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로 '부서진기둥',1944,캔버스에 유채 40x30.7cm,돌로레스 올메도 컬렉션,멕시코시티 |  | 칼로,'테후아나 여인으로서의 자화상' 1943,압착 목판에 유채, 76x61cm,프란시스코와 로시 곤잘레스 바스케스 컬렉션, 멕시코시티 |  | 칼로,'두사람의 프리다',1939,캔버스에 유채,173.5x173cm, 멕시코시티 근대 미술관 | 자화상이 발달하기 시작한 16세기 이래 자화상을 시도해 보지 않은 서양 화가는 별로 없다. 특히 습작기에 모델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는 자화상은 미술학도들에게 좋은 훈련 수단이 됐다. 이렇듯 화가라면 누구나 그려보는 것이 자화상이지만, 자화상을 평생의 주제로 삼아 그리는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자화상만으로 예술적 열정을 다 달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을 팔기가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렘브란트나 반 고흐처럼 다른 주제의 작품을 하는 틈틈이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수시로 질문을 던진 경우가 가끔 있는 정도이다. 이런 흐름에 비춰 멕시코 출신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1907∼54)는 평생의 예술적 주제가 자기 자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자화상을 남긴 독특한 화가이다. 물론 칼로 역시 주변 사람을 비롯해 자신의 모습 이외의 주제를 틈틈이 그리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자화상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칼로는 평생 자신을 그리는 데 온 열과 성을 바쳤고, 스스로를 모델로 끊임없이 관찰하기를 즐겨했다. 자신이 자신에게 뮤즈가 되는, 그래서 영감의 원천이 되는, 그런 특별한 예술가-모델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왜 이렇게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했을까?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도 자주 외롭고 또 무엇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 때문이다. ” 프리다 칼로는 진정 외로운 예술가였다. 아마 그는 역사상 가장 외로운 예술가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가 자신을 남과 다른 사람으로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여섯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불구가 되면서부터였다. 다른 꼬마들로부터 “나무다리 프리다”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란 그는 일찍부터 자신의 소외된 상(像)에 눈을 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신체적 장애는 총명한 그에게 아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다 심각한 사고는 그가 열여덟살 무렵 명문 국립예비학교 학생일 때 닥쳐왔다.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해 중태에 빠졌던 것이다. 그의 대퇴골과 갈비뼈가 부러졌고, 골반은 세 군데, 왼쪽 다리는 열한 군데가 골절됐다. 오른쪽 발은 아예 으스러졌는가 하면, 왼쪽 어깨는 탈구됐다. 그러고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사조차 고개를 흔들 정도로 처절한 상황에서 살아난 프리다 칼로. 그는 이후 47세로 요절하기까지 계속적인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다. 두 번의 유산 경험도 이 사고의 후유증과 관련이 있는데, 심지어 사고 당시 버스 난간 창살이 배를 뚫고 들어와 질을 통해 빠져나갔다고 한다. 치료를 받는 중에 그녀는 한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프리다 칼로에게 고통은 이처럼 정신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육체적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늘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몸과 마음을 부식시키는 것이었다. 그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칼로는 자신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44년작 ‘부서진 기둥’은 그가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보았는지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황량한 땅과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프리다 칼로. 갈라지고 패인 대지의 모습이 그의 형편과 유사하다. 여신상처럼 서 있는 칼로는 지금 척추 대신 옛 그리스의 신전 기둥을 지지대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기둥 또한 이미 금이 가고 쪼개져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인은 쇠띠로 몸을 동여맸다. 이 무렵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칼로는 몸을 부지하기 위해 강철 코르셋을 입고 다녀야 했다고 하는데, 그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 이미지라 하겠다. 살 이곳저곳에는 못이 촘촘히 박혀 있어 그의 몸 어느 한 구석 편안한 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눈물은 그만큼 한스러운 삶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보는 관객도 칼로 자신도 이 눈물을 씻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이런 신체적 질고만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자화상에 에너지를 쏟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열정적인 멕시코인 가운데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뜨겁고 강인한 인간이었다. 칼로는 무엇보다 사랑의 화신이었고, 예술의 수호자였다. 멕시코가 낳은 최고의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 칼로는 글자 그대로 자기 자신보다 남편을 더 사랑했다. 디에고는 그에게 연인일 뿐 아니라 아들이자 어머니였으며, 영원한 우상이었다. 그런 남편이 수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고 심지어 자신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도 애정행각을 벌여 그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은 적이 있지만, 그에 대한 칼로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다. 파열음처럼 터져 나온 디에고와의 이혼과 곧 있은 재혼(재혼시 칼로의 요구에 따라 두 사람은 육체적 관계를 갖지 않기로 계약을 했는데, 이는 디에고가 그 어떤 여자하고 육체적 관계를 가져도 칼로가 개의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도 그저 심연 같은 사랑 위에 찰랑이는 잔 파도였을 뿐이다. 지구가 자신의 피조물들을 사랑하듯 디에고를 사랑한 칼로는 이 사랑을 세상에 토로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모습을 그려야 했다. ‘내 마음 속의 디에고’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테후아나 여인으로서의 자화상’(1943)은 디에고에 대한 칼로의 집착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칼로는 자신의 이마에 디에고를 그려 넣었다. 이는 그가 그녀의 생각 속에서 한시라도 지워져 본 적이 없음을 뜻한다. 이 그림을 통해 칼로는 디에고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분신 같은 존재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머리에 쓴 화관으로부터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간 뿌리는 마치 거미줄 같아 한번 걸리면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하는데, 그녀는 그렇게 디에고를 사로잡았다. 아니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그녀가 사로잡힌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가 테후아나 여인의 복장을 한 것은 인디언 문화에 대한 자긍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디에고가 멕시코의 전통과 인디언 문화를 지극히 사랑했다는 점에서 그것 역시 디에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 어떤 힘으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사랑을 그리기 위해 칼로는 끊임없이 자신을 그렸다. 심지어 글로도 그 절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디에고, 탄생/디에고, 건설가/디에고, 나의 아이/디에고, 나의 약혼자/디에고, 화가/디에고, 나의 연인/디에고, 나의 남편/디에고, 나의 친구/디에고, 나의 어머니/디에고, 나의 아버지/디에고, 나의 아들/디에고, 나/디에고, 우주/통일 속의 다양함/그런데 왜 나는 ‘나의 디에고’라고 말하는가?/그는 결코 내 것이 아닌데, 그는 오직 그 자신의 것일 뿐인데.” 칼로는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독일 혈통의 사진사 곤잘로 기예르모 칼로와 멕시코인 어머니 마틸드 칼데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21살 때 그보다 꼭 그만큼 나이가 많은 디에고와 결혼했는데, 초기에는 워낙 유명한 남편의 명성에 묻혀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세상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칼로의 예술에 갈수록 깊이 매료됐고, 심지어 루브르 박물관이 최초로 작품을 구입한 멕시코 화가가 되는 등 곧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서구 페미니즘 운동이 성장한 1970년대 이후에는 페미니즘 미술의 중요한 선구자로 재평가되기도 했다. 죽음을 앞두고 쓴 마지막 일기에 칼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적어 넣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의 마지막 외출이 행복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더 이상 자화상을 그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비로소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우주의 아름다움만을 화폭에 담고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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