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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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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2200억원 쿠웨이트 슈웨이크 항만 공사 수주

부동산 일반

현대건설이 쿠웨이트 항만 공사를 수주하며 필리핀 철도사업에 이어 해외수주 낭보를 전했다. 현대건설은 발주처인 쿠웨이트 항만청(Kuwait Ports Authority)으로부터 슈웨이크 항만 추가 건설 및 개보수 공사에 대한 낙찰통지서(LOA : Letter of Award)를 접수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에 현대건설이 수주한 슈웨이크 항만 공사는 기존 슈웨이크 항만 약 1.3km 구간을 개선하고 확장하는 공사로, 공사금액은 1억6000만 달러(약 2200억원)이며, 공사기간은 36개월이다. 현대건설은 준설 관련 현지 전문업체인 Gulf Dredging(GD)와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로 사업에 참여했으며, 현대건설 사업수행분은 전체 규모의 70%에 해당하는 1540억 원이다. 현대건설은 현지 리소스를 활용한 입찰 전략으로 가격과 수행 경쟁력을 인정받아 이번 공사를 수주했다고 밝혔다. 향후 현지에서 발주할 다수의 항만공사에도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는 기반을 다진 것이라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수도 쿠웨이트 남서쪽 인근에 위치한 슈웨이크 항은 쿠웨이트만에 접한 핵심 산업단지다. 대부분의 제조업체가 집결한 쿠웨이트 최대 항만이자 자유무역 지역으로 꼽힌다. 현대건설은 기존의 노후화된 항만시설을 개선하고 일반화물 6선석과 벌크화물 1선석 등 총 7개 선석을 추가로 건설해 쿠웨이트 물류 활성화와 경제 발전에 일조할 전망이다. 현대건설은 1977년 ‘슈와이바 항만 확장공사’를 수주하며 쿠웨이트에 처음 진출한 이래 45년 동안 ‘국가 기반시설 파트너’로 불릴 정도로 도로·정유공장·발전담수·송변전 등 총 64건, 122억 달러가 넘는 국가시설을 건설했다. 최근에는 수도 쿠웨이트시티에서 쿠웨이트만을 횡단해 수비야 신도시 지역을 연결하는 총연장 36.1㎞의 초장대 해상교량 ‘쿠웨이트 쉐이크 자베르 코즈웨이’를 비롯해 하루 30억㎥의 가스를 처리할 수 있는 재가스화(Regasification) 시설과 총 22만5500㎥ 규모의 LNG 저장탱크 8기를 세계 최초로 동시에 지은 ‘쿠웨이트 알주르 LNG 터미널 프로젝트’ 등 초대형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현대건설은 지난주 필리핀 철도사업에 이어 쿠웨이트 항만공사까지 잇따른 해외수주에 성공하며 두 사업지에서만 총 사업비 2조원이 넘는 수주고를 올렸다. 중동 건설시장 회복과 아시아 인프라 사업 본격화로 글로벌 건설시장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해외건설업계의 예상이 나오는 만큼 현대건설은 해외수주에서 활력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쿠웨이트 항만청 공사 수주를 통해 현대건설의 차별화한 입찰 전략과 우수한 기술력 등 경쟁력을 입증했으며 앞으로도 쿠웨이트 물류산업 개선을 위한 후속공사 수주에 최선을 다할 것” 이라며 “지속적인 해외수주 활동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축적한 K건설 대표기업의 위상과 입지를 제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jypark92@edaily.co.kr

2022.09.20 18:21

2분 소요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정주영-정인영 ‘형제의 싸움’

산업 일반

현대건설이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태풍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필리핀 해역을 거쳐 걸프만까지 1억 달러가 넘는 대형 재킷들을 19번이나 바지선으로 운반하는 대모험을 시도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주 공사인 주베일의 산업항 신항 건설이 규모에서나 내용면에서 대형 재킷들을 바지선으로 운반했다는 전무후무한 뉴스까지 덮을 정도로 엄청났던 것이다. 77년 3월의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알가르’ 항만과 77년 6월의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만, 규모 면에서 다소 작긴 하지만 78년 1월의 ‘두바이 발전소’ 수주까지, 중동지역의 대형 공사를 연거푸 따내게 되는 것도 현대건설이 세계적인 선진 건설사들을 제치고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75년 중동에 진출한 이후 79년까지 현대건설이라는 하나의 회사가 무려 51억6400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도 성공적인 주베일 산업항 수주로 기업의 브랜드를 높이지 못했다면 살벌하기까지 하다는 중동 시장에서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회고. “주베일이 사우디 동부 쪽 유전지대 아니에요? 거기에 산업항을 건설하겠다고 한 거는 주베일 지역에서 나오는 원유 수송하고 그 지역 산업시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원유 수송 때문만이 아니고 갖가지 산업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주베일의 야심이 담겨 있는 거라서 단순히 항만 공사로만 생각할 게 아니다 그거지. 거대한 산업도시를 건설하는 셈이에요. 그래가지고 사우디 항만청에서 발주를 했거든? 그게 입찰은 76년 2월에 했는데 우리가 발주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건 불과 7개월 전이었단 말이야. 75년 7월께 알았으니까. 그러니 생각해 봐요, 세계적인 공사라고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7개월 정도밖에 안 남은 시간을 가지고 덤벼들었으니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다녔겠어. 뛰어다니기만 해서 되는 일이라면 막 달리지, 하하항.” -시간적으로 촉박했다는 것 외에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말씀입니까?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당시 우리 건설이라는 건 그런 엄청난 항만공사를 해 본 적도 없지만 끼어들 자격조차도 안 된 거예요. 현대가 그때 바레인에서 아랍수리조선소를 건설하고 사우디에서 해군기지 확장공사도 하고 있었지만 우리까지도 산업항 공사에는 아예 입찰 초청 대상에 끼지도 못했던 거지. 그럴 정도로 인지도나 평가가 낮았던 거야. 그뿐 아니고 어떡하든 초청을 받는다 해도 막상 입찰하려면 보증이 또 있어야 해요. 근데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을 한다고 해도 안 된다고 했어. 대한민국도 믿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나머진 말할 것도 없잖아요. 하나에서 열까지 안 된다는 것뿐이고, 전부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길이 없으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해외공사를 한없이 했는데 주베일 공사만큼 사력을 다하고 애를 먹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공사 자체 때문이 아니고. 저걸(산업항) 먹긴 먹어야 되겠는데 처음에는 도무지 뚫을 구멍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런데 결국 우리가 수주했거든? 참 엄청난 도전을 한 거야, 하하항. 그걸 모르고 회사 안에서는 사장부터 될 일이 아니라고, 어떡하든 일심동체가 돼서 덤벼들어도 시원찮을 텐데 자꾸 회사 망한다는 소리만 하고. 그땐 전부 그러지 않았어? 시원찮은 것들이 말이야.” 자격도 없으면서 입찰 참여 정주영 회장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비록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지 불편했던 심정을 몇 번씩 되풀이했다. 사실 그 당시 사장은 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이었지만 그는 공사 규모에서나 경험과 공법에서나 현대건설이 도전을 하는 그 자체가 회사의 사망 선고라면서 끝까지 반대했다. 실제로 76년 그 시점의 현대건설이 산업항을 수주하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덤핑이 불가피하고, 결과적으로는 회사 문을 닫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작 사우디로 날아가 정보를 입수하고 수주활동을 했던 전갑원 전 부사장이나 김광명 전 사장 같은 중역들은 정주영 회장과 정인영 사장 사이에 끼여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여간 갈등하고 고생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솔직히 정주영 회장님하고 정인영 회장님(당시 사장)이 산업항 입찰 문제를 놓고 매일 회의하고 전략 짜고, 지금 생각하면 TF팀인데 입찰 초청을 받으려고 사무실까지 만들어놓고 정신없이 덤벼들었는데, 그때부터 두 양반은 이미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수주를 해야 한다는 건 정주영 회장님이고, 하면 안 된다는 게 정인영 회장님이었으니까 사이가 좋을 리 없죠. 회장님이 회의를 주재하실 땐 정 사장님이 침묵하고 정 사장님이 회의하면 ‘현대 망하는 거 보려고 그래?’ 이러면서 짜증내시고. 그런데 사실은 수주를 하고 나서도 열 명한테 물어보면 아홉 명은 현대건설 망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정인영 사장님도 아주 잘못 본 시각은 아니었지요. 하여간 발주정보를 듣고 현장답사를 갔는데, 그때 김광명 이사(후 현대건설 사장)하고 같이 갔어요. 나는 바레인 수리조선소를 따고서 진급이 상당히 빨랐어요. 그때 내가 상무였을 겁니다. 좌우간 사우디에 나가 있는데, 정인영 사장께서 부르시는 겁니다. 나는 수첩에 메모를 하니까 지금 얘기 그대로예요. 당장 귀국하라는 거지요.”(전갑원) -정인영 회장이 직접 호출한 겁니까? “그분이 그때 사장님이지만 실질적으로 명예회장님 못지않게 회사에서는 카리스마도 있고 거의 모든 걸 결정하셨던 분 아닙니까. 그러니 일단 귀국을 해야죠. 귀국보고를 하니까 참 무섭게 쳐다봐요. ‘네가 회사 망쳐 놓으려고 그 짓 하고 있어?’ 긴 말씀도 없어요. 그래서 자료를 쭈욱 펼쳐 놓고 설명을 드렸지요. 이 산업항만 따내면 35% 수익은 충분히 된다고 말이죠. ‘네가 뭘 근거로 해서 그런 장담을 하는 거야. 네가 언제 사우디에 가서 일을 해 봤어? 입찰이고 뭐고 당장 집어치우고 정리해서 들어와!’ 반대가 굉장히 심했어요. 그렇지만 명예회장님 명령으로 나가 있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들어옵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해 놓고는 다시 출국해서, 그땐 싼 데만 골라 다녔으니까 삼류호텔에 있는데 텔렉스가 계속 들어와요. 정인영 사장님 명의로 몇 장씩 날아드는 거지요. 절대 입찰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말이지. 근데 정주영 회장님은 입찰 붙어서 따낼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그러시고.”(전갑원) -입장이 난감했겠습니다. “그건 말로 다 할 수가 없고 굉장히 곤란했어요. 지휘자가 둘인데 어느 지휘봉을 쳐다봐도 혼나게 돼 있고 말이지. 해외 공사를 수없이 나갔는데 그때처럼 처신하기가 힘든 적이 있었을까? 현대가 어떤 회사라는 거 잘 알잖습니까. 우린 명예회장님 눈에 꽂히면 출세하는 거고 눈 밖에 나면 다음 날 책상 정리를 해야 되잖아요. 내가 기업체 오너는 황제라고 그랬는데, 왜 황제라고 하겠어요. 신하의 목은 자기 목이 아니라 황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 현장에 나가 있으면서도 심정이 어땠겠어요. 정인영 회장님 파워도 막강했지만 결국 정주영 회장님 말을 들어야 되잖아요. 그렇다고 정인영 회장님 얘기를 어린애처럼 정주영 회장님한테 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가지고 알아들으실 만큼 말을 ‘스무스’ 하게 돌려가지고 정인영 사장님께서 걱정을 상당히 하시는데 직접 좀 만나주시라고, 그래야 저희가 수주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때부터는 정주영 회장님한테서 매일 텔렉스가 와요. 아무 걱정 말고 잘하라고, 누구 말도 듣지 말고 무조건 따낼 수 있도록 하라고. 참 미칠 노릇이지. 그러니 수주활동 하기도 바쁘고 힘든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어요.”(전갑원) 이 부분은 현대가(現代家)의 내홍이기도 해서 간략히 살피지만 어쨌든 전갑원 부사장은 주베일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하는 이유가 공사 금액도 컸지만 무엇보다 현대로서는 기술습득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이중 목적이 분명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로서는 시급했던 것이 선진 건설기술을 습득하는 문제였단 말이죠. 아무래도 우리 기술은 낙후돼 있었고, 그걸 해외에 나가서 외국 일류회사들하고 경쟁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자, 우리도 건설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설계도나 건설현장을 한 번만 딱 봐도 배우는 게 엄청나거든요. 가령 고민을 무척 하고 있는 기술인데 풀리지 않다가 옆에서 딱 한마디만 들어도 굉장한 기술이 될 수 있는 것들이 프로젝트 현장에서는 자주 나온단 말이죠. 저 사람들은 저렇게 시공하는구나, 장점이 뭔가, 우리가 판단할 땐 이랬는데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게 상당히 커요. 그래서 얻은 기술이 확실히 많아요. 결국은 현대건설이 세계 건설 랭킹 뭐 10위다, 9위다, 8위다 하는 것이 중동이 없었다면 생각도 못하는 것이죠. 바로 그런 랭킹이 기술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주베일 프로젝트는 명을 걸고 먹어야 한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기술 습득도 입찰자격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무엇보다 정 회장은 입찰자격부터 얻는 일이 급선무였다고 했다. -경쟁이 치열했습니까? “한마디로 우리는 입찰 자격도 얻지 못할 정도였다니까? 입찰 자격이 없다는 건 발주처에서 입찰 초청도 하지 않겠다는 얘기잖아. 국내에서는 큰소리 뻥뻥 치고 있는데 니들 정도 가지고는 어림없는 공사다 이거지, 하하항. 미국의 브라운 앤 루트라는 회사 알지요? 거기를 필두로 해서 산타페, 레이몬드 인터내셔널, 영국의 코스테인·타막, 서독의 보스카리스, 네덜란드의 스티브, 프랑스 스피베타놀. 전부 얼마나 유명한 회사야? 그런 엄청난 회사들이 덤벼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린 뭐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 거지요.” 현대가 주베일 산업항을 수주하고서 비로소 김용제 전무를 현장 소장으로 파견하고 김주신 사업본부장과 그 외 부사장까지 현장에 투입되도록 규모를 키웠지만 수주 초기는 소위 외인부대가 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주영 “아버지가 꿈에 보였어” -회장님은 큰 공사를 수주하게 될 때는 사전에 꼭 아버님 꿈을 꾸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주베일 프로젝트 때도 아버님 꿈을 꾸셨습니까? “하하항, 물론 주베일 산업항 때도 아버지가 꿈에 보였고 그래서 이건 우리가 틀림없이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서 덤빈 거지요. 내가 꿈에서 아버지하고 얘기한다는 소리는 어디 가서 잘 안 하는데 그걸 또 들었구먼, 하하항. 75년, 76년에 10억 달러 공사라고 하면 아주 뭐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공사고 난공사예요. 그래서 공사를 발주하는 사우디 정부도 그렇고 세계적인 건설사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거야. 과연 어떤 회사가 이 공사를 수주할 거냐 해서 말이지. 그런데 우리는 그때만 해도 세계 10위권 건설사에 못 들었으니까 무엇보다 자격을 얻는 게 급선무 아니겠어. 그래가지고 내가 십수 차례나 거길 쫓아다녔어. 그때 우리 대사관에서 노력도 많이 해 줬고 특히 유양수 대사하고 건설관이었던 홍순길 국장이 애를 많이 썼는데, 결국은 입찰 초청을 받아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한 거예요.” 훗날 유양수 전 장관과 홍순길 당시 건설관을 만나 회고담을 들었지만 정 회장의 집념은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회장님이 동원한 방법이라면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그땐 뭐 필사적이었으니까 흥미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한 거예요. 공사도 대단했지만 발주처가 아주 딱 선을 긋고 세계 10위권 건설사에 들지 못하면 입찰도 안 된다고 했지만 기를 써서 입찰 자격을 얻어도 동시에 입찰 보증서를 내밀어야 되는데 그게 또 대한민국 가지고는 안 돼. 신용도가 높은 국가 보증이거나 은행 보증서를 가져가야 얼씬거리면서 귀동냥이라도 할 수 있다 그거야. 건설회사의 힘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그러니 방법이 있어? 16mm 필름에다 현대그룹의 시멘트 공장, 자동차 공장, 조선소, 그런 걸 죄다 찍어서 은행마다 찾아다니며 필름을 돌려서 보여주고 보증서를 끊어 달라고 통사정을 했지. 그럴 땐데 하루는 아버지가 꿈에 보이는 거예요.”

2008.06.30 09:53

8분 소요
“사막을 비즈니스 허브로”

산업 일반

두바이의 모하메드 왕자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석유에 의존한 개발이 아니다.사막 모래 언덕 곳곳에 수십억 달러가 걸려 있는 곳이 바로 아랍에미리트(UAE)의 토후국 두바이다. 걸프만(灣)으로 돌출된 돛단배 모양의 초호화 호텔 부르주 알 아랍(Burj Al Arab ·10억 달러 상당)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30억 달러나 들여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두 곳을 개발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일 듯싶다. 41억 달러 상당의 공항 터미널 신축 공사를 위해 1만3,500평 정도 파헤친다는 소리도 못 들어봤을 것이다. 공항 터미널이 들어설 곳은 두바이랜드(Dubailand) 앞이다. 두바이랜드 건설에는 무려 50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이다. 이는 두바이판 디즈니랜드로 실내 스키장 ·사파리 ·놀이공원 등이 들어서게 된다. 이 모든 공사를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마크툼(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 ·54)이 추진하고 있다. 모하메드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만한 두바이를 통치하고 있는 실질적인 이슬람 지도자다. 하지만, 그는 강한 자본주의적 성향이 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기업가적 자질도 지니고 있다. 모하메드 덕에 지난 10년 사이 두바이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8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폭증했다. 두바이의 부(富)가 석유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두바이의 GDP 가운데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GDP 가운데 3분의 2가 무역 ·관광 ·부동산 ·건설 ·금융 ·서비스에서 비롯되고 있다. 두바이는 양면성을 보이는 곳이다. 두바이 거주민 100만 명 중 두바이 사람은 15%도 안 된다. 대다수가 파키스탄 ·인도 ·이란 ·이집트와 다른 아랍 국가 출신이다. 셰이크 자이에드 거리에서 여성들은 눈만 내놓은 채 검정 차도르를 쓰고 다닌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나이트클럽 앞에 장사진을 친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이트클럽에서는 술과 담배도 즐길 수 있다.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 시각을 알리는 외침이 들리는 동안 가톨릭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울리기도 한다. 이스라엘 여권을 갖고 있는 관광객들이 세관에서 유유히 빠져나온다. 모하메드는 “두바이가 사업 기회 ·스포츠 경기 ·공연 등 모든 것에서 최고의 선택을 제공할 수 있는 세계적 명소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다. 두바이가 모하메드의 기대만큼 비즈니스 중심지로 우뚝 선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두바이에서는 법률상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금지돼 있다. 이는 아라비아반도의 7개 토후국으로 구성돼 있는 UAE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역업체들에 제공되는 면세 특혜는 구미가 당기는 매력이다. 이미 1,500개가 넘는 80개국의 무역업체들이 두바이에 진출해 있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두바이 증권거래소에는 16개 기업이 상장돼 있다. 시가 총액은 154억 달러로 뉴욕 증권거래소의 14조7,000억 달러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두바이 증권거래소는 하루 2시간 개장한다. 국고와 모하메드 형제 4명이 보유한 재산 사이에 구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경제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모하메드 형제의 재산은 100억 달러로 추정된다. 모하메드 형제들의 재산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도 불분명하다. 모하메드는 아버지 라시드가 축재한 자산에서 연간 20억 달러의 수입을 얻고 있다. UAE는 연간 25억 달러 정도를 야심에 찬 토후인 모하메드 일가에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모하메드는 호화 호텔 ·은행 최소 6곳의 해변 궁전을 소유하고 있다. 아랍종 경주마 1,200마리를 수용한 사육장이 있다. 두바이의 나드 알 셰바 경마장에서는 두바이 월드컵 경마대회가 열린다. 상금 총액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1,600만 달러다. 두바이를 기업으로, 모하메드를 두바이의 CEO로 한 번 생각해보자. 딴죽을 거는 이사회는 없다. 모하메드가 땅값을 올릴 생각이라면 방법은 간단하다. 땅 한 편에 대리석으로 치장한 호텔만 지으면 그만이다. 그가 설립한 항공사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관광객들은 그가 소유한 호텔에 투숙하고 그가 소유한 항구를 통해 들어온 물품을 쇼핑한다. 모하메드는 사업을 원활히 꾸려가기 위해 측근들에게 간선도로 및 병원 건설 계약 형식으로 자금도 제공한다. 억만장자 건설업자 칼라프 알 하브투르(Khalaf Al Habtoor)는 “모하메드 밑에서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했다. 두바이에서는 실패 말고 모든 게 가능하다. 2000년 모하메드의 친구 압둘라 알 푸타임과 마지드 알 푸타임은 10억 달러가 넘는 자동차 무역 및 부동산 사업 경영을 누가 맡을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업에는 2만8,000평짜리 쇼핑몰뿐 아니라 도요타 ·지프 ·볼보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독점 판매권도 포함돼 있었다. 경영권 다툼으로 두 사업 모두 무산될 판이었다. 모하메드는 경영권을 경매에 부쳤다. 비싼 값에 모든 것을 넘기는 방식이었다. 모하메드의 자산 관리인은 “두바이에서 도산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특이한 시스템을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두바이가 UAE와 맺은 어색한 제휴관계 때문이다. 모하메드는 다른 통치자들의 간섭을 최대한 막고 UAE의 군사력도 등에 업을 수 있다. 그는 1997년 한 가지 짐을 덜었다. 아부다비에 병력 1만4,000명을 넘겨준 것이다. 아부다비는 UAE를 구성하는 최대 토후국으로 UAE의 석유 ·가스 매장량 가운데 90%나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아부다비는 UAE 중앙은행도 운영한다. 어떻게 모래 위에 이런 성(城)이 세워졌을까. 100여 년 전 상인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걸프만 링가항(港)이 아닌 두바이의 작은 항구로 몰려들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뒤 두바이는 진주 무역과 해상 교통량까지 줄어든 불운한 영국 식민지로 전락했다. 라시드는 두바이의 작은 항구를 준설 ·현대화했다.그렇게 만들어진 제벨 알리항은 현재 세계 최대 인공 항구이자 면세지역이다. 라시드는 입항료로 두바이 최초의 활주로를 깔았다. 현재 두바이 국제공항은 105개 항공사가 취항하는 가운데 세계 250개 지역과 연결돼 있다. 두바이의 GDP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다. 라시드의 네 아들 가운데 셋째인 모하메드는 영국 케임브리지로 건너가 벨 랭귀지 스쿨에서 영어를 배웠다. 경마에 대해 배운 것도 그곳에서였다. 그러나 68년 두바이에서 석유가 발견됐고, 그는 아버지와 함께 비밀협상에 들어갔다. 아부다비와 동맹을 맺기 위한 자리였다. 3년 뒤 라시드의 후계자 모하메드는 세계 최연소 국방장관이 됐다. 73년 유대교의 가장 엄숙한 종교 절기인 욤키푸르에 단행된 이스라엘 공격, 인근 토후국 앗샤리카에서 발생한 쿠데타 기도,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비행기 납치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통치체제가 뒤흔들릴 판이었다. “먼저, 상황부터 지켜본다. 그리고 사람들 표정을 읽고 결정내린다.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움직여야 한다.” 모하메드가 경험에서 배운 처세술이다. 자유무역에 관한 한 모하메드의 행보는 특히 신속했다. 그는 UAE의 석유 매장량이 오는 2020년 고갈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규제 철폐에 전력을 기울였다. 중동에서 공공연한 보호무역주의 시장으로 알려진 두바이에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모하메드는 자유무역지대를 네 곳 지정해서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Cisco) ·CNN ·로이터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에어프랑스의 중동 화물 허브를 두바이로 유치하기도 했다. 모든 항공사에 주파수와 관련 시설을 무제한 제공한다는 영공개방 협정 덕이었다. 레바논 내전이 장기화하고 이란 ·이라크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두바이는 사실상 경쟁상대가 없었다. 모하메드는 겨우 1,000만 달러로 두바이 최초의 국영 항공사인 에미리트항공(Emirates Airlines)을 9개월 만에 설립했다. 에미리트항공은 85년 창립 이래 한 해만 빼고 계속 흑자를 기록했다. 모하메드가 벌인 프로젝트마다 흑자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일례로 부르주 알 아랍을 꼽을 수 있다. 두바이의 택시 운전기사들은 부르주 알 아랍이 ‘세계 유일의 별 7개짜리 호텔’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하루 1,500~7,332달러나 되는 숙박료로는 이익을 내기가 어렵다. 부르주 알 아랍 건설에 참여한 알 하브투르는 “부르주 알 아랍이 건립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며 “에펠탑 없는 프랑스 파리를 누가 찾겠느냐”고 반문했다. 상징주의가 먹혀들기도 한다. 9 ·11테러 이후 몇 주가 지난 뒤 모하메드는 350억 달러 상당의 보잉 ·에어버스 점보 제트기 구매를 승인했다. 에미리트항공에서 사용할 기종들이었다. 반면 다른 항공사들은 주문을 취소했다. 그는 영웅처럼 보였다. 여객기 가격을 200억 달러나 깎기도 했다. 지난해 모하메드는 최소 4억 달러나 들여 관계 장관들을 여러 차례 미국 워싱턴으로 보냈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회의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회의 개최에 성공한 두바이로 1만5,000명의 방문객은 물론 세계 각국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제 더 많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때다. 9,800만 평의 모래 위에 야자수처럼 생긴 인공섬 2개가 건설될 것이다.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라면 관심이 있을지 모른다. 오는 2007년 인공섬 프로젝트가 완공되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40만~150만 달러 상당의 빌라와 40개의 호텔, 돌고래 ·범고래들이 노니는 수상공원, 5억5,000만 달러 상당의 쇼핑몰도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UAE 연방법상 외국인이 땅을 매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하메드는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 나크힐(Nakheel)에 한 가지 권한을 위임했다. 외국인이 99년간 장기 임대를 통해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40명으로 구성된 UAE 연방 국가협의회가 제출한 새로운 법안에 따르면 외국인이 부동산을 되팔 수 있는지, 사망시 상속은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는 이슬람 법률로 금지돼 있다. 모하메드가 안고 있는 법적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지난 2월 UAE 중앙은행은 외국인들이 두바이에서 현금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돈세탁까지 하지 않았는지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외국인에 대한 부동산 매각대금 가운데 10%가 현금이었다. 조사는 9 ·11테러 직후 통과된 돈세탁 방지법에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 두바이의 주요 은행 50개 가운데 9 ·11테러나 알 카에다 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밝혀진 은행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최근 한 두바이 사람이 핵물질을 파키스탄에서 리비아로 밀반출하는 데 관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심층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비밀 금융거래를 둘러싼 베일 벗기기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아랍 지역 전체에서 유치한 외국인 직접 투자 규모가 개발도상국가의 3%도 안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한몫할 것이다. JP모건의 투자전문가 하셈 몬타세르는 “투명성 제고야말로 두바이가 당면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두바이는 지금까지 많은 외국 자본 없이도 그럭저럭 성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모하메드는 이름있는 신용평가기관에 등급 문제로 간청할 일도 없다. 그러나 채권시장은 다르다. 두바이는 지난해 세계은행 회의 개최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다. 금리 3.1%의 5년 만기 국채에 투자자가 몰려들었다. 국채 발행 안내서에는 전기 ·상수도 ·알루미늄 공장 ·석유회사 같은 정부 핵심 자산의 장부가격이 60억 달러로 기재돼 있었다. 유동성 증가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주식시장이 더 활기를 띠면 두바이에서 영업 중인 기업 2,500개 가운데 일부가 두바이 증권거래소에 상장할지 모른다. 게다가 18억 달러 상당의 7개 동 복합 건물인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로 입주하는 업체도 많아질 것이다. 모하메드는 DIFC 입주를 지원하고 있다. 입주 금융서비스 업체에 100% 소유권과 100% 면세 혜택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보너스가 또 하나 있다. 다른 은행들이 적용받고 있는 연방 규정에서 입주 금융서비스 업체를 제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UAE 국민 고용을 연간 4% 늘려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모하메드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14만 평의 면세 실리콘 ·소프트웨어 단지 가운데 일부인 ‘두바이 인터넷 시티’를 임대할 생각이다. 인터넷으로 주차위반 범칙금을 처리하고 야생동물 공원에서 탈주한 동물들을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방법도 분석 중이다. 42개 컨설팅업체의 인공섬 프로젝트 분석자료 50건도 숙독했다. 사담 후세인은 사라졌다. 그러나 두바이는 걸프만 지역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미 유명한 금융센터로 떠오른 바레인은 지난 1월 두바이를 제치고 포뮬러 원(Formula One) 경기 유치에 성공했다. 카타르는 방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으로 미국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쿠웨이트는 최근 미국과 투자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모하메드로서는 더 서둘러야 할 판이다. “비판과 반대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두바이에는 성공을 일궈 나갈 의지 ·정열 ·자원이 있다.” 모하메드의 결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굴레를 깨뜨리다 걸프만 지역에서 여성 기업인은 고산지대의 호수만큼이나 찾아보기 힘들다. 루브나 알 카시미(Lubna Al-Qasimi)가 돋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까만 차도르로 두른 알 카시미는 온라인 물자조달 서비스업체 테자리(Tejari)의 CEO다. 그녀는 HSBC ·에미리트항공 ·두바이 정부의 고위관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담소를 나눈다. 그녀는 공주이자 인근 토후국 앗샤리카 통치자의 질녀이기도 하다. 사업은 장난이 아니다. 알 카시미는 앗샤리카 소재 아메리칸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주말 과정을 밟기 전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마크툼의 눈에 띄었다. 두바이 항만청에서 일하면서 맞춤형 송장(送狀) 문서화 시스템을 개발한 뒤의 일이다. 그 덕에 화물 처리시간이 1시간에서 10분으로 줄었다. 이후 두바이 자유무역지대 입주 업체들의 구매주문을 지원하는 온라인 시장이 구축되는 데 한몫하기도 했다. 공개 입찰방식의 효율성이 공공 부문에 도입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2000년 테자리(아랍어로 ‘상거래’라는 뜻)가 탄생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초기 자본 2,000만 달러 대부분을 모하메드가 지원했다. 투자가 헛된 것은 아니었다. 현재 두바이 정부의 조달 가운데 70%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다. 알 카시미는 테자리가 지난해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테자리는 현재 요르단 ·쿠웨이트 ·이라크 · 시리아에서 가맹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랍에미리트(UAE) 가족법안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취업권이 보장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법안에는 남편이 아내의 취업을 금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여성의 취업을 둘러싸고 혼전에 합의가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미국 ·영국에서 생활한 바 있는 알 카시미는 “내가 일종의 역할 모델임을 잘 알고 있다”며 “이제 이슬람 여성의 역량을 세계에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2004.04.0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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