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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로 간 공학도…김동주 대표의 전자약 개발기[전자약 시장을 주목하라②]

[인터뷰] 김동주 뉴로티엑스 대표
“패치 하나로 질환 치료하는 날 올 것…전자약 시장 키워야”

 
 
김동주 뉴로티엑스 대표는 뇌파를 조정하는 전류를 발생시켜 신경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전자약 '뉴로에이드'를 개발했다. [신인섭 기자]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연구개발(R&D)센터 내 뉴로티엑스 수면센터. 이곳에선 우리 몸에 전기 자극을 줬을 때 뇌파가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수면의 질과 수면 중 뇌의 활동패턴은 긴밀한 관계에 있다. 김동주 뉴로티엑스 대표(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피험자의 수면 구조(sleep architecture)를 파악해 어떤 전기 자극을 줘야 피험자가 좋은 수면 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8월 22일 오전 수면센터를 찾은 김 대표는 고려대 뇌공학과 박사 과정 대학원생들과 피험자의 뇌파 변화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다. 피험자가 착용한 뇌신호 모니터링 기기를 통해 서버에 들어온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에 대응하는 특정한 전기 자극(레시피)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3년째 개발 중인 전자약 ‘뉴로에이드’ 중 슬립에이드(SleepAid)는 인공지능(AI)으로 피험자의 수면 패턴을 파악한 뒤 피험자가 깊이 잠들 수 있는 전기 신호를 보낸다. 피험자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하면, 상황에 맞는 다른 전기 자극도 개인 맞춤형으로 전송한다.
 
불면증을 앓는 피험자에게 전류를 흘리는 이유를 묻자 김 대표는 "우리 몸은 도체"라며 운을 뗐다. 뇌는 전기 신호를 통해 근육에 정보를 전달한다. 찰나에 수많은 전기 신호를 만들어 우리 몸 곳곳에 명령을 내린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생각하고 말하는 것까지 뇌 속 뉴런과 시냅스가 만든 전기 신호의 결과다. 김 대표는 "뇌파도 이보크 포텐셜(evoke potential)이라는 전기 신호로 작동한다"며 "우리 몸을 전기 신호로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낯설지만, 상식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뉴로에이드를 개발한 것도 우리 몸이 전기 신호로 통제된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무너진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전기 신호로 회복시키면, 신경 이상이나 손상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뉘는데, 한쪽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급성심근경색과 불안증, 기립성저혈압 등 다양한 질환을 일으킨다. 뉴로에이드는 균형이 깨진 자율신경계에 전기 자극을 줘서 수면 장애 외에도 인지기능 장애, 파킨슨병의 증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이다.
 
뉴로티엑스의 전자약 '뉴로에이드'. 불면증 환자는 잠들기 1~2시간 전 뉴로에이드를 몸에 15~30분가량 붙인 뒤 떼면 된다. 환자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인공지능(AI)으로 상태를 점검해 기기가 자동으로 멈춘다. [신인섭 기자]
뉴로에이드는 레시피에 따라 수면 장애를 치료하는 슬립에이드, 경도인지장애 증상을 개선하는 코그에이드(CogAid), 파킨슨병에 특화된 피디에이드(PDAid)로 나뉜다. 코그에이드는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인지 능력을 강화하는 기기로, 최근 정부의 의료기기 R&D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피디에이드는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들의 증상 완화를 위해 개발됐다. 미주신경자극과 두개교류자극(tACS)을 통해 파킨슨병에 흔히 수반되는 수면장애와 우울 증상을 완화한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파킨슨병 환자가 가상의 보조선을 따라 잘 걸을 수 있도록 증강현실(AR) 기기도 활용한다.
 

소화장애부터 뇌전증까지…‘패치’ 하나로 해결한다

김 대표는 현재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런던대에서 의공학을 전공한 후 20년간 병원과 중환자실, 대학, 연구실을 오가며 전문성을 키웠다. 케임브리지대에선 공학과와 신경외과, 중환자의학과를 오가며 정상압 수두증(NPH) 치매, 외상성 뇌손상(TBI) 환자를 중심으로 자율신경계를 연구했다. 의학과 공학을 넘나들었던 김 대표가 자율신경계를 자극하는 전자약을 개발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김동주 뉴로티엑스 대표 [신인섭 기자]
김 대표는 최근 슬립에이드의 임상시험을 준비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르면 오는 10월 슬립에이드에 대한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수면 장애 환자들은 통상 교감신경이 활성화돼있는데, 슬립에이드는 부교감신경을 자극해서 자율신경계가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며 “내년 상반기에는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서 수면 장애를 겪는 피험자 8000여 명의 뇌파 데이터를 분석했고, 불면과 우울 증상이 있는 6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자 임상을 마쳤다. 
 
올해 초엔 약국에서 전자약을 판매하는 ‘전자약국’ 플랫폼 특허도 출원했다. 스마트폰, 노트북을 판매하는 것처럼 약국에서 다양한 전자약을 안내, 판매하는 식이다. 김 대표는 “기존 의약품과 달리 전자약은 승인만 받는다고 끝이 아니”라며 “미국에선 의사가 전자약 사용 방법을 안내하거나 지도하기 어려워서 실제 처방과 판매가 저조하다”고 했다. 이어 “소화불량, 안구 건조증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질환들이 자율신경계와 연관된 만큼 앞으로는 중증 질환뿐만 아니라 소화장애, 피로회복 등도 작은 패치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선모은 기자 sun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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