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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위기 속 빛난 리더십…영업이익으로 증명한 CEO들 눈길

산업 일반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위기에서도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는 CEO를 평가하는 핵심지표인 영업실적을 분석해 ‘2025 위기에서 빛난 CEO’가 누구인지 찾아봤다. 본지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매출 1000대 기업의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1~6월)의 영업이익(별도 재무제표 기준)은 평균 4% 정도 상승했다. 미국의 관세 압박과 대외적인 여러 경영 리스크에도 국내 10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소폭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 것이다. 1000대 기업의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 규모는 84조2921억원이고, 올해 같은 기간에는 87조4910억원으로 기록됐다. 1년 동안 10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이 3조1989억원(3.8%) 증가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1000대 기업의 영업이익 규모는 늘었지만 지난 1년 동안 영업이익이 줄었거나 적자를 본 기업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했을 때 올해 상반기 기준 1000개 기업 중 영업이익이 증가한 곳은 397곳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62곳은 영업적자에서 영업흑자로 돌아섰다. 흑자전환을 포함해 영업이익이 오름세를 보인 기업은 총 459곳인 셈이다. 반면 영업이익이 1년 새 감소한 곳은 390곳이고, 영업적자를 기록한 곳은 88개 기업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63개 기업은 지난해 상반기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국내 1000대 기업 중 영업적자를 포함해 영업이익이 감소한 기업은 541곳으로, 영업이익이 증가한 기업보다 82곳이 더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1000대 기업 영업이익 규모가 커진 것은 특정 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영업이익을 규모별로 살펴보면 영업이익이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 1조 클럽’에는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15곳이 등극했다. 눈에 띄는 점은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어선 기업이 없었는데, 올해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 15조원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상장사 중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를 통틀어 영업이익 10조원을 넘긴 유일한 기업이다. 여기에 SK이노베이션(지난해 상반기 3879억원→올해 상반기 2조5621억원)과 하나금융지주(9945억 원→1조179억원)도 올해 상반기에 영업이익 1조 클럽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현대해상(1조1159억원→6288억원)과 HMM(1조317억원→8263억원)은 지난해 상반기에 영업이익 1조 클럽에 포함됐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1조 클럽에서 탈락했다. 영업이익 5000억~1조원 구간에 포함된 기업은 지난해 20곳이었지만 올해 24곳으로 4개 기업이 늘어났다. ▲1000억~5000억원 구간 82곳(지난해 상반기 82곳) ▲500억~1000억원 69곳(83곳) ▲100억~500억원 329곳(349곳) ▲10억~100억원 295곳(291곳) ▲0~10억 원 35곳(35곳) ▲영업적자 151곳(121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상반기에 영업손실을 기록한 기업이 1년 사이에 20곳 이상 늘었다. SK하이닉스, 15조 원 영업이익으로 '나 홀로 질주'업종별로 구분해 보면 영업이익 성적표는 극과 극이다. 조선·중공업 업종은 지난해 상반기와 올해 같은 기간을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무려 468.3%(4578억원→2조6024억원)가 증가했다. 이를 이끈 기업들은 한화오션을 비롯해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이다. 특히 HD현대조선해양과 HD현대미포는 지난해 상반기에는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 흑자로 턴어라운드를 성공했다. 최근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는 합병이 결정됐다. 영업이익 상승을 이끈 또 다른 업종은 전기·가스·축전지 등 에너지 관련 분야로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 규모는 2조9192억원이었는데, 올해 상반기에 4조9522억원을 기록해 69.6%나 상승했다. 특히 한국전력공사의 영업이익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제약 업종도 지난해 상반기 1조8015억원의 영업이익 규모를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에 2조934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9%나 상승했다.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SK바이오팜·녹십자·유한양행 등이 영업이익 상승을 이끌었다. 이 외에도 ▲건설(41.9%) ▲증권(28.7%) ▲육상물류(24.3%) 업종은 20% 이상 영업이익 상승을 기록했다. 금속·철강(이하 철강) 업종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올해 상반기 영업실적이 41.3%가 하락했다. 국내 1000대 기업 중 철강 관련 업체의 영업이익은 1조6767억 원에서 9847억 원으로 1조원 미만으로 떨어졌다.석유화학 업종의 영업이익도 40%나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 이 업종의 영업이익 규모는 전체 2조9648억원이었지만 1년 새 1조7775억원으로 2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S-Oil과 LG화학 등은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 100위권에 이름을 올렸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900위권대로 밀려났다. 이와 함께 ▲보험(-18.1%) ▲해운(-16.7%) ▲무역(-5.6%) 업종 등의 영업이익도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자동차(-8.7%) ▲전자·반도체(-3.8%) ▲식품(-1.9%) ▲유통(-0.6%) 등도 영업내실이 더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상장사 1000대 기업 중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같은 기간 영업이익을 가장 많이 올린 CEO는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로 확인됐다. 2022년 대표로 선임된 후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에 적극 투자하면서 성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 영업이익 7조8541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15조2123억원으로 1년 새 7조3581억원의 영업이익을 높였다.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 영업이익 증가율 3267% 기록 눈길같은 기간 영업이익을 1조원 이상 상승시킨 또 다른 기업인은 추형욱 SK이노베이션(2조 1742억원↑) 대표와 김동철 한국전력공사(1조6883억원↑) 대표가 꼽힌다. 5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한 CEO는 ▲진옥동 신한지주 대표이사(7121억원↑)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6878억원↑)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이사(6290억원↑)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5295억원↑)이다. 영업이익 증가율 100% 이상을 기록한 CEO도 눈에 띈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올해 상반기에 영업이익이 100억원 이상 증가하고 100% 이상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한 기업은 50곳이다. 영업이익이 1000억원 이상 상승하고,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올해 상반기에 영업이익이 100% 이상 상승한 곳도 13개 기업이나 된다. 이들이 최고의 영업이익 성적표를 받은 CEO들이다. 이 중에서도 올 상반기에 영업이익 증가율 1위 성적을 거둔 주인공은 한화오션을 이끄는 김희철 대표로 기록됐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상반기에 19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1000대 기업 중 영업이익 379위를 기록한 바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6482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30위로 상승했다. 영업이익 증가율은 무려 3267.1%나 된다. 특히 김 대표는 지난해 8월 한화오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취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영업이익 증가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영업이익 증가율 2위를 차지한 CEO는 추형욱 SK이노베이션 대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영업이익은 3879억원이었는데, 올해 같은 기간에는 2조5621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 증가율 560.5%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1000대기업 중 영업이익 6위를 차지했다. 3위는 박정원 두산 회장이다. 두산의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408억원이었는데 올해 같은 기간에 1768억원을 기록해 433.3%의 영업이익 증가율을 나타냈다. 특히 박 회장은 올해 상반기 주식재산 상승률 128%를 기록해 국내 그룹 총수 주식재산 1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4위는 허창수 GS건설 회장이 올랐고, 5위는 HD현대중공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상균·노진율 대표로 나타났다. 6위는 한명진 SK스퀘어 대표, 7위는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가 차지했다. 영업이익 증가율 100%대를 기록한 CEO가 8위부터 13위까지 기록했다. ▲8위 김동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195.1%) ▲9위 오익근 대신증권 대표(174.3%) ▲10위 이용배 현대로템 대표(174.3%) ▲11위 김동철 한국전력 대표(144.4%) ▲12위 서진석 셀트리온 대표(134.9%) ▲13위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127.6%)가 이름을 올렸다타났다.1년 새 영업이익이 1000억원 이상 증가하고, 영업이익 증가율 30~100%를 기록한 기업의 CEO는 9명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93.7%) ▲김동관 한화 대표(73.8%) ▲정용기 지역난방공사 대표(69.3%)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61.4%) ▲이규석 현대모비스 대표(54.7%) ▲빈대인 BNK금융지주 대표(43.8%) ▲진옥동 신한지주 대표(40.9%)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39%) ▲김영기 HD현대일렉트릭 대표(38%)가 주인공이다. 영업이익이 500억원 이상 늘고, 영업이익 증가율이 100%를 넘어선 CEO는 5명이다. ▲허은철 녹십자 대표(585.2%)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168.6%) ▲박상신 DL이앤씨 대표(148%)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139.5%) ▲한채양 이마트 대표(106.3%) 등도 영업이익을 배 이상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이익 6.5조 감소…1000억원 이상 적가 기록한 CEO 9명이에 반해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000억원 이상 감소한 기업 CEO는 21명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6조5697억원이나 감소해 영업이익 하락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송호성 기아 대표의 경우에도 1년 새 영업이익이 1조4385억원 넘게 줄어들었다. 30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이 감소한 기업의 CEO는 4명이다. ▲이석현 현대해상 대표(4871억원↓) ▲남궁홍 삼성E&A 대표(4635억원↓) ▲이문화 삼성화재해상보험 대표(3981억원↓) ▲조주완 LG전자 대표(3199억원↓) 등이다.올해 상반기 1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기업 CEO는 9명이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는 1조977억원 넘는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1000대 기업 중 영업손익 꼴찌로 확인됐다. 이외 ▲정철동 LG디스플레이 대표(-6701억원)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5273억원) ▲안와르 에이 알-히즈아지 S-Oil 대표(-3673억원) ▲김동관·남정운·박승덕 한화솔루션 대표(-1862억원) ▲신동빈·이영준·황민재 롯데케미칼 대표(-1681억원) ▲김기호 영풍 대표(-1433억원) ▲이상윤 티웨이항공 대표(-1157억원)도 올해 상반기 1000억원 이상 적자를 본 CEO로 기록됐다.

2025.09.29 08:00

6분 소요
올 상반기 실적, 누가 'TOP100' 새로 진입했나

산업 일반

올 상반기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톱(TOP)100이 크게 요동쳤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 1위였던 삼성전자(9조2298억원)가 올해 동기간에는 2조6601억원의 실적으로 순위가 5위까지 떨어졌다는 점이다.그 자리는 SK하이닉스(15조2123억원)가 꿰찼다. 지난해 2위에서 올해 1위로 올라서며 ‘왕관’을 썼다. 이코노미스트가 올 상반기 실적을 분석 한 결과, 톱100 기업 순위에서 삼성SDI·S-Oil·LG화학 등 21개 기업은 영업이익 톱100에서 밀려났고 한화오션·GS건설·흥국화재 등 21개 기업이 새로 톱100에 진입했다.올해 영업이익 2~4위는 기아(3조8746억원), 현대차(3조6258억원), 한국전력(2조8574억원)이 차지했다. 기아와 현대차는 전년 대비 실적이 감소했지만 3조원대 이익을 유지하며 2~3위권에 안착했고, 순위는 지난해보다 각각 한 계단씩 상승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11위에서 7계단 급등해 2025년 상반기 영업이익 톱5에 진입했다.6~10위권도 치열했다. 지난해 44위였던 SK이노베이션이 6위로 38계단 급등하며 톱10에 들었다. 신한지주는 영업이익이 1년 새 40% 증가했음에도 순위가 지난해 6위에서 7위로 한 계단 내려왔다. 반면 KB금융은 5위에서 8위로 후퇴해, 금융지주 가운데서는 신한지주가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기업은행은 7위에서 9위로 물러났지만 톱10을 지켰고, 우리금융지주가 12위에서 10위로 올라 새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상반기 톱10이었던 곳 중 삼성화재(8위→11위), DB손해보험(9위→12위), 한국가스공사(10위→14위) 3곳은 올해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11~20위권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현대해상(13위→31위), HMM(15위→21위), 메리츠금융지주(17위→27위), SK텔레콤(19위→26위), LG전자(20위→37위) 등 5곳은 20위권에서 이탈했다. 반면 삼성바이로직스(32위→17위), 현대모비스(29위→18위), HD현대중공업(62위→19위), KT(23위→20위)는 톱20에 새로 합류했다.조선업체들 ‘퀀텀 점프’ 주목영업이익 톱100의 판도도 크게 바뀌었다. 지난해 톱100이던 21곳이 올해 명단에서 빠졌고, 반대로 21곳이 새로 진입했다. 최근 1년 사이 순위가 100계단 이상 상승해 톱100에 안착한 기업만 7곳에 달한다.대표적으로 HD현대미포는 지난해 상반기 40억원 적자(순위 927위)에서 올해 1366억원 흑자로 전환하며 88위로 839계단 ‘퀀텀 점프’했다. 같은 그룹의 HD한국조선해양도 지난해 반기 30억원대 손실(919위)에서 올해 4069억원 흑자를 내 47위로 872계단 뛰었다. 이밖에 한화오션(379위→30위), 두산(226위→73위), SK바이오팜(210위→76위), 에이피알(200위→90위), SK스퀘어(182위→63위) 등도 100계단 이상 순위를 끌어올리며 톱100에 합류했다. 반대로 7곳은 순위가 100계단 이상 급락하며 톱100과 멀어졌다. 삼성SDI는 지난해 상반기 52위였으나, 올해 동기간 1조원 넘는 적자로 1000위까지 추락했다.(순위 -948계단)S-Oil도 지난해 27위(6133억원)에서 올해 997위(-3673억원)로 내려앉았다. LG화학은 66위→990위, 현대제철은 87위(1347억원)→989위(-684억원)로 900계단 이상 급락했다. 삼성전기도 70위(1841억원)에서 874위(-10억원)로 크게 후퇴했고, OCI홀딩스는 53위(2893억원)에서 276위(291억원)로 223계단 하락했다.흑자·적자 전환에 따라 순위 변동도 컸다. 한화투자증권은 작년 상반기 68억원 적자(942위)에서 올해 807억원 흑자(144위)로 급반등했다. SK디앤디도 33억원 손실에서 310억원 이익으로 돌아서며 916위→265위로 뛰었다. 이외 원익IPS(985위→283위), 아시아나항공(994위→301위), HD현대에너지솔루션(953위→328위), 다올투자증권(966위→355위), 금호건설(986위→358위), HL만도(971위→385위) 등도 작년 적자에서 올해 100억원 이상 흑자로 전환하며 순위가 900위권대→200~300위권대로 크게 개선됐다.반면 티웨이항공(186위→992위), 제주항공(164위→991위), 두산테스나(294위→979위), 더본코리아(438위→977위), 비에이치(431위→974위), 무림P&P(272위→962위) 등은 올해 100억원 이상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900위권대로 밀려났다.

2025.09.29 08:00

3분 소요
국제사회 무대서 흔들린 푸른 깃발…트럼프가 키운 유엔 무용론 [특파원 리포트]

국제 이슈

“유엔은 빈말(empty words)만 내놓는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80회 유엔 총회 연설에서 던진 직격탄이다. 지난 9월 23일 전 세계가 지켜보는 뉴욕 유엔본부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을 ‘무능하고 말뿐인 기구’라고 몰아붙이며 “빈말은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 전쟁을 끝내는 것은 행동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의 존재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 발언이었다. 국제사회는 즉각 술렁였고, 유엔 무용론(無用論)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내가 7개의 전쟁 끝냈다…그러나 유엔은 없었다”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7개의 전쟁을 끝냈다”고 자화자찬하면서도 “이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유엔으로부터 도움을 주겠다는 전화 한 통 받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전쟁과 평화의 현장에서 유엔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그의 화살은 난민과 이민 문제로도 향했다. “유엔은 침략을 막아야지, 침략을 만들어내거나 재정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난민·이민 지원 활동이 서방 국가들의 국경을 위협한다고 몰아붙였다.이어 “미국은 외국에서 온 대규모 인구가 국경을 넘고 주권을 침해하며 범죄를 일으키는 것을 거부한다”며 “우리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만약 당신이 불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온 다면 감옥에 가거나, 당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거나, 어쩌면 더 먼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트럼프 대통령의 직설은 유엔 회의론을 다시 국제사회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렸지만, 정작 유엔을 무력화시켜 온 장본인은 그 자신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분담금을 지연하거나 축소해 납부해 왔고, 이 때문에 유엔은 현금 흐름에 차질을 빚으며 일부 평화유지 활동이 예산난에 직면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현실적인 재정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 정치권의 기류와도 맞물린다. 차기 유엔 대사 후보로 지명된 마이크 월츠 하원의원은 청문회에서 유엔을 “부풀려지고(bloated), 실효성이 없고(ineffectual), 과도하게 정치화된 기구(overly politicized)”라 규정했다. 유엔 무용론이 단순한 구호를 넘어 정책 노선으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유럽의 시선은 복잡하다. 한 유럽연합(EU) 고위 당국자는 AP통신에 “유엔은 현재 경직되고 마비된 상태(sclerotic and hobbled)”라며 냉혹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곧바로 “국제 분쟁을 중재할 대체 기구가 없는 현실에서 유엔의 필요성은 여전히 크다”고 덧붙였다. 비판과 인정이 교차하는 지점이다.경직되고 마비된 유엔…사무총장 “선택 메뉴 아니다”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즉각 반박했다. 그는 “유엔 헌장은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제사회의 합의와 규범을 담아왔다”며 “헌장은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선택 메뉴(a lacarte menu)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회원국들이 이해 득실에 따라 유엔을 ‘선택적 도구’로 취급하는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사실 유엔 무용론은 새삼스러운 주장이 아니다. 냉전 시절부터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은 주요 갈등 해결을 번번이 가로막아왔다. ▲르완다 학살 ▲보스니아 내전 ▲시리아 내전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분쟁까지. 유엔은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손발이 묶였다. 이상주의적 협약은 풍성했지만 현실 정치로 옮겨내는 힘은 부족했다. 그래서 “총을 멈추게 하지 못하는 기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유엔의 구조적 한계는 세 갈래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이 발목을 잡는다. 다섯 상임이사국의 이해가 충돌하면 어떤 결의도 무산된다. 재정 문제도 치명적이다. 미국을 비롯한 공여국이 납부를 늦추거나 축소하면 곧바로 현장 임무가 위축된다.여기에다 비대해진 관료제는 선언과 협약만 쏟아낼 뿐, 현실 정치로 이어지지 못한다.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이 “유엔은 선언만 있고 행동은 없는 조직”이라고 꼬집는 이유다.그렇다고 유엔이 전적으로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보건 ▲난민 보호 ▲인도적 지원 ▲기후변화 대응 등 특정 영역에서는 여전히 필수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백신 조달 ▲분쟁지역 구호 활동 ▲전 세계 난민 등록 시스템은 유엔없이는 작동하기 어려웠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인류의 삶을 떠받치는 기능은 여전히 유효하다.과감한 개혁 없으면 유엔 설 자리 좁아질 것전문가들은 유엔 해체가 아니라 개혁을 주문한다. ▲거부권 제한 ▲안보리 구조 개편 ▲예산과 성과 연동 ▲지역기구와의 협력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대규모 학살이나 인도적 참사 상황에서는 거부권을 제한하자는 제안이 힘을 얻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유엔의 무능을 다시 국제 여론의 중심으로 끌어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유엔의 무용함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제사회에 “유엔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난민 ▲감염병 ▲기후 위기 ▲사이버 안보 같은 문제를 감당할 대체 기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선택지는 둘뿐이다. 각자도생으로 흩어지거나, 유엔을 손질해 다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푸른 깃발은 여전히 국제사회 무대 위에 걸려 있다. 그것이 바람 앞에 흔들리는 깃발로 남을지, 아니면 국제 질서를 지탱하는 상징으로 다시 우뚝 설지는 결국 국제사회의 개혁 의지에 달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며, 그 행동이 없다면 유엔은 스스로 존재 이유 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2025.09.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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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게 섰거라” 연합군 몸집 키우는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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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포털 사업자 네이버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합군 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反)쿠팡연대’로 불리는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부터 오프라인 채널까지 다양하다. 네이버는 직접 투자가 아닌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단기간에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모습이다.네이버 연합전선 점점 더 커진다네이버가 대형 브랜드와의 전략적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올해 들어 네이버가 손을 뻗은 기업은 컬리와 롯데 유통군 등이다. 이들은 모두 시장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춘 유통 기업이다.컬리는 새벽배송과 신선식품에 강점을 가진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다. 롯데 유통군은 롯데마트·백화점·세븐일레븐·슈퍼·이커머스·하이마트·홈쇼핑 등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를 아우르는 집단을 말한다.해당 기업 모두 네이버의 부족한 이커머스 역량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의 핵심 요소에는 ▲배송 역량 ▲멤버십 ▲상품력 ▲사용자 경험 등이 있다. 컬리는 배송 역량과 상품력, 롯데 유통군은 상품력과 사용자 경험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이윤숙 네이버 쇼핑사업 부문장은 최근 열린 ‘네이버 커머스 밋업’ 오프닝 세션에서 “그동안 네이버 커머스는 판매자 중심의 기술·정책·교육 등 친판매자 중심 전략으로 성장해 왔다”며 “인공지능(AI) 커머스 시대에는 그동안 친판매자 생태계 경험을 기반으로 친사용자 생태계까지 성장해 나가며 사용자 단골력을 높이기 위해 대형 브랜드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유통 기업과 손을 잡는 것이 쿠팡의 성장세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풀이한다. 쿠팡은 네이버와 함께 이커머스 시장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거래액 기준으로 쿠팡은 60조원대, 네이버는 50조원대 규모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쿠팡은 자체 새벽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앞세워 이커머스 시장의 최정점에 섰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9% 증가한 41조290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까지 국내 유통 업계를 주도해 온 신세계그룹(매출 35조5913억원), 롯데쇼핑(13조9866억원)을 웃도는 실적이다. 양 사의 합산 실적과 쿠팡 단일기업의 매출 격차가 크지 않다. 더욱이 쿠팡은 지난 2분기에도 11조9763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그동안 네이버는 쿠팡에 대적하기 위한 협력관계 구축을 지속해 왔다. 네이버는 지난 2020년 CJ그룹과 6000억원 규모의 지분교환을 통해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었다. 이듬해(2021년)에는 신세계그룹과 2500억원 규모의 지분교환으로 동맹관계를 형성했다. 모두 양 사 협업을 통해 온·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다.다만 네이버는 쿠팡과 조금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양 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프라 직접 투자 유무다. 쿠팡은 지난 10년간 물류센터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6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고, 지난해 3조원의 추가 물류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네이버는 지분교환 등을 통한 협력관계 구축이라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직접 인프라 투자를 지양하는 모습이다. 이커머스 시장의 핵심 요소인 빠른배송을 위한 물류 시스템도 협력관계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출범한 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NFA)를 통해서다. 현재 NFA에는 CJ대한통운을 비롯해 슈팅배송·아워박스·아르고·위킵·품고·파스토 등 다양한 물류 회사가 소속돼 있다.업계 관계자는 “직접 투자의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실패 시 기업 리스크가 크다”며 “네이버가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리스크 또한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협업에 집중하면서 실리 추구 전략을 취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시장 성장·구조 재편 동시에…“지금이 기회”네이버가 유통 기업과의 협업을 강화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성이 꼽힌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2022년 179조 2704억원에서 지난해(2024년) 221조1494억원으로 약 24% 성장했다. 올해(2025년)는 관련 시장이 22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유로모니터는 전망한다.실제 네이버의 커머스 사업부 매출은 타 사업 대비 성장률이 높은 편이다. 네이버 커머스 부문의 지난 2분기 중개 및 판매 실적은 전년 대비 19.6% 증가한 4682억원을 기록했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앱의 성공적인 안착과 멤버십 및 배송 경쟁력 강화 등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성장했다는 게 회사 측 분석이다.올해 이커머스 시장은 성장과 함께 구조 재편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시장이 지속 성장하는 상황에서 사업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쿠팡을 추격 중인 네이버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불러온 티몬·위메프 등이 회생절차를 밟았다. 티몬은 새벽배송 전문기업 오아시스가 인수했지만 서비스 재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위메프는 회생 인가 전 인수합병(M&A)에 실패하면서 기업 청산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여기에 바보사랑·발란·브랜디·알렛츠·1300K·하이버 등 중소 이커머스 플랫폼은 현재 회생절차를 밟고 있거나 폐업한 상태다.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네이버가 현 상황에서 쿠팡처럼 물류센터 등 인프라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며 “정석적인 방법으로 본다면 직접 투자가 맞지만 현시점에서는 협업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현장에서는 네이버의 커머스 경쟁력이 많이 올라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셀러 등의 반응도 나쁘지 않아 네이버의 현재 전략 방향성은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2025.09.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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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 공룡 탄생…‘신세계·알리’ 동맹, 이커머스 판도 흔들까

유통

신세계그룹의 지마켓(G마켓·옥션)과 중국 알리바바그룹 계열사 알리익스프레스(알리)의 합작법인이 공식 출범을 예고했다. 합산 이용자 수 1900만명가량의 거대 연합이 등장하면서 쿠팡과 네이버가 양강 구도를 형성한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에 미칠 영향에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공정거래위원회는 신세계와 알리바바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JV) ‘그랜드오푸스홀딩’이 지마켓과 알리를 공동 지배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고 지난 9일 18일 밝혔다. 지마켓 ‘60만 셀러’, 연내 알리 통해 K-상품 수출 지난 1월 그랜드오푸스홀딩이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 지분을 각각 100% 보유하는 내용의 기업결합 신고를 접수한 지 약 8개월 만이다.지난해 12월 신세계는 알리바바와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하며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서 시너지를 창출하고 효율을 개선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공정위는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향후 3년 동안 국내 온라인 해외 직접구매(직구) 시장에서 지마켓과 알리가 국내 소비자 정보를 공유할 수 없도록 했다. 지마켓과 알리를 상호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결합 전과 같이 유지하라는 조건도 내걸었다. 50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지마켓의 데이터에 알리가 세계 200여개국에서 수집한 국가별 소비 정보와 데이터 분석 능력이 결합하면 시장 지배력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현재 국내 온라인 해외직구 시장에서 알리는 시장 점유율 37.1%로 1위 사업자다. 4위 사업자인 지마켓(3.9%)과 합병할 경우 합산 점유율 41%로 선두 지위를 굳히게 된다. 공정위는 합작회사 점유율이 41%보다 높아질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고 봤다.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지마켓과 알리는 신세계와 알리바바가 5대 5로 출자해 설립한 그랜드오푸스홀딩의 자회사로 편입돼 ‘한 지붕 두 가족’ 구조로 사업하게 된다. 신세계와 알리바바는 합작법인 조직 구성과 이사회 개최, 사업 계획 수립 등을 위한 실무 작업에 즉각 돌입했다.두 회사는 합작법인 승인 직후 “한국 셀러(판매자)의 글로벌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우수한 한국 상품의 해외 판매를 늘리겠다”면서 “양 사 협업을 통해 고객에게는 상품 선택의 폭을 크게 늘리고 첨단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전했다.합작법인의 핵심 자회사인 지마켓의 60만 셀러는 올해 안에 약 2000만개의 상품을 알리바바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해외에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첫 진출 지역은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5개국이다. 향후 ▲유럽 ▲남미 ▲미국 등 알리바바가 진출한 200여개 나라로 판로를 확대할 예정이다. 지마켓 셀러는 판매 과정에서 ▲통관 ▲물류 ▲배송 ▲반품 처리 ▲고객 관리 등 알리바바가 구축한 시스템을 이용하게 된다. 알리의 한국 상품 전문관 ‘K-베뉴’(K-Venue)에도 입점할 계획이다. 알리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K-베뉴 채널의 거래액은 1년 전보다 290% 늘며 빠르게 성장 중이다.지마켓은 알리바바의 세계 최대 규모 인공지능(AI) 오픈소스 모델 역량을 바탕으로 ‘초개인화’ 서비스를 고도화할 방침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알리바바의 첨단 기술이 적용되면 지마켓 고객은 알리바바 글로벌 플랫폼에서처럼 개인 쇼핑 어시스턴트를 통해 24시간 맞춤형 상품과 혜택 추천·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알리 입점, 확실한 보상 필요”신세계와 알리바바의 합작법인이 출범하면 전국에 ‘쿠세권’(로켓배송 가능 지역)을 구축한 쿠팡, 최근 넷플릭스·컬리·우버 등과 손잡고 ‘단골’ 확보에 나선 네이버와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종합몰 애플리케이션(앱)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쿠팡이 3422만명으로 압도적 1위다. ▲알리 920만명 ▲지마켓 668만명 ▲옥션 266만명을 더하면 1854만명으로 쿠팡 MAU의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의 MAU는 431만명이다.동맹을 통해 지마켓과 알리가 노리는 점은 분명하다. 지마켓은 알리의 자금력과 인프라를 활용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알리는 지마켓에 입점한 셀러를 통해 한국의 역직구 상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온라인 역직구(해외 직접 판매) 수출액은 29억400만달러(약 4조 801억원)를 기록했다. 23억400만달러(약 3조2371억원) 수준이던 1년 전보다 26.0% 늘었다. 지난 2019년 5억6300만달러(약 7910억원) 정도였던 역직구 시장은 5년 사이 5배 넘게 성장했다.업계 관계자는 “최근 역직구 시장이 커지고 K-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알리가 신뢰도 높은 셀러 확보를 위해 국내 대표 오픈마켓인 지마켓과 협업했다고 본다”며 “지마켓도 알리와의 동맹이 오랜 부진을 탈피할 마지막 승부수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신세계는 지난 2021년 약 3조4400억원을 투입해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를 인수했다. 업황 악화와 경쟁에 밀려 지마켓은 지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1700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냈다. 이마트의 연결 실적을 깎아내리는 ‘아픈 손가락’이 된 지마켓 실적이 합작법인으로 이관되면 이마트의 재무 부담도 덜 수 있다.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오픈마켓인 지마켓과 해외 직구 중심의 알리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해 시너지를 낼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기업결합을 하더라도 지마켓과 알리는 별개의 플랫폼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마켓 셀러가 알리에 입점할 만한 확실한 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5.09.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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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이을 혁신 제품은?”...메타의 신작 공개됐다 [한세희 테크&라이프]

산업 일반

‘스마트폰 이후’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스마트폰처럼 사람 마음을 사로잡고 늘 가까이에 두고 쓰며, 우리의 삶과 일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다른 기기는 무엇이 있을까. 삶의 일부가 아니라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 익숙해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곤 한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에 파고든 1980년대 이후 시간을 되짚어보면, 개인용 컴퓨터(PC)와 스마트폰이 세상에 가장 큰 변곡점을 만든 기기였다. 기기 자체만으로 세상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기술이 기기들을 촘촘히 엮어 정보와 미디어가 시공간을 넘어 자유롭게 흘러 다니게 되면서 삶은 진정으로 변했다. PC와 스마트폰, 인터넷이 등장하며 세상이 바뀌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제 '다음'은 무엇일지 궁금해한다. 태블릿PC나 스마트워치, 스마트 스피커 등의 새로운 폼팩터들이 시도되었지만, 체감할만한 삶의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가상현실(VR) 기기에 대한 관심은 한창 끓어오르다 잠잠해진 느낌이다. PC와 스마트폰의 잠재력을 폭발시킨 인터넷이나 이동통신 기술의 역할을 할 새 대표 선수는 굳어지는 분위기다. ‘인공지능(AI)’이다. 하지만 AI가 자리를 잡고 앉을 기기는 무엇이 될지 아직 불분명하다. 가까운 미래, 여전히 스마트폰과 PC는 AI를 접하고 활용하는 주요 기기로 남아있을까.기기 관점에서 보면 아마도 통신망에 연결된 자율주행 차량이 유력한 다음 후보가 될 듯하다. 들고 다니는 모바일 기기가 아니라 타고 다니는 모바일 기기의 잠재력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또 하나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기기 형태는 안경이다. 흔히 스마트 글라스라고 한다. 10년도 더 전에 구글이 카메라와 통신 장치가 달린 안경 시제품을 들고 나와 스마트 글라스 열풍을 일으켰다. 안경은 가장 자연스럽게 사람 몸에 붙어 있을 수 있는 물건이기에 잠재력은 크다. 하지만 작은 공간에 강력한 컴퓨팅과 디스플레이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 등으로 시장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미래에서 온 안경, 스마트 글라스 스마트 글라스를 되살린 것은 메타였다. 메타는 선글라스 브랜드 레이밴과 손잡고 카메라와 스피커 등이 내장된 스마트 글라스를 수 년째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증강현실(AR) 시장 공략의 일환이었다. 스냅챗을 서비스하는 스냅이 조금 앞서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고, 이후 구글이 스마트 글라스 개발을 재개했지만, 이 기기에 가장 진심인 것은 메타라 할 수 있다. 특히 메타가 최근 열린 자사 개발자 행사 ‘커넥트 2025’에서 공개한 신작 제품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AR 기기의 모습에 한걸음 더 다가선 모습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였다. 오른쪽 렌즈 아래 부분에 투명한 디스플레이가 작게 붙어 있어 디지털 정보를 현실 세계와 겹쳐서 볼 수 있다. 문자 메시지나 길 안내, 번역 등을 볼 수 있고, AI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뜬다. 시야각이나 해상도가 아주 좋지는 않지만, 안경 렌즈 일부를 차지하는 작은 화면에서 보기엔 큰 문제가 없다는 체험기가 나온다. 음성이나 터치 외에 손목에 차는 ‘뉴럴 밴드’로 조작할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손목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감지해 움직임을 읽고 작업을 수행한다. 지난해 행사에서 발표한 스마트 글라스 컨셉 제품 ‘오리온’에 기능적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갔고, 무엇보다 상용 제품이다. 조만간 미국에서 출시된다. 가격은 799달러(약 112만원)부터 시작한다. 또 기존 모델보다 배터리 수명을 2배로 늘이고 3K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메타 레이밴 2세대’ 제품과 스포츠 활동에 특화된 ‘오클리 메타 뱅가드’를 함께 선보였다. 현실과 가상, 사람과 AI 구분이 없는 세계스마트 글라스를 매개로 메타는 우리를 메타버스로 데려가고 싶을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ㅈ바(CEO)는 행사에서 AI 기반 스마트 글라스가 “사용자의 ‘눈과 귀’가 될 것”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개인맞춤 초지능과 홀로그램 같은 실제적 현존감을 주는 좋은 디자인의 안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것을 다 합치면 그것이 바로 ‘메타버스’라고도 했다. 사실 VR이나 AR, 혼합현실(MR) 등이 AI보다 먼저 주목받았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한다며 회사 이름도 ‘메타’로 바꿔버렸다. 손실을 보면서도 대규모 투자도 이어갔다. 모바일을 장악한 애플이나 구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는 새 컴퓨팅 플랫폼을 장악하겠다는 생각, 사람과의 관계라는 페이스북 본연의 상품을 디지털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생각 등이 결합된 것이었다. 하지만 메타버스 열풍은 식고 AI 시대가 와 버렸다. 메타 역시 초거대언어모델 ‘라마’를 만들고, AI 슈퍼 인재를 수 천억원씩 주고 데려와 초지능 연구팀을 꾸리는 등 AI에 대대적 투자를 했다. 철 지난 메타버스는 슬그머니 치워버린 것일까? 이번 행사를 통해 메타는 스마트 글라스라는 새로운 증강현실 컴퓨팅 기기를 초지능과 연결해 제시했다. 물리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합쳐진 새로운 세상에 필요한 새로운 기기와 AI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생체 신호를 읽어 기기를 조작하는 뉴럴 밴드 같은 기술은 향후 인간이 완전히 메타버스 속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놔외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가 그 다음 단계가 될 것이다. 현실과 디지털의 구분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사람과 AI 캐릭터, AI의 힘을 빈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 소셜 네트워크를 살게 되지 않을까? 물론 제품을 첫 공개하는 행사에서 갑자기 기기가 먹통이 되며 데모를 망치는 판이니, 이런 세상은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안경 속 AI가 이번 데모 때와는 달리 “한국 BBQ에 맞는 소스를 알려줘”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2025.09.2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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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 압수수색'은 반드시 필요한가 [김기동의 이슈&로(LAW)]

전문가 칼럼

3대 특별검사의 수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사건인 만큼 철저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규명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연일 보도되는 특검 관련 기사들 중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는 대목이 있다. “○○○(특검 피의자 또는 관련자)의 집을 압수수색했다”는 내용이다. 주거지 압수수색이 마치 수사의 필수 절차처럼 굳어진 현실을 보며 검사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필자는 25년 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특수부, 강력부와 같은 소위 ‘직접수사 부서’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다. 중요 사건은 거의 빠짐없이 피의자의 사무실과 집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집을 압수수색을 하지 않으면 수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처럼 생각했다. 다시 생각하게 된 ‘자택 압수수색’검사로서 13년 차가 됐을 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런 수사 방식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생겼다. 당시 맡았던 사건 수사의 일환으로, 피의자 10여명의 사무실과 주거지 총 20곳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려고 결재를 올렸다. 평소 결재를 거의 반려하지 않고 검사들의 의견을 대부분 받아주던 차장검사가 이례적으로 압수수색영장 청구서를 반려하며 내게 물었다. “사무실은 몰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집까지 압수수색할 필요가 있나? 집에 범죄혐의와 관련된 자료가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나?.”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검사 생활 13년 동안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이 당사자에게 미치는 고통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핵심 피의자의 집만을 압수수색하고 나머지는 사무실만 압수수색했다. 주거지 일부가 압수수색 대상에서 빠졌지만 수사에 영향이 없었고, 수사도 잘 마무리됐다. 그 뒤로 필자는 특수부장, 수사단장 등 중요 수사 부서의 책임자를 거치면서 차장검사에게 배웠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원칙에 입각하여 지시를 하면, 검사들은 과거의 내 모습처럼 불편해하고 당황했다. 특별수사의 원칙상 집까지 수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주거지는 사무실과 달리 가족공동체가 생활하는 사적 공간이다. 집에 수사관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게 되면 가족들이 받는 충격과 공포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몇 년 전 지방에 있는 일선 지검장의 관사(아파트)가 다른 검찰청의 압수수색을 받은 적이 있다. 혐의사실은 다른 기관에 파견 나가 있을 때 그 기관의 업무 처리와 관련된 내용이다. 지방 관사에 수년 전 타 기관의 업무 처리와 관련된 자료가 있을 리가 있었겠는가? 주거지는 반드시 압수수색해야 한다는 관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헌법 제12조 제3항에서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별도로 헌법 제16조에서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거지 압수수색은 무엇보다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취지다. 검사가 직접 수사(1차 수사)를 내려놓고 한 발 떨어져 수사를 바라보면, 과도한 강제수사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압수수색·체포·구속과 같은 강제수사는 국민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수사 활동이다. 강제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검사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심문제도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법관이전에 검사가 사법통제의 단계에서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수사의 밀행성 유지라는 측면에서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검사가 사법경찰관의 설명을 듣고, 사건 관계인도 면담한 후 압수수색 영장청구 여부나 그 범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은 범죄혐의의 중대성, 증거 존재의 개연성에 대한 별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검사들이여, 열정과 책임 다하라현재 국회와 정부에서 검찰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형사사건의 처리 지연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수사의 장기화’야 말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다. 특히 기업은 장기간 수사를 받게 되면,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경영상 손해는 회복 불가능하다.검찰과 사법경찰 간에 사건을 주고받으면서 결론을 미루는 ‘핑퐁식’ 사건 처리가 다반사다. 검경 간에 기록이 넘어갈 때마다 사건 번호가 새로 부여되기 때문에 실제 사건 처리 기간의 파악 자체가 쉽지 않다. 간단한 고소사건임에도 실질적인 사건처리 기간이 2, 3년은 기본이고, 4, 5년이 넘는 사례도 빈번하다.앞으로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설되면 사건 처리 지연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국세청 등 다른 국가기관은 조사 기간이 법률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수사 기간을 법률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는 사법경찰은 검사의, 검사는 법관의 승인을 받아 연장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최소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개시된 사건에 대하여는 수사기간 제한이 반드시 필요하다. 구속사건은 10일 내 검찰로 송치하도록 돼 있다. 이에 준하여 압수수색에 착수한 사건은 일정 기간(6개월)이 지나면 검찰로 송치하고, 검찰도 일정 기간(3개월) 내 종국결정을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파격적인 방안이지만, 도입될 경우 국민의 인권 보장에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어려운 때일수록 검사와 검찰 구성원들은 국민들에게 더 다가가야 한다. 사건 관계인들은 담당 검사가 사건을 철저히 검토해서 정확하게 처리해 줄 것이라고 학수고대한다. 사법경찰의 수사가 잘못됐거나 미진하다고 하소연하는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수사기록만 형식적으로 검토해서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검사들이 열정과 책임감을 다한다면 그 이익은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국민은 검사들에게 신뢰를 되돌려줄 것이다.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 변호사

2025.09.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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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산재예방이 파격인 이유

건설

지난 9월 2일 포스코그룹이 세계적인 안전 컨설팅 회사 SGS와 안전관리체계 혁신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9월 내에 포스코이앤씨의 안전진단에 착수해 건설 과정에서 안전 시스템을 면밀히 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으로 컨설팅을 시작하기로 했다.그간의 안전 컨설팅이나 진단은 법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하는 안전진단 명령이 내려졌다. 사업주는 감독관청의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진단이 필요했고, 진단기관들은 형식적인 서류를 갖추어 주는 것으로 사업주의 주문에 응했다.이번 포스코의 행보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그래서 규정과 형식에 매몰된 국내 진단기관이 아니라 위험 통제의 실질적인 대책을 제공하는 외국 컨설팅 기관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의 위험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규정준수를 넘어 사업주가 해야 하는 ‘적절한 조치’를 요구받을 수도 있는 부담을 무릅쓰는 시도다.지난 8월 22일 서울시는 자체 ‘밀폐공간 안전대책’을 내놓았다. 밀폐공간 작업자에게 가스 농도 측정기와 보디캠을 착용토록 하고 현장에 공기호흡기, 삼각대 등 긴급구조 장비를 상시 비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법이 정하는 의무를 넘어, 작업자에게 개별적으로 측정기를 지급해 작업하는 내내 가스의 위험을 측정하며 위험이 감지되면 경보가 울리도록 하고, 긴급구조 장비도 사전 측정 결과에 상관없이 필요하면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현장에 비치하겠다고 했다. 스스로 더 하겠다는 것이다.우리나라의 안전관리 체계는 정부의 규제와 감독에 의존하는 지시적 규제방식의 전형이다. 산업안전보건법령은 1200개가 넘는 조항으로 사업주가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정한다. 2019년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해 사업주의 의무를 대폭 강화하고, 2022년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해 최고경영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예고했다. 지난 10년간 감독 인력은 2배, 안전 예산은 4배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사고 사망자 수의 감소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1970년대의 영국은 요즈음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했다. 산재 사망자 수가 늘고 대형 사고가 잦았다. 결국 로벤스위원회를 꾸려 해결책을 모색했다. 위원회는 2년간의 조사와 연구 끝에 과하고 경직된 규제의 폐해를 밝히고, “위험을 생산하는 자가 위험을 통제하는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다”라고 결론 내렸다.이러한 결론은 사업주에게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확보하라는 포괄 의무를 강하게 부여하는 대신에 실효성 없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는 혁신으로 이어졌다. 2023년 영국의 사고 사망만인율은 0.04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다.정부가 일일이 규제하고 감독하는 방법은 생산기술과 작업환경이 급변하는 첨단시대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낡은 규제방식을 놔둔 채 규제를 늘리고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도 산재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안전관리는 규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막는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주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포괄적인 의무를 지우고, 그 실현 방법은 자율에 맡겨야 한다.

2025.09.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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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서 협력사까지…건설사, ‘안전문화’ 혁신 잰걸음

건설

건설업계에 ‘안전=생존’이라는 인식이 확산할 정도로 중대재해 예방 활동이 활발하다. 안전현장 중심의 안전 및 품질관리 역량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한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협력사와의 상생협력을 강화하는 등 건설사 전반으로 여러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앞다퉈 조직 개편 “안전이 최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이사회 내에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하고 조직 확대를 실시하는 등 안전경영 투자 규모를 확대했다. 현대건설의 안전보건 투자액은 지난 2020년 1349억원에서 ▲2021년 1658억원 ▲2022년 2399억원 ▲2023년 2297억원 순으로 증가했다.현대건설은 안전보건 제도 수립과 관리 투자를 통해 안전문화를 정착시켰다. 올해 초 안전·보건·환경 목표를 세우고 ▲문화 내재화 ▲활동평가 강화 ▲자율관리체계고도화 ▲취약시기 관리 강화를 세부 사항으로 내걸었다.특히 근로자와 협력사 중심 안전문화와 스마트 기술로 사고 예방의 근본적 토대를 마련했다. 우선 동반성장을 위한 ▲안전관리 우수 협력사 인센티브 대폭 확대 ▲신규 등록 및 협력사 갱신 시 안전평가 강화 ▲중대재해 발생 시 퇴출 기준 강화 ▲협력사 의견 수렴을 통한 개선 ▲안전관리비 50% 선지급 등으로 안전 관련 협력업체 선정 기준을 강화하고 안전사고 예방의 근본적 토대를 마련했다.건설업계 최초로 도입한 ‘H-안전지갑’은 ▲안전수칙 준수와 ▲법정 안전교육 이수 ▲안전 신고 ▲제안 기능을 담은 웹 기반 프로그램으로 도입 2년 만에 개선효과를 냈다. 작업중지(열외)권 이행과 안전보건 제안 등 근로자 참여 활동이 늘었고 안전 성적을 높이는 효과도 입증했다.시대 변화에 발맞춘 대책도 수립했다. 외국인 근로자와의 소통 문제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 등의 외국인 직원을 직접 채용해 현장 근로자를 교육했다.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8월 ‘10대 고위험 작업’에 대해 본사 리스크 모니터링 회의의 사전 검토와 승인 없이 작업에 착수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했다. 매주 열리는 회의에서 승인받지 못하면 안전조치 보완 후 재검토를 받아야만 작업할 수 있다. 안전관리 인력도 1100명 이상 늘려 근로자 대비 안전관리자 비율을 기존 25대 1에서 11대 1로 높였다. 특히 고위험 작업 현장은 8대 1 수준까지 강화한다.협력사 안전관리 기준도 한층 강화했다. 법은 공사금액이 100억원 이상인 협력사에 안전관리자를 선임할 것을 요구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은 안전담당자 추가 배치를 의무화했다.또 공사금액이 20억원 이상인 현장에서는 7대 위험 공종을 진행할 경우 안전담당자를 선임해야 하고, 고위험 작업 시에는 별도 안전감시자까지 두도록 했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전액 부담한다.안전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안전품질지원실과 산하 안전진단팀을 신설해 전 현장을 상시 점검하고, CCTV 안전관제센터를 통해 고위험작업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하청 노동자 사망 증가…협력사 안전↑ 대우건설은 지난 9월 17일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노사 합동 클리어(CLEAR) 안전문화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노사 안전 동행 공동선언’을 선포했다. 이번 결의대회의 핵심인 CLEAR는 대우건설 고유의 안전문화 구축 프로그램이다. 근로자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 근본적인 행동 변화를 만들고 현장 구성원 간의 긍정적 관계를 형성해 서로를 지켜주는 안전문화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대우건설은 내부 조직개편을 통해 CSO 산하에 본사, 현장을 총괄하는 담당 임원 2인을 선임해 안전관리 컨트롤타워 기능도 강화했다.한화 건설부문은 지난 9월 19일 대전역사 내 회의실에서 ‘협력사 안전관리자 전문화교육’을 실시했다. 협력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교육은 ▲안전보건 법정교육 이해 ▲법적 서류 작성·관리 ▲안전관리 심화교육 ▲보건관리 심화교육으로 구성됐다.한화 건설부문은 교육 종료 후에는 평가를 통해 교육 효과를 점검하고, 현장 적용도를 반영해 우수 협력사를 선발,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업계 관계자는 “정부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건설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단순한 ‘벌칙 회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안전문화를 뿌리내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며 “협력사와 근로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업계에 따르면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절반,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사망자 4분의 3가량이 하청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노동 안전 종합 대책은 원청의 책임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발주자가 안전 비용을 확보할 수 있게 적정 공사비 산정 의무를 부여하고,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을 막을 기준을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사고 기업에 대한 경제적 제재 수위도 높인다.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나면, 영업이익 5% 이내 과징금을 부과하고, 중대재해가 반복 발생한 건설사는 노동부가 등록 말소를 요청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한다.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건설 현장에 대한 직간접 비용이 증가하면서 ▲수주 ▲매출-공기 ▲이익-비용 증가 ▲재무 ▲건전성-계속 사업 영위에 대한 불안 ▲자금조달 시장 내 부정적 평가 등 다방면에서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는 건설사들에 ‘안전 비용’을 ‘의무 비용’으로 전환, 안전관리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 격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5.09.28 07:00

4분 소요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변화에 주목해야…편익 잡고 불확실성 해결해야  [스페셜리스트 뷰]

가상화폐

지난 7월 미국에서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통과됐다. 그 법에서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유럽과 일본에서는 암호자산(Crypto-asset)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상화폐, 가상통화라고 부르다가 암호화폐, 암호자산을 거쳐 지금은 ‘디지털 자산’으로 부르려고 한다. 참으로 혼란스럽다.물론 지금 거론되는 디지털 자산은 블록체인기술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기술에 기반한 발명품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같이 계속 발행되는 것과 대체불가능토큰(NFT)과 같이 발행 물량이 고정된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스테이블코인이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와 같이 발행 물량이 신축적이되, 현존하는 법정화폐와 일대일 교환이 보장되는 것이다.비트코인 열풍은 여전하고, NFT 열풍은 한물갔다.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기대와 관심은 작년부터 아주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관심과 성원을 아끼지 않은 때문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사흘 만에 헌법상의 권리를 이용해 대통령 긴급명령(제14178호)을 발동하기도 했다. 그 명령의 골자는 CBDC 발행을 준비하라던 전임자 바이든 대통령의 긴급명령을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대신 스테이블코인에 힘을 실어주었다.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조금 다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폐와 동전을 대체하는 수단이고,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은행에 맡긴 예금을 대체하는 수단이다. 물론 공통점이 훨씬 크다. 스테이블코인이나 CBDC이나 비트코인처럼 명목가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 1달러는 언제나 1달러다. 그러므로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자기앞수표나 당좌수표처럼 지급수단으로 활용될 때만 쓸모가 있다.그렇다. 스테이블코인과 CBDC의 존재 이유는 지급을 편하게 돕는 데 있다. 하지만 전혀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인류는 장사와 무역을 시작한 이래 지급을 돕는 수단을 끊임없이 고안했고,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했다. 기원전 7세기경 동서양 양쪽에서 등장한 금속화폐가 대표적이다. 흑사병이 끝난 뒤 서양에서는 어음이 나타났고, 비슷한 무렵 중국 송나라에서는 교자(交子)라는 지급수단이 등장했다. 3%의 수수료를 내면 동전을 갖고 운반하지 않더라도 먼 곳으로 송금할 수 있는, 일종의 자기앞수표였다. 그것이 큰 인기를 얻자 1023년 송나라 조정은 그 사업을 국가가 독점했다. 오늘날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과 CBDC의 원형이다.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와 우려,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현재 한국의 국회에서 진행 중인 디지털 자산에 관한 법률 제정 과정에서도 시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활용방안 마련”을 약속했으므로 스테이블코인이 어떤 식으로든 제도권에 편입되겠지만,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어떤 사람들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불안하여 장차 금융시스템을 뒤흔들 위험 요소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이 늘어날수록 준비자산으로서 국채의 수요가 커지니까 국가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테이블코인의 잠재력이 커서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으므로 발행을 넉넉하게 허용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의 범람으로 인해 통화 주권이 잠식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 부분적 진실에 불과하다. 이론적으로 안전하지만…통화 정책 교란 우려지금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99%를 USDT, USDC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2022년 테라-루나(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파산과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때 두 스테이블코인은 잠시나마 액면가치를 지키지 못했다(이를 디페깅이라고 한다). 불안해진 사람들이 투매와 인출 소동을 벌인 탓이다. 그런 현상은 대공황 때 뱅크런이나, 글로벌금융위기 때 펀드런과 다르지 않다.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주범이 될 가능성을 엿보인 것이다.하지만, 현존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와 장차 등장할 모든 발행업자는 대출과 투자를 포기하고 국채와 같은 안전한 자산만 보유한다. 만일 그런 기관이 파산할 정도라면, 다른 금융기관들은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 즉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는 기존의 어떤 은행보다도 안전하며, 금융 불안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일찍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학수고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위기는 은행의 신용 창출 행위(대출)가 통제되지 못해 자산시장에 버블을 키웠다가 그것이 터지는 현상이므로 그것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은행의 대출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은 국채나 중앙은행 지급준비금과 같은 초안전 자산만 보유하게 된다. 그런 은행을 내로우 은행(narrow bank)라고 한다. 애덤 스미스·어빙 피셔·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주류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영국의 프레드릭 소디와 같은 좌파 경제학자들도 열렬히 지지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경제학자들의 이상향이었던 내로우 은행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하지만 문제가 있다. 기존 상업은행의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대체되고 그 돈이 국채에 묶이면, 기존 은행들의 신용 창출이 위축된다. 대출이 줄어들면 시장금리가 오른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법정화폐의 양과 정책금리 수준은 그대로인데, 시장금리 상승으로 고용과 생산이 줄면 실물 경제가 위축된다. 통화정책의 교란이다. 대출 포기한 내로우 은행…스테이블코인과 닮은꼴그래서 미 연준(미국 중앙은행)은 대출을 포기한 은행의 영업을 금지했다. 2017년 더 내로우 은행(The Narrow Bank)라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되었는데, 그 은행은 경제학 논문에 있던 내로우 은행이 되는 것을 지향했다. 즉 고객의 돈을 받아서 송금 업무만 수행하고, 고객의 예금은 미 연준에 예치하는 것을 사업 모델로 삼았다(블록체인기술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미 연준은 한국은행과 달리 지급준비금에 대해서 연 4.25%의 두둑한 이자를 주는데, 그것으로 모든 운영비와 인건비를 뽑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하지만 대출을 포기한 은행의 등장은 통화정책의 유효성과 확실성을 저해한다. 미 연준이 보기에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대출은 하지 않고 국채와 지급준비금에서 편안하게 이자 수입만 얻으려는 것은 불로소득을 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미 연준은 더 내로우 은행을 기존 금융시스템을 파괴하는 트로이의 목마로 간주하고, 지난해 12월 그 은행과 거래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안전하다고 여겼던 내로우 은행이 연준이 보기에는 위험 천만인 것이다. 이론과 현실의 차이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USDT, USDC와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들은 더 내로우 은행과 전혀 다르지 않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은행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의 자기앞수표를 디지털화한 것이므로 상관이 없다. 반면 비은행의 스테이블코인은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낮출지언정 통화정책을 중대하게 교란한다.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늘면 국채 발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미신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은행법을 개정했다. 은행들이 국채를 매입한 만큼만 지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의무를 부과했다. 그럼으로써 국채 발행은 손쉬워졌지만, 기업 대출이 국채 매입으로 대체됨에 따라 시장금리는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연방정부의 국채이자 지급액도 줄지 않았다. 기업 대출과 국채 매입 간의 대체효과다.금융적 시각에서 볼 때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는 내로우 은행이다. 블록체인기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은행업에 해당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금산분리 원칙이다. ‘금산분리’ 원칙,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변수1956년 정부가 보유했던 ‘은행주 불하(입찰매각)’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산분리가 헌법처럼 단단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4대 은행을 민영화한 결과 삼성, 조선제분, 합동증권 등 당대 4대 재벌들이 하나씩 은행을 꿰찼다. 5.16 군사정부는 그때 국민들이 느꼈던 허탈감을 바탕으로 금산분리 원칙을 수립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금산분리 원칙이 고수되는 한 삼성, 현대, SK, GS는 은행업에 진출할 수 없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이유로 네이버와 두나무 등 IT 대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업에 진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을까? 그것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의 가장 큰 변수다.IT 대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면, 삼성이나 현대도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협력업체에 대해 납품 대금을 지급할 때 어음이나 수표대신 자기 계열사 스테이블코인을 지급할 것이다. 그 코인은 어음이나 수표처럼 은행에 제시되어 이튿날 결제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지탱해 나가는 재벌별 생태계에서 계속 유통될 것이다. 지급수단의 춘추전국시대다. 비은행계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되었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이다.물론 필자의 걱정이 기우일 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은행업이 아니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은행업은 수신과 여신의 결합 사업이다. 그중에서 여신만 담당하면, 은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신용카드회사와 대부업자가 그러한데, 그들의 사업은 여신전문업(여전업)일 뿐이다. 수신전문업(수전업)도 마찬가지다. 우체국은 예금을 받지만, 대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이 말하던 내로우 은행은 은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가할 때도 금산분리 원칙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소비임치 없는 스테이블코인…어떤 기준 제시해야결국 은행이 무엇이냐는 아주 고전적이며 상식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21세기의 스테이블코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최종 질문이다.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을 대출로 소비한다. 그래서 예금계약을 법률적으로 소비임치(消費任置, 민법 제702조)라고 부른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는 소비하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을 매매할 뿐이다. 소비임치가 아닌 매매계약이 주된 업무라면, 은행이 아닌 증권사에 가깝다.미국도 그런 점을 고민한다. 지니어스법 통과 이후 USDT와 USDC에게 은행 자격을 요구할 것인가, 증권사 자격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타협안에 따르면, 재무부, 연준, 통화감독청(OCC), 예금보험공사(FDIC) 등이 함께 발행 자격을 심사한다. 억지춘향에 가깝다.지금 우리나라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점이다. 은행이 아닌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할 것인가? 어떤 명분과 기준을 제시할 것인가?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약해지는 가능성은 어떻게 대비할 것이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쉽게 전환되어 탈세, 자금세탁, 외화밀반출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포착하고, 단속할 것인가? 국회, 정부, 한국은행이 함께 고민해야 할 매우 중요한 숙제다.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변화는 분명하다. 외국으로 송금하는 일이 편리해지고,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세무와 외환당국의 감시를 벗어나기도 용이하다. 금융소비자가 누리는 편익이다. 하지만 거시경제적으로는 불확실성이 크다. 통화정책이 유효성이 약화되고, 외환관리의 어려움이 가중된다. 금산분리 원칙이라는 정치적 고려 사항도 있다. 국회의 입법과정에서는 이런 모든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야 한다. 그래야 이재명 정부가 바라는 ‘진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2025.09.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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