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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공의 적 1호된 러시아 푸틴의 진짜 속마음은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인심 잃어
푸틴의 행동은 서구사회에 대한 기만과 도발
KGB 출신으로 옛소련 향한 노스탤지어 강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 2월 15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나토와의 대화 의사를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69) 러시아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공적 1호가 되고 있다. 2월 24일 이웃 우크라이나를 전격으로 침공하면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가 정책을 둘러싸고 한 주권국가가 다른 주권국가를 전면 침공해 국가 대 국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사회의 인심을 완전히 잃었다. 혹독한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이유다.
 

‘최저 지지율 59%’ 푸틴의 러시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다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한 제11차 긴급특별회의의 투표 결과가 표시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외교적으로도 고립되는 분위기다. 유엔총회는 3월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총회 결의안은 표결 참가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채택되는데, 이날 유엔 전체 회원국 193개국 중 181개국이 표결에 참여해 141개국이 찬성하면서 77.9%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반대는 러시아·벨라루스·시리아·에리트레아·북한 등 5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인도·이란 등 35개국은 기권했다.
 
결의안 내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 조치에 대한 엄중한 규탄으로 채워졌다. 러시아의 2월 24일 ’특별 군사작전‘ 선언을 규탄하고, 무력 사용 또는 위협으로 얻어낸 영토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개탄하고,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무조건 군병력을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의 핵 무력 태세 강화 경정도 규탄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영토보전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으며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무력 사용을 즉각 중단할 것도 요구했다. 아울러 러시아를 거들어온 벨라루스의 불법 무력 사용도 개탄했다.
 
지난해부터 이날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벌여온 거의 모든 압박, 위협, 군사작전을 유엔 총회의 이름으로 규탄한 결의다. 당연히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러시아군 최고사령관을 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난 성명이나 다름없다.
 
유엔 총회 결의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다. 유엔 총회 결의 정도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지시킬 수도 없다. 군사력과 푸틴의 밀어붙이기 앞에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결의는 현실적으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공식 핵보유국으로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비토권을 보유한다. 하지만 141개국이라는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은 만큼 러시아로서는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전망하는 데 바탕이 될 것이다.
 
푸틴은 전쟁 전까지만 해도 국내외에서 위세가 절정에 이르렀다. 러시아 내에서는 높은 지지율을 누리면서 ‘푸틴이 아니면 러시아를 통치할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푸틴은 1999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을 맡으면서 최고 89%이고 최저 59%의 높은 지지율을 누려왔다. 러시아 NGO인 레바다 센터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20년 7월 조사에서 푸틴은 60%의 지지율을 보였다.
 
러시아에서 정치인 푸틴의 지지율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아래에서 총리를 맡고 있던 1999 8월 31%에서 시작해 그해 11월 80%를 기록한 이래 고공 행진을 계속해왔다. 1999년 12월 31일 옐친의 사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푸틴은 2000년 5월 첫 당선했는데 첫 임기 내내 65%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13년 1월 62%를 기록했지만 2014년 5월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85.9%로 치솟았다. 같은 해 9월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가 시작되자 87%로 올라갔으며, 2015년 6월 역대 최고인 89%를 찍었다.
 
국가적 위기와 함께 서구세력이 러시아를 포위하고 해치려 한다는 전통적인 배타주의와 대외 공포, 그리고 민족주의가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푸틴에 대적할 만한 정치적인 맞수나 야당이 제대로 없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지지율은 그 뒤로도 줄곧 60% 이상을 기록하다가 2018년 연금 개혁을 서두르다 59%를 기록,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지만 이내 회복됐다.
 

서구 향한 기만전으로 시리아 등 외교 문제 해결해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푸틴은 그동안 강한 자존심과 권력욕을 숨기지 않았다. 국내에선 높은 지지율 속에 막강한 권력을 누리면서 권위주의 체제를 다지는 한편, 국제 사회에서는 석유·가스 등 자원을 바탕으로 ‘에너지 차르’로 군림해왔다. 중국과 손잡고 수퍼파워 미국을 견제하는 주역이기도 하다. 중동에선 시리아에 상주기지를 건설하고 러시아군을 주둔시키면서 중동 진출을 가속해왔다.
 
푸틴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푸틴은 2013년 9월 11일 자 뉴욕타임스(NYT) 오피니언 지면에 ‘러시아로부터의 호소’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에 대한 서방의 군사개입을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당시엔 화학무기 사용자에 대한 서방의 무력 개입 ‘가능성’을 경고하며 문명화된 평화주의로 가장했다. 결과적으론 알아사드 정권을 돕기 위한 기만이었다. 기고문 요지를 살펴보자.
 
“미국이 다른 나라의 내부 갈등에 군사 개입을 다반사로 하는 것을 우려한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을 민주주의의 모델이 아닌 폭력에만 의존하는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미국 예외주의를 인정할 수 없다. 어떤 의도에서 간에 미국인들이 자신을 예외로 여기는 건 매우 위험하다. 우리는 힘의 언어를 강제하지 말고, 문명화된 외교 해법을 구사해야 한다.”
 
푸틴의 NYT 기고에 미국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당시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인 로버트 메넨데즈(민주)는 “KGB 출신인 아무개가 미국의 국가이익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걸 보니 걱정스럽다”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시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은 트위터에 “푸틴의 기고문은 미국의 지성에 대한 모독”이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모욕을 당한 기분”이라는 반응이었다.
 
당시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언론에 푸틴 대통령의 기고문을 실린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며 “러시아에선 지난 수십 년 동안 언론의 자유가 퇴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푸틴은 이런 비난 속에서도 시리아를 군사적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서방을 누르고 중재안을 성사시켰다. 전 세계는 당시 그렇게 평화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던 푸틴의 진짜 속마음을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확인하고 있다.
 
20세기 초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련 공산체제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우크라이나·러시아·폴란드 등에서 벌어진 살육을 그린 ‘피에 젖은 땅’으로 유명한 미국 예일대의 러시아·우크라이·폴란드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는 이런 푸틴의 행동을 두 단어로 요약한다.
 
미국 잡지 디애틀랜틱 기고문에서 스나이더 교수는 푸틴의 행동을 마스키로브카와 프로보카치아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마스키로브카는 상대를 속이고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기만’을 가리킨다.
 
기만전은 푸틴이 직접 보여줬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푸틴이 해왔던 “절대 침공하지 않는다” “공격 의도가 전혀 없다” “국경지대에 배치한 군대는 훈련을 위해 집결했을 뿐이다” “우리는 안전보장과 평화만 원할 뿐이다” 등의 유화적인 발언은 철저하게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기만하기 위한 거짓 선전술이었던 것이다.
 
공식 발표는 물론이고 이면에서도 미디어 전을 벌이면서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대비 태세를 허물려고 시도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의 관영 매체가 총동원되고 인터넷에선 온갖 댓글 부대가 총공세를 펴면서 ‘평화 애호 국가 러시아’ ‘평화주의자 푸틴’을 연출했다.
 
이를 위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도 동원됐다. 앞으로 러시아나 푸틴 정권과 협상이나 대화, 또는 접촉을 하는 모든 외국 지도자나 관리는 이를 철저하게 명심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외교나 선전이 총칼을 감춘 전쟁이지만, 러시아의 신뢰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발’은 상대를 자극하고 모욕해 먼저 행동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전술이다. 이번에는 푸틴이 먼저 전쟁에 나섰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시작은 러시아가 했는데, 사태의 책임은 자칫 상대방이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소련 KGB 장교에서 러시아 대통령에 오른 푸틴

KGB 시절 푸틴의 모습. [중앙포토]
 
잠시 푸틴의 배경을 살펴보자. 발트해 연안의 옛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아버지가 레닌과 스탈린의 별장에서 요리사로 일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진 않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잠수함에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는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18일까지 872일 동안 ‘나치에 포위된 도시’로 버텼던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산 시절 이름)에 남아 기아와 포격 속에서 지냈다.
 
그동안 푸틴의 형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레닌그라드 포위전으로 숨지거나 부상한 407만 8000여 명 중 하나다. 푸틴은 나치가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하면서 나라와 가정, 개인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를 어려서부터 뼈저리게 느끼면서 자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2년생인 푸틴의 정신을 분석할 수 있는 요긴한 정보다.
 
대학 졸업 뒤 옛소련의 보안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1975~91년 장교로 근무했다. 동독에 파견돼 동베를린에서 공작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혹시나 군중들이 KGB 베를린 사무실에 난입할까 두려워하며 기밀 서류를 소각했다고 한다. 무너지는 공산 제국의 실체로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이 사태가 푸틴의 일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일 것이다.
 
소련 쿠데타로 정국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1991년 8월 중령으로 퇴역했다. 그해 12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소련군도, KGB도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장래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 뒤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나톨리 소브착 시장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들어갔다.
 
1996년 모스크바에 진출한 그는 이듬해 보리스 옐친 초대 러시아 대통령에게 발탁돼 비서실 차장을 맡았다. 옐친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던 그는 1998년 KGB의 후신 중 하나로 국내 보안을 담당하는 연방보안국(FSV) 국장을 맡았다.
 
그런 다음 1999년 8월 일약 러시아 5대 총리에 올랐다. 알코올 중독자로 국내외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던 옐친의 후계자로 사실상 발탁된 순간이었다.
 
그해 12월 31일 옐친이 갑자기 사임하면서 푸틴은 총리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했다.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 푸틴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해 그해 5월 러시아 2대 대통령에 올랐다.
 
2004년 재선해 2008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푸틴은 3연임을 금지한 러시아 헌법을 따르겠다며 대선에 출마하지 않은 대신 자신이 총리로 임명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내세웠다. 메드베데프가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하자 그의 전체 임기인 2008년 5월~2012년 5월 실세 총리를 지내며 러시아 정치를 좌우했다.
 
2012년 3월 대선에서 다시 당선했으며 5월 7일 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현대 소련·러시아 역사에서 후임자가 전임자를 배신하지 않은 것은 메드베데프가 처음이다. 푸틴의 위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경제 살려 인기 누린 푸틴,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락으로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경찰서 건물이 러시아군의 포격에 불타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치인 푸틴이 높은 인기를 누렸던 것은 경제 실적 때문으로 분석된다. 옛 소련 붕괴 뒤 한때 수렁에 빠졌던 경제를 회복한 것은 물론 러시아의 외교적,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한 영웅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푸틴이 총리에 오른 1999년부터 대통령 2연임을 마친 2008년까지 러시아의 경제적 성과는 눈부셨다. 그 기간 동안 러시아인의 실질수입은 2.5배가 됐으며 실질임금은 3배로 올랐다. 국내총생산(GDP)은 명목 금액 기준으로 6배로 성장했으며 구매력 기준으로도 72% 성장했다.
 
이런 성장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석유와 가스 가격이 거의 5배로 올랐고 푸틴이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는 면이 크다. 여기에 더해 거시경제 운용을 적절하게 하면서 재정개혁을 이루는 등 푸틴 행정부의 정책 효과도 작지 않다.
 
러시아 국민의 푸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이런 경제적 성과가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스탠퍼드대 교수 출신으로 주러시아 미국 대사를 지낸 마이클 맥폴은 “푸틴은 부분적이나마 러시아를 옛소련과 같은 강대국의 위치로 복원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푸틴은 상당 부분에서 러시아 역사를 역행시켰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옐친의 권력을 물려받았지만, 그의 시장경제·민주주의 부정한 ‘배신’의 권력사를 이뤘다는 평가다.  
 
권위주의, 정치의 경제통제,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앞세워 스탈린 못지않은 권력 집중을 이뤘다. 이너서클 중심의 폐쇄적인 사람 쓰기와 쓴 사람은 비교적 오래 기용하는 특성을 보인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획했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합참의장은 2012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은 2004년부터 계속 장관직을 맡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일극 체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물론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성장을 이룬 중국에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푸틴은 강한 ‘소련 노스탤지아’ 성향을 보인다. 지난해 5월 코로나19에도 대조국전쟁 승전기념일 퍼레이드를 감행했다. 긍정적으로 보면 추모에 진심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소련 지향적인 셈이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질 때 벨라루스·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을 러시아의 영역 안에 잡아두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향이 합쳐져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악수를 두게 딘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물론 크게 보면 옛소련의 위신회복이라는 ‘푸틴몽’과 러시아의 초라한 경제력, 그리고 나토의 허점이라는 삼위일체가 전쟁의 원인으로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푸틴에 대한 평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히틀러에 비교되기도 한다. 러시아는 고립되고 있다. 영세중립국 스위스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같은 중립국인 스웨덴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마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핀란드는 1939년 11월 30일 소련의 침공을 받아 1940년 3월 13일까지 겨울전쟁을 치렀으며 2차 대전 종전 뒤 핀란드화로 불리는 ‘시장 경제와 민주체제는 유지하되 군사적으론 서방과 공식 동맹을 맺지 않는’ 정책을 펴면서 실질적인 중립을 유지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유럽연합(EU)에는 가입했지만, 나토 회원국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의 장래에 대해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푸틴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러시아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생존을 도모할 것인가.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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