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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富는 ‘물라’가 장악

이란의 富는 ‘물라’가 장악

이란 정권은 세계에 핵위협을 가하며 자국민의 번영까지 훔치고 있다. 그러나 권력 상층부의 이슬람 성직자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 요즘 시끄럽다. 최근 어느 금요일 자정 무렵, 테헤란의 수십 개 교차로마다 학생 수천 명이 모여 골목 여기저기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민주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요즘 테헤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주변 중산층 시민들마저 가세해 학생들을 지지하는 의미로 자동차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댔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오토바이를 탄 30여 명의 괴한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들은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만한 곤봉을 휘두르며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들은 운전자들을 노려보며 위협하고 차도 부쉈다. 턱수염의 건장한 괴한들이 두 운전자를 차 밖으로 끌어내 몰매를 가했다. 시위대가 흩어지기 시작하자 정복 경찰은 괴한들이 도망가는 시위자를 끝까지 쫓아가 폭행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팔짱만 낀 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괴한들은 시아파 헤즈볼라(Hezbollah) 민병대 소속으로 대다수가 지방에서 올라온 이른바 ‘지옥의 천사’다. 이들은 이란의 집권 ‘물라(Mullahs ·이슬람종교지도자)’들이 반대파에 위협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동원된다. 이슬람 국가 이란은 물라 지배체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으면 군이나 경찰이 아닌 헤즈볼라와 혁명수비대를 동원해 탄압하는 이상한 독재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란 당국은 알라로부터 정권의 합법성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협박·폭력·살인처럼 폭력배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수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란을 지배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재선에 성공한 온건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Mohammad Khatami) 대통령이나 개혁파가 주도하는 의회는 분명 아니다. 14년 전 아야툴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의 뒤를 이어 최고 종교지도자에 오른 골수 반미주의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Ali Khamenei)도 아니다. 이란의 실세는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고 있는 소수 이슬람 성직자와 측근들이다.

이란 경제는 옛 소련 붕괴 이후 등장한 정실자본주의와 매우 흡사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1979년 혁명을 계기로 외국인 투자가와 이란인 갑부들의 자산이 모두 몰수됐다. 석유산업도 오랜 과정을 거쳐 국유화됐다. 그러나 은행, 호텔, 자동차 ·화학공장, 의약품 ·소비재 기업 등 값진 자산들은 모두 이슬람 성직자들이 차지했다. 특이한 것은 이런 자산 가운데 상당 부분이 성직자가 통제하는 이슬람 자선단체로 귀속됐다는 점이다. 기업인과 자선단체의 전(前) 임원들에 따르면 자선단체가 성직자와 그들의 지지자를 위한 부정한 돈줄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은 국제사회가 예의 주시하는 핵개발 프로그램뿐 아니라 다른 치명적인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 기업인, 상인, 경제학자, 전직 장관, 전직 고위 관리들과의 인터뷰에서 ‘그림자 정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독재체제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미 국무부는 이란의 그림자 정부가 테러집단에 은밀히 자금을 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란 경제는 재계의 그림자 제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제국의 권력 또한 은밀한 세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감춰진 권력체제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 이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Ali Akbar Hashemi Rafsanjani)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일찍이 종교지도자 아야툴라로 지명된 라프산자니는 80년대 호메이니의 오른팔로 의회 의장에 이어 89~97년 대통령을 역임하고 현재 이슬람 성직자 기득권층과 의회 간 마찰을 중재하는 기구인 최고회의평의회 의장으로 있다. 지난 24년 동안 라프산자니는 이란을 실질적으로 통치해 왔다.

라프산자니는 뛰어난 처세술로 60년대 호메이니 진영에 가담했다 이란혁명 이후 실세로 떠올랐다. 그는 이념적으로 강경파에 속하지만 실용적 시각도 갖추고 있다.
이란 ·이라크 종전을 호메이니에게 촉구한 데다 옛 소련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연방(UAE)과 무역관계도 맺어 이란의 국제적 고립을 타개했다. 90년대에 그는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다시 추진했고 ‘민영화’ 프로그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주식시장을 부활시켰다.

몇몇 국영기업을 내부 인사들에게 매각하고 대외무역을 자유화하는 한편 민간에게 석유 부문을 개방했다. 하지만 반체제 성향의 이란 상공회의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양질의 자산 ·계약 대부분이 이슬람 성직자와 측근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피스타치오 소농에 불과했던 라프산자니의 가족들 역시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70년대 초반 테헤란대학에서 라프산자니의 형제 한 사람과 함께 수학한 역사학자 레자(성은 밝히기를 거부)는 “라프산자니 가족은 부자가 아니었으며 그들은 열심히 일하며 항상 친척들을 도우려 애썼다”고 기억했다.

라프산자니 일가는 1979년 이란혁명과 더불어 거물급 기업인들로 탈바꿈했다. 라프산자니 형제들 중 한 사람은 이란 최대의 구리광산을, 또 다른 형제는 국영 TV 네트워크의 경영을 맡았다. 한 처남은 케르만 주지사로 임명됐다. 사촌 가운데 한 명은 4억 달러 규모의 피스타치오 수출업을 주도하는 업체 사장이다. 한 조카와 라프산자니의 아들들 중 한 명은 이란 석유부의 요직에 있고 또 다른 아들은 테헤란 지하철 건설 프로젝트의 책임자다(테헤란 지하철 프로젝트에 지금까지 7억 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라프산자니 일가는 많은 재단과 기업을 운영하며 대규모 석유 엔지니어링 기업, 대우자동차 조립공장, 이란 최고 민간 항공사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라프산자니는 이들 기업이 자신의 집안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부(富)는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1,800달러에 불과한 대다수 서민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스위스 ·룩셈부르크 은행에 수십억 달러를 은닉해 놓고 있고, 걸프만 소재 자유경제지역의 상당 부분과 두바이(Dubai), 인도 고아(Goa), 태국 해안에 있는 환상적인 휴양 리조트들이 라프산자니 일가의 소유라는 소문도 있다.

라프산자니 일가에 대한 비난 가운데 언론에 보도된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언론인은 겁도 없이 라프산자니의 비밀거래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불법 처형 사건을 조사하다 현재 옥고를 치르고 있다. 그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이란의 정치체제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테헤란에서는 저널리스트와 부패추방 운동가들이 피살된 사건으로 떠들썩한 적이 있다. 당시 일부는 목이 잘렸고 몇몇은 팔이나 다리를 절단당했다.

라프산자니 일가의 부가 모두 은닉돼 있는 것은 아니다. 라프산자니의 막내 아들인 야세르는 테헤란 북부 라바산 지역에 3만7,000평짜리 호화 목장을 소유하고 있다.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난 걸까. 벨기에에서 수학한 경영인 야세르는 이유식 ·생수 ·산업기계를 수출입하는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란에서 벼락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외환거래였다.

즉, 정부로부터 보조를 받아 1,750리알에 달러를 매입한 뒤 시가인 8,000리알에 되팔아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연줄’로 수입허가를 받아내는 일뿐이었다. 이란 최대 자동차업체의 이코노미스트 사에드 라일라즈는 “이란이 지난 10년 동안 그런 외환사기를 통해 본 피해액만 연간 30억~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대부분의 부정 이득이 50여 일가(一家)에게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외환제도로 덕을 본 50여 가문 가운데 하나가 아스가롤라디(Asgaroladi) 일가다. 원래 유대교도였던 아스가롤라디 일가는 수세대 전 이슬람으로 개종한 바자(市場) 상인 집안이다. 아사돌라 아스가롤라디는 피스타치오, 커민(cumin ·향신료), 말린 과일, 작은 새우, 캐비어를 수출하고 설탕 ·가전제품을 주로 수입한다. 이란 금융계는 그의 재산을 4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아스가롤라디는 80년대 형 하비볼라 덕을 톡톡히 봤다. 하비볼라는 당시 짭짤한 장사가 되는 해외무역 허가증 발급 기관인 상무부 장관이었다.

이란 경제의 또 다른 한 축에 이슬람 재단(財團)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재단들은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10~20%를 차지하고 있다(지난해엔 1,150억 달러). ‘보냐드(Bonyads)’로 불리는 이들은 호메이니 집권 초기 몰수한 외국인과 국내 갑부들의 재산 ·기업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재단의 임무는 ‘배신자’와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자본가’가 혁명 전 ‘부당한’ 방법으로 축적한 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이다. 사실 설립 초기 10여 년 동안 재단들은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병원 건설에 힘썼다. 그러나 89년 호메이니 사망 이후 사회복지 기능을 버리고 상업활동에 노골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보냐드들은 최근까지만 해도 세금과 수입관세는 물론 정부 규제도 면제받았다. 게다가 외환을 주무르고 국영은행에서 저리 대출도 받았다. 중앙은행과 재무부 등 어떤 정부 기관으로부터 통제받는 일도 없었다. 이슬람 재단은 공식적으로 최고 종교지도자 감독 아래 있지만 알라만이 감독 ·통제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실한 무슬림이 수익의 20%를 지역 이슬람 사원에 기부하는 것은 시아파의 전통이다. 사원들은 기부받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보냐드가 기업인들로부터 협박하다시피 돈을 갈취한다. 대규모 국립 보냐드들말고도 거의 모든 도시에 크고 작은 보냐드가 존재하고 현지 이슬람 성직자가 이들을 관리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반체제 경제학자는 “많은 중소기업인들은 돈을 조금 벌기만 하면 찾아와 기부하라고 윽박지르는 지역 물라에 대해 불만이 많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거절할 경우 선한 무슬림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증인이랍시고 몇몇이 나타나 선지자 마호메트를 모욕하는 말까지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결국 철창신세를 지게 마련이다. ” 마피아가 이슬람원리주의에 접목됐다고나 할까.

다국적 대기업과 흡사한 자선단체도 있다. ‘핍박받는 자들과 상이용사를 위한 재단’이란 뜻의 모스타자판 잠바잔은 이란 국영 석유회사에 이어 이란에서 둘째로 큰 대기업이다. 모스타자판 잠바잔은 최근까지 모흐센 라피크두스트(Mohsen Rafiqdoost)에 의해 운영됐다. 테헤란 바자에서 야채와 과일을 팔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라피크두스트가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은 79년이었다. 당시 파리 망명생활을 마치고 개선하는 호메이니의 운전기사로 선택됐던 것이다.

호메이니는 라피크두스트를 혁명수비대 사령관에 임명했다. 내부 반체제 인사 탄압과 이란·이라크 전쟁에 필요한 무기 밀수 임무를 맡긴 것이다. 89년 라프산자니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라피크두스트는 모스타자판 잠바잔 재단의 운영을 맡게 됐다. 현재 재단은 직원 40만 명과 보유 자산이 100억 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재단이 보유 중인 자산 가운데는 테헤란의 옛 하얏트와 힐튼 호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잠잠 청량음료회사(한때 펩시콜라), 국제 해운사, 석유제품 ·시멘트 생산업체, 엄청난 규모의 농장과 도시 부동산 등이 있다.

모스타자판 잠바잔은 이론상 사회복지단체로 96년부터 복지비 지출 명목으로 정부 자금을 지원받기 시작했다. 재단은 곧 사회복지 기능을 모두 떨쳐버리고 순수 영리 목적의 기업집단만 남길 계획이다. 그렇다면 소유주는 누구일까. 그 부분은 확실치 않다. 재단의 존재 이유에 대해 라프산자니의 외교정책 보좌관 압바스 말레키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라피크두스트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답했다.

한 대규모 재단에서 무역업무를 담당한 바 있는 어느 기업인의 증언으로 의문이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에 따르면 모스타자판 잠바잔 같은 조직은 거대한 돈줄이며 테헤란 종교집회에 전세 버스로 참가한 수천 명의 농민이든 학생 데모대를 공격하는 헤즈볼라와 물라 지지자들의 지원용으로 돈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재단 운영자들의 돈줄로도 활용되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기업인은 “대개가 이런 식이다. 외국 기업인이 찾아와 재단 책임자에게 계약을 제안하면 책임자는 ‘계약하자’며 ‘세부사항은 담당자와 의논하라’고 말한다. 외국 기업인이 담당자를 만나면 ‘아다시피 이란에는 공식 경제과 비공식 경제, 두 경제가 존재한다. 이란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비공식 경제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러이러한 금액을 이러이러한 계좌에 입금해 달라. 그러면 계약이 잘 풀릴 것’이라고 말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라피크두스트는 누르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누르 재단은 아파트 단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의약품 ·설탕 ·건설자재 수입으로 어림잡아 2억 달러의 수익도 올린다. 그러나 정작 라피크두스트 자신의 재산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그렇고 그런 규모의 재산을 지닌 보통사람일 뿐”이라고 말한 뒤 나폴레옹 같은 포즈까지 취하며 “그러나 이슬람이 위협받을 경우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피크두스트의 말은 즉, 필요할 경우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비자금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시사한 비자금은 최근 라프산자니가 이란의 대규모 예비금 확보 필요성 운운한 것과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슬람이 위기에 빠졌는지 안 빠졌는지는 누가 판단하는가.라피크두스트는 80년대 혁명수비대 사령관 재직 당시 외국인 납치, 여객기 납치, 차량 탑재 폭발물 테러, 마약 밀수, 자살 폭탄 테러 등 레바논 내 헤즈볼라의 테러활동 지원에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미 국무부 근동국(近東局)의 그레고리 설리번 대변인에 따르면 이슬람 재단이야말로 그림자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완벽한 수단이다(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를 살해하라는 호메이니의 율령이 떨어지자 한 재단은 율령을 실천에 옮기는 자에게 280만 달러의 상금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테러에 이란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란 정부는 혐의를 부인해 왔다. 미 국무부는 이런 테러가 이슬람 재단과 혁명수비대 조직의 지원으로 발생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만약 이란 내부에 알카에다 지원세력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바로 이슬람 재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의 이슬람 재단들은 스스로를 법이라고 여긴다. 보유 부동산 규모로 볼 때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라자비(Razavi) 재단은 가장 큰 ‘자선’ 단체다. 라자비 재단은 이란 북부 마슈하드에 위치한 시아파의 제8대 이맘 리다의 묘소인 한 사원을 관리하고 있다. 이 사원은 이란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곳이다. 라자비 재단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강경파인 아야툴라 바에즈 타바시(Ayatollah Vaez-Tabasi)로 대중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가끔 모습을 드러낼 때면 변절자와 반체제 인사들에게 죽음을 내려야 한다고 발언한다. 라자비 재단은 이란 전역에 호텔 ·공장 ·농장 ·채석장은 물론 방대한 도심 부동산도 보유하고 있지만 보유 자산을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따라서 재단의 자산을 정확히 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란 경제학자들은 순자산 가치가 150억 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생각인데 라자비 재단은 해마다 마슈하드 사원을 찾는 순례자 수백만 명으로부터 막대한 헌금까지 받고 있다.

그렇다면 해마다 들어오는 수억, 아니 수십억 달러를 어디다 쓰는 걸까. 모든 돈이 이슬람 사원 ·묘지 ·학교 ·도서관 유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라자비 재단은 지난 10년 동안 여러 기업과 자산을 매입해 왔다. 사우디아라비아갪AE의 투자자들과 투자은행을 공동 설립하기도 하고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와 굵직굵직한 대외무역에 자금도 지원했다.라자비 재단이 영리집단으로 탈바꿈한 배경에는 타바시의 아들 나세르가 있다. 그는 옛 소련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라흐스 자유무역지대의 책임자였다. 90년대 라자비 재단은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을 잇는 철로, 간선도로, 국제공항, 호텔, 오피스 빌딩 건설 등 사라흐스 프로젝트에 수억 달러나 쏟아부었다.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철로 연결 기념식을 거행하기 위해 한 스위스 업체에 230만 달러나 주고 초대형 텐트까지 세웠을 정도다. 그 뒤 모든 게 엉망이되고 2001년 7월 나세르 타바시는 자유무역지대 책임자 자리에서 해임됐다. 두 달 뒤에는 두바이 소재 기업 알마카시브의 사기사건을 계기로 체포됐다. 사건 정황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섯 달 전 테헤란 고등법원은 나세르 타바시가 위법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그를 석방했다.

특권층이 불법행위로 처벌받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고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강경파 이슬람 성직자 하디 가파리가 바로 예외적인 경우다. 그는 섹시한 스타일의 란제리 제조업체 ‘스타 스타킹스’ 같은 몰수 자산을 확보한 뒤 되팔아 짭짤한 차익까지 남기는 게 주특기였다. 그는 90년대 초반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란의 내로라 하는 일부 고위 성직자는 물라 체제를 경멸한다.

아야툴라 타헤리는 에스파한에서 금요 예배를 이끌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올해 물라 체제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예배 인도자직을 사퇴했다. 타헤리는 “일부 성직자나 특권층이 본분마저 망각한 채 축재(蓄財)에 급급하다는 얘기만 들으면 너무 창피한 나머지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성직자들은 잘못된 국정으로 이란을 빈곤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이란은 세계 석유의 9%, 천연가스의 15%를 보유한 부유국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게다가 이란은 교육수준이 높은 많은 청년층과 오랜 장인정신과 국제무역의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란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년 혁명 전보다 7%나 줄었다. 이란의 경제학자들은 두바이 등 조세피난처로 빠져나가는 국부(國富)가 연간 최고 3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많은 학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란의 독재정권은 학생들에게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한다. 심지어 옷과 먹고 마시는 것까지 지정해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재정권이 젊은이들의 미래마저 앗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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