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갚아주겠다”…레고랜드 대출 부도 사태에 지자체 개발사업 빨간불
GJC 법원 기업회생 신청 결정으로 대출금융기관 패닉
신평사 최종 부도 처리 확인 후 최하 등급인 ‘D’로 강등
지자체가 지급보증한 채권도 안심 투자 어렵다는 전망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BNK투자증권에서 빌린 2050억원을 대신 갚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GJC에 대해 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브리핑을 열고 이렇게 선언하면서 레고랜드 사태는 시작됐다. GJC는 강원도가 레고랜드 주변 기반시설 조성을 위해 44%를 출자해 설립한 곳이다.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한 만큼 GJC의 대출은 안전하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대출 만기가 돌아왔지만 GJC는 갚지 못했고 강원도는 이를 갚아주는 대신 GJC 회생신청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출해준 금융기관들은 패닉에 빠졌다. 가뜩이나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유동성이 얼어붙었는데 레고랜드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이제 지방자치단체가 지급보증한 채권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레고랜드 프로젝트 대출 못 갚자 강원도도 외면
레고랜드 테마파크 건설은 11년에 걸쳐 진행된 프로젝트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1년 9월 강원도가 영국의 멀린엔터테인먼트 그룹과 춘천에 레고랜드를 짓기로 투자합의각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됐지만, 이후 기공식만 세 번 하고 준공 시기도 일곱 차례나 연기하는 등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사업부지에서 1400여기의 청동기 시대 유구가 발견되면서 사업 진행이 중단되기도 했고, 시행사의 자금조달 난항으로 지연되기도 했다. 오픈 시기를 몇 차례 연기한 끝에 올해 어린이날인 5월 5일 정식으로 개장했다. 그런데 개장 5개월여 만에 사업자가 빚을 못 갚아 부도상황에 이르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것이다.
이번에 GJC가 상환하지 못한 건 정확히 말하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다. GJC는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아이원제일차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유동화했다. 이 ABCP는 BNK투자증권이 주관사를 맡아 팔았고 대부분 증권사 신탁과 랩 계정에 담겼다. 대략 6~7개의 증권사가 투자한 것으로 파악됐다.
GJC의 재정난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지난해 말 기준 GJC의 부채총계는 2587억원이다. 이번에 상환하지 못한 2050억원 외에도 미지급금 82억원, 선수금 321억원, 장기미지급금 133억원 등이 있다. 누적 분양수익은 미수금까지 포함해 1116억원 수준으로, 강원도의회에서는 가진 땅을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도의회 의원들은 파산 가능성을 거론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서는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ABCP가 원활하게 소화됐던 것은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한 만큼 GJC가 파산해도 강원도가 대신 갚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가 기업어음 최고 등급인 ‘A1’을 부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레고랜드 개발사업 토지매매 관련 합의서에는 “기초자산의 기한이익이 상실되는 경우 강원도는 대출약정상 대출약정금액을 기준으로 하는 미상환 대출원리금 상당액에 해당하는 지급금을 유동화SPC에 지급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돼 있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회생, 파산 등에 처해 아이원제일차에 대한 채무가 감경되거나 면제되더라도 강원도가 지급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회생신청 후 자산매각해 상환…어느 세월에?
그런데 돌연 김 지사가 GJC의 회생신청 카드를 들고 나오고, 실제 아이원제일차가 이달 4일자로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자본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등급을 부여했던 한국신용평가와 서울신용평가는 아이원제일차에 대해 상환기일을 넘긴 지난달 30일 정크 수준인 ‘C’로 하향조정한데 이어 부도가 확인되자 최하 등급인 ‘D’로 강등했다.
김 지사는 “법원에서 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법원에 의해 선임된 관리인이 잘못된 계약이나 업무처리가 없었는지 점검하고 기존 사업을 재구성해 새로운 인수자를 찾게 된다”며 “법정관리인이나 새로운 인수자가 자산을 제값 받고 잘 매각하면 대출금을 다 갚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강원도가 아니라 누군가 GJC를 인수해 자산을 처분하고 그 돈으로 대출금을 갚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투자금을 언제 어떻게 회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논란이 일자 강원도는 급하게 해명자료를 내고 “GJC 기업회생 신청 방침은 보증채무를 회피하거나 GJC의 채무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며 “보증채무는 변동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단 BNK투자증권은 김앤장 등 대형 법무법인을 선정해 소송을 제기하고 채권보전방안을 실행한다는 방침이다. 소송이 이뤄지면 채권자가 승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시간이 꽤 소요되는 만큼 이에 따른 기회비용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 보증 대출 어떻게 믿나
이번 레고랜드 사태로 지자체가 보증을 선 대출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자체 개발사업은 대부분 사업을 진행하는 공사에 지자체가 확약보증을 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만일 분양이 잘 안 되거나 대출금 상환이 어려울 경우 남은 대출채권과 담보를 인수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실제 미분양으로 문제가 생기면 지자체에서 예산을 확보해 미분양 용지를 매입하고, 공사는 이 돈으로 대출금을 상환한다. 하지만 강원도의 경우 이 같은 약속을 깬 것이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 산하 공기업들은 채권발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지자체의 지급보증이 강원도처럼 필요에 따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서 공사채 중 정크 취급을 받을 곳이 많을 것”이라며 “지방 공사채는 원칙적으로는 회사채였다가 인천도시개발공사 사태 이후 지자체 신용을 업고 공사채 대우를 받기 시작했지만 다시 회사채로 분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누가 지자체 지급보증을 믿고 투자하겠나”라며 “확약물 투자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결정에는 정치적인 계산이 깔렸다고 보고 있다. 개장식에서 버튼을 누르고 축포를 터트린 건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고, 빚은 김진태 현 도지사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된 만큼 이 빚을 책임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이제 지방 공사채에 투자할 때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성향까지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이 나온다.
권소현 이데일리 기자 juddi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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