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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탄소중립 목표 ‘그린 딜’은 한국경제에 영향 미칠까?

[2022 경제대예측 - 한국 경제 향방④] yes 80%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5월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50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2021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화두는 단연 ‘탄소중립’이었다. 유럽연합(EU)·미국·영국·일본·한국은 물론, 중국도 탄소중립을 선언한 뒤 처음으로 열린 당사국총회였기 때문이다. 중국을 뺀 나머지 국가는 2050년을 탄소중립 목표연도(중국은 2060년)로 선언했다.  
 

유럽의 탄소중립, 경제 포기 아니다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중간단계에 있는 정책이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이다. EU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배출량 기준으로 55% 감축한다는 이른바 ‘Fitfor 55’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에선 ▶배출권거래제에서 배출 상한의 축소 ▶항공과 해상운송 부문의 배출권거래제 편입이 이루어지며, 또한 ▶배출권 경매 수익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금을 조성해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구매를 지원하기로 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까지 55% 감축하는 동시에 ▶2035년에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완전히 퇴출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Fitfor 55’에서 주목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2021년 7월14일 발표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상품가격에 관세 형태로 탄소비용을 붙인다. 일단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에 적용한다. EU 내에서 이 품목들을 수입하는 사업자는 연간 수입량에 비례하는 CBAM 비용을 내야 한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배출량 보고의무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주목할 건 CBAM 비용을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에 연동시킨 대목이다. 유럽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높아지면 CBAM 비용도 같이 올라간다.
 
이유는 여느 관세와 마찬가지로 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유럽 내 제조공장이 높은 배출권 가격을 못 견디고 제3국으로 이전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전 현상을 탄소 누출(Carbon leakage)이라고 부른다. 유럽의 탄소가 다른 지역으로 누출됐을 뿐, 전 세계 배출량은 여전하단 뜻이다.
 
탄소 누출은 고용과 투자에도 타격을 준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리피니티브(Refinitiv)에 따르면, 2021년 유럽 내 기업의 63%가 신규 투자를 고민할 때 배출권 가격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2020년엔 27%였다. 유럽의 배출권 가격이 올 초 t(톤)당 30유로(4만원) 선에 세 배 가까이 오른 게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배출권 가격보다도 세 배 정도 비싸다.  
 
유럽만 특히 비싼 건 강화된 탄소중립 계획 때문이다. EU는 원래 2030년까지 1990년 배출량의 40%를 줄이겠다고 했었다. 이를 이번에 55%로 늘리면서 시장에선 배출권 수요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t당 가격이 2030년엔 100유로(13만원)을 넘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CBAM 없이 배출권거래제만 고집했다간 역내 산업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EU에서 보호무역으로 갑자기 방향을 바꾼 게 아니다. EU에서 기후변화 대책을 발표할 때 항상 언급했던 목표 중 하나가 고용과 경제 성장이었다. 이밖에 에너지빈곤의 해소, 에너지안보 강화를 함께 말해왔다.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유럽의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단 뜻이다. 이런 정책 목표는 코로나19 불황을 거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이런 EU의 행보에 미국도 자극을 받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 3월 미국 통상대표부는 통상정책 아젠다를 발표하면서 탄소국경조정도 포함했다. CBAM처럼 철강 부문부터 적용한단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EU 주도의 탄소국경세 추진은 꺼리는 듯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정책 브레인 존 케리(JohnKerry) 기후특사는 “탄소국경세는 최후의 수단(last resort)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소국경세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기후변화 레짐에서 EU의 주도권을 견제하기 위한 발언이다. 미국과 EU의 최근 행보를 보면 어떤 유형의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든지 간에 이는 탄소무역 라운드로 연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시장, 규제에서 시장 중심으로

2023년부터 탄소 배출량을 보고해야 하므로 한국도 지금부터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한국 철강을 유럽으로 수출할 때 한국과 유럽의 배출권 가격 차이만큼을 더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 배출권 가격이 t당 60유로, 한국 배출권 가격은 40유로(환산 시)라고 하자. 철강을 생산할 때 배출하는 CO2 총량에 t당 가격 차 20유로를 곱한 만큼을 CBAM 비용으로 낸다.  
 
당장은 철강·알루미늄처럼 탄소 배출량 계산이 쉬운 품목에서 시작하지만, 앞으로는 석유화학제품·자동차 등 복합재로 확대될 여지도 있다.  
 
한국 기업이 내야할 CBAM 비용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이 결정한다. 하나는 국내 배출권 가격이다. 유럽과의 가격 차만큼 기업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탄소 배출량 인증 여부다. 한국 기업이 온실가스를 추가로 감축한 성과가 있고, 이를 인증받는다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배출권 가격 정책과 배출량 인증 정책 정비가 필요하다.
 
또 다른 과제는 국내 목표치다. 국회는 9월 제정한 탄소중립기본법에서 한국의 2030 NDC 목표를 40%로 정했다. 기준연도는 EU와 달리 2018년이다. 이 때문에 감축 부담은 한국이 더 크다. 탄소 배출량이 꾸준히 늘었던 한국과 달리, EU는 1990년대부터 감소세였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연간 감축률을 보면, EU는 1.98%이고 한국은 그보다 2배 높은 4.17%다. 미국·영국·일본 등과 비교해도 높다.  
 
우선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NDC 목표에 맞춰서 관련 계획들을 수정해야 한다. 2020년 정부에서 각각 발표했던 ‘에너지기본계획(5년 주기)’과 ‘전력수급기본계획(2년 주기)’을 수정해야 한다. 또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발맞춰 ‘장기송변전설비계획’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전력시장도 개편해야 한다. 그간 한국 전력시장은 요금규제 중심으로 관리돼왔지만, 앞으론 미국과 EU 전력시장처럼 시장 원리를 바탕으로 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배출권이나 탄소세 같은 탄소비용을 전기요금과 연계해야 실시간 전력계통 관리가 수월해진다. 또 2022년부터 시행하는 환경급전 효과도 커진다. 환경급전이란 탄소 배출량이 적은 발전기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산업부문에서는 탄소중립을 둘러싼 글로벌 밸류체인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전기차·수소차·연료전지·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기술이 중심에 있다. 수소환원제철이란 철을 만들 때 석탄 대신 수소를 쓰는 기술을 말한다.  
 
당장 철강 부문 대응이 급하다. 앞서 살펴봤듯 미국과 EU 공히 이 부문에서 탄소국경조정을 거론하고 있어서다. 수소환원제철 전 단계로 고철을 활용한 전기로 방식이 이행기 기술로 쓰일 만하다. 물론 조건이 있다. 고철 폐기물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전기로에 공급하는 전기가 재생에너지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CBAM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세계 최대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Arcelor Mittal)은 이른바 ‘그린철강’을 만들기 위해 재생에너지 전기를 쓰거나 관련 인증서를 구매하고 있다.
 
금융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에선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중요한 투자지표로 자리 잡았다. 영국은 글래스고에서 열렸던 COP26을 계기로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CFD)의 권고안을 의무하기로 했다.
 

경제성장 고려 않은 한국 시나리오

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한국에선 그간 연기금의 책임투자 역할, 기업 공시정보의 범위(탄소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등), 기업 지배구조 공시와 지속가능성보고서 의무화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친환경 사업 관련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되는 녹색채권 규모도 아직 작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12월 ESG 채권 잔액 82조원 중 녹색채권은 3조원에 그쳤다.
 
현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성장 고민보단 탄소 감축에 방점이 찍혔다. 2050년 미래상을 떠올리면 문제는 심각하다.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사회보장 안전핀이 위태로울 상황에서 어느 선진국보다 강도 높은 탄소중립까지 이뤄내야 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반영하지 않아도 2050년께 한국 경제성장률은 제로에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분석 결과다.  
 
탄소감축과 경제성장을 함께 추진하는 EU 정책 방향은 우리 목표를 점검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우리의 탄소중립 정책 이행을 통해 기후변화와 경제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정책목표가 설정될 필요가 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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