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Mr.구조조정'-민간 씽크탱크 만든 이헌재 前 재경부 장관
돌아온 'Mr.구조조정'-민간 씽크탱크 만든 이헌재 前 재경부 장관
지난 1월26일 오후 6시 무렵 서울 플라자호텔 커피숍. 궂은 날씨 탓일까. 여느 때보다 어둠이 더 빨리 내린 시청 앞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뒤늦은 설 연휴 귀경 차량들로 몸살을 앓던 전국 고속도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시청 앞 거리처럼 한산한 커피숍 한켠에 세 사람이 막 자리를 잡았다. 이헌재 前 재정경제부 장관, 서근우 금융감독위원회 자문관, 이성규 서울은행 상무였다. 한국신용평가 시절 인연을 맺은 세 사람은 기업·금융 구조조정 헤드쿼터였던 금감위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이 前 장관은 뜬금 없이 “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for Public Policy)를 좀 알아보라”고 한마디 던졌다. AEI는 미국의 민간 씽크탱크인데…. 얼떨결에 알 듯 모를 듯한 ‘화두’를 받아든 두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로부터 6개월여 뒤인 7월23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7층. 이 前 장관이 던진 ‘화두’가 ‘실체’를 드러냈다. KOREI-. ‘Korean Enterprise Institute’의 약자로 미국의 AEI나 브루킹즈 같은 민간 씽크탱크였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창을 때리던 이날 KOREI의 출범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가족 모임 식이랄까. 나라 경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벌인 일 아닌가. 연구소를 빌미로 뭘 꾸미려느냐. 이런 괜한 오해를 사기 싫었다. 지난 8월 말 로펌인 김&장 법률사무소에 고문으로 다시 취직 아닌 취직을 한 배경도 같은 맥락이었다. 어딘가 적을 두고 있지 않으니 자꾸 엉뚱한 얘기가 돌기 마련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젠 생활인이니만큼 돈도 벌어야 되는 필요성도 있었다. 이 前 장관은 이날 화두를 하나 더 던졌다. ‘起業富民 立正安國’-. 간단히 말하면 사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늘리고, 부(富)를 쌓아 나라를 튼튼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구조조정 전도사’ ‘미스터 구조조정’‘화타(華陀)’로 불리며 ‘기업 수술’을 맡았던 그가 이젠 기업이 기력을 되찾고 제자리를 잡도록 보탬이 되겠다는 얘기다. 결자해지(結者解之)랄까. 인연이자 악연이랄까. 그는 당장 숨이 넘어갈 듯 할딱거리던 한국 경제를 대수술로 구해냈다. 어디가 곪았고 어디를 먼저 손을 대야 하는지 맥을 척척 짚어 냈다. 이헌재라는 명의(名醫)의 수술 솜씨는 대단했다. 그리고 이젠 한 발 물러나 기력을 되찾고 있는 환자를 조용히 지켜보며 ‘보약’을 지어줄 참이다. 지난 11월3일 오전 광화문 KOREI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런 백의종군의 모습이었다. 가벼운 캐주얼 차림으로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KOREI를 왜 세웠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아이디어가 넘치고 일 벌이길 즐기는 그가 이런 아이템을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했다. 더군다나 이번 일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이 前 장관은 별칭에서 볼 수 있듯 위기 관리에만 뛰어난 사람으로 각인돼 있다. 어쩌면 지금껏 그렇게 보인 게 당연하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고 대응방식도 그랬다. 다만 이런 모습은 그의 반쪽일 뿐이다. 그는 정상 메커니즘과 미래 시스템을 보는 통찰력도 뛰어난 사람이다. 지금까진 그런 대목이 부각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게다가 이젠 위기관리 과정은 어느 정도 매듭됐고 예측 가능하거나 감내할 만한 국면이란 판단이다. KOREI는 정상 메커니즘을 복원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8·7 개각’ 때 ‘옷’을 벗은 이 前 장관은 입버릇처럼 이런 연구소 얘기를 해왔다. 백의종군식으로 민간 씽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론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 얼핏얼핏 그런 생각을 내비쳤다. 공직에선 떠났지만 관복을 입고 하던 일과 지금 일이 무관하지도 않다. 결국 연장선상에 있다. 모두 기업이 잘되도록 도닥거리는 처방이다. 이 前 장관의 사촌 동생인 이윤재 前 청와대 경제비서관은 “곪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고 건강을 되찾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KOREI 오픈 건은 이 前 장관의 사실상 첫 복귀작이다. 지난해 8월 장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공식 석상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은둔생활이나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식힐 겸 중국과 미국에 다녀온 것을 빼곤 친구를 만나거나 골프(싱글 핸디캡)를 즐기는 정도였다. 사실 재경부 장관 뒷끝이 워낙 개운치 않아 그럴만도 했다. 이 前 장관은 지난해 봄을 고비로 하루 아침에 ‘구조조정의 전도사’가 ‘개혁실패의 책임자’로, ‘위기극복의 주역’이 ‘경제난의 윈흉’으로 몰리는 신세가 됐다. 특히 지난해 ‘4·13 총선’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채무 논란 등에 적극 대처하지 못한 사실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리더십 부재론이 퍼졌다.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제2 경제위기설도 번지면서 경제팀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게다가 당정회의에서는 이해찬 당시 정책위의장이 ‘실패한 관료’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이 막바지에 달할 무렵엔 개각설까지 돌았다. 여당쪽 뿌리가 약해 금감위원장 시절부터 여당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던 그에게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그리곤 결국 ‘8·7 개각’때 물러났다. 지난 69년 재무부 사무관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한 뒤 79년 율산사건으로 관직을 떠난 경험이 있지만 두번째 사표를 낼 때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특히 급성 맹장염으로 병원에 누워 전한 ‘재경부 장관직을 떠나면서’라는 편지는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그는 “구조조정은 구색 갖추기나 시늉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며 연습도 용납되지 않는 냉엄한 진검 승부”라며 마무리를 못 짓고 떠나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던 그는 해를 넘기면서 점차 옛 모습을 되찾았다. 외향적인 성격에 사람 만나기를 즐기는 그는 지금도 다이어리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만나는 사람에게 아이디어 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시간 가는줄 모른다. 지난 1월6일에는 오랜만에 기쁜 소식도 접했다. 미국 우드로 윌슨 센터가 주는 올해의 ‘우드로 윌슨상’ 수상자로 뽑힌 것. 미국 워싱턴의 유일한 공공연구재단인 윌슨 센터는 “이 前 장관이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한국 경제를 살려내고 금융 구조개혁 선봉장 역할을 잘 해내 한국이 아시아 경제개혁과 회생의 귀감이 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윌슨 센터는 해마다 공공부문과 민간 경제계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상을 줘왔는데 외국인으론 이 前 장관이 첫 케이스라 더욱 뜻이 깊었다. 결국 불발로 끝난 공적자금 특위 청문회(1월19일 증인)가 기다렸던 탓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지만 어쨌든 낭보였다. 지난 3월 어느 모임에서는 김영수 기협중앙회장으로부터 ‘중소기업 경영전략위원회’ 구성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 무렵까지 많은 자리를 고사했다. 하지만 일을 즐기는 스타일인데다 줄곧 재벌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던 소신과도 맞아떨어졌다. 당시 그는 서울 역삼동에 연락처를 겸한 조그만 사무실을 두고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 나가고 있었다. 그는 3개월여 뒤인 6월28일 ‘중소기업 경영전략위원회’ 공식 출범을 계기로 공직을 떠난 지 10개월여 만에 복귀식을 가졌다(KOREI 법인 설립 작업을 먼저 마쳤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KOREI 이사회 의장직이 첫 공직 복귀라고 볼 수 있다). 우드로 윌슨상을 받은 뒤 귀국한 그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KOREI를 만드는 작업을 펼쳤다. 그러면서 서근우 자문관과 이성규 국장 등에게 바이오 벤처를 만들 뜻을 비추기도 했다. 다만 당시 이 前 장관의 측근들은 기초 과학 기반이 약하고 성공 확률도 낮아 만류했다. 당시 외국계 펀드에 간다는 루머도 꽤 돌고 있을 때였다. 직함이 3∼4개로 늘어난 그는 9월에는 한국 경제의 세일즈맨으로도 나섰다. 증권거래소가 주최하는 한국투자 설명회(IR) 진행자로 도쿄·런던·뉴욕을 돌았다. 뒤늦게 알려진 얘기에 따르면 이 前 장관은 뉴욕에 머물 때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9·11 테러’ 하루 전 현지 지사장들(WTC 근무자도 포함)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여느 때처럼 폭탄주를 여러 잔 돌려 다음날 이들이 늦게 출근해 목숨을 건졌다는 것. 또 WTC에 사무실이 있는 매제와 테러 당일 아침 골프 약속을 해 그의 목숨도 구했다. 한국 경제 도약의 ‘1등 공신’이라는 칭송과 구조조정을 망친 ‘실패한 관료’라는 비난이 엇갈리는 이 前 장관. 그는 그러나 지금도 후회는 없다. 결과론적으로 ‘이렇게 했으면’이란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있지만 당시 제약 아래에서 나름대로 할 일은 다했다는 판단이다. 지금도 위기가 1백% 가시진 않았지만 구조조정 작업도 여전히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조조정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닌 만큼 너무 조급하게 굴어선 곤란하다고 주문한다. KOREI를 이끄는데도 성급하게 결과물을 낼 생각은 없다. 새로운 모델인 만큼 돌다리 하나 하나 두들겨 가며 유용한 도구로 만들 욕심이다. 관직에는 미련이 없다. 백의종군으로 나갈 생각이다. 돌아온 화타 이헌재-. 그가 내린 새로운 처방전이 어떤 약효를 낼지 사뭇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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