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자갈치 시장에 가면 꼼장어처럼 삶이 꿈틀댄다

자갈치 시장에 가면 꼼장어처럼 삶이 꿈틀댄다

"그곳에 뭐하러 가냐? 얻을 것도 없을 텐데….” “선생님, 어떤 여행이든 얻을 게 없는 여행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뭔가를 꼭 얻어 올 겁니다.”
수년 전. 인도 여행을 떠나던 날 스승께서는 화두처럼 질문을 던지셨고, 난 여행은 단지 풍경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내 방식의 여행에 토를 달았었다.

‘그 곳’에 ‘그 사람’이 있기에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는 행로. 여행하면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일 아닌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태풍 직전의 이른 아침, 부산을 향해 2번 국도를 탔다. 진해를 지날 즈음 앙칼스런 바람이 벚나무들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장복터널을 빠져 나와 장복산길을 오르니 울울한 벚나무 숲길이 하늘을 뒤덮는다. 간간이 폭우가 쏟아지고, 그런가 하면 어느새 자욱한 안개구름이 산과 들녘, 사람을 감싼다. 가까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아름답고 푸근한 벚나무 숲을 벗삼아 한 모금 넘겨본다. 달고 쓴 진한 액체를 목젖에 넘기며 새삼 자연의 신비에 젖어본다.

곧 바로 발길을 옮긴 곳은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을숙도다. 지난날 수인선 협궤열차 타는 것과 함께 낙동강 하구둑을 막기 전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곳인데, 모두 과거 속으로 사라진 지금에야 이 자리에 섰다. 그런 걸 생각하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당장 행동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수십년이 지나도 을숙도를 그리워하고, 비릿한 생선냄새 풍기며 인천에서 수원으로 해산물 넘기러 가는 갯사람들을 태우던 수인선 협궤열차를 그리워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낙동대교를 건너서 우회전하면 다대포 이정표와 함께 너른 백사장이 보인다. 몰운대 가는 길이다.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구름 속에 빠진 섬’이라는 시화적인 이름을 지니고 있다. 경관이 뛰어나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신석기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패총이 발견되었고 태종대·해운대와 함께 부산의 3대 명소로 꼽힌다. 특히 예로부터 해운대 일출이 가장 아름답다면 몰운대는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회자되는 곳이다.

자갈마당으로 내려가자면 양쪽 바다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 바다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거친 반면, 다른 쪽은 순하디 순하다. 몰운대가 있는 다대포 주위에는 멀리 남형제도·북형제도·목도·금문도·동섬·동호섬·팔봉섬·솔섬·오리섬·쥐섬·모자섬·자섬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변을 맴돌고 있다.

다대포 가는 길에서 낙동강 저편을 보면 을숙도가 그대로 보인다. 늘 세월이 바뀌면 길도 달라지듯이 “예전에는 삐걱삐걱 노를 저으며 나룻배를 타고 을숙도를 드나들었는데” 하는 생각에 더럭 미소가 솟는다. 비둘기 모이를 사들고 용두산 공원 계단을 밟는다.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비둘기들이 무리를 지어 날개를 펴고 접는다. 여기서 가장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부산 타워에 올랐다. 벽에 걸린 70년대 부산 정경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오늘의 사진들이 언젠가는 저 벽면을 채울 것”이라고.
부산에 왔으면 자갈치 시장을 놓치면 안될 터. 야시장이 열리는 자갈치에는 오늘도 고래고기가 한 광주리씩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꼼장어는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 연기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포장마차 불빛이 밝아질수록 독한 소주를 한 모금에 털어 넣으며 삶의 애환을 달래는 서민들. 여기저기서 흔들리는 인생들이 꼼장어처럼 익어가고 있었다.
이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안을 따라 7번 국도에 올라갈 차례다. 또 어떤 새로운 길이, 인생이 반길까.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한다.
(여행가·for NWK)

■주요 통과지역: 진주~마산~진해~김해~부산



맛집을 찾아서



10년 전 가격 그대로인 조방낙지

육수에 온갖 양념을 넣고 즉석에서 볶아 먹는 낙지. 거기에 후식처럼 밥을 달달 볶아 먹는 맛이란. 여름날 이열치열 낙지를 생각하면서 부산 명물 조방낙지를 찾았다. 특히 부산의 조방낙지는 맵지 않은 고추를 써 담백하게 볶아 먹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시대 때 조선방직이 있던 자리여서 지금도 ‘조방앞’이라고 불리는 부산진구 범천동에 빈정순(73)할머니의 낙지전문집 ‘원조할매집’(051-643-5037)이 있다. 젊은 시절 미곡상을 운영하던 할머니가 낙지요리를 시작한 데는 사연이 있다.

젊은 날 여름 장마철에 두번씩이나 수해를 당하면서 전 재산을 떠내려 보낸 후 살길이 막막해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낚지볶음을 생각해 낸 것. 간판도 없이 탁자 다섯개를 놓고 문을 열었다. 당시 낙지볶음 값은 자장면 값 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조방앞 낙지맛이 입소문 나 조방낙지라는 고유 이름을 갖게 됐다. 35년 전. 구청에서 의무적으로 간판을 걸게 했을 때 손님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냥 할매집이라고 간판을 걸면 어떠냐”고 해 그 시절 젊은 아낙이면서도 할매집 간판을 내걸고 일찌감치 할매가 됐노라고 기분 좋게 웃는다. 그 젊은 아낙이 이젠 칠십을 넘긴 진짜 할매가 되었고 덩달아 조방낙지는 영문도 모른 채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돼버렸다.

오랜 세월 음식을 다루다보니 할머니는 멀찌감치에 서서 낙지 색깔만 봐도 간이 어떤지 맛이 어떤지 안다고 한다. 맛이 덜할성 싶으면 다가가서 양념이나 육수를 넣어주곤 한다고. 게다가 눈매가 매워서 낙지만 봐도 어디에서 살다가 잡혀온 놈인지 금방 알아낸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의 딸인 이명길(45)씨가 대물림을 한지 7년이 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당시 배고픈 시절을 잊을 수 없어 음식값을 10년째 올리지 않고 그대로 받는다. 그래서 음료수도 5백원, 공깃밥도 5백원이다.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조방낙지 맛. 아마도 그것은 손끝에서도 나오지만 할머니의 인정 맛이 아닐까.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서울시,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속도낸다…"통합심의 적극 추진"

2“타는 냄새”…공덕역 연기 발생해 무정차 통과 중

3 권영세 “尹 하야,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옳은 방법 아냐”

4서울 아파트 평당 매매가 4천만원 붕괴…전월 대비 5.2%↓

5‘이민정♥’이병헌, 늦둥이 딸 손잡고 산책... 딸바보 다 됐네

6故 김새론 팬들, 추모 성명문... “잘못에 지나치게 가혹한 대중”

7코스피, 트럼프 관세 정책에도 닷새째 상승…2600대 돌파 코앞

8LF몰, 24일까지 ‘트렌드 프리뷰’…봄 신상 최대 3만원 할인

9“호캉스+생일파티 한 번에!”…더 플라자, ‘해피 벌스데이’ 패키지 출시

실시간 뉴스

1서울시,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속도낸다…"통합심의 적극 추진"

2“타는 냄새”…공덕역 연기 발생해 무정차 통과 중

3 권영세 “尹 하야,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옳은 방법 아냐”

4서울 아파트 평당 매매가 4천만원 붕괴…전월 대비 5.2%↓

5‘이민정♥’이병헌, 늦둥이 딸 손잡고 산책... 딸바보 다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