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휴가철이다. 이 곳 브뤼셀에서는 7월 한 달이 집중적인 세일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상점들이 2주 이상 문을 닫고 휴가에 들어갔다. 세일과 별 상관없는 각종 스낵바나 서점·가전제품 대리점 등은 거의 예외없이 ‘임시휴업’ 표지를 내걸었고, 최후의 보루라 여겨지는 빵집조차 매정하게 장기 휴가에 들어간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꿋꿋이 문을 열고 돈 벌기에 여념이 없는 곳은 휴가철 패션을 주도하는 옷가게와 휴가지를 결정해주는 여행사다. 그렇다면 이 많은 유럽인들은 과연 어디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일까. 여행사 쇼윈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각종 ‘특가 상품’들의 행선지는 거의 예외없이 지중해 연안 휴양지들이다. 그리스·모로코·프랑스 남부 그리고 터키와 이탈리아. 겨우내 우울한 날씨에 찌들어 있었던 탓인지 여름 휴가철이 되면 대다수의 유럽인들은 거의 ‘미친 듯이’ 태양이 작열하는 바닷가로 몰려든다. 이들 중 상당수는 거북이처럼 열심히 차를 타고 움직이기도 하고 기차를 타고 여행하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값싼 항공기 티켓과 렌트카를 결합시킨 상품이 휴가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지제트(Easyjet)·라이언 항공(Ryanair)·버진 익스프레스(Virgin Express) 등 각국의 할인항공사들이 초저가의 항공 티켓을 앞다퉈 내놓고 있기 때문에 자가용으로 움직이려던 휴가객들의 마음을 단번에 돌려 놓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할인항공사 중 최근 들어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항공사로는 아일랜드의 라이언 항공을 들 수 있다. 이 항공사가 제시하는 항공권 가격은 그 자체로 유혹이라 할만 하다. 런던-브뤼셀 간 편도요금이 8유로로 약 1만원에 불과하다. 런던-밀라노 요금이 14유로(한화 약 1만 7천원), 런던-베니스 요금이 24유로, 프랑크푸르트-피사 요금이 24유로다. 이 정도의 가격이면 영국 및 아일랜드와 대륙간 교통수단으로는 최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런던-브뤼셀간 유로스타(철도) 왕복요금이 2주전 예약했을 경우 최저 1백 유로 정도며 깔레-도버간 왕복 페리요금 또한 최저 1백 유로인 반면, 런던-브뤼셀간 왕복요금(라이언항공)이 16유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할인항공사들이 이처럼 저가 항공권을 팔면서 매출 신장을 거듭할 수 있는 비결은 온라인 판매와 기내식 폐지를 통한 노동비 절감에 있다. 라이언 항공의 경우 전 구간의 항공권이 온라인에서만 판매되고 있고 최저 상품의 경우 출발 날짜를 변경하려면 상당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항공권이 워낙 싸기 때문에 일반 항공사와 같은 판매 방식을 취했다가는 예약이 취소되는 사태가 비일비재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기내식을 폐지한 것도 불필요한 노동비를 아껴 회사와 승객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자는 취지에서다. 물론 어디나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듯 할인 항공사 이용에도 상당한 불편이 있다. 항공사들이 제시하는 가격이 놀라울 정도로 싸기는 하나 여기에 상당한 액수의 공항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여행객이 실제로 내는 가격은 항공권 가격의 두 배 정도로 올라간다. 뿐만 아니라 소속국인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제외한 나머지 도착지에서 도시 외곽에 있는 2류 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도착지 공항에서 최종 행선지까지 가는 교통요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일례로 브뤼셀에서 런던까지 가는 편도요금이 8유로인 반면 브뤼셀 남부역에서 샤를로아 공항까지 가는 셔틀버스 요금이 7유로인 우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항공기가 도착하는 런던의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런던 중심부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면 아마도 런던과 브뤼셀을 서너번 이상 왕복한 가격 이상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불편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라이언 항공을 비롯한 대다수 할인항공사들은 공항에서 직접 이용할 수 있는 렌트카 서비스와 호텔 패키지를 적극 개발하고 있다. 사실상 라이언 항공을 포함해 이지제트와 버즈(Buzz) 항공·고(Go) 항공 등 할인 항공사들을 급성장시킨 주된 고객은 피서객들이 아닌 업무용 승객들이었다. 유럽 단일시장 계획의 성공으로 인해 각국 기업간의 비즈니스 활동이 증가하면서 업무용 승객들의 수도 따라 증가했다. 유럽 내부에서 움직일 때 최대 2시간을 넘지 않는 비행시간 동안 공짜 음료수 한잔을 얻어 마시기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인 사고 방식에서 할인항공사 이용붐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를 재빠르게 포착한 네덜란드의 KLM 항공사는 아예 자사 소속의 할인항공사 버즈항공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처럼 할인항공사 수가 증가하고 그 이름이 점점 더 친숙해지자 지금까지 할인항공사의 안전성 문제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이용을 꺼려 왔던 일반 여행객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할인항공사를 이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에 발맞춰 할인항공사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차별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라이언 항공이 홈페이지 전면에 최저 가격을 공시하는 소위 남대문표 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다면 할인항공사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버진 익스프레스(Virgin Express)는 항공권의 시간과 변동 가능성에 따라 차별화된 가격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취항 노선 면에서도 라이언 항공은 가능한 많은 노선을 운영하려 애쓰는 반면 이지제트나 버즈 항공 등은 영국과 대륙을 연결하는 노선에 집중하면서 약간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라이언 항공이 주고객층을 비즈니스 고객에서 일반 고객으로 확대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할인항공사들은 당분간 비즈니스 고객 공략에 중점을 두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최근 이 곳 방송에서 기내식의 품질이 항공사 결정에 있어 항공권 가격 다음으로 중요한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기내식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고도 3천 피트 이상 올라갈 경우 원래 맛의 30% 정도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유럽 내에서 움직일 우리나라 여행객들도 어차피 맛없는 기내식에 연연하지 말고 실속 있는 할인항공사를 한 번 쯤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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