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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사천의 유훈/현금 쥐고 사업하라

단사천의 유훈/현금 쥐고 사업하라

계양전기에는 창업주 단사천의 ‘피’가 여전히 돌고 있다. 현금 위주의 경영·무차입 경영·보수적인 재정 운영 등이 지난해 10월 작고한 단사천 총회장의 ‘유훈’과 닮았다. 현재도 고(故) 단사천 총회장의 아들인 단재완씨가 대주주로 있다. 단씨 집안은 대대로 현금을 중요시해 왔다. 한때 명동에서 현금 동원 능력이 가장 뛰어났다는 소리를 듣는 단총회장이지만 그를 단순히 사채업자로만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는 이미 계양전기를 비롯해 한국제지·해성산업·한국팩키지 같은 회사를 일군 어엿한 기업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모두 상장·등록 회사라는 점이다. 현재 그의 외아들인 단재완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해성그룹이 어떻게 일궈졌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해성그룹에서 29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영원 상무는 “단총회장이 큰돈을 번 건 순전히 무역업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이렇게 따질 때 기업인 단사천의 사업 경력은 무려 65년이나 된다. 청년기에 그는 무역업으로 떼돈을 벌었다. 황해도 출신인 그는 18살 때 서울의 외가쪽 친척이 운영하던 상점에서 점원생활을 시작한다. 5년 후 23살 때 그는 독립 선언을 했다. 종로5가에 일만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중고 미싱을 일본에서 들여다 팔았다. 당시로서는 ‘첨단 산업’인 무역업이었다. 신용과 정직을 무기로 그는 해방 직전까지 50만원(쌀 5천 가마값, 요즘으로 치면 약 8억원)을 벌었다. 쌀값이 그동안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점과 당시엔 부자가 거의 없다시피했다는 시대 상황을 감안할 때 31세의 단사천이 쌓은 부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게 바로 해성그룹의 시드머니였다. 해방 후에 그는 미싱가게와 면사업을 겸업하면서 해성직물상회를 열었다. 해성직물상회를 1954년에 주식회사로 전환한 게 바로 오늘의 해성산업이다. 단사천 회장은 제조업에도 손을 뻗었다. 무역업만 하던 그가 제조업에 처음 뛰어든 건 1958년. 당시 그는 최화식·김창윤·양치목씨 등과 동업으로 제지업(한국제지)을 시작한다. 지류를 수입하던 그는 국내 시장에서 종이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내다보고 이 회사를 세웠다. 해성그룹이 자랑하는 제조업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계양전기다. 무역업으로 돈을 번 그는 77년 유망하다고 판단한 전동공구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전동공구는 사실 건물 임대관리업과도 관련이 깊다. “건물 보수를 위해 사용하던 국내 공구의 태반이 독일제 보쉬 같은 외제였다”는 게 훗날 그의 회고다. 이런 현실을 꿰뚫어 보고 이 사업에 진출을 했다는 것. 기계업계 진출은 미싱을 수입판매하던 그의 과거 경력과도 무관치 않다. 그는 계양전기 창립 후 11년 만인 88년 기업을 공개했다. 단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중시하는 경영을 했다. 신중히 사업성을 검토하지만, 일단 선택을 하고 나면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곁눈질은 하지 않았다. 착실한 내실경영으로 회사를 튼튼하게 키웠다. 하나를 해도 세계최고의 제조업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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