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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을 모은 사람들(6)] “무조건 낮은 가격 쓰는 것은 금물”

[10억을 모은 사람들(6)] “무조건 낮은 가격 쓰는 것은 금물”

정은경 사장은 사업하는 사람들은 특히 경매를 배우라고 충고한다(사진은 법원 경매 현장.)
“돈은 꼭 벌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는 분에게 경매를 해보라고 권하겠어요. 하지만 만만하게 보면 큰일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분석하고 발품 팔아야죠. 1년 내내 고생스레 직장 다녀서 연봉 2천만∼3천만원 받는 것처럼 경매도 노력을 기울여야 그만큼 버는 거예요.” 정은경(가명·41) 사장은 경매 예찬론자다. 그녀에게 경매는 그냥 ‘재테크 수단’이 아니다. 회사를 부도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해준 ‘구세주’다. 그리고 지금은 회사 자금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그래서 정사장은 경매를 ‘자기 방어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무슨 스토리길래 경매를 이렇게 얘기할까.

돈 벌려면 경매를 공부해라 “1997년 IMF 위기 때였어요. 원청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지니 하청업체들도 대금을 못 받아 연쇄부도 위기에 놓였죠. 우리 회사도 당장 어음이 안 도는 거예요. 안되겠다 싶어서 채권을 행사하려고 보니 경매를 넣으라는 거예요. 그게 뭔가 싶어서 법원 담당과를 찾아가 봤더니 찬바람만 쌩쌩 불더군요.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어떻게 하겠어요, 모르는데. 배워야죠.” 정사장은 당장 모 대학 부설 경매강좌에 등록했다. 3시간씩 1주일에 3번, 만만찮은 수업이었다. 낮에는 회사 꾸리느라 동분서주하고, 밤에는 강의 듣고, 주말에는 과제물 준비로 정신없이 보냈다. 과정이 거의 끝나가는데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수강 동기생 중 10여명을 추려봤다.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만 골랐다. 전문 분야도 안배했다. 법무사·세무사·회계사·은행·교수 그리고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 열성 경매학생들은 매주 한 차례 세미나도 열고, 각자 골라온 경매물건을 서로 점검해 줬다. 말하자면 ‘정보 품앗이’였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첫 실전 경매물건은 연구소 사무실이었어요. 8천5백만원에 샀는데 지금 시가는 1억5천∼2억원쯤 가죠.” 정사장은 강의가 끝날 무렵 배운 지식을 이용해 첫 경매를 시도했다. “처음이라 복잡하지 않고 아주 쉬운 물건부터 시작했어요.연립주택이었는데, 한 번 유찰돼 7천8백만원이었어요. 7천5백만원에 전세를 살고 있는 세입자가 있었는데 확정일자를 받아둬서 채권 1순위였고요. 복잡할 게 없는 단순한 물건이었던 셈이죠. 세입자 돈 내주고 내보내면 되니까요.” 쉬운 물건이라 경쟁자가 많을 것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8천만원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 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8천5백만원을 써서 낙찰받았다. “사전 답사를 가서 세입자도 만나보고 시세도 알아봤거든요. 시세는 1억2천만원이더군요. 세입자는 더 살고 싶다고 하고요. 8천5백만원에 사도 실제 내 돈은 1천만원이면 되잖아요. 더욱이 지하에 세를 줄 수 있도록 화장실과 부엌이 달린 독채가 있더라고요.” 정사장은 지하를 1천5백만원에 세 놓았다. 결국 ‘내 돈’은 한푼도 안 든 셈이다. 1년 후 팔았으니 양도세도 안 물었다. 판 가격은 1억5천만원. 무려 6천5백만원의 차익을 봤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는 건 아니다. 우선 낙찰되기가 힘들다. “입찰에서 2등은 꼴등이나 똑같아요. 1등 해서 낙찰되지 않으면 다 소용없죠.”

작게 벌어도 만족할 줄 알아야 정사장은 10건이면 3건 이상은 낙찰된다. 어려서부터 숫자 감각이 뛰어나 현장에 온 사람들을 보면 대개 ‘감’이 온단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10건이면 1건 되기도 쉽지 않다. “20건 하다가 한번도 낙찰 안 되니까 쓸데없이 그동안 돈과 시간만 버렸다며 다시는 안 한다고 분해하는 분들도 봤어요.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중도에 포기하게 돼죠. 끈기와 인내심 없이는 경매로 성공하기 힘듭니다.” 경매를 잘 하려면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옆에서 보니까 쉽게 돈 버는 것 같아 뛰어들었다간 큰코 다친다. 작게 벌어도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없이 무조건 가격을 짜게만 쓰면 낙찰은 요원할 뿐이다. 정사장은 지금까지 25건 정도의 경매를 했다. 이 가운데 10억원이 넘는 물건은 연구소 회원들과 공동으로 사들이기도 했다. 그런 공동 건수가 3∼4건을 넘는다. 회사 사무실도 경매로 사서 마련했다. 2001년 1억4천만원에 샀는데 지금 시세는 2억5천만원이다. 또 8천2백만원에 산 사무실도 현재 1억3천만원에 달한다. 지금까지 경매로 얻은 차익을 얼추 계산해 봐도 10억원을 훨씬 넘는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은 대부분 회사 자금으로 들어갔다. 정사장에게 경매는 돈 버는 목적이 아니라 사업의 보조 수단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돈을 벌어도 사업으로 버는 쪽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직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그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거잖아요. 훨씬 다이내믹하고 보람도 커요.” 정사장은 직원들에게 경매 정보를 알려줘 내집마련을 도와줄 때가 기쁘다고 한다. “사실 작은 회사라 월급을 많이 주진 못하거든요. 대신 내집마련을 원하는 직원들에게 경매를 가르쳐 주죠. 물건도 골라주고, 입찰 때 얼마 쓰라고 액수도 알려주고. 차익이 크진 않지만 시세보다 2천만원만 싸게 사도 그게 어디예요?” 경매를 배워서 또 좋은 게 있다. 받을 대금 못 받았을 때 법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지 훤해졌다. 그래서 정사장은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꼭 경매 배우라”고 권한다. “경매를 하려면 관련 법을 다 알아야 해요. 그러면 나를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죠.” 정사장은 주말이면 물류센터로 쓸 경매물건을 찾느라 바쁘다. 법원 사이트와 지지옥션(GGI)·인포뱅크(infobank) 등 경매전문사이트에도 들어가 물건을 뒤진다. “인터넷 덕분에 일이 훨씬 쉬워졌어요. 법원사이트에 들어가면 모든 게 다 있죠. 집에 앉아서 등기 열람도 가능하고, 부동산 정보망을 통해 시세 확인도 가능하죠. 그렇게 확인 가능한 정보를 다 모은 뒤 그 지역에 사는 지인들에게 정보를 물어봅니다. 그리고 나서 확신이 서면 현장 답사를 하죠.” 정사장은 한번도 주식이나 다른 재테크를 해본 적이 없다. 한국 증시는 아직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도박 같기 때문이란다. 그럼 부동산은 뭐가 좋을까. “정직하고 담백하잖아요. 강남 개발 붐 때처럼 그냥 앉아서 돈방석에 앉던 시대는 지나갔어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하죠. 땀 흘린 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것, 그게 부동산입니다.”

정은경 사장 10억 만들기 연보 1981년 대학 입학. 1982년 부친의 약국 경영하면서 일식집 운영. 1985년 대학 졸업. 독서실과 음식 체인점 창업. 1988년 사업 청산. 가정주부로 변신. 1995년 회사 설립. 1997년 연쇄부도 위기. 모 대학 부설 경매강의 과정 등록. 경매공부 시작. 1998년 과정 이수. 동기들과 연구소 설립. 첫 경매로 6천5백만원 차익. 2001년 경매를 통해 회사 사무실 1억4천만원에 매입. 현재 시가 2억5천만원. 2002년 새 법인 설립. 2개 회사 동시 운영 중. 2003년 지난 5년간 25건의 경매로 10억원 이상 차익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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