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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새만금 바다도시’를 꿈꾼다

살아있는‘새만금 바다도시’를 꿈꾼다

‘새만금 바다도시 구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건축가 김석철씨를 만나고 있는 자리에 배순훈 대통령 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장으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씨가 지난해 공개한 이 구상을 가다듬어 계간지 ‘창작과 비평’ 올 가을호에 발표한 직후였다. 배위원장은 전화통화에서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김씨의 구상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김석철씨를 만나고 난 뒤 기자는 바로 배위원장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다. 배위원장측은 “우리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의견을 발표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최소한 배위원장 자신은 김씨의 구상에 매력을 느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동북아 시대 한반도의 발전 전략을 짜고 있는 정부 기구의 책임자가 새만금 바다도시 구상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 시절 김씨의 구상에 호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김씨 사무실에는 걸려오는 전화도 늘었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김씨의 구상은 지난해 12월 ‘새만금 바다도시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출된 이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자신의 구상에 대해 “사업 계속 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에 휩싸여 있는 새만금 사업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면서 동북아 시대 한반도의 미래에 던지는 화두”라고 말했다.

김석철씨의 구상이 주목받은 이유는 ‘개발’과 ‘보존’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새만금 사업 논란에 하나의 출구를 마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새만금 사업은 전북 군산반도와 변산반도를 잇는 33km의 방조제를 쌓아 4만ha의 토지와 담수호를 만드는 건국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이다. 1991년 착공되었으나 환경오염 문제를 두고 중간에 공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지난 7월 서울 행정법원이 수질오염을 이유로 공사중지를 결정, 잠정 중단 상태다.

이 사업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전북지역의 발전을 위해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공사강행론’과 갯벌 훼손 등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는 ‘공사중단론’ 사이에서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새만금에서 서울 시청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벌였고, 지역민들은 공사를 촉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김씨의 구상에 대한 주요 지지자 중 한사람인 백낙청 시민방송 이사장은 “갯벌 보존과 전북의 발전이라는 양쪽의 타당한 주장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석철씨가 ‘새만금 바다도시 구상’을 시작하게 된 것은 5년여 전이다. 그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및 중국 칭화(淸華)대 건축원과 함께 ‘동북아시아 도시화’와 ‘황해도시 공동체’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2001년 중단됐던 새만금 사업이 재개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구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2002년 12월 국제학술회의에서 그의 구상이 일반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후 지난 3월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학생들과 국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중간 세미나를 거쳐 4월 올비아 엑스포에서 ‘바다 위의 도시들’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한층 다듬어졌다. 지난해 발표된 구상이 ‘선언적 구상’이라면 그가 최근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방안은 각계 전문가들의 조언과 비판을 종합한 ‘완결판’이다.

김씨의 구상은 새만금 지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는 여의도 마스터플랜, 서울대 관악 캠퍼스 마스터플랜, 예술의 전당 등의 건설과정에 참여한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구상을 “1만달러 시대에서 2만달러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공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역설한다. 그가 ‘황해 도시공동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씨는 일제시대 이후 형성된 한반도의 공간틀이 경부선·경의선 등 철도를 중심으로 연결되면서 일본·미국을 연결하는 라인으로 형성됐다면 한·중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는 동북아 시대에는 그같은 공간 전략이 맞지 않다고 본다.

한국전쟁 이후 50년간 봉쇄됐던 황해가 열리고 상하이·베이징·톈진(天津)·선양(瀋陽) 등 중국의 황해연안 대도시권이 부상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공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럽이 철도로 연결된 도시공동체라면 멀지않은 미래에 형성될 황해권 도시공동체는 해상을 통해 연결되는 공동체다. 그가 중국 황해연안과 한반도 서해안, 일본의 남단을 연결하는 환황해권 경제권역의 거점으로 새만금을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산과 광양이 일본과 미국을 염두에 둔 국제항만이라면 새만금 바다도시는 동북아의 부상에 대비한 복합도시다. 김씨의 말을 들어보자.

“이제는 중국과의 ‘회통’(會通)이 중요한 시대다. 대중국 교역항인 인천보다 새만금 지역의 가능성이 더 크다. 서해에 그만한 스케일을 가진 지역이 없고, 인천과 목포, 광양과 부산을 잇는 해안 링크의 징검다리다. 게다가 방조제를 건설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없는 안바다[內海]라는 호재를 안고 있다. 배후에 호남평야와 중소도시들이 있고, 밖으로 국제항만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해안과 내륙의 도시가 연대하는 새로운 형태의 어번클러스터(urban cluster·도시군)를 형성할 수 있다.”

그는 방조제는 완성하지 않고 남겨둬야 갯벌 훼손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시도와 계화도 사이에 놓인 2호 방조제 양쪽과 4호 방조제 가운데 물길을 터 해수를 유통시켜 만경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조제를 막아 갯벌을 간척해야 한다는 개발론자들과 견해가 갈라지는 점도 바로 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조제 안쪽으로 거대한 안바다가 만들어지고 환경오염을 방지하면서 이를 도시나 항만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얘기다. 그가 말하는 바다도시는 이 방조제 안과 밖에 건설되는 항만도시(port complex), 해양·생명과학도시(marine bio-tech bay), 박람도시(expo messe city) 등 세도시를 일컫는다(24쪽 그림 참조). 변산반도쪽의 박람도시는 동진강에서 흘러 들어오는 강물을 취수해 형성된 담수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구상은 당초 발표됐던 안에서 상당 부분 수정됐다. 지난해 12월에 제시된 안에는 안바다쪽으로 돌출된 봉화산지역에 중간도시가 있었지만 갯벌 오염의 가능성이 지적되면서 사라졌고, 전주와 김제·익산을 잇는 통합신도시 구상으로 대체됐다. 이 통합신도시는 호남평야와 해안을 잇는 도시연계망(urban link)으로서 거대 신도시를 새로 건설하는 안이 아니라 도시의 연결망을 활성화한 형태로 제시돼 있다.

방조제를 둘러싼 바다와 갯벌·하구 일대가 새만금 1사이트(site)라면, 호남평야와 통합신도시는 2사이트, 새만금 바깥 바다와 백두대간 사이가 3사이트를 이룬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새만금을 이처럼 포괄적인 지역으로 정의한 것은 해안과 배후가 연계되지 않으면 발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가령 새만금 3사이트에 위치한 무주리조트는 겨울 관광코스로, 새만금 바다의 고군산군도는 여름 관광코스로 활용할 수 있어 4계절 관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구상에 대해 김원배 국토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중 경제교역과 투자가 활성화되면 황해안에 새로운 항만이 필요할지 모르나 현재로서는 그럴 만한 수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김석철씨의 바다도시 구상은 현재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박용규 연구원도 “서해안의 공단은 이미 공급 과잉상태에 있고, 평택·인천 등의 항만으로도 충분히 수요를 감당할 정도”라며 “획기적인 수요대책이 없는 한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김씨는 바다도시를 단순한 물류중심지로 보는 시각에 비판한다.

뉴욕의 맨해튼이 물류와 의류산업으로 출발해 금융중심지로 발전했듯이 바다도시도 물류와 제조업, 바다도시와 내륙의 도시가 연결된 새로운 개념의 산업클러스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람도시에서는 외국에서 열리는 엑스포를 통째로 싣고 와 그대로 전시하고, 상설 국제마켓으로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컬럼비아대에서 학생들과 함께 맨해튼 지역의 발전 과정을 연구하고 국제수상도시연구소 이사를 맡아 활동했던 이력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유재현 녹색미래 대표는 “새만금은 베니스에 버금가는 교역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며 김씨의 구상에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김석철은 누구인가]

1943년 경남 밀양 출생. 1964년 김중업 건축사무소에서 건축을 시작해 현재 건축사무소 아키반의 대표로 있다. 명지대 건축대 학장, 베니스대 건축학과와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초빙교수. 자신의 건축가 활동을 담은 ‘여의도에서 새만금까지’를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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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작품: 여의도 마스터플랜, 서울대 관악 캠퍼스 마스터플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의 전당(왼쪽 아래부터 시계바늘 방향으로).
새만금 방조제 안 1억2천만평 위에 3개의 바다도시를 만든다는 발상은 매력적인 제안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김씨의 구상은 관계자들로부터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김씨의 안은 새만금 사업 추진론자들과 반대론자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비판자들이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는 새만금 지역에 항만 건설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농업기반공사 관계자들은 새만금 일대 바다의 조수간만 차가 6∼7m나 되고 수심이 얕아 항만을 만들기에 부적합하다고 비판한다. 농기공 새만금사업팀의 전용주 계장은 “이 지역은 항만 건설도 어렵지만 유속이 빨라 선박 항로로 부적합하다”고 지적한다. 농기공은 새만금 사업의 중단이나 변경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김씨의 구상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농기공의 이같은 비판은 김씨의 최초 구상을 토대로 나온 것이다. 김씨의 구상은 계속 수정을 겪었고, 항만도 수심이 상대적으로 깊은 고군산군도 일대에 건설된다는 점에서 농기공의 비판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해양수산부가 97년에 만든 ‘신항만기본계획’에는 김씨의 구상과 유사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해양수산부 항만개발과 김성환 계장은 “방조제 바깥쪽에 항만을 건설하자는 안으로, 현재로선 물동량이 발생하지 않아 유보되고 있다”고 밝혔다. 방조제 위에 구조물을 설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가 많지만 인천공항 구조설계를 맡았던 센구조연구소의 이창남 소장은 “공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방조제 폭이 3백m에 달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자동차 공장 건설도 가능하다는 게 김석철씨의 주장이다.

환경단체에서는 바다도시 구상이 또다른 개발논리라며 반대하고 있다. 갯벌 생태계 훼손을 이유로 반대하는 환경운동연합 최열 사무총장 같은 경우가 그렇다. 해수를 유통시켜 갯벌 훼손 여지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긴 하지만 도시 건설은 불가피하게 환경오염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김씨의 안을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이다. 그 역시 방조제를 막아 갯벌을 간척하는 방안에 대해선 반대다. 간척지에 농지를 만들고 공단을 조성한다는 방안도 타당성이 없다고 본다.

김씨는 “바다도시 구상은 갯벌 훼손을 5% 정도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그것조차 안된다면 국가 전체를 청학동으로 만들자는 얘긴가”라고 반문한다.
바다도시 구상은 방대한 만큼이나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만금의 ‘제한개발론’이라는 대안을 내놓은 바 있는 전북대 오창환 교수는 “새만금 지역을 국제적 시야에서 조망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계획이 너무 방대해 전북으로서나 국가 차원에서도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새만금의 관광자원화, 항만 건설 등 바다도시 구상의 일부를 원용한 방안이 더 현실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관광이나 항만 모두 산업적 연계성을 갖고 개발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천문학적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예산도 문제다. 김씨는 정부가 항만을 건설하고 농기공과 새도시 건설 주체가 박람도시와 해양·생명과학도시를 맡고, 기타 부대시설은 해외 자본이 맡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으나 가능성에 대해선 검토의 여지가 많다.

김씨는 자신의 구상을 정부에 공식 제안하지 않은 상태이고, 개인 차원의 의견 표명 외에는 정부 차원의 반응도 없는 상태다. 그의 오랜 지기인 백낙청 이사장은 “바다도시 구상은 획기적인 안이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전북이 워낙 낙후한데다 인구도 적고 산업기반이 없어 획기적인 안이 아니고는 해법이 없다. 책임있는 당국자의 확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새만금 문제는 계속 표류하게 될 것”이라며 이 구상에 대해 시민사회의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김씨의 구상은 신철영 경실련 사무총장, 항만 전문가인 이희윤 유일기술단 대표,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의 안건혁 교수 등 국내 전문가 그룹들과 외국의 수상도시 전문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석철씨는 10월께 자신의 구상을 종합해 새만금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예정이다. 12월엔 한반도 공간 전략과 새만금 바다도시 구상에 대한 국제회의를 열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에는 그의 구상에 대한 토론도 활발해질 것 같다. 바다도시 구상은 그의 40여년 건축가 생활을 마무리하는 필생의 사업이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김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바다를 봤다. 아마도 그는 훗날 자신이 그 넓고 큰 바다에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을 구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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