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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라이프] 알고 나면 사고 싶은…손자 사랑으로 디자인한 조명

알레산드로 멘디니 89년 아뜰리에 열고 디자이너 길 걸어…‘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려
80세에 만든 조명 ‘아물레또’…두 개의 막대기에 3개 원이 연결 단순한 디자인 특징
15년간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과 협업…2019년 한국 문화 애정 담은 ‘아물레또 펄’ 선보여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손자. 책상용 램프 '아물레또'는 두 사람이 태양과 달, 지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탄생했다. [사진 라문]
실내 인테리어에서 조명이 차지하는 힘은 상당히 중요하다. 적절한 조도와 아름다운 모양을 가진 실내 램프 하나만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실내 분위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산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사에 길이 남을 조명 디자인을 남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19년 88세의 나이로 별세한 산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건축·가구·조명·전자·도자기까지 무한대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인물이다. 193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멘디니는 모도·카사벨라·도무스 등 3대 건축 잡지 편집장을 지냈다. 
 
89년 58세의 나이에 자신의 아뜰리에를 열고 본격적으로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걷게 됐고, 다양한 장르에서 디자인 사에 길이 남을 역작들을 남기면서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렸다. 컴퓨터 없이 손으로 종이에 스케치를 그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평생 작업해온 그의 수많은 디자인 제품들은 세상에 없던 독보적인 감각으로도 빛났지만 무엇보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동심과 유머감각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와인 따개 ‘안나G’만 떠올려 봐도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자신의 친구인 발레리나가 기지개를 펴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안나G는 보기만 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올 만큼 친숙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빛나는 제품이다.
 
플로어 램프로 출시된 '아물레또 테라'. [사진 라문}
늦깎이 디자이너 멘디니가 80세에 만든 조명 ‘아물레또’ 역시 해맑은 동심의 세계가 반짝이는 작품이다. 아물레또란 이탈리아어로 ‘수호물’이라는 뜻. 자유자재로 꺾이고 회전하는 두 개의 막대기에 총 3개의 원이 연결된 단순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어린 아이가 그린 듯 동그라미와 선만으로 완성된 이 간결한 모양은 멘디니가 손자와 함께 해와 달, 땅(지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그린 그림이 그대로 디자인 초안이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아물레또에는 멘디니의 손자에 대한 사랑이 잔뜩 담겼다. 세상에 없던 빛으로 사랑하는 손자의 수호물을 만들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것. 
 
손자의 눈을 보호하고 싶었던 멘디니는 병원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무영등(그림자가 지지 않는 램프)에서 영감을 얻어 눈 보호에 가장 이상적인 조명을 생각해냈다. 블루라이트, 자외선, 적외선 등의 위험성이 없는 LED 조명은 소프트 웜 화이트 광원으로 황반변성 등의 망막질환으로부터 눈 건강을 지키는 데 용이하다. 빛의 떨림이 없고 광량이 일정해서 장시간 사용에도 눈 피로를 줄여주는 것 또한 특징이다. 친환경 자원을 이용하고 유해물질인 납·수은·카드뮴 등의 사용을 제한하는 RoHS 인증도 받았다. 한마디로 손자를 위해 가장 좋은 것만을 모아 만든 ‘할아버지표 조명’이다.
 
책상용 램프로 처음 선보였고, 이후 플로어 램프 ‘아물레또 테라’가 출시됐다. 거실·부엌·침실 등의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용도로 51단계의 조도 조절이 가능해 그때그때 목적에 맞게 실내 분위기를 밝힐 수 있다.
 
송방웅 나전칠기 장인과 협업한 '아물레또 펄'-2. [사진 라문]
아물레또 스토리에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숙이 배어 있다. 멘디니는 별세 전까지 15년간 삼성전자·LG전자·한국도자기 등 다양한 한국 기업과 협업했다. 한국을 직접 방문한 것도 여러 차례. 덕분에 한국의 전통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2019년 선보인 ‘아물레또 펄’은 멘디니의 한국 전통문화 사랑과 닿아 있는 작품이다. 한국의 무형문화재 송방웅(1940~2020) 나전장인과 협업한 한정판으로 총 1566조각의 자개가 램프에 새겨져 있다. 송 장인과의 협업은 멘디니가 직접 송 장인을 찾아가서 맺게 된 인연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한국의 보석함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특별한 존재입니다. 저 역시 자그마한 나전칠기 작품을 가지고 있지요. 손으로 만든 귀하고 특별한 물건들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때에 이처럼 정성스러운 손기술의 보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게 다행이고 저 또한 운이 좋아요.” 송 장인의 나전칠기 공예에 감동을 받고 멘디니가 한 말이다.
 
안타까운 건 아물레또 펄은 2019년 가을 첫 선을 보였는데, 그해 2월 멘디니가 별세했고, 이듬해 송 장인도 별세했다. 한정판으로 총 17개만 제작된 아물레또 펄은 그렇게 두 사람의 귀한 유작으로 남았다. 두 사람의 인연이 조금 더 이어졌다면 또 어떤 아름다운 조명이 탄생했을까, 아쉬움이 크다. 
송방웅 나전칠기 장인과 협업한 '아물레또 펄'-1. [사진 라문]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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