을 분리한 29형B타입(왼쪽)과 테라스를 강조한 29형C타입(오른쪽)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 서울주택도시공사]
 

주거시설 채우고 누우면 끝, 활동하기도 어려운 실면적

하지만 건축 전문가들은 이 기준 수치가 ‘최소’한을 지키라고 한 것일 뿐 삶의 질적인 부분을 따져본다면 결코 넓은 집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좀더 넓은 면적의 주택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혼부부는 자녀 계획을 염두에 두는 일이 많은데, 그러면 부부만 살더라도 최소 40㎡ 이상 평형에 살기 원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작은 면적에서는 성인 두 명이 생활하기 쉽지 않고, 아이가 생길 것도 생각한다면 신청하기 꺼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행복주택은 주로 전용 40㎡ 미만으로 공급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임대주택 재고현황에 따르면 수도권 행복주택의 경우 전용 40㎡ 이하는 88.9%를 차지한다. 광역시로 보면 97.7%에 이른다.  
 
40㎡는 평(1평=3.3㎡)수로 약 12평 정도다. 일반적으로 전용 40㎡인 주택은 거실 겸 침실 1개, 소형침실 1개, 욕실 1개, 부엌 1개로 구성된다. 그런데 청년들은 이런 공간의 행복주택에서 사는 게 쉽지 않다. 2020년 말 기준 서울시 행복주택 모집 공고를 보면, 대학생은 16㎡형과 17㎡형에만 신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청년(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대학생 제외)에게 공급하는 행복주택 물량의 절반은 25~29㎡형(2020년말 기준)이다. 29형의 경우 8평 정도 면적에 욕실·보일러실·현관·드레스룸을 갖추고 있다. 주방과 거실은 분리되지 않은 겸용 공간이고, 방이 곧 침실이자 작업실 역할을 한다. 욕실·보일러실·현관 등의 면적을 제외하면 실제 거주 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10년째 제자리인 법적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토부의 주거 실태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청년들이 살고 있는 집의 실면적을 조사한 결과 2006년 기준 26.2㎡에서 2019년 32.9㎡로 넓어졌다. 그런데도 법적 최소면적 기준은 14㎡이고, 이를 기준으로 공공주택이 지어진다. 우리와 주거환경이나 문화가 비슷한 일본의 주거면적과 비교해봐도 주거면적이 좁다. 일본에서는 1인당 최저주거면적 기준을 25㎡로, 영국은 38~40㎡로 설정하고 있다.
 
 

“생애 주기 고려한 맞춤 주거공간 기준을 고민할 때”

 
2017~2018년 기준 일본에서 공급한 임대주택 중 면적이 40㎡ 미만인 유형은 2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1인 가구의 공급량을 늘려야겠다고 하면 가장 작은 16㎡ 정도로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2018년 최저주거기준을 정한 주거기준법에 대한 용역연구가 완료된 바 있다. 국회 주거복지과 입법조사관 관계자는 “1인 가구의 생활양식이나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에 면적을 더 넓혀야 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1인 가구나 가구 구성원에 따라 행복주택을 포함한 공공임대주택의 질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원룸처럼 작은 유형의 집도 필요하지만, 세대 구성원 수에 맞게 다양하고 넓은 평형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가구특성을 고려한 통합공공임대주택 공급제도 연구’에 따르면 현행 주거면적 기준은 가구원의 성별, 생애주기에 따른 가구원 수 증가, 다양한 가구 구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과밀·과소 상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는 등 생애 맞춤형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주거면적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신수민 인턴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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