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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업일수록 기술경쟁력이 무기"

"작은 기업일수록 기술경쟁력이 무기"

이병수 동보화학사장
작지만 알찬 회사-. 플라스틱 첨가제를 만드는 동보화학이 지향하는 모습이다. 저마다 신기술이니 IT(정보기술)니 하면서 새로운 것에 매달리고 있는 요즘, 동보화학은 전통기술에 집중투자해 성과를 올리고 있다. 동보화학의 주력제품은 플라스틱 첨가제 및 각종 화학약품. 플라스틱에서 일어나는 정전기를 방지하는 대전방지제, 값이 싼 폴리프로필렌 수지(플라스틱)의 투명도를 높이는 핵제가 이 회사의 주력 품목이다. 일반인들에겐 낯선 기술이지만 석유화학 제품에는 필수적인 기술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은 아니지만 이제까지 국내 업체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전량 외국에 의존했던 기술이다. “주사기나, 투명한 문서상자, 의류를 담는 플라스틱 박스 등 값싸고 투명한 용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핵제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작년 7월부터 핵제를 생산했는데 국내 시장의 15% 정도에 우리 제품이 들어갈 정도로 품질이나 가격에서 경쟁력이 있습니다.” 동보화학의 이병수(64) 사장은 새로 개발한 핵제의 품질에 대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원래 동보화학의 주력 제품은 플라스틱 제품의 정전기를 방지하는 대전방지제였다. 동보화학은 대전방지제를 처음 국산화한 회사다. 산요나 엑조노벨 같은 다국적 화학회사들이 독점하던 시장에 동보화학이 뛰어든 것. 값비싼 수입품을 대체해 국내 시장에서 선전했다. 한때 이 회사 매출액의 70%가 대전방지제에서 나올 정도로 주력상품이었다. 하지만 대전방지제의 경우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이익이 점차 줄어들었다. 또 송원산업·미원상사 등 자본력 있는 회사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점차 고전을 했다. 핵제 개발에 돌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핵제의 경우 아직 전세계적으로도 미국·일본의 2∼3개 회사만이 안정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화학 첨가제의 경우 품질이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핵제의 경우 투명도가 높고 인체에 무해할수록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죠. 대만이나 중국 등에서도 핵제를 생산하고 있지만, 아직 품질이 안정돼 있지 않아 제 값을 받을 수 없습니다.” 동보화학의 경우 지난 7월 첫 개발 후 올 들어 식품 용기에 쓸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을 높였다. 사무용기보다 더 투명하고, 유해성분이 적어야 식품용기에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더 비싸게 팔린다. 이미 상용화 실험에 들어간 이 제품이 시중에 나올 경우 기존 수입품을 대체하는 것은 물론 일본과 유럽 등지로 수출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지난해 천안에 있는 공장에 핵제 생산을 위한 설비를 갖췄다. 회사 관계자는 “이미 소량으로는 세계 여러 곳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귀띔한다. 폴리프로필렌 수지 제품을 투명하게 만드는 첨가제인 핵제는 세계적으로도 안정된 기술을 갖춘 회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처럼 동보화학이 세계적인 화학 첨가제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은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 37명의 작은 규모지만 이 중 연구 인력이 10명이다. 이병수 사장도 동보화학을 창업하기 전 화학 업종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했다. 서울대 화학과를 나와 화학회사에 기술자로 20년간 근무했다. 개발팀은 충남 천안에 있는 공장에서 연구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이사장은 평소에도 일주일에 2∼3일은 공장에서 보낼 정도로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시기에는 이사장도 공장에 직접 내려가 밤을 새며 연구에 몰두한다. 숙식도 공장에서 해결한다. 그런 노력 끝에 35명이라는 조그만 회사가 세계적 화학 첨가제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노력 끝에 외국 회사들이 독점하다시피한 화학 첨가제 분야에서 기술 국산화를 이뤘다. 지금까지 7건의 신제품 개발과 10여건의 연구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97년에는 중소기업청의 신기술 인증서와 비스솔비톨류의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권을 받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00년에는 벤처기업·수출유망 중소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겉만 번지르르한 일부 벤처들과는 다르다. 꼭 필요하지만 남들이 간과한 기술을 파고들어 기술 벤처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현재 삼성종합화학·LG화학·대림산업 등 국내 굴지의 화학회사들과 거래할 정도로 동보화학의 기술력은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동보화학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97년 외환위기 때 일이다. 환율 때문에 원료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하지만 대기업에 납품하는 제품 가격은 연간 계약으로 묶여 있어 연초 수준과 같았다. 환율 때문에 수입하는 재료비는 치솟고 제품값은 그대로니, 팔수록 밑질 수밖에 없었다. 97년 64억원이던 원료비가 98년에는 72억원으로 늘었다. 원료값이 8억원이 늘어나면서 졸지에 적자회사로 떨어졌다. 워낙 규모가 작기 때문에 원료비 8억원 상승은 회사에 치명타였다. 하지만 대기업과의 거래관계를 생각하면 납품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45명이던 인원을 30명까지 줄였다. 35%에 달하는 대규모 감원이었다. 그래도 임금을 줄이지는 않았다. 핵심역량이었던 연구개발 인력을 잡아두기 위해서였다. IMF 체제가 지나가고 2000년에 들어서면서 다시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해 핵제를 개발, 판매하기 시작했고 상황은 점차 나아졌다. 1천4백만원 적자를 기록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약 10억원의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핵제 제품 판매가 본격화되는 내년부터는 매출이나 순이익이 급증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기술력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죠.” 오랫동안 기술자로 일해 온 사장다운 얘기다. 중국 진출도 준비 중이다. 이미 중국 텐진에 기술 제휴를 조건으로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회사와는 기술 공급 계약을 추진 중이다. 개발은 한국에서 담당하고, 생산은 중국에서 하는 식이다. 이사장은 “비록 작은 회사지만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겠다”면서 “현재 15%에 불과한 국내 핵제 시장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리고 수출 시장에 집중해 세계 시장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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