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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트 사용료 협상 난관…CJ ENM이 그럼에도 웃는 이유

[스페셜리포트 - CJ ENM 분석②]
블랙아웃 위기에 정부가 중재 나선 콘텐트 사용료 갈등
큰 폭 인상 어렵지만 차후 협상의 키 CJ가 쥘 가능성 커

 
 
CJ ENM이 미디어 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앞으로 더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강호성 CJ ENM 대표이사.[사진 CJ ENM]
 
콘텐트 비용을 둘러싼 CJ ENM과 IPTV업계의 날 선 공방전이 파국은 면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직접 중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콘텐트 사용료 산정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CJ ENM과 IPTV업계의 불화가 수면 위로 불거진 건 IPTV 3사가 CJ ENM의 사용료 인상 요구를 두고 “과도하고 비상식적”이라며 반발하면서다. CJ ENM은 IPTV에 자사 채널을 송출하고 받는 대가가 너무 작다며 25%가량을 더 받아야겠다고 요구했다.  
 
성명서와 반박 입장문을 번갈아 내던 양측의 갈등 수위는 CEO들의 입을 통해서 더 높아졌다. 강호성 CJ ENM 대표가 “IPTV사들이 수익 배분에 인색한 것 같다”고 지적하자 구현모 KT 대표는 “상식적으로 봤을 때 지난해 대비 사용료 상승 폭이 과도하다”며 응수했다.
 

블랙아웃 리스크 감수하고 벌인 갈등

단순한 ‘말싸움’에만 그치지 않았다. 지난 6월 12일엔 LG유플러스의 OTT 서비스에서 CJ ENM이 보유한 10개 채널의 실시간 방송을 볼 수 없게 됐다. CJ ENM과 LG유플러스의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떄문이다.
 
이용자 불편이 현실화하고 블랙아웃(송출 중단) 사태가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결국 정부가 나섰다. 과기부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협의해 콘텐트 계약을 둘러싼 가이드라인을 실효성 있게 개선할 계획이다.
 
이대로 갈등이 끝맺음 되면 CJ ENM이 지는 싸움처럼 보인다. ‘콘텐트 사용료 25% 안팎의 인상’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서다. 블랙아웃을 막는 게 목적인 정부의 중재는 양측 다 한발씩 양보하라는 취지로 유도할 게 뻔하다. 애초에 CJ ENM이 원했던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갈등 종식 이후의 상황은 다르게 전개될 거라고 보고 있다. CJ ENM이 업계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더 공고해질 거라는 거다. 콘텐트 사용료 협상에서의 키가 CJ ENM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합리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내밀어도 이처럼 큰 폭의 사용료 인상을 IPTV 사업자가 순순히 받아들 리 없다는 건 CJ ENM도 예상했을 것”이라면서 “CJ ENM의 콘텐트 파워를 둘러싼 위상이 달라졌음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신경전의 속내부터 다시 들여다보자. 갈등은 정부가 나서기 전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양측 주장은 모두 합리적이었다. 
 
CJ ENM은 콘텐트 가치가 저평가된 환경에선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불만의 골자였다. 광고·협찬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콘텐트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우려다.
 
반면 IPTV업계는 CJ ENM에만 막대한 사용료를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CJ ENM은 협상을 벌이는 수많은 콘텐트 제작사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IPTV업계는 협상에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는 만큼 ‘합리적이고 타당한 수준의 협의와 합의’를 고수했다.  
 
“어느 한쪽이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는 여론보다는 사업자 간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선이 더 많았던 이유다. ‘누가 더 탐욕을 부리는가’를 두고 우열을 가려야 했는데, 이것마저 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 모두 승승장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통위에 따르면 IPTV 3사의 지난해 방송사업 매출은 전년보다 11.1% 증가한 4조2836억원이었다. KBS·MBC·SBS 등 지상파의 매출은 1.4% 늘어나는 데 그친 가운데 방송사업자 가운데 유일하게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CJ ENM 역시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상승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양측의 갈등은 블랙아웃을 불사할 정도로 치열했지만, 블랙아웃을 대하는 태도엔 미묘한 온도 차이가 있었다. IPTV업계가 수세에 몰렸다. 이들 사업자는 CJ ENM이 보유한 채널이 절실했다. tvN, Mnet, OCN과 같은 시청률 높은 핵심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CJ ENM은 IPTV와의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뚜렷한 ‘플랜B’가 있었다. 바로 자사의 OTT 서비스인 ‘티빙’이다. 티빙을 통해선 CJ ENM의 채널과 콘텐트를 갈등 없이 유통할 수 있다. 강호성 CJ ENM 대표가 IPTV 사업자를 향해 날 선 지적을 꺼낸 무대가 바로 티빙의 이용자 수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자리였다.  
 
결국 IPTV 사업자가 협회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면서 여론전이 시작됐다. 결과는 IPTV 사업자의 의도대로 ‘CJ ENM의 25% 인상 요구 실패’로 이어졌지만, CJ ENM의 노림수는 단순히 사용료 인상에만 그치진 않았다.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진 이후 CJ ENM 측은 “한국 콘텐트 산업의 구조를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선공급 후계약 체계’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콘텐트 제작사가 방송사업자에 콘텐트를 먼저 공급하고 계약을 나중에 맺는 구조다. 계약을 맺기도 전에 방송을 먼저 송출하고, 계약 종료 시점이 다 돼서야 계약을 체결하는 셈이다.  
 
CJ ENM 같은 프로그램 제작사는 이미 상품을 준 이후에 사용료를 협상하기 때문에 상품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번 갈등의 핵심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계약 구조였다.   
 
만약 정부가 중재 과정에서 이 구조를 손질하게 되면, IPTV 사업자는 양질의 콘텐트를 갖춘 CJ ENM과의 협상에서 더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콘텐트 사용료 협상의 다음 키를 CJ ENM이 쥘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 당장은 IPTV가 이런 비용 부담을 감내하는 게 어렵진 않다. 앞서 언급했듯, 방송사업자 중 가장 높은 매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서다.  
 

갈등 이후 협상력 높이는 CJ ENM

문제는 앞으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주류 미디어로 떠오른 OTT 서비스의 확산은 IPTV업계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도 모자라 한국인의 콘텐트 소비성향까지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 벌어진 코드커팅 현상이 언제든 한국에서 재현될지 모를 일이다. 코드커팅이란 유료방송 가입자가 서비스를 끊고 OTT로 이동하는 걸 말한다.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에선 OTT에 밀린 유료방송 업체들이 양방향 광고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국내 IPTV 사업자도 월 이용료 외에 새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갈등의 불씨는 아직 살아있다. 정부가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더라도 양측이 마뜩치 않으면 언제든 비슷한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CJ ENM으로서는 당장의 전투에선 졌지만, 전쟁에선 이긴 셈이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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