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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의약청은 ‘식품의약품안보청’?

식의약청은 ‘식품의약품안보청’?

“이러다 금쌀까지 나올 지경이다.” 金가루를 넣은 식품들을 두고 식품의약품안전청 이달수 천연첨가물과장이 했다는 말이다. 쌀 부스러기가 싸라기니 금쌀이면 말 그대로 금싸라기다. 지난 11월 22일 대가리에서 꼬리까지 금분(金粉)을 바른 ‘황금굴비’에 대해 식의약청이 내린 제조·판매 금지조치와 관련해 그는 “위화감을 조성할 정도로 값비싼 ‘황금식품’들이 확산되고 있어 관련법에 따라 단속에 나섰다”며 이렇게 말했다. “식품위생법상 금박이나 금가루는 술과 과자류 제품에만 착색(着色)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 사흘 전 황금굴비㈜(www.91b.co.kr, 02-518-5330)는 열 마리에 2백만원 하는 황금굴비를 전화예약을 받아 팔겠다고 발표했다. 사흘 만에 철퇴를 맞은 셈이다. 이 날 한 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몇백만원짜리 양주를 즐겨 마신다는 우리 사회의 부유층은 이제 금을 먹기까지 한다”고 꼬집었다. “황금굴비가 어떤 모양이고 이같은 굴비를 사서 먹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지 구경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비꼬았다. “황금굴비와 같은 크기의 국산 참굴비는 수산시장에서 4분의 1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이것도 너무 비싸 사먹지 못하는 것이 우리 서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한 마리에 20만원-법정 월 최저임금(법정 월 근로시간 2백26시간 기준 47만4천6백원)의 절반에 가까운 고가이니 언론이 위화감 조성을 경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 저명한 칼럼니스트는 여기서 더 나가 “흉년과 외침·내란으로 항상 금붙이를 몸 가까이 지님으로써 난리를 극복하려 하는 민족 잠재의식이 근간의 천정 모르는 사치심과 야합하여 황금굴비를 탄생시킨 것일 게다”라고 썼다. 27일 그가 속해 있는 신문의 독자란에는 한편 “주류·과자류·굴비 모두 식탁에서 섭취하고 결과적으로 인체 내부로 유입된다는 것은 상식”이라며 “인체에 유해하다면 국민 건강을 위해 금 코팅을 한 모든 제품의 제조·판매를 금해야 할 것이고, 무해하다면 유독 금박 굴비만 제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글이 실렸다. 법의 잣대가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금테를 두른 것도 아니고, 금박을 입힌 굴비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황금굴비㈜에 따르면 우선 영광 법성포 앞바다에서 잡아올린 최상급의 참조기를 재료로 쓴다. 옛 방식으로 천일염으로 간을 해서 잰 뒤 바닷바람에 말린다. 순도 99% 초미립자의 식용 금분을 바른다. 이렇게 가공된 황금굴비는 표면의 금분이, 열전도율은 높여주고 굴비에 남아 있는 수분의 증발은 억제함으로써 빨리 익고 육질이 고소해진다고 황금굴비측은 밝혔다. 회사측은 시식회 때 참석자들의 반응이 퍽 좋았다고 전했다. 금칠을 했든 안 했든 명색이 최상품 영광 굴비인데 맛이야 최상급일 수밖에. 코팅된 금이 혈액 흐름의 개선·해독 등의 작용도 한다고 주장하지만 극소량인데다, 식용 금에 건강증진 효과는 없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입장이다. 황금굴비측은 식용 금 코팅과 관련한 특허 출원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염장(鹽藏) 가공을 맡은 ㈜서해수산은 3대가 영광 굴비의 가공을 가업으로 이어온 이 분야의 베테랑. 가격은 어떤 수준인가? 롯데백화점의 수산물 바이어 박헌 과장은 최상품 영광 굴비는 열 마리에 1백50만원 정도 한다고 말했다. 금박 코팅 노하우, 염장 가공 처리에 따른 가격차가 50만원 정도 되는 셈이다. 그는 길이가 30㎝ 이상인 상품 참조기는 기본적으로 열 마리에 1백만원은 한다고 귀띔했다. 관건은 유해성 내지는 안전성이다. 식의약청 천연첨가물과 이영자 연구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황금굴비가 유해한지는 검토해 봐야 알 수 있다”며 “황금굴비가 유해하다는 게 현재 식의약청의 입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굴비 등의 천연식품은 가공식품과 달리 고유의 색이 있기 때문에 착색을 막고 있다”는 말도 했다. 금박뿐 아니라 다른 착색료의 사용도 금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식의약청측은 “황금굴비는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제조·판매 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식의약청 기동단속반 김병태 반장은 “외국에서도 식용 금 사용은 술·과자에 대해서만 허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원 식의약청 식품첨가물평가부장은 “착색료의 안전성도 안전성이지만 상해서 변색이 된 재료를 착색해 파는 것을 막고 기존 첨가물보다 우월한지, 착색 상태에서 혐오감을 주지는 않는지 등도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식품이 위화감을 주는지도 본다”고 덧붙였다. 착색료로서의 금박의 필요성은 그러나 시장이 판단할 문제이다. 착색 상태의 미감(美感)은 소비자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이다. 혹시 식품의 안전을 책임지는 당국의 안목이 소비자들보다 높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부장은 “해당 업체가 금박의 순도 검사 등 시제품에 대한 검사·시험을 요구해 오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토 기간에 대해서는 “틀에 박힌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법으로 정해진 기간은 없다”고 설명했다. 1천5백 세트만 전화예약을 받아 판매하겠다고 선언한 황금굴비㈜측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오치우 사장은 “단속반원으로부터 법적으로 식용 금 첨가가 허용되는 술이자 과자가 아니기 때문에 검사 신청 자체를 받아줄 수 없다고 들었다”고 털어놨다. “어떤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맞추라면 납득하겠습니다. 만일 시제품을 검사해 보자고 해 놓고 한 1년 끈다면, 그거야 하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죠. ” 그는 “금은 동양에서는 행운의 상징으로 황금굴비는 선물용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굴비의 컨셉트는 ‘단 한 사람을 위한 명품’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중심에 서 있는 단 한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는 거죠. ” 롯데백화점 수산물 바이어 박과장은 황금굴비에 대해 “새로운 상품 개발에 대한 의지를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식용 금은 우황청심환, 매실주 등 일부 술 등에 재료로 쓰이고 금가루 상태로 일반인에게도 판매된다. 취급 업체측에서는 일정 양을 술이나 차에 타서 마시거나 과자·초콜릿 등에 코팅하라고 권하고 있다. 식용 금은 식의약청이 천연 감미료·천연 색소 등 식품 첨가물로 허가하고 있는 1백77개의 물질 중 유일한 금속이다.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식용 금값은 1g에 10만원 수준으로 일반 금(3.75g에 5만원선)보다 훨씬 비싸다. 순도 94.4% 이상에 미립자로 가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용 금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이상 식용 금의 코팅은 술과 과자만 된다는 ‘포지티브 시스템’은 설득력이 없다. 첨가의 대상이 되는 식품과 식품 첨가물로서의 식용 금이 무슨 화학작용을 일으켜 유해 성분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게 아니라면 금박의 사용은 업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선도(鮮度)가 떨어지는 식품 자체의 변색을 막기 위한 눈속임용 착색이라면 썩었거나 상했거나 설익은 것의 판매를 막고 있는 식품위생법의 위해식품 판매금지 조항의 적용으로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다. 녹용·로얄젤리·모피·고급가구에 룸살롱에 대한 특소세마저 내리는 세상이다. 고소득층은 소득에 걸맞은 ‘과시적 소비’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경제 회생에도 도움이 된다. 있는 사람들의 소비는 ‘80대 20 사회’의 빈부 격차를 해소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 황금굴비에 대한 판금 조치를 둘러싸고 관련 업계에서는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외압’에 식의약청이 총대를 맨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만의 하나, 황금굴비의 판금이 위화감의 조성을 막기 위한 고식적인 대응이라면 이 참에 간판을 바꿔달라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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