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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재 파문으로 미·중 반도체 ‘2차 대전’ 조짐 격화

미 “러시아 제재 동참 않는 중국 기업 문 닫을수도”
화웨이 2020년 미 FDPR 제재 받아 매출 고꾸라져
중국, 반발 모드에서 다소 중립 입장으로 변화 기류
전문가 “中, 러시아 지원에 따른 파장도 고려할 것”

 
 
2020년 9월 7일 중국 상하이의 SMIC 공장에서 중국 국기와 미국 국기가 게양돼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두고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과 이에 비협조적인 중국 사이의 대립이 반도체 분야에서 충돌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에 자금 흐름을 차단하는 경제적 제재를 가하자 중국이 러시아의 회피처가 되고 있어서다.  
 
미국의 금융과 에너지 제재는 이행에 참여하지 않는 제3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2차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조건을 아직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분야에는 세계 모든 기업이 따라야 하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한 상태다. 이에 중국이 물러서지 않고 미국과의 대결을 택하면, 미·중 양국이 ‘제재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 제재를 발표했다. 이날 미 상무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러시아에 대한 전면적인 수출 제한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는데, 상무부가 적용한 규정은 FDPR이다.
 
FDPR은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자국산 소프트웨어·기술을 사용했다면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 조항이다. 이에 따라 미국산 기술·소프트웨어를 접목해 영업 중인 다수 중국 기업도 러시아로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적용 받는다.
 

미국 “중국을 러시아 제재의 ‘구멍’으로 만들지 않겠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AFP=연합뉴스]
 
최근 미국은 FDPR을 활용해 중국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대 러시아(대러) 기술 제재의 ‘구멍’이 되도록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중국이 도전을 해오면 대가를 치르게 해줄 것”이라고 경고음을 냈다. 
 
지나 러몬도(Gina M. Raimondo) 미 상무장관은 8일(현지 시간) “중국 기업이 러시아에 반도체를 계속 수출하다가는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러몬도 장관은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반도체와 첨단 기술 수출을 금지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중국 기업은 문을 닫게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SMIC 반도체. [사진=SMIC]
 
특히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를 언급하며, 이런 중국 업체들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미국의 장비·소프트웨어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몬도 장관은 “SMIC와 같은 기업들이 러시아에 반도체를 판매 중이라고 확인된다면, 미국은 SMIC에 미국의 장비와 소프트웨어 사용을 금지해 이들의 사업을 중단하게 만들 수 있다”며 “(러시아와 거래를 이어가면) 중국의 반도체 제조 역량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미국은 2020년 미·중 무역갈등을 겪던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정보기술(IT)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중국 기업 화웨이가 대만 TSMC 등 해외 반도체 생산기업에게서 반도체를 납품 받지 못하도록 이 규정을 활용한 바 있다.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2020년 5월 미국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해외(중국산) 통신장비를 미국 기업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 기술·서비스 공급망 확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미국 정부의 허가가 없으면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만든 ‘거래제한기업 명단’에 중국계 기업 70곳을 포함시켰다.  
 
화웨이도 중국 군대와의 관계를 의심받아 이 미국 무역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 그러자 구글·인텔·퀄컴 등 미국 IT 기업들은 화웨이에 대한 기술 서비스 제공과 반도체 칩 공급을 중단했다. 미국은 이 제재를 화웨이와 거래하는 다른 외국 기업들에게도 확대 적용했다.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이로 인해 화웨이는 대만 TSMC 등으로부터 반도체 칩을 납품받지 못하자 지난해 매출이 크게 급감해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중국, 자국 반도체 산업 미국 제재 움직임에 촉각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2월 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을 향해 날을 세우는 것은, 중국이 미국의 대러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반발하고 있어서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11일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폐막에 즈음해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러 제재에 대해 “세계 경제는 이미 코로나19 충격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러 제재는) 각국 모두에 불이익”이라고도 언급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 움직임에 “중국 기업과 개인의 합법적 권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러시아와의 관계를 처리하면서 중국의 우려를 엄정하고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의 권익을 해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에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1일 SMIC가 러시아 제재에 대한 미국의 경고 후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 경제연구소의 애리사 류 연구원은 “중국이 성숙 공정 반도체에서 러시아에 일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해도, 중국은 러시아를 지원하는 데 따른 잠재적 파장도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러 제재 반발하던 중국 ‘전쟁’ 표현 첫 언급, 입장 변화 

미중 반도체 갈등을 표현한 이미지. [중앙포토]
 
또한 미국의 압박에 중국 내에서는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러시아를 옹호하던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으로 부르며 조속한 휴전을 촉구한 것이다. 대러 제재에 대한 반발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지만, 러시아가 중국의 산업에 타격을 줄 명분을 제공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그만두길 바란다는 분석이다. 
 
미국 로이터 통신은 10일(현지 시간)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러시아의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 부장은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과 이날 영상 회담을 하면서 “우리는 최대한 빨리 전투와 전쟁이 멈추는 것을 보길 원한다”며 “이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바람”이라고 발언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 부장은 중국어로 ‘전쟁을 멈추다’라는 뜻을 가진 ‘즈잔(止戰·지전)’이라는 표현으로 ‘전쟁’을 거론했다. 그간 중국은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침략’이나 ‘전쟁’과 같은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과 책임 문제가 걸리는 표현을 피해왔다. 대신 러시아가 최초 주장한 ‘특별군사작전’이나 ‘충돌’과 같은 표현을 써 왔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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