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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현실, 기술-사회적 장벽 넘어 이제 현실 되나? [한세희 테크&라이프]

2012년 첫 선 보인 구글 글라스, 개발 중단했다 다시 도전
애플 MR 기기 출시 전망 나오자 관심 다시 높아져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여전히 MR 기기 개발 적극 투자 이어져

2012년 열린 구글 I/O 행사에서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가 구글 글라스를 착용한 모습. [사진 구글]
 
10년 전인 2012년 이맘 때쯤, 필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I/O’ 행사를 현지 취재하고 있었다. 키노트 도중 갑자기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가 무대에 난입했다. 그는 이상하게 생긴 안경을 쓰고 있었다. 구글 글라스였다.
 
무대 위 화면에는 어느새 샌프란시스코 시내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 내부가 나타났다. 브린은 역시 구글 글라스를 쓴 스카이 다이버와 영상 통화를 했다. 스키아 다이버가 구글 글라스를 통해 본 시내 전경이 스크린에도 보였다. 비행선에서 뛰어내린 다이버는 행사장 건물 옥상에 내렸다. 낙하하는 다이버의 눈에 비친 속도감 있는 풍경은 고스란히 중계됐다.
 
행사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SF 영화가 현실이 된 것만 같은 제품, 그리고 그에 꼭 맞는 극적인 소개 이벤트였다. 이후 한동안 IT 업계에는 스마트 글라스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바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극적인 이벤트와 함께 한껏 높아진 기대 수준을 채울 실제 제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똑똑한 공대생 장난감 같던 구글 글라스

일단 이런 안경을 쓴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구글 글라스를 쓰고 바나 해변에 간다면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물론 이런 걱정도 실제로 쓸 만한 제품이 나와 사람들이 쓰고 다닐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괜찮은 수준의 프로세서와 카메라, 디스플레이, 오래 가는 배터리를 우겨 넣고도 디자인과 무게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스마트 안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구글은 슬그머니 개발을 중단했다. 착용에 불편함이 없으면서도 안정적 성능을 제공하는 기술적 도전,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디자인과 활용 방안 등 사회적 과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은데 따른 결과였다.
 
이후 오큘러스 퀘스트 같은 가상현실(VR) 헤드셋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관련 콘텐트와 서비스도 늘어나 열성적인 사용자층도 생겼다. 빅테크 기업들도 열심히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고, 나날이 품질은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VR이나 증강현실(AR) 기기, 또는 이들을 합쳐 부르는 용어인 혼합현실(MR) 기기들은 여전히 구글 글라스가 직면했던 기술적, 사회적 도전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최근 외신에 소개된 애플 MR 기기의 개발 뒷이야기를 보면 초점은 조금 다르지만 애플 역시 비슷한 문제들로 고민한 듯하다.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였던 조니 아이브는 VR 헤드셋 개발팀이 처음 가져온 프로토타입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발팀은 완전 몰입형 VR 기기를 만들려 했으나, 아이브는 VR 기기가 사용자를 외부 세계와 단절시켜 소외를 일으킬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MR 기기가 사용자의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개발팀은 헤드셋 전면에 카메라를 달아 사용자가 주변 환경을 볼 수 있게 했다. 가상 현실 속에 머무는 VR에서 현실과 접점이 있는 MR로 기기의 성격이 바뀐 것이다. 또 외부에도 디스플레이를 달아 주변 사람이 헤드셋 사용자 아바타의 눈과 얼굴 표정을 볼 수 있게 했다. 헤드셋 사용자와 주변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자 그제야 아이브는 디자인을 승인했다.
 
기술적 문제도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헤드셋을 PC와 연동해 성능을 높이는 방식을 추진했으나, 아이브가 독자적으로 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개발 난이도가 확 뛰어올랐다. 헤드셋을 뒤집어쓰고도 멋있게 보이게 하는 디자인도 과제였다.
 

수용 가능한 MR 기기, 드디어 등장?

우여곡절을 거쳐 드디어 애플의 MR 기기 출시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제품이 애플 이사회 멤버들에게 공개되었고, MR 운용체계(OS) ‘리얼리티OS(rOS)’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뉴스다.
 
4K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로 실제 같은 이미지를 구현하고, 기기 안팎에 14개의 카메라를 장착했다. 올해 나올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들어갈 M2 칩과 비슷한 정도의 프로세서가 탑재될 전망이다. 3000달러 수준의 가격대로 올해 말이나 내년 중 출시 예정이라는 보도다. 2015년 개발을 시작해 2019년 출시 예정이었으나, 3-4년 지연된 셈이다. 애플이 처음으로 쓸 만한 스마트폰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시장에서 받아들일 만한 수준의 MR 기기를 만들어냈는지 관심이 쏠린다.
 
구글도 최근 열린 I/O에서 새로운 스마트 글라스를 개발하고 있음을 조용히 공개했다. 스마트 글라스를 쓴 중국인이 영어를 쓰는 사람과 대화하는 장면을 담은 데모 영상이었다. 상대방의 말이 자신의 언어로 번역되어 안경 디스플레이에 표시되었다.
 
당췌 용도를 알 수 없고, 심리적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최초의 구글 글라스와 달리 명백한 쓸모를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영상은 컨셉 제시에 더 가까웠지만, 구글 역시 2024년 출시를 목표로 ‘프로젝트 아이리스’라는 이름의 AR 글라스 개발 계획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도 최근 현실과 가상세계를 연계해 실감 나는 게임 등을 할 수 있는 새 VR 개발 도구를 선보였다. 차세대 VR 기기 및 AR 글라스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캠브리아’와 ‘프로젝트 나자레’도 진행 중이다. 올해 말과 2024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메타버스에 진심인 메타에겐 MR 기기 개발이 중요한 과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혼합현실 플랫폼 '메쉬'에서 협업하는 모습.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새로운 세상, 메타버스의 열쇠  

MR 기술은 과거 3D TV처럼 기술적 열광이 사회의 수요를 앞서가는 실패 사례가 되리란 의구심에 계속 시달렸다. 하지만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이 끊임없이 기술적, 사회적 장벽을 넘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MR 기술은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연결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접점이 될 수 있다. 10년 전 스마트폰이 했던 일을 MR이 더 크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디지털 세계를 장악해 세계 최대 기업이 된 빅테크들에게 이제 남은 시장은 현실 세계다. 생태계 구축, 소셜 네트워크 확장, 광고 시장 확대, 새 컴퓨팅 플랫폼 확보 등 돌아올 보상도 크다. 사람들이 기꺼이 메타버스로 들어가게끔 기술적, 사회적 장벽을 낮춘 제품을 마침내 보게 될지 주목된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의 열쇠가 될 것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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