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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가 보증한 ‘ABCP’, 부도난 이유는 [레고랜드 사태 톺아보기]

‘레고랜드 사태’ 한달만에 얼어붙은 자금 조달 시장
정부, ‘50조+α’ 대책에도 91일물 CP금리는 되레 상승
시장 “정부 대책 부족하다…일시적 미봉책 그칠 우려”

 
 
레고랜드 대출 부도 사태로 지자체 개발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9월 28일 열린 레고랜드 '핼러윈 몬스터 파티'. [연합뉴스]
국내 자금조달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채권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우량 기업들은 연 6%대 금리를 제시하고도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자금을 끌어와 건물을 올리던 건설사와 부동산 개발에 앞장서던 증권사들의 연쇄 부도설마저 나돈다. 정부가 뒤늦게 ‘50조원+α(알파)’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강원도는 도 예산으로 빚을 갚겠다고 나섰지만, 시장에선 불안감이 여전하다.  
 
이번 문제는 레고랜드 사태에서 비롯됐다. 레고랜드 사태는 지난 2020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 시절 레고랜드 사업을 담당한 강원도 산하 강원중도개발공사(GJC)는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서면서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ABCP는 최고 신용등급 A1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2년 뒤인 지난 7월 취임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최 지사가 약속한 빚보증을 강원도의 채무 부담을 줄이겠다는 명목하에 파기하면서 생겨났다. 김 도지사는 레고랜드 ABCP의 만기 종료 하루를 앞둔 시점인 9월 28일 레고랜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을 신청했다.
 
 
9월 29일. 만기일이 도래했지만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이를 상환하지 못해 ABCP는 기한이익상실 상태가 됐다. 9월 30일엔 아이원제일차의 신용등급이 기존 A1에서 C로 강등됐다. 10월 5일엔 아이원제일차는 최종 신용등급 D로 부도 처리됐다. 도가 보증을 선 어음이 부도 처리되면서 채권시장의 돈줄은 더 빠르게 말라갔다.    
 
레고랜드 사태는 우량 회사채 시장으로 번졌다. 정부와 같은 신용등급 AAA를 보유한 한국전력 채권(한전채) 5년물은 지난 21일 연 6%에 달하는 금리를 제시하고도 발행에 실패했다. LG유플러스(신용등급 AA), 한화솔루션(신용등급 AA-)도 1500억원을 목표로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완판’에 실패했다. 
 

“정부 채안펀드 20조원은 임시방편에 불과”  

 
사태가 커지자 김 지사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한 ABCP 2050억원에 대한 보증채무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예산안 편성을 마치고 내년 1월 말까지 보증채무 전액을 변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개로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11월 말까지 회생신청을 마치고 매각이 이뤄진다면 보증채무액 이상의 자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틀 뒤 정부도 진화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50조원+α’ 규모의 자금시장 긴급대책을 내놨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원을 투입하고,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여력을 16조원으로 확대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자 보증 지원도 10조원으로 늘린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증권사를 위해 한국증권금융이 3조원 규모 지원에 나선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장 24일부터 채안펀드를 가동해 즉시 사용 가능한 1조6000억원을 집행했다”며 “시공사가 보증한 PF의 ABCP 등 회사채와 CP를 매입하겠다”고 말했다. 확실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단기 자금시장 경색이 전반적인 금융시장 불안으로 확산하지 않게 막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 대책에도 시장 불안은 여전하다. 시기적으로는 적절하나, 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50조원 이상의 자금이 시장에 풀린다면 단기 유동성 공급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채권시장 신뢰가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시장 심리 회복에는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 단기 자금시장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CP 91일물 금리는 정부의 긴급대책 발표 이후에도 오히려 상승했다. 24일 서울채권시장에서 CP 91일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2bp(1bp=0.01%포인트) 연 4.37에 마감했다. 91일물 CD금리 역시 2bp 상승한 연 3.92%에 거래를 마쳤다. CP 91일물 금리는 2009년 1월 21일(연 4.38%)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증시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대책으로 한국은행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시행된 저신용등급 회사채·CP 매입기구(SPV) 재가동이나, 한은의 적격담보 대상증권에 국채 외에도 공공기관채, 은행채, 우량회사채 등을 포함하는 방안이 고려될 만하다는 것이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대책이지만, 채안펀드와 회사채·CP 매입은 모두 기존 금융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 전반의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수 키움증권 연구원도 “이번 조치는 결국은 임시방편으로 유동성 공급 대책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면서도 “연말에 대거 도래하는 CP 만기와 연말로 갈수록 부족해지는 유동성을 고려하면 단기 자금시장의 안정이 우선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허지은 기자 hurj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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