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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부채가 불러온 장기 침체 그림자 [최배근 이게 경제다]

자산시장 붕괴, 한국 경제 큰 위기 불러
침체 피하려면 혁신 경제로 개선해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7월 28일 미국 워싱턴 미 재무부 캐쉬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이른바 S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 진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최근 경기침체의 정의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사실상 많은 국가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 사람들에게 경기침체는 소득 후퇴가 가장 구체적 신호일 것이다. 그리고 대개 소득 후퇴는 고용 상황의 악화와 관련이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반영하는 지표가 GDP이다 보니 기술적으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이 진행될 때 경기침체 국면이라고 말하곤 한다. 성장률이 한 나라의 평균적인 소득 변화율을 의미하기에 마이너스(-) 성장률 자체는 한 나라 전체의 평균적 소득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공급 측면에서) GDP는 단기적으로 고용 규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GDP의 감소는 고용 규모의 감소, 즉 실업의 증가를 의미한다.  
 
미국 재무부 장관인 재닛 옐런이 (미국 경제가 전기대비 기준으로 1분기에 –0.4%에 이어 2분기에도 –0.2%를 기록했음에도) 경기침체가 아니라고 주장한 배경도 일자리 창출이 지속하고 있다는 해석 때문이다. 연준 의장인 파월 역시 (여러 지표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는 침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금리 인상으로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한 가계는 가처분소득이 감소하고 있고, 많은 기업 역시 매출 증가율 둔화 및 순이익 감소 그리고 그에 따라 고용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의 많은 경제주체는 경기침체를 이미 실감하고 있다.  
 
게다가 고용 개선이 지속되고 있다는 주장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물론, (6월에 3.6%를 기록한) 미국의 실업률은 팬데믹 이전 최저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이다. 그러나 얼마나 일자리를 갖고 있냐를 나타내는 고용률을 보면 6월에 59.4%로 팬더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60.1%를 기록한) 3월 이후부터 꺾이고 있다. 물론, 고령화나 인구 증가 요인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 노동력(25~54세) 고용률 역시 전체 고용률과 비슷한 추이를 보인다. 게다가 미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들의 경영자들은 미국 경제가 이미 침체 상태이거나 침체 직전에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경제는 침체 혹은 침체로 진입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일부에서는 조만간 정점에 달할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내고 있지만)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이 지속하는 한 금리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 경기침체 압박이 증가하면서 금리 인상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도 인플레이션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현실화하기 어렵다. 이전 칼럼에서 ‘이지 머니 시대의 종언(the end of an easy money era)’을 말한 이유이다. 금융위기 이후 팬데믹 이전까지 금융완화에 의한 경기와 자산시장 부양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금융위기 이후 (그 이전에 비해) 둔화한 성장률이 더 둔화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이는 저성장 혹은 무성장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부동산 매개로 한 한국 사회의 자산 집중과 불평등...시대 말기적 모습과 유사

 
문제는 한국 경제이다. 한국 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미국 경제보다 더 악성이다. 에너지와 원자재, 곡물 수입 그리고 중국이라는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무역적자가 구조화할 경우 환율 상승 압력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할 점은 가계부채와 자영업부채다. 가계부채로 금융위기와 (그 연장선인) 유로존위기를 겪은 국가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재정을 동원하여 가계부채를 관리하였다. 그런데 한국은 팬데믹 상황에서 가계부채와 자영업부채가 폭증하였다. 가계부채는 팬데믹 직전 GDP 대비 95%에서 지난해 말까지 106.6%로 증가했고, 자영업부채는 팬데믹 직전 GDP 대비 35.6%에서 올해 1분기에는 45.8%까지 증가하였다.  
 
가계부채 및 자영업부채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루는 것이 주택담보대출이다. 그런데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주택구입부담과 주택담보대출의 이자 상환 부담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주택 수요가 억압되고 가처분소득의 감소 및 담보가치의 하락으로 가계소비 둔화 및 부채 축소(와 그에 따른 주택 매물) 압력이 증가하면서 주택거래가 급감하고,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택가격 하락은 주택 수요 감소와 공급 증대 압력으로 작용하며 다시 주택거래 감소와 주택가격 하락의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 이른바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혹은 ‘대차대조표 침체(Balance-Sheet Recession)’의 초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채 디플레이션이나 대차대조표 침체는 용어 자체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이나 90년대 일본의 자산시장 거품 붕괴에 뿌리를 두고 있듯이 한번 진행되면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산시장의 붕괴는 한국 경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2019년 말 대비 지난해 말까지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약 96조원이 증가한 반면, 가계의 순자산은 2291조원, 즉 소득의 24배가 증가하였다. (불평등을 결정하는 요소가 소득에서 자산으로 이동한 사실에 초점을 맞춘) 피커티계수(=자산/소득)를 보면 한국이 어느 주요국보다 높다. 2021년 한국의 (순자산/순소득) 배율은 11.9배로 금융위기 직전 미국의 5.8배를 크게 앞서고 있다. 자산 중심의 경제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의 힘이 경제력을 결정하고, 경제력은 자녀의 교육 수준을 결정하고, 교육 수준은 다시 국가의 공적 자원에 대한 접근 기회와 정치력 및 경제력 축적 기회를 증대시킨다. (금수저-흙수저의 존재가 오래 전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듯이) 자산이 신분 대물림의 원천이 되었다. 사회의 계층 사다리는 사라지고, 사회자원들은 혁신을 통한 소득 창출보다 자산 축적 활동에 배분된다. 출산률이 떨어지고 수축사회로 진화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구매력을 반영해 측정한 성인 1인당 (자산/소득) 배율은 2020년 기준 한국이 8.4배로 미국 5.3배나 독일 5.1배, 일본 6.2배 등보다 높다.  
 
자산 집중과 불평등은 시대 말기의 대표적 징후이다. 예를 들어, 전통 사회에서 왕조 말기에 토지 집중과 귀족의 권력 강화는 국가 세수 감소와 국가 권력 약화, 그리고 생산자 농민의 궁핍화 및 예속민으로의 전락으로 이어졌고, 그 연장선에서 토지개혁을 명분으로 한 혁명과 왕조 교체는 역사적 공식이었다. (기독교 사상에 기초한) 서양 사회에서 (채무 면제와 노예 해방, 즉 빚에 의해 사람이 지배되지 않는 장치로서 의미를 갖는) ‘희년(禧年)’을 설정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산 축적의 메커니즘은 수많은 개인을 채무노예로 전락시키고, 사회의 역동성은 약화하기 때문이다. 구질서에서 신질서로의 이행과정에서 역사는 자산 불평등의 비극적 경로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처럼 현재 부동산을 매개로 한 한국 사회의 가계부채와 자영업부채는 시대 말기적 모습과 유사하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의 연착륙, 그리고 자산 축적에 기반한 한국 경제를 혁신에 기반한 경제로 바꾸지 않는 한 (S공포가 끝나기 전에 밀려오는 D공포의 결합이 만들어낼) 장기침체는 불가피하다. 재앙을 막을 시간이 별로 없다.
 
 
*필자는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현재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유튜브 채널 ‘최배근TV’를 비롯해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KBS ‘최경영의 경제쇼’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 중이며, 한겨레21, 경향신문 등에 고정 칼럼을 연재했다. 주요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이게 경제다] 등이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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